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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카이폴

 

20년쯤 전에 ‘주말의 영화’에서 007을 보고 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헤 벌리고 빠져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로저 무어가 맹활약을 하던 007세대였기 때문에 깔끔한 정장에 멋있게 빗어 넘기 머리를 한 제임스 본드가 도도한 자세로 폼을 잡고 윙크를 하면 여자들이 넘어가는 모습에 무지무지 부러웠었다.

탄력적인 몸매를 뽐내는 본드 걸들이 나와서 제인스 본드랑 요상한 분위기를 만들다가 야시꾸리한 장면으로 넘어가면 침을 ‘꼴깍’하면서 넋을 놓고 바라봐야 했다.

특히 아주 멋있는 본드 카를 비롯해서 다양한 최첨단 무기들을 보면서 상상력의 날개를 펼쳐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007보다 더 멋있고 더 화려하고 더 에로틱한 영화들이 넘쳐나면서 007은 점점 멀어져 갔다.

로저 무어는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가슴도 제대로 보여주는 않는 본드 걸보다 조여정이 훨씬 섹시하고, 녹음기와 카메라 기능까지 다 갖춰진 들고 다니는 조그만 전화기(당시 특수임무를 맞은 제임스 본드만이 가질 수 있었던 최첨단 무기였다)는 인터넷이 되는 스마트폰시대에 골동품으로 전락하고 있는데, 007은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다.

50년째 만들어지고 있는 007을 보면 분명히 현실이 영화의 상상력을 앞서고 있는데도, 지치고 않고 영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처음으로 007을 극장에서 봤다.

시작과 함께 닥치고 액션이 시작되는데...

사람들이 붐비는 좁은 길에서 차량 추격전이 벌어지더니

갑자기 오토바이로 갈아타서는 계단을 올라가더니 지붕들 위로 마구 달리고

달리는 기차 위에서 총 쏘고 주먹질 하고

정신없이 난리를 쳤다.

그리고 007특유의 잔득 멋을 부린 오프닝이 이어졌다.

“20년 전 007에서 봤던 그 대로의 액션 장면을 재연하는 저 무모한 자신감은 도대체 뭐야?”

 

무모한 자신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적들의 공격으로 정보부가 위기에 처하자 은둔해 있던 제임스 본드가 폼을 잡으면서 다시 등장해서 임무를 맡더니

야시꾸리한 폰드 걸이 두 명이나 나와서 가슴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채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멋있는 곳만을 골라서 웅당탕탕 총질에 주먹질을 일삼느라 정신이 없었다.

로저 무어에서 다니엘 크레이그로 인물만 바뀌었을 뿐 20년 전 그대로였다.

심각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너무나 쉽게 결정을 내려버리고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범인을 쉽게 찾아내서는 그보다 더 쉽게 놓쳐버리고

제임스 본드와 본드 걸이 둘만 있게 되면 갑자기 분위기가 야하게 바뀌고...

20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007을 보고 있으려니

황현희가 나타나서 한마디 한다.

“제들 왜 이럴까요?”

 

007의 모든 법칙을 아주 충실하게 따르면서 초반을 달리던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조금씩 기존 007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첨단 무기를 자랑하던 영국 정보부는 아이페드시대에 노트북으로 적들의 인터넷 공격에 대응하고 있었고

지능범죄와 중화기로 무장한 적들에 맞선 제임스 본드의 무기는 작은 권총과 조그만 송신기가 전부였고

적들도 공산국가나 아랍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노쇠해지고 있는 007을 비웃으면서 만든 007의 짝퉁인 본 시리즈를 강하게 의식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더 이상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이기를 포기하고 본 시리지의 제이븐 본과 경쟁하고 있었다.

거기에 맞서는 영리하고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는 악당도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경쾌한 팝음악으로 연주되던 음악들도 무겁고 진중한 클래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더 이상 가벼운 007은 잊어라! 007은 007과 싸운다!”

 

힘겹게 달려온 007은 마지막 최후의 결전을 위해 대도시를 벗어나 스코틀랜드의 고풍스러운 대저택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제임스 본드는 구식 엽총과 칼로 무장해서 중무장한 적들을 기다린다.

드디어 자동화기와 수류탄과 헬기까지 동원한 적들과 맞선 일대 격전이 벌어지는데 구식 무기로 무장한 제임스 본드는 중세시대의 미로와 같은 저택의 장점을 이용해서 적들을 제압한다.

그리고 최후의 마무리는 칼이었다.

“구관이 명관이지?”

 

고통스러운 결정 속에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도록 결단을 요구했던 정보부 상사 M은 “보이지 않는 적들과 맞서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다”라는 감동적인 대사를 뒤로하고 멋있게 죽는다.

그리고 2시간 20분 정도 되는 런닝 타임을 소화하기 위해 조금은 버겁게 달려온 제임스 본드는 마지막 결승 트랙에서 다시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입고는 새로운 임무를 맡으면서 영화가 끝난다.

“대영제국의 영광이여 영원하라!”

 

웅장한 올림픽 폐막식 공연을 보는 듯한 영화였다.

50년의 역사와 전통을 아주 고전적인 스타일로 녹아내려고 노력했음이 잘 보인다.

최근의 첩보영화나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성과까지 녹아내려고 노력했음도 잘 보인다.

영국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글로벌한 감각도 녹아내려고 노력했음도 잘 보인다.

하지만 상상력은 고갈되고, 철학은 빈곤하고, 체력은 떨어지는 제임스 본드의 모습은 처량해 보였다.

 

영화의 상상력이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는 안쓰러움은 007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락영화의 모범답안과 같았던 ‘도둑들’에서는 신선함과 묵직함은 어느 한군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영화는 007보다 훨씬 재미있으니까 봐준다고 치자.

배우 출신의 어느 감독은 원작 소설과 원작 영화가 성공한 작품을 리메이크해서 데뷔작으로 내놓는 과감함을 보여줬다. 현실에 대한 성찰은 미리 포기하고, 영화적 상상력까지 포기하면서 안전빵으로 만드는 데뷔작은 좀 그렇지 않나?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아저씨’ ‘추격자’ ‘도가니’ 같은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니까 퓨전 비빔밥처럼 흥행코드를 적당히 비벼서 내놓는 영화들이 드디어 ‘돈 크라이 마마’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할 말을 잊었다.

몇 년 전 밀양에서 일어났던 집단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아직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 피해자들의 고통을 제대로 생각해봤을까?

그들의 고통을 다시 끄집어내서 영화적 복수를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직 개봉을 하지 않은 영화이기 때문에 얼마나 진지하고 잘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건 아니다.

영화적 상상력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채 흥행만을 쫓아갈 때 현실의 가해자들은 좀 더 세련되게 도망갈 구멍을 만들고, 피해자들은 다시 들추어진 상처로 고통 받는다.

오래간만에 007을 보고나서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는 영화의 상상력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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