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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연말에 생각하는 절망과 희망

 
12월이군요. 벌써 TV에서는 각종 시상식을 하면서 연말분위기를 돋구고 있고, 케롤이 벌써 나오는 방송도 있더군요. 새 천년의 첫 해를 마무리하면서 내년을 설계해야 하는 때에 우리의 주위는 어수선하고, 화나는 일만 생기는군요.
지난 11월 12일 노동자대회에서는 경찰과 충돌하면서 많은 동지들이 다쳤습니다. 그런 와중에 학교 다닐 때 같이 활동을 했었던 한 동지가 경찰의 집단폭행으로 뇌수술을 받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한겨레신문을 비롯하여 여러 언론에도 보도되어서 알고 계신 동지도 있겠군요. 신문에서 그 동지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숨이 막혔습니다. "씨발"하고 욕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그 동지의 동생이 만들어놓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경찰놈이 들어와서는 또 좆같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더군요. 항상 돈 많고 힘있는 놈들의 충실한 하수인인 이 놈들은 사람을 그렇게 처참한 몰골로 만들어 놓고도 할 말이 그리도 많은가 봅니다.
그 일이 잇고 몇 일 후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저와 같이 민투위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동지가 노동자대회 투쟁관련으로 연행되어 구속되었습니다. 사람을 그렇게 처참하게 만들어놓은 놈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는데, 그에 맞서 투쟁했던 동지들은 전국에서 수없이 잡혀 들어가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한다고 연일 난린데 그 영광의 한 편에서는 또 이렇게 무수한 사람들이 권력에 의해 짓밟혀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수 십 년 동안 너무도 익숙해진 일인데 제 주위에 있는 동지가 이런 일을 당하다보니 새삼스럽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대우자동차에서는 몇 달 동안 임금이 체불되고 고용이 불안해서 일을 부인은 부업거리를 찾아 헤매고, 남편은 쉬는 날이면 공사판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판인데 노동조합이 부도의 원인이라면서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또 다시 공격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우자동차 다닌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수십 명씩 퇴직서를 내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그 회장이었던 놈은 폴란드에서 호화로운 휴양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대우자동차를 떠난 사람들이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98년 현대자동차에서의 정리해고 저지투쟁과 그 이후 깨져나가는 모습을 직접 지쳐보았던 저로서는 이들의 이후 삶이 너무도 선하게 그려집니다.
제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노가다판입니다. 그러나 요즘 건설업체가 퇴출이다 정리해고다 해서 매우 불안한 상황이라서 건설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겨울이라서 그나마의 노가다판도 별로 없는데 이래저래 노가다 자리라도 찾으려고 몰려드는 사람들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몇 푼 되지 않는 퇴직금과 그동안 부어놓았던 적금도 깨고, 주위에서 어렵게 돈도 마련해서 조그마한 장사라도 해보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마련해봐야 1~2천 이든가, 많아야 5천 정도입니다. 요즘 5천으로 변변한 장사하나 제대로 할게 있습니까? 그나마 어떻게 장사거리라도 하나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평생 장사라고는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몇 년에서 몇 십 년 동안 장사를 해왔던 사람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동지들이 그렇게 장사를 하다가 몇 달만에 밑천을 날려버린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조그마한 중소업체나 하청이나 마찌꼬바라도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반이 되는 임금에 일은 더 힘들고, 역시 고용은 불안해도 그나마 이런 일자리라도 있으면 다행입니다. 전체 노동자의 70%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게 늘어만가지만 일자리를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만 갑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는 게 고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고향으로 간다고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요즘 농민들도 쌓여남 가는 농가부채 때문에 고속도로를 막고 격렬한 시위를 하는 판에 그 자식들이 회사에서 짤렸다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이 반갑지는 않습니다. 저희 집도 아버님이 희망퇴직을 하셔서 2년 전부터 밭농사를 짖고 있는데, 일이 고되고 힘든 것은 둘째치고 애써 융자받아가면서 키워놓은 농작물이 제값을 받고 팔지를 못해서 버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다음 정말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게 뭘까요? 애들을 고아원에 맞기고 집을 떠나는 부모, 이혼, 폭음, 단돈 몇 푼을 위해서 몸을 팔러 나서는 주부, 자살... 사회고발성 시사프로에 식상할 정도로 등장하는 소재들이 결국 이런 종착점입니다.
그렇게 화려하게 시작했던 새 천년의 연말이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밝아오는 새로운 한 해는 어떤 희망으로 다가올까요?

하지만 절망과 고통은 희망을 동반합니다. 우리 노동자와 민중들은 이렇게 조용히 않아서 죽어만 가지는 않습니다. 지난번 노동자대회에 모인 수 만 명의 노동자들의 눈빛과 그 열기는 그대로 죽어갈 수만은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농민들의 격렬한 투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숨막히는 현실에 돌파구를 내기 위한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이 우리에게는 희망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불가항력적인 어떤 커다란 힘에 의해 짓눌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그런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 이렇게 사는 게 운명이겠거니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런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그런 속에서 나만의 고통과 노력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노력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런 무수한 과정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서는 느껴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삶과 관계들에서 확인되는 활력. 이 모든 것이 희망입니다. 그래서 '희망의 노래'가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너의 빈 잔에 술을 따라라
너의 마음의 문을 열어라
피맺힌 노동에, 무너진 가슴에 우리 희망의 술을 따라라
보라! 거대하게 몰아치는 태풍의 쓰라린 칼바람
저 더러운 것들 싹 쓸어서 우리 해방의 불 밝히리라
나의 눈물도 가져가거라
나의 슬픔도 가져가거라
피맺힌 노동에, 무너진 가슴에 우리 희망의 술을 따라라

오래간만에 우리 동지들에게 연락을 하는데 시작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올 한 해 내내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올 연말은 특히 더 바쁜 나날입니다. 그동안 이제나 저제나 하던 현대자동차 위원장 선거일정이 이제야 나왔습니다. 연말연시는 완전히 선거를 하면서 보내야 할 판입니다.
그래서 우리 동지들에게 연말인사를 제대로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미리 연말 인사를 해야하겠군요.

올해 본 영화 중에 '동감'과 '시월애'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동감'은 엄청 재미있게 봤는데, '시월애'는 별로 재미가 없더군요. 두 영화에서 공통적인 것은 황당하기는 하지만 시간을 초월한 교감이었습니다. '동감'이 30년의 시간을 초월한 것이라면, '시월애'는 3년의 시간을 초월한 얘기였습니다. 그 두 편의 영화를 보고 그렇게 30년이나 3년의 시간을 초월해서 교감을 이룰 수는 없지만 30년이나 3년의 시간이 지나서 그날의 만남을 기억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 가족이야 30년의 기간을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제 친구 중에 아직도 만나고 있는 국민학교 동창은 20년 가까이 관계를 유지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경우는 10년이 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이런 관계들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문제가 아니게되고, 새롭게 형성되는 관계들은 더욱 단명을 하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소식을 전하는 동지들 중에는 10년이 넘은 동지도 있지만, 알게된지 1년이 되지 않은 동지도 몇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모든 관계들이 정말로 소중합니다. 그 관계들이 어떠한 관계이든 인간이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기에 저의 모든 관계는 동시의 저 자신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장 싫은 것이 우연하게 알게되었다가 그냥 잠시 스쳐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그런 게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만 가능하면 그렇게 관계들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0년은 좀 너무했고, 3년 후에도 이렇게 저의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관계라는 것이 원래 쌍방향적인 것이기에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가족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가족도 서로간의 믿음과 노력으로 끝임 없이 신뢰와 사랑을 쌓아가지 않는다면 참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3년 후의 목표를 하나 세웠습니다. 2003년 연말에는 지금 소식을 전하는 동지들에게 다시 연말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3년 후면 제 나이가 끔찍하지만 서른 다섯이 됩니다. 30대 중반에서 40대에 고민을 하는 시점에서 우리 동지들과의 소중한 관계는 정말 중요한 삶의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2003년 연말의 목표는 5년 후에 다시 연말인사를 하는 것이겠지요. 40대에 접어들면서 말입니다.
2003년 연말을 기약하면서 오늘의 만남은 이 정도에서 마치렵니다.
연말 잘 보내세요.

2000년 12월 1일
울산에서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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