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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22회)
1
지난 주말에 조카들이 놀러왔습니다.
5살 여자아이와 7살 남자아이가 와서 떠들기 시작하면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와 무기력한 삼촌만 있는 시골집에 활기가 넘쳐납니다.
어린 아이들 특유의 넘쳐나는 에너지로 인해 같이 놀아주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조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동화책을 읽어주면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뭔가를 가지고 노는 걸 더 좋아해서 색종이를 사다줬더니 엄청 좋아합니다.
알록달록한 다양한 색깔의 색종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나름대로 뭔가를 만들기도 하고, 삼촌에게 이것저것 만들어달라고 귀찮을 정도로 졸라대곤 합니다.
그날도 밭에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까 “삼촌, 빨리 와서 색종이 접어줘”라면서 얼마나 졸라대는지...
급하게 저녁을 먹고 조카들과 같이 색종이 접기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골라놓은 색종이를 펼쳐 놓고는 제 좌우로 앉아서 색종이를 한 장씩 내밉니다.
그 색종이를 받아서 종이 접기를 하고 있으면 서로가 뭐라고 계속 조잘대면서도 조카들의 눈은 제 손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비행기도 접어주고, 학도 만들어주고, 물고기, 풍선, 매미, 작은 새 등 조카들의 요구는 끝이 없었습니다.
큰 조카에게 접어주고 나면 작은 조카가 낼름 색종이를 내밀면서 “나도 같은 거 만들어줘”라고 하고, 작은 조카 것을 채 다 만들기도 전부터 큰 조카는 “삼촌, 이번에는 이것 만들어줘”라고 보채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색종이 접기를 하고나면 진이 빠져서 “삼촌 힘들어서 이제 그만!”이라고 하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해주세요”라면서 간절한 눈길로 색종이를 내미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러면 이번이 진짜로 마지막이다”라고 약속을 받아내고서 마지막 색종이 접기를 해줍니다.
그렇게 색종이 접기가 끝나면 각자의 색종이를 소중하게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방으로 달려가서 자랑을 합니다.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조카들과 같이 웃고 떠들면서 일주일 중에 유일하게 웃음이 넘치는 주말 밤이 됩니다.
밭일을 하고 와서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색종이 접기를 하느라 진도 빠져서 편하게 쉬고 싶기는 한데, 조카들은 그저 신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떠들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밤 9시가 넘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야 하는 시간이 됐는데도 조카들은 공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제가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자야하니까 이제 그만하자”라고 얘기해 봐도 “조금만 더 놀고...”라면서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할아버지가 작은 방으로 옮겨서 잠을 자려고 하는데도 조카들의 놀이는 그치지가 않았습니다.
강제로라도 공놀이를 중단시켜야겠다는 생각에 큰 조카에게 가서 “할아버지 주무시니까 그만하자”라고 다소 엄숙한 목소리로 얘기해봤지만 조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을 빼앗더니 다시 그 공을 가로채갑니다.
일부러 굳은 얼굴을 하고는 “할아버지 주무시잖아”라고 해봤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약간 짜증이 나서 “야!”하고 큰 소리를 질렀더니 조카도 맞받아서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순간 욱 하는 감정이 일어서 “씨발! 그만해!”라고 욕을 했더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조카도 “씨빨! 그만해!”라고 따라서 욕을 해댔습니다.
감정이 요동쳐서 0.5초 정도 짧은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조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을 보면서 뺨을 때렸습니다.
그리고 조카는 힘없이 쓰려지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작은 조카까지 울고 말았습니다.
엄마와 할머니가 와서 조카들을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야 집이 조용해졌습니다.
혼자 내 방으로 와서 심호흡을 몇 번씩 하면서 뉘우쳐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조카는 신나게 놀다보니 너무 기분이 들떠서 그런 건데 삼촌인 저는 순간적인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해버린 것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언어장애가 있는 친구의 뺨을 때린 이후 두 번째로 누군가를 때린 날이 돼 버렸습니다.
그렇게 7살인 조카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하나 간직하게 됐습니다.
2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고 있는 밭에는 ‘우정이’라는 이름의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둘째 동생네 친정집에서 키우던 개였는데, 동생네가 시내로 나와 살게 되면서 돌볼 사람이 없어졌기에 우리 밭에서 키우게 됐습니다.
개 나이로는 환갑이 훨씬 넘은 8살인 우정이는 사람과 어울려 산지가 오래된데다가 나이도 많아서 아주 온순합니다.
요즘 날씨도 좋아서 조카들이 주말에 놀러오면 밭에 가서 우정이와 같이 노는 걸 매우 좋아합니다.
덩치가 자기들만큼 커서 처음에는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더니 이제는 서로 먼저 달려가서 하얀 털을 조금 강하게 잡아당겨보기도 하고, 우정이 등에 올라타기도 하고, 셋이서 같이 달리기도 하면서 난리가 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가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가 동물을 키우는 걸 그리 좋아하시는 편이 아니라서 개를 키운 적은 많지 않지만 어린 자식들이 하도 졸라서 몇 번 키운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처음 키워봤던 강아지에 대한 기억이 가끔 납니다.
저와 동생들이 어느 순간부터 강아지타령을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오일장에 가서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를 사왔습니다.
이제 막 어미 젖을 땐 듯한 작은 강아지는 정말 귀여웠습니다.
우리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강아지에게 달려가서 서로 먼저 안아보려고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서로가 경쟁적으로 먹을 것도 주고 수시로 털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면서 몇 시간이고 강아지 주변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강아지가 좀처럼 뛰어다니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어린 강아지가 새로운 집에 와서 기가 죽어서 그런가보다 하면서 강아지가 겁을 먹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다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까 우리들과 친해져서 손을 핥아주기도 하고 먹이도 잘 받아먹기는 했지만, 움직이기보다는 자꾸 주저앉아 있으려고만 했습니다.
일부러 먹이를 좀 떨어진 장소에 놓아주면 살며시 걸어 와서 먹고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손뼉을 치면서 불러 봐도 고개만 들고 쳐다볼 뿐 별로 움직이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는데 먹이도 잘 먹지 않고 가만히 주저앉아만 있어서
우리는 너무 걱정이 돼서 우유를 숟가락에 떠서 강아지 입에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강아지는 1주일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 크지 않았던 제 손으로 가볍게 들 수 있었던 그 작은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동생들과 같이 동네 공터로 갔습니다.
네 명이서 나뭇가지나 돌 같은 걸로 작은 구덩이를 파서 강아지를 묻어주고 작은 십자가를 만들어서 그 앞에 꽂아주었습니다.
물론, 그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 후로도 다른 강아지를 몇 번 키우면서 정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 그 첫 강아지가 괜히 생각이 납니다.
저에게도 그렇게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변명하고 싶어서 그런가봅니다.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 집에 살던 백구
해마다 봄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 낳았지
어느 해에 가을엔가 강아지를 낳다가
가엾은 우리 백구는 앓아누워 버렸지
나하고 아빠 둘이서 백구를 품에 안고
학교 앞의 동물병원에 조심스레 찾아갔었지
무서운 가죽 끈에 입을 꽁꽁 묶인 채
멍하니 나만 빤히 쳐다 봐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
하얀 옷의 의사 선생님 큰 주사 놓으시는데
가엾은 우리 백구는 너무 너무 아팠었나 봐
주사를 채 다 맞기 전 문 밖으로 달아나
어디 가는 거니 백구는 가는 길도 모르잖아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 음~
학교 문을 지켜 주시는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우리 백구 못 봤느냐고 다급하게 여쭤 봤더니
웬 하얀 개가 와서 쓰다듬어 달라길래
머리털을 쓸어줬더니 저리로 가더구나
토끼장이 있는 뒤뜰엔 아무 것도 뵈지 않았고
운동장에 노는 아이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줄넘기를 하는 아이 팔방하는 아이들아
우리 백구 어디 있는지 알면 가르쳐 주렴아
학교 문을 나서려는데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이
웬 하얀 개 한 마리 길을 건너가려다
커다란 차에 치여서 그만...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 음~
백구를 안고 돌아와 뒷동산을 헤매이다가
빨갛게 핀 맨드라미 꽃 그 곁에 묻어 주었지
그 날 밤엔 꿈을 꿨어 눈이 내리는 꿈을
철 이른 흰 눈이 뒷동산에 소복소복 쌓이던 꿈을
긴 다리에 새 하얀 백구 음~ 음~
내가 아주 어릴 때에 같이 살던 백구는
나만 보면 괜히 으르릉하고 심술을 부렸지
라라라라 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음~
3
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데 뒤에서 “삼촌~”하면서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뒤를 돌아봤던 조카들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큰 조카의 이름은 태윤이고, 작은 조카의 이름은 하민이입니다.)
성민이 : 웬일이야? 오늘 어린이집 안 갔어?
태윤이 : 응, 오늘 어린이집 쉬는 날이라서 안 갔어.
하민이 : 삼촌, 뭐하고 있어?
성민이 : 고추 따고 있지요.
하민이 : 왜 따는데?
성민이 : 이렇게 빨갛게 되면 다 익었으니까 따 줘야하는 거야.
하민이 : 왜?
성민이 : 음~ 나무에서 내려와서 하민이랑 놀고 싶어서 그런가?
하민이 : 정말? 그러면 나도 딸래.
태윤이 : 삼촌, 나도 할래.
성민이 : 따는 건 삼촌이 할테니까 태윤이랑 하민이는 여기 따놓은 고추를 바구니에 담을래?
하민이 태윤이 : 알았어.
둘은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와서 바닥에 떨어진 고추를 하나씩 주워서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손으로 진지하게 일을 합니다.
살며시 누가 많이 줍나 경쟁을 붙였더니 서로 많이 주우려고 더 열심입니다.
10여 분쯤 지나서 태윤이가 바구니를 들고 다가옵니다.
태윤이 : 삼촌, 나 많이 주웠지?
성민이 : 와~ 정말 많이 주웠네.
태윤이 : 그런데 좀 힘들다.
성민이 : 힘들면 하민이랑 밖에 나가서 놀아.
태윤이 : 아니야. 그래도 재미있어.
태윤이는 다시 바구니를 들고 하민이에게 다가가서 누가 많이 주웠는지 비교를 합니다.
그렇게 30분 정도 고추를 주워 넣다보니 어느 새 다 주웠습니다.
셋이서 주운 고추를 창고로 옮겨 놓고는 한쪽 구석에 심어져 있는 포도나무로 향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포도 중에서 한 송이를 따들고 수돗가에 가서 씻습니다.
잘 씻은 포도를 들고 우정이가 있는 개집 근처 평상으로 가서 셋이서 포도를 먹습니다.
포도를 좋아하는 태윤이는 열심히 먹는데, 포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하민이는 포도를 따서 우정이에게 주려고 합니다.
성민이 : 하민아, 우정이는 포도 좋아하지 않나 보다.
하민이 : 우정아, 언니가 깨끗이 씻었으니까 먹어도 돼.
성민이 : 하민아, 너 몇 살이야?
하민이 : 5살.
성민이 : 우정이는 8살인데. 그럼 하민이가 동생이네.
하민이 : 음... 그래도... 우정이는... 어릴 때부터 내가 놀아줬거든. 그래서... 우정이가 동생이야.
성민이 : 치~ 그런 게 어디있냐!
하민이 : 그래도 우정이는 나를 좋아해.
성민이 : 태윤아, 너는 몇 살이야?
태윤이 : 9살. (태윤이는 실제로 7살입니다)
성민이 : 정말? 그럼 어린이집이 아니라 학교에 다니겠네?
태윤이 : 응, 그래!
성민이 : 하민아, 오빠 거짓말한다. 그치?
하민이 : 오빠는 거짓말쟁이래요~
그때 우정이가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우정이를 따라서 태윤이와 하민이도 따라 달려갑니다.
그 뒤를 저도 따라갑니다.
한적한 밭길을 달려가던 우정이가 멈춰서 뒤를 돌아봅니다.
제일 먼저 태윤이가 우정이에게 달려가 우정이 등에 올라탑니다.
뒤 이어 하민이가 달려가서 같이 올라탑니다.
태윤이와 하민이가 저를 향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우정이도 꼬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곁으로 다가갔더니 저도 같이 타라고 난립니다.
엉거주춤 올라타는 시늉을 했더니 우정이가 달리기 시작합니다.
우리 셋을 태운 우정이는 밭길을 힘차게 달리기 시작하더니
돌담 위로 올라가 묘기를 부리듯 몇 번 껑충 거리다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하민이와 태윤이는 무서워서 우정이를 꽉 붙잡고 있습니다.
얼마 동안 하늘을 날던 우정이가 가까운 구름 위로 올라가 우리 셋을 내려놓습니다.
그제서야 하민이와 태윤이는 신나서 소리를 지릅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저는 구름 안쪽으로 들어와 앉아서 우정이를 쓰다듬어줍니다.
태윤이가 약간 더 위로 있는 구름으로 가고 싶다고 하면서 우정이 위에 올라탑니다.
하민이도 따라서 올라탑니다.
저도 타라고 하는데 우정이가 힘들 것 같아서 먼저 건너가라고 합니다.
우정이는 하민이와 태윤이를 태우는 위쪽 구름으로 가뿐이 건너갑니다.
저도 심호흡 한 번 하고는 가볍게 위쪽 구름으로 건너뜁니다.
우정이, 하민이, 성민이, 태윤이가 나란히 구름 위에 걸터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밭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민이와 태윤이가 소리를 질러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들리지 않는지 일만 하고 있습니다.
태윤이가 주머니에서 색종이를 꺼내더니 학을 접어달라고 합니다.
태윤이에게 학을 접어줬더니 하민이는 작은 새를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하민이에게 작은 새를 만들어줬더니 하민이가 색종이를 한 장 더 내밀면서 우정이 것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우정이을 위해서는 매미를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태윤이가 또 한 장을 내밀더니 제 것도 만들라고 합니다.
저는 종이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각자의 손에 있는 색종이를 구름 위로 던졌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태윤이는 빨간색 종이학 위에 올라탔습니다.
하민이는 분홍색 종이새 위에 올라탔습니다.
우정이는 초록색 종이매미 위에 올라탔습니다.
성민이는 하얀색 종이비행기 위에 올라탔습니다.
넷은 그렇게 하늘 위를 날면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린 직사각형
속에 빨간 의자
위에 편히 앉아
낮잠을 자는 나
꿈을 꾸네
(크르릉~ 삐용~ 크르릉 삐용~)
그린 직사각형
속에 노란 의자
위에 편히 앉아
낮잠을 자는 너
꿈을 꾸네
(피용 피용 피용, 피용 피용 피용, 피용 피용 피용)
꽃들이 말하네 `사랑해`라 하네
꽃들이 말하네 `사랑해`라 하네
모두다 손잡고 `사랑해`라 하네
별들도 달들도 `사랑해`라 하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린 직사각형
속에 빨간 의자
위에 편히 앉아
낮잠을 자는 우리
4
추석 전날 명절 준비를 한참 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아버지에게 달려와서 점심을 먹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언제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하는 등의 질문을 연달아 했고, 다시 아버지를 데리고 부엌으로 가서 음식 준비에서 뭐가 빠진 것은 없는지 확인까지 했습니다.
잠시 후 마루에서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하는 말을 아버지와 제가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 일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치매 증상이 오기 시작하는 것에 대한 어머니의 두려움에
나의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짜증이라는 감정이 가장 빨리 올라옵니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 나서 담배를 피워봅니다.
어머니의 한숨소리와 울음소리와 주절거리는 소리에 따라서 감정이 파도를 쳤고
그때 마다 계속 심호흡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보다는
저를 다독이는 것이 급한 일이었습니다.
며칠 후 할머니를 찾아온 손자들에게 밥을 먹이던 어머니가 혼자서 하는 말이 다시 제 귀에 들렸습니다.
“정신을 차려야지 차려야지 하는데도 깜박깜박하네...”
다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마음속으로 그 말을 반복해봅니다.
“감정을 다스려야지 다스려야지 하는데도 들썩들썩하네...”
5
지난 달에 연이은 태풍으로 비닐하우스 여기저기에 비닐이 찢겨서 아버지와 같이 손질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워낙 일머리가 없는데다가 밭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 아니라서 그냥 아버지를 따라가면서 단순 보조를 할뿐이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위로 올라가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비닐 위로 올라가 손질을 하는 일은 위험하기도하고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된 일은 아버지가 대부분 하시고 저는 그 옆에서 이것저것 공구를 챙겨서 건네주는 정도의 일만 했습니다.
두 시간 정도 그렇게 일을 하고나서 내려와 커피를 마셨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버지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하우스 위에 올라가면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얘기를 하셨습니다.
저를 탓하는 소리가 아니라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하소연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커피만 마셨습니다.
요즘은 밭에 일이 많아서 자주 밭에 가서 일을 도와드리곤 합니다.
워낙 게을러빠진 몸을 움직이느라 약간 벅차기는 하지만 일하기에는 좋은 날입니다.
일을 하다가 어머니랑 둘이서 있을 때는 제가 좀 신경이 쓰입니다.
둘 다 소심한 성격에 우울증까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급적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가끔 이런 저런 얘기를 꺼냅니다.
그때마다 저는 퉁명스럽게 댓구를 하거나 침묵을 지키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가 짜증이라도 내면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 제 눈치를 살핍니다.
조금 지나서 감정이 가라앉아서 미안한 마음에 제가 먼저 얘기를 꺼내면 어머니는 즐거운 기분이 돼서 대답을 하십니다.
나이 든 부모님에게
나 같은 아들과 같이 사는 것은
신경이 쓰이는 일이기는 하지만
두 분이 의지할 곳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나 같은 인간을 말없이 받아주고, 힘들 때 잠시 의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제 곁에 있습니다.
제가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제 부모님 말고도 몇 분이 더 있습니다.
제가 잘나갈 때 저랑 친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랜 시간 떨어져 있고
이렇게 조금씩 망가져 가고 있는데도
저를 위해 가끔씩 손을 내밀어 주시는 분들!
지금은 차마 그 손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제가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 마음 가져갔나요
당신 때문에 울고 있어요
당신 때문에 웃고 있어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 마음 애태우나요
거울에 비친 그리움은 누구일까
다가와 눈을 보면 알 수가 있을 거예요
누구시길래 믿고 싶을까
누구시길래 사랑했을 까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 마음 가져갔나요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다정했던
그날의 우리사랑 지울 수 없을 꺼예요
믿었었기에 사랑했었고
사랑했기에 슬퍼했었지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 마음 가져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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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송에서 나왔던 노래는
김민기의 ‘백구’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낮잠’
심수봉의 ‘당신은 누구시길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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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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