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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17회)
1
장맛비와 더위가 널뛰기 하듯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조금씩 지치기 시작합니다.
비가 오면 기온이 조금 내려가기는 하지만 눅눅한 기운 때문에 몸이 쳐지고
비가 그치면 30도를 넘나드는 더위 때문에 헉헉거리게 됩니다.
아직 열대야는 없지만 하는 일 없이도 몸이 늘어진 밤에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을 자기 위해 새벽까지 뒤척여보지만 정신만 말똥말똥 해져서 라디오를 켜봅니다.
소리를 줄여서 조용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어봅니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난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인순이의 간절한 목소리로 ‘거위의 꿈’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속에서 욱하고 뭔가가 올라옵니다.
한때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외롭고 힘겨운 나를 위한 노래라고 생각하면서 자주 흥얼거려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내 삶은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미끄러지고 미끄러질 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한테 ‘거위의 꿈’은 잔인한 노래가 되 버렸습니다.
이 노래로 대박을 친 가수는 동료가수에게 수 십 억을 투자했다가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소송을 걸었다고 하던데,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거위들에게 수 십 억을 투자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씨발, 나 같이 별 볼일 없는 40대들은 이런 노래 들으면 안 됩니다.
허파만 뒤집어지기 때문입니다.
시계를 봤더니 새벽 2시가 넘었습니다.
오늘 밤도 잠을 제대로 자기는 글렀습니다.
2
잠이 오지 않아 틀었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때문에 괜히 마음이 상해버려서 라디오를 끄고 TV를 켜 봅니다.
채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려보지만 볼만한 프로가 없어서 꺼 버립니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컴퓨터를 켜서 야동을 봅니다.
30분 정도 자지를 만지면서 야동을 보다가 뒷목이 뻣뻣해져서 꺼버렸습니다.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멍하니 불 꺼진 천장을 바라봅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향하고 있습니다.
잠자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조용히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한 잔 타들고 와서 다시 라디오를 켭니다.
남자 가수의 조용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그녀는 너무나 눈부신 모습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갈수 없었죠
나의 더러운 것이 묻을까 두렵기도 했지만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내 마음은 병이 들었죠
그녀는 천사의 얼굴을 천사의 마음을 가졌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죠
허름한 청바지에 플라스틱 귀걸이를 달고 있던
그녀를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건
너무나 자랑스러워
내가 갖고 있는 또 하고 있는
내가 그렇게도 원했던 모든 것
어느 날 갑자기 의미 없게
느껴질 때 오겠지만 우~
그녀와 커피를 함께했던 가슴 뛰던 기억은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사랑이란 말이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요즘이기에
나는 그녀를 감히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싫었어
하지만 밤새워 걸어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보다 더 적당한 말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외로운 날이면 그녀 품에서
실컷 울고 있을 때도 있었죠
가느다란 손이 날 어루만지며 꼭 안아준다면
그녀는 나에게 말했죠 친절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렇게 대한 것이죠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죠
우우우우우우~
노래가 끝나자 여자 DJ가 커피의 맛과 향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더니
“잠 못 드는 이 밤, 천사와 커피를 마셔보지 않으시렵니까?”라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또 가슴 속에서 욱 하고 치밀어 올랐습니다.
씨발년아!
새벽 3시에 깨어 있는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일을 하고 있거나
잠을 자지 못해서 미쳐가고 있는 사람들이거든!
너는 천사랑 커피 마시면서 세상 편하게 살아서 좋겠다. 이년아!
후~
새벽에 잠을 자지 못해서 멍하니 있어본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오늘은 유난히 감정 조절이 되지 않습니다.
3
다시 라디오를 끄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한 컵 따라서 방으로 돌아와 눕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하지 않기’를 시작합니다.
뒷목이 계속 뻣뻣해서 목을 가볍게 돌려보고는 심호흡을 두 번 해 봅니다.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들립니다.
잡념이 떠오를 것 같아서 다시 심호흡을 해봅니다.
모기향 냄새가 코로 스며듭니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해봅니다.
눈물이 흐르고 맙니다.
벽에 등을 기대고 다시 담배를 피워 뭅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7분입니다.
리모컨을 들고 TV를 켜서 채널을 돌리다가 꺼버립니다.
마시다 남은 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또 담배를 피워 뭅니다.
담배를 너무 피워서 목이 칼칼한데도 담배연기를 빨아들입니다.
심호흡을 하면서 담배연기를 토해냅니다.
피우다만 담배를 끄고 뺨에 묻은 눈물자국을 손으로 닦아냅니다.
노래CD를 뒤적여 연영석의 CD를 라디오에 넣고 PLAY버튼을 누릅니다.
소리를 아주 조금 올려봅니다.
누구는 뺏고 누구는 잃는가
험난한 삶은 꼭 그래야 하는가
앞서서 산 자와 뒤쳐져 죽은 자
그 모든 눈에는 숨 가쁜 눈물이
왜 이리 세상은 삭막해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음~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사람과
오늘도 여전히 불안한 사람들
모두들 제각기 제 길을 가지만
난 아직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내 할 수 있을 때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만 받는 세상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음~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누구를 밟고 어디에 서는가
왜 같은 우리가 달라야 하는가
살아남기 위해 그렇다 하지만
그 모든 눈에는 고독한 눈물이
왜 이리 갈수록 지쳐만 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 갖는 세상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마음만큼 갖는 세상을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4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연영석의 ‘간절히’를 여섯 번쯤 반복해서 들었더니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됐습니다.
노래를 끄고 책상에 앉아서 이것저것 어지러운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다가 아주 오래된 사진첩이 나와서 들여다봤습니다.
지금의 조카들보다 어렸던 내 백일사진부터 대학시절 사진까지 많은 사진들이 보관돼 있었습니다.
40년에서 20년 전 사진들을 보면서 그 시절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한 장의 사진에서 오랫동안 잊었던 사람들을 발견하고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군대생활을 마치고 복학을 기다리던 1992년 제주지역에 있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오전 두 시간 동안 진행됐던 정신지체장애인(요즘은 지적장애인이라고 부릅니다만...) 학습프로그램에 함께 하면서 선생님들의 학습지도를 도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화창한 봄날, 바닷가로 놀러나가서 같이 찍었던 사진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오래된 사진 속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는 것은 즐거움과 함께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미안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들과 만났던 첫날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원봉사 담당자는 간단한 상담을 하고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다섯 명의 학생들과 한 명의 자원봉사자(40대 아주머니였는데, 매우 다정하게 학생들을 도와주셨던 분이었습니다)와 선생님 한 분이 교실에 있었습니다.
자원봉사 담당자는 “오늘부터 같이 하실 분입니다”라고만 저를 소개하고는 교실을 나가셨고, 저는 “안녕하십니까”라고 깍듯이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그래, 반갑다. 이름이 뭐니?”라고 저한테 말을 걸어왔습니다.
당시 23살이었던 저는 저보다 3~4살 정도 밖에 많아 보이지 않는 선생님이 대뜸 반말을 하는 것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저는 김성민이라고 합니다”라고 공손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이름은 쓸 줄 아니?”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기는 했지만, 그 교실이 정신지체장애인들의 학습지도를 하는 교실이라서 분위기가 그런가보다 하고는 그냥 “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내 대답을 듣고 선생님은 “여기 칠판에 와서 이름을 써볼래?”라고 했고, 나는 앞으로 걸어가서 칠판에 제 이름을 썼습니다.
제가 생긴 것도 무식하게 생겼지만, 글씨도 워낙 악필이라서 반듯한 글씨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름을 쓰고 나니까 선생님이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성민이 글씨 잘 쓰네. 저기 뒤에 보면 이름 쓰는 표가 있거든. 제일 밑에 빈 칸에 가서 성민이 이름 써 넣을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자원봉사자이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완전 어린애 취급하는 것에 기분이 무척 상했습니다. 하지만 첫날부터 인상을 쓰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 없이 선생님이 말하는 곳으로 가서 이름을 써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표를 살펴봤더니 자원봉사자 이름을 쓰는 표가 아니라 학습지도를 받는 장애인 학생들의 이름을 쓰는 표였습니다.
그때야 저는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뒤로 돌아서 선생님에게 얘기했습니다.
“선생님.”
“왜?”
“저는 자원봉사자인데요?”
“......”
얼굴이 빨개지신 선생님은 그날 저와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정신지체장애인 학습지도 프로그램은 성인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학생 다섯 명이 있었습니다.
주로 기초적인 한글(기초 단어 익히기 같은 것)과 산수(덧셈과 뺄셈 같은 것), 미술, 음악 등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많은 얘기를 주고받을 수 없었고, 그들에 대한 신상정보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장애였고,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릅니다.
언어장애와 신체장애를 조금씩 동반하고 있던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썼고, 저를 부를 때는 ‘선생님’ 또는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말을 제대로 못하는 이도 있었고요.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형’ 또는 ‘누나’라고 부르고,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 이름을 불렀습니다.
우리는 금방 친해졌습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복지관 현관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의자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양복 입은 아저씨가 우리들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상관없이 우리는 나름대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시던 그 아저씨가 그중에 가장 똑똑해 보이는 저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습니다.
“너 숫자 셀 줄 아니?”
“예.”
“한 번 열까지 세어볼래?”
나는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아주 천천히 일부터 열까지 숫자를 세었습니다.
“더 셀 수 있는데, 더 할까요?”
“아니다. 너 숫자 정말 잘 세는구나.”
그때 통학버스가 왔고, 담당 선생님이 저한테 손짓을 하면서 말을 했습니다.
“자원봉사 선생님, 애들 데리고 오세요.”
저는 그들과 함께 버스를 타러 갔고, 그 양복 입은 아저씨는 멍한 표정으로 저희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일들이 떠오르니까 미소가 지어졌고, 이 사회가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정상적인 외모와 사고방식을 갖지 못한 장애인(병신, 또라이, 미친놈, 불구자라고도 하지요)이니까요.
그 사진을 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오래된 기억이라서 많은 기억들이 나지는 않았지만, 유독 내 옆에 서 있던 누나에 대한 기억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그 누나는 한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와야 하는 조금 먼 시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손가락이 약간 부자연스럽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 누나는 항상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30대 초반의 여자가 입고 다니기에는 많이 초라해 보이는 옷을 입고 다녔지만, 내 눈에는 아주 단정하고 예쁜 옷차림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머리 관리가 가장 편한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누나는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하고 있었고, 가끔 머리띠를 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입술에 연한 루즈를 바르고 오기도 했는데, 누나의 성격상 제대로 펴지지 않는 손으로 직접 발랐을 겁니다.
단정하게 앉아서 수업을 받곤 했던 누나는 말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제 얘기를 잘 들어줬고 반응도 그때그때 보여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에는 이름표를 달아야 했는데, 손이 부자연스러운 누나가 나에게 이름표를 달아달라고 했습니다.
가슴에 달아야 했기에 내가 쑥스러워서 매우 조심스럽게 달아줬더니, 누나가 살며시 웃어주었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씩 3~4개월 정도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는 복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잊은 채 20년의 세월이 지난 것이었습니다.
복지관에서 그렇게 즐거워했던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저는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끔 연한 루즈를 바른 입술로 뭔가를 웅얼거리면서 말을 하려고 했고, 나를 보면 살며시 웃어주기도 했던 그 누나는 지금 50대 아주머니가 됐을 겁니다.
“누나, 잘 살고 있지요?”
5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다시 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봅니다.
이번에는 ‘이런저런 생각하기’를 해봅니다.
울산을 떠나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벌써 6년째입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시간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봅니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생각했던 시간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이들이 살아왔던 얘기를 듣고 정리하던 시간들
광화문에서의 거대한 촛불집회와 기륭전자 앞에서의 피 말리는 촛불집회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가한 것 때문에 1년 가까이 진행됐던 조사와 재판
거의 매일 술을 먹으면서 버텨야했던 밤들과 크고 작은 실수들
정말 오래간만에 이성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던 일
가장 믿었던 이에게서 치명적인 일격을 당하고 다시 죽음을 생각했던 시간들
고향에 내려와서 조카들의 재롱을 보며 행복했던 시간들
하는 일 없이 집에 박혀서 혼자서 보내는 나날
쌓여 있던 책들을 모르는 이들에게 나눠주면서 잠시 즐거웠던 기억들
친했던 동지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어의 없이 벌어진 성추행 미수사건
해군기지 반대싸움에 함께 하려고 갔다가 튕겨 나왔던 일
나를 돌아보면서 썼던 소설들을 들고 출판사 문들을 두드리다가 거절당했던 기억
숨 막히는 상황에서 시작한 읽는 라디오
“짜식, 정말 열심히도 발버둥치고 있었구만”
음~
이렇게라도 발버둥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시간들 보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살아가려면 계속 발버둥 쳐야 하겠지요.
지난 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다보니 저에게 간절한 꿈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배고프고 외롭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손을 잡아보는 것이 제 꿈입니다.
예수님처럼 같이 밥을 먹고 술을 한 잔 할 수도 있겠고
우리 같은 것들을 자근자근 밟아대는 이 빌어먹을 세상과 맞짱 한 번 떠볼 수도 있겠지요.
한 10년쯤 시간을 보내다보면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나지막하게 ‘철의 노동자’를 흥얼거려봅니다.
민주노조 깃발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
빼앗긴 우리 피땀을 투쟁으로 되찾으세
강철 같은 해방의지 와서 모여 지키세
투쟁 속에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보세
단결만이 살길이요
노동자가 살길이요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아~아~ 민주노조 우리의 사랑
투쟁으로 이룬 사랑
단결~투쟁!
우리의 무기
너와 나
너와 나
철의~ 노동자
6
창밖이 훤하게 밝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12분이군요.
오늘 하루 또 어떻게 보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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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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