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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의 영화들은 깊이 있는 무게감이나 신선한 자극을 주지는 않는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얘기 구조에 익숙한 캐릭터들이 나와서 폼을 잡다가 끝나는 게 다이기는 한데, 톡톡 뛰는 대사로 무장한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고 적당한 반전의 재미를 안겨주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
어쩌면 그저 그런 오락영화인데도 최동훈의 영화가 매력이 있는 이유는 캐릭터들이 오버하지 않으면서 스토리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튀는 캐릭터들을 조율하면서 얘기를 풀어가는 힘을 갖는 것이 최동훈식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도둑들’이 천만 명을 넘기면서 만루 홈런을 쳤지만, 강하게 땡기지는 않았다.
전작인 ‘전우치’에서 돈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최동훈의 장점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전우치’에서 캐릭터들은 톡톡 튀다 못해서 붕붕 날라 다녔고, 그 결과 얘기를 끌어가는 힘이 사라진 채 캐릭터들만 판치는 그저 그런 오락영화가 되 버렸다.
‘전우치’가 “최동훈이 돈 맛을 알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한 영화였기 때문에 그 보다 더 화려하게 포장된 ‘도둑들’을 보면 실망하게 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평론가들도 그런 면을 지적하는 글들이 나오고 있어서 “나중에 케이블TV에 나오면 보지 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난이 아닌 더위를 견디다보니까 인내의 한계에 이르고 있었고, 연일 뉴스에 나오는 묻지마 범죄들도 남일 같지가 않아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볼만한 영화인 ‘도둑들’을 봤다.
영화는 초반부터 화려한 캐릭터들이 폼을 잡으면서 시작했다.
어설픈 도입부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오락영화의 공식에 충실하게 영화가 진행됐다.
중간 중간 뜬금없는 키스신의 남발이 황당하기는 했지만, 톡톡 튀는 대사들로 무장한 캐릭터들의 매력은 여전했고, 깔끔한 편집 속에 군더더기 없이 얘기를 풀어가는 솜씨는 최동훈의 영화다웠다.
여러 개의 캐릭터들이 종횡무진하고 영화의 흐름도 생각보다 빨랐지만, 산만하지 않게 영화가 이어졌다.
영화가 중간쯤 진행되면서 약간은 예상되는 반전이 이어지면서 “드디어 힘이 빠지는 게 아닐까”하고 미리 짐작을 했었는데, 웬걸 지치지 않고 계속 쭉 가네.
예정된 코스를 장거리로 달리는데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씩씩하게 달리더니 결승점을 통과해서는 여유 있게 쎄러모니까지 보여주면서 영화를 끝냈다.
두 시간이 넘는 긴 영화가 90분짜리 영화로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었다.
얘기 구조와 반전이 뻔해서 ‘범죄의 재구성’처럼 얘기를 쫓아가는 재미는 별로 없었고, 여러 캐릭터들이 수평적으로 나열돼 있어서 ‘타짜’처럼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매력 속에 빠져서 혼을 빼놓지는 않았지만, 여러 개의 캐릭터들을 잘 조율해서 적재적소에 넣었다가 빼내는 솜씨는 대단했다.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에서 보여줬던 긴장감과 힘은 약해졌지만, ‘전우치’의 실수를 어느 정도 만회하고 있었다.
한여름 밤에 경쾌한 팝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서 더위와 스트레스를 푸는 기분이었다.
역시 오락영화의 모범답안이었다.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 중에 내가 봤던 영화는 ‘실미도’와 ‘왕의 남자’와 ‘괴물’이었다.
‘실미도’를 보고는 짜증이 났고, ‘왕의 남자’는 그저 돈이 아깝지 않은 정도였고, ‘괴물’은 아주 재미있었다.
초기에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던 강우석은 ‘실미도’ 이후 장타를 치기 위해 무리하게 용을 쓰고 있지만, 사회적 문제의식도 사라지고 상업적 성공도 별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자기의 색깔을 별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무난한 상업영화를 만들어내던 이준익은 ‘왕의 남자’ 이후 욕심내지 않는 영화는 그런대로 선전했지만 욕심 부리는 영화에서는 망했다.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자기 색깔을 가지려고 노력했던 봉준호는 ‘괴물’ 이후에 욕심을 줄이면서 봉준호의 색깔이 가장 선명한 ‘마더’를 만들어냈다.
‘전우치’에서 욕심을 내봤던 최동훈이 ‘도둑들’에서 욕심을 약간 줄여서 다시 최동훈의 색깔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되찾았는데, 앞으로 ‘타짜’를 넘어서는 영화를 만들어낼지는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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