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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영혼을 달래는 혁명휴양소로 오세요

 지친 영혼을 달래는 혁명휴양소로 오세요



1.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여

진청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단 꿈에 마음은 침식되어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내게도 이름이 있었다 한들

이미 잊은 지 오래인 노래

아아아

부서진 멜로디만

입가에 남아 울고 있네.


검푸른 저 숲 속에도

새들은 날아들고

아아아

아아아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내게도 이름이 있었다 한들

이미 잊은 지 오래인 노래

아아아

부서진 멜로디만

입가에 남아 울고 있네.


붉게 멍울 진 마음에는

일상도 꿈도 투명하여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여

진청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단 꿈에 마음은 침식되어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 김윤아 노래 ‘불안을 영혼을 잠식한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어디 가서 며칠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생각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상 그런 곳을 찾아보면 돈이 많이 드는 상업적 휴양시설이거나, 너무 멀리 떨어진 오지이거나, 종교인이나 문화예술인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거나 합니다. 지친 영혼은 늘어만 가는데 돈과 정보력과 인맥이 없는 영혼들에게는 쉴 곳마저도 없습니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은 열정과 함께하는 긴장, 투쟁을 뒤따르는 고립, 치열함과 손을 맞잡고 있는 완고함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부수적으로는 메말라 버린 감성, 등과 가슴에 남아있는 상처들, 빈약한 대인관계 등을 혹처럼 달고 있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돈도 정보력도 인맥도 부족하지만, 더욱 부족한 것은 자신의 영혼을 돌보려는 마음입니다.


도시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시골에 자그마한 집이 한 채 있습니다. 약간 허술해 보이기도 하고, 주위에 있는 다른 집들과 달라보이지도 않고, 겉으로 별달리 드러나 보이는 표식도 없는 이 집이 ‘혁명 휴양소’입니다. 영혼이 지친 혁명가들은 이곳에서 편히 쉬었다 가시면 됩니다.


2. 어디에 있나?


인터넷에서 혁명휴양소를 검색해보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한 홈페이지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주위 활동가들을 통해서 수소문해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시골에 비어있는 집을 빌려서 수리한 것이라서 좀 낡았습니다. 그리고 최대 3명은 이용할 수 있게 하려다보니 기존에 있던 방을 쪼겠습니다. 그러다보니 방이 좀 비좁고, 방음이 완벽하기 않습니다. 마당 한쪽에 4평 정도로 해서 흙집이 있는데 이곳은 ‘사람방’이라고 이름을 붙여져 있습니다. 휴양소 뒤편에는 작은 텃밭이 있어서 간단한 채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상근하는 사람은 없지만 기본 업무를 처리하시는 분이 있으니까 그 분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시면 됩니다. 최대 3명까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을 확인하시는 것이 필요할 겁니다. 물론 들어가는 시점은 확인을 해야 하지만, 나오는 시점은 자신이 정합니다. 휴양소를 이용하는데 따른 별도의 비용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먹을거리는 본인이 마련해야 합니다. 이용에 따르는 몇 가지 안내사항은 업무를 처리하시는 분과 얘기하시면 되고, 다른 이용자들이 있을 경우 공동 이용에 따른 규칙을 서로 논의해서 정하시면 됩니다.


휴양소 이용 신청은 매우 간단합니다.

메일이나 전화로 문의를 하시면 단 하나의 질문을 받게 됩니다.

“혁명을 꿈꾸는 분이신가요?”

“예”라고 대답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자기 소개와 연락처를 얘기하시고, 일정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문의하는 사람들에 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자신의 영혼을 돌볼 자신이 없어서?

아니면 혁명을 꿈꾸지 않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운영을 너무 옹졸하게 하는 건 아닌지...


3. 영혼을 쓰다듬고... 사람을 생각하고...


1) 편하게 쉬기


휴양소에는 어떤 정해진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들어와 있는 분들의 필요와 현실적 조건 등을 감안해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우선은 편하게 쉬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그리 넓고 안락한 공간은 아니지만, 시골에서의 생활이 주는 편안함은 있을 것입니다.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고, 텃밭에서 소일거리도 하고... 그냥 편한 시간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놓아두세요.


혼자 있는 것이 적적하시면, 휴양소에 있는 분들이나 운영하시는 분들과 차나 술을 마시면서 얘기도 해보세요. 휴양소에 들어와 있는 분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주로는 운영하시는 분들과 얘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운영하시는 분들이 모두 그 지역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분은 그 마을에 사시면서 실무적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까 그 분과 많은 얘기를 나눕니다. 그 분을 통해 마을 사람을 소개받기도 하는데, 낮에 심심하면 마을 분이 일하시는 밭에 가서 일을 도와 드릴수도 있고, 저녁에는 그 분 집에서 저녁 식사와 함께 술을 한 잔 할 수도 있습니다.


2) 사람방 이용하기


마당에 지어진 작은 흙집인 ‘사람방’에는 책과 영화 DVD와 음악 CD 등이 가득 들어차 있고, 작은 소파와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책과 영화 DVD는 대부분 사람들에 관한 것들입니다. 책들은 평전, 전기, 르뽀, 구술집, 인터뷰 등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것들이고, 영화 DVD 역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진 것으로 주로 다큐멘터리물이 많습니다.

이곳에서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영화를 볼 수도 있고, 명상을 할 수도 있고, 그냥 잠을 잘 수도 있습니다. 단지, 이용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입구에 있는 표에 이용하실 시간을 미리 적어두셔야 합니다.


사람방을 만든 이유는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지친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람에 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고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생각들을 접해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관계에 대해서 고민해보자는 취지입니다.

그래야 다시 사람들 속에서 혁명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3) 얘기 나누기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기보다는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다른 이와의 좋은 대화로 더 풍부해지기도 합니다.

휴양소에 같이 있는 분이 있으면 우선 그 분과 많은 얘기를 하겠고, 운영하시는 분과도 많은 얘기를 하겠고, 알게 된 마을 분과도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얘기들이 다 소중한 얘기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 번쯤 만나서 얘기를 듣고 싶다거나, 휴양소에 남겨진 이러저러한 흔적들을 보면서 얘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운영하시는 분과 상의를 해보세요. 그 분이 여기저기에 수소문을 해서 함께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 볼 수도 있으니까요.

잘 알지도 못하는 분과 개인적으로 자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우시면 휴양소 주최의 작은 좌담회 형식으로 마련해도 됩니다. 휴양소와 가까운 곳에서 오시는 분은 차나 술을 마련해서 고마움을 표하면 되겠지만, 먼 곳에서 오시는 분에게는 차비는 드려야하는 것이 예의겠지요. 연락이나 준비는 운영하시는 분이 도와주겠지만, 기본 비용은 본인이 부담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돈 때문에 얘기를 못 듣는 일은 없습니다. 운영하시는 분이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요.


4) 내 얘기하기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합니다.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서는 우선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얘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휴양소에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얘기를 들으면서 영혼의 상처를 보듬어서 다시 나가시기 전에 자기 얘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얘기를 어떤 형식으로 하느냐 하는 것은 본인이 정하면 됩니다. 글로 쓰셔도 되고, 운영하시는 분과 대화로 하셔도 되고, 인터뷰를 하시는 분과 얘기를 나누셔도 됩니다.


휴양소 홈페이지를 보시면 그렇게 휴양소를 거쳐 가신 분들의 다양한 글과 얘기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가장 소중한 얘기들이죠.


4. 아파본 사람은 아픈 사람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휴양소는 만들어진 지 3년이 됐는데 20여 분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그분들이 모두 운영에 대해 역할을 나눠서 함께 하고 있고, 제정 문제도 서로가 십시일반으로 헌신해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휴양소를 처음 제안 했던 분은 세 분인데, 한 분은 구속됐다가 출소하신지 얼마 안 되는 때였고, 한 분은 병으로 쉬고 계셨고, 한 분은 마음의 상처가 커서 고향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런 세 분이 우연치 않게 모여서 술을 한 잔 하다가 휴양소 비슷한 얘기가 나왔는데, 얘기가 잘 풀려서 의기투합을 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아직도 하시는 얘기가 “뜻 맞는 사람 세 명만 있으면 뭐든 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 분의 제안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열 명 정도 더 모여서 의견도 나누고, 돈도 모으기 시작해서 조금씩 일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그 후에 조금씩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시는 분이 늘었습니다.

지금 운영위원으로 있는 분 중에 반 정도는 처음부터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신 분들이고, 나머지 반 정도는 휴양소를 거쳐 가신 분들과 그분들의 소개로 참여하시게 된 분들입니다.


최근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신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아픈 사람 마음은 아파 본 사람이 가장 잘 아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곳이 필요한 것이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이라면 내가 주인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요...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려면 이곳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있는 곳들이 모두 혁명휴양소가 됐으면 합니다.“


5. 들어와서 편히 쉬세요


저에게 세 살 날 조카가 있는데 요즘 노래 부르는 것을 엄청 좋아합니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우리 집에 놀러오면 조카가 좋아하는 노래 DVD를 틀어줍니다.

조카는 제 무릎에 와서 앉고는 제 손을 잡고 안아달라고 합니다.

어린 조카를 살며시 껴안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노래를 같이 부릅니다.


숲속 작은 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있었는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를 살려주지 않으면 사냥꾼이 총으로 빵! 쏜대요."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라~

 

 

(이 글은 가상의 휴양소를 생각하면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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