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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20회)
1
연달에 몰아치는 태풍에, 계속되는 흉악범죄 소식에, 대선을 향한 정치인들의 무한질주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잠시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시지 않겠습니까?
맑고 파란 가을하늘이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맑은 하늘 때문에 숨이 막혔는데, 이제는 숨이 트이게 하는 하늘로 변했습니다.
그 하늘을 보면서
코로 힘껏 공기를 들여 마시면
시원한 공기가 폐 속 깊이 스며듭니다.
들여 마셨던 공기를 천천히 모아서 다시 뱉어 내면
마음에 쌓여 있던 찌꺼기가 조금은 빠져나갑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
기분이 조금 좋아집니다.
오늘 방송은 그런 기분으로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정신없는 세상일들을 저 멀리 놔두고,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지레 걱정하는 일도 없이, 혼자서 자기분위기에 취해 지껄이는 감상적인 가을 방송이라고나 할까요?
오늘 방송의 첫 곡은 가을방학이 부른 ‘가을방학’입니다.
넌 어렸을 때부터 가을이 좋았었다고 말했지
여름도 겨울도 넌 싫었고
봄날이란 녀석도 도무지 네 맘 같진 않았었다며
하지만 가을만 방학이 없어
그게 너무 이상했었다며
어린 맘에 분했었다며 웃었지
넌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
싫은 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하지만 이 맘 때 하늘을 보면 그냥 멍하니 보고 있으면
왠지 좋은 날들이 올 것만 같아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마음은
절대 너를 울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정말 좋아하게 되었기에
절대 너를 버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하지만 넌 날 보며 미소를 짓네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넌 익숙하다 했지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
2
오늘 방송을 위해서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물론,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 이 방송에 누군가 사연을 보낸 것은 아니고요.
몇 년 전의 제가 썼던 편지를 오늘 다시 읽어보게 됐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나는데, 가슴이 조금 짠해졌습니다.
내가 나한테 보낸 편지를 몇 년이 지나서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제주에 내려온 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갑니다. 5개월 동안 거의 하는 것 없이 집에서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결핵이라는 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서운 병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장난인 병이 되어버려서 결핵으로 요양하고 있다고 얘기하기가 좀 쑥스럽습니다. 아직도 기침이 좀 있는 것 말고는 특별한 고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한 번 다소 많은 양의 약을 6개월 동안 매일같이 먹어야 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치료도 없습니다. 그냥 잘 먹고, 푹 쉬고, 담배만 피지 않으면 됩니다. 6개월 지나도 안 나으면 다시 3개월간 약을 더 먹고, 그래도 안 나으면 다시 3개월을 연장하고 하는 식입니다. 보통 6개월이면 다 낳기는 하는데, 저는 초기에 상태가 좀 많이 진행된 상황이라서 6개월 만에 다 나을 수 있을지는 다음 달에 있을 최종 검사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일선으로 복귀하는 것도 좀 고민되는 상황입니다. 솔직히 지금이라도 일선에서 활동하는데 특별한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이게 내성을 가져버리게 되면 좀 까다로워지거든요. 그래서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이렇게 뭉게작 뭉게작 거리고 있습니다.
출소하자마자 병요양이라는 핑계로 이렇게 장기간 제주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제가 생각해도 정말 환상적인 조건입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이곳 제주의 바다와 하늘과 산을 즐기면서 나중에 이곳에 혁명가들을 위한 휴양소를 하나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자신의 몸을 챙기지 못하면서 휴식도 없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투쟁하는 동지들이 잠시라도 와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곳을 이곳에 만든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나중에 제 나이 60쯤 되면 한 번 만들 수 있도록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돈도 좀 있어야 할 것이고, 운영에 대한 문제도 고민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30년 후에 이곳에 조그마하게 혁명가들을 위한 휴식처를 마련하는 것이 내 노후사업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간절한 소원으로 간직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휴식처 입구에는 ‘노동관료 절대 사절’이라는 푯말을 붙여놓는 것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나는 꾀병으로 이렇게 자연도 즐기고 30년 후의 노후사업에 대해서 느긋하게 생각도 하면서 정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너무도 고통스럽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 생각나면 가슴이 가볍지가 않습니다.
요즘은 왜 그렇게도 내 주위에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30대 초반에서부터 50대까지 힘들게 투병생활하고 있는 이들의 소식을 가끔 접하면서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음에 안타깝습니다. 솔직히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서 그 고통이 어떠한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가끔씩 접하는 소식과 일반적으로 암으로 투병생활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상상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문이나 TV에 암에 대한 소식이 있으면 예전과 달리 좀 유심히 보게 되고, 괜스레 더 눈물을 글썽이게 됩니다.
작년에 근골격계 투쟁을 하면서 아파서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어디가 부러지거나 확연히 드러나는 부상이라면 차라리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중노동 속에 야금야금 망가져버린 몸뚱이는 병원에 가도 시원한 해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잠시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라도 받고 오면 좀 나아지지만 다시 돈 벌러 현장으로 나가면 금세 몸이 아리고 쑤셔옵니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물건을 들기도 어렵고, 걸을 때는 절룩거리기도 합니다. 잠을 자다가도 통증에 잠을 깨어 한숨을 쉬다가 겨우 잠들기가 일쑤였습니다. 몸은 점점 아파오지만 병명이 뚜렷하지도 않고, 어디 물어볼 데도 없습니다. 하루하루 잔업과 특근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그저 참으면서 일할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그 고통들을 알게 되면서 그 숨 막히는 현실에 한숨이 나오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정말 힘들었지만 그 투쟁을 끝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저 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동지들이 그 힘겨움 앞에서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가 결코 주저 않지 않겠다고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지는 이들이 작년부터 유난히 많습니다. 정말 이 악물고 힘겹게 싸워보지만 자본과 권력은 너무나 완강하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전망 없이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고민을 하게 됩니다.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작년에 김주익 열사의 유서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올해에도 한 50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과 그에 뒤이은 투쟁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또 택시노동자의 분신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작년에 ‘다모’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저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드라마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대사가 유명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동지들, 아프십니까?
나도 아픕니다.
2004년 6월 7일
제주에서 성민
2004년의 저는 가슴이 참 뜨거웠었군요.
음...
이런 저런 얘기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그냥 덮어두려고 합니다.
오래간만에 뜨거운 기운을 느끼게 해준 저를 위해서 노래 하나 듣겠습니다.
이동원이 부릅니다. ‘가을 편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것을 헤매인 다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3
요즘 제주도 농가들은 겨울 농사를 준비하느라 좀 바쁩니다.
여기저기서 밭을 갈기 시작하고, 작물에 따라서 벌써 모종을 심은 곳도 있고, 준비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세 번에 걸친 태풍을 견뎌낸 콩은 조금씩 익어가기 시작하고, 취나물들도 푸른 기운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뭔가 어수선하고 어지럽던 밭들이 하나 둘씩 정리되면서 활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런 밭들 사이에서 저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여유로워집니다.
마치 엄마가 “우리 아들 고생하네”라면서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는 듯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부풀어 오르면서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가 살며시 들어갑니다.
저기 어딘가에서 풀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 풀피리 부는 법을 가르쳐 줬던 했던 정훈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군대에서 고참들한테 시달리면서도 고시공부를 하던 석철이 형은 판사가 됐을까요?
처음으로 가슴 떨리는 연애편지를 보냈던 은정이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겠지요?
서울에서 같이 자취를 하던 정호는 다친 허리가 좋아졌을까요?
회사 그만두고 통닭집을 차리기 위해 저한테 50만원을 빌려가서 갚지 않은 길수는 아직도 통닭집을 하고 있을까요?
밀린 월세에 이자까지 악착같이 받아냈던 그때 집주인은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사랑을 고백했던 혜정이 누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그 사람들도 저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중학교 때 저한테 뺨을 맞았던 절름발이 점수는 맞지 않고 살고 있을까요?
술을 먹고 몸을 더듬었던 윤수는 저를 용서했을까요?
제가 아끼는 바지에 검은 물감을 칠해서 엄청 혼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경호는 다 커겠지요?
흑심을 품었던 저 때문에 불편해했던 옆집 아줌마는 이제는 편하게 지낼까요?
20만원을 빌리고는 연락을 끊었던 상용이 형한테 이자까지 갚아야 하는데...
그 사람들도 저를 기억하고 있겠지요?
아~ 가을 타나 봅니다.
4
이런 식으로 방송을 진행하다보니까 기분이 좀 이상해져서 오늘 방송은 길게 하지 못하겠군요.
여기서 그냥 방송을 끝내는 것은 좀 성의 없는 것 같아서 짧은 편지를 하나 써 봤습니다.
좀 전에 과거의 제가 보낸 편지를 받아봤던 것처럼 오늘은 10년 후 저에게 편지를 보내보려고 합니다.
이 편지를 끝으로 혼자서 폼 잡다가 기분에 젖어서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안녕~
반말을 해야 할지, 존댓말을 해야 할지...
나보단 열 살이나 많기는 하지만 나한테 보내는 글이니까 그냥 반말로 해도 되겠지?
기분 나빠도 이해해주겠지?
원래 내가 싸가지가 없잖아. -.-;;
뭐하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하는 걸 묻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그런 질문을 하기가 어렵네...
이런 저런 걱정이 들어서...
잘 살고 있겠지?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으니까
뭐, 할 말이 별로 없네.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을 테고...
아이~씨~
좀 멋있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그렇게 안 되네.
역시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이렇다니까.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뜨거운 기운을 전해줬는데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뭔가 전해줄게 없어서...
미안해.
아이~씨~
괜히 울컥해진다.
그냥 잘 지내.
나도 잘 지낼게.
너무 짧은 편지지만
이거 성의 없이 쓴 건 아니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말아라.
편지를 마치면서 하나만 물어볼게.
10년 후의 너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냐?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냐?
아니면 살며시 웃으면서 ‘고생했다’고 얘기해주고 싶은 기억이냐?
솔직히 그게 가장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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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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