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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4.3을 주제로 한 극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국내 개봉도 하고, 흥행에서도 선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슬’은 의미가 있는 영화였다. 제주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풀어야하는 큰 숙제로 남아 있지만, 외지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4.3을 대중적으로 알려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들이 실망스럽다 못해 짜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볼까말까 살짝 망설여졌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어떤 의무감 비슷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결론은 ‘짜증’이었다.

 

영화의 초반은 의외로 신선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룬 흑백영화였지만, 눈 쌓인 중산간 마을의 모습은 화려하지도 칙칙하지도 그렇다고 건조하지도 않은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방출신의 배우들의 연기는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줬고, 그들의 걸죽한 사투리는 생생함 그 자체였다. 제주 사람 특유의 삶이 제대로 녹아 있고 유머 넘치는 대사들은 웃음이 자연스럽게 나와서 무거운 공기를 가볍게 해줬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면서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려는 노력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초반에서 끝났다.

생생하면서도 유머가 있는 제주 사람들과 달리 군인들은 빨갱이 토벌이라는 중압감에 짓눌려 있었다. 신참들은 잔인한 학살에 대한 인간적 고뇌에 짓눌려 있었고, 고참들은 빨갱이를 모두 죽여야 한다는 분노에 짓눌려 있었다.

일부러 흑백으로 찍은 영화는 선과 악의 흑백대비가 지나치게 분명해지더니 점점 악마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생생함마저 잃어가게 만들었다. 그런 식의 선명한 대비는 점점 영화 전체의 중압감으로 작용하면서 영화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동굴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제주 사람들의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기보다는 중압감을 떨쳐내기 위한 억지스러움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그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영화는 무겁고 지루한 영화로 변해서 관객들을 힘들게 만들어버렸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진실’이 외지인의 시선으로 섬사람들의 고통을 무겁고 억지스럽게 다루면서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지슬’은 거꾸로 현지인의 시선으로 외지인들의 잔인함을 무겁고 억지스럽게 다루면서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슬’은 영화적으로도 나름대로 새로운 접근을 보여줬다. 중산간 마을과 한라산을 배경으로 했지만, 영화는 마을의 몇 채의 집과 동굴을 중심으로 촬영이 이어지면서 독특한 표현방식을 시도했다.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리얼리즘적인 방식을 포기하고, 학살의 잔인함과 섬사람들의 생생함을 드러내려는 표현주의적 방식이 많이 보였다. 그런 방식이 처음에는 신선하고 독특하게 보여졌지만, 점점 영화가 주제의식에 짓눌리면서 좁은 연극무대를 보는 것처럼 답답함을 드러냈다. 독특한 표현주의 영화라기보다는 영상이 어우러진 놀이패 한라산의 연극을 보는 듯하게 바뀌어 버린 것이다.

‘당신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지슬’보다 더 한정된 공간에서 촬영된 연극적인 영화였지만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감독의 내공으로 영화의 깊이를 만들어냈지만, ‘지슬’은 주제의식에 짓눌린 감독의 내공이 종합적인 영상예술인 영화의 가능성을 줄여놓아 버렸다.

 

그렇다면 버겁게 다룬 주제의식이라도 제대로 다뤘으면 좋으려면 그렇지도 못했다.

영화에서 4.3의 배경이나 전개과정은 단 한마디로 언급되지 않은 채 어느 한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집단학살의 문제만을 얘기했다. 그렇게 설정된 이 영화를 보고나면 사람들은 ‘제주도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에 육지의 군인들이 개입하면서 집단학살로 번지게 된 역사적 비극’이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이건 역사에 대한 왜곡이다.

4.3은 정부의 공식 입장이나 주류 4.3단체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제주인들의 불만을 군대가 투입되서 무리하게 진압한 국가권력의 횡포’가 아니다. 4.3은 해방 이후 미군정이 실시되었지만 통치기반이 약한 미군정이 친일세력들을 다시 활용해서 민중을 억압하자 이에 분노한 좌익들과 민중들이 총을 들고 미군정과 우익세력들에 맞서 싸운 항쟁이다. 해방공간에서의 모든 사건이 그랬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었던 4.3 역시 해방공간에서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는 좌익과 우익의 대립과 투쟁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 속에서 가장 악날했던 집단들은 친일경력이 많은 경찰들이었고, 그 다음이 이북에서 쫓겨난 서북청녀단과 같은 우익테러단체였다. 오히려 군인들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제주진압을 위한 출동에 반대해서 여수와 순천에서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외지인에 의한 학살 이전에 현지인에 대한 극심한 탄압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제주시에서 경찰을 했었던 외할아버지가 4.3이 발생하니까 급하게 일본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슬’에서는 이런 얘기가 다 빠져 있다. 가장 악날했던 경찰과 우익테러단체들은 등장하지 않고, 이성을 상실한 외지 출신 군인들만 등장한 채,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얘기도 한마디로 없다.

‘4.3은 빨갱이들이 일으킨 폭동이다’라는 우익들의 주장에 맞선 공식입장은 ‘4.3은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 국가폭력에 의해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인권의 문제이다’라는 것이다. 이 영화도 그 연장선에서 벋어나지 않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의 큰 흐름 속에서 4.3을 아주 부분적으로 다뤘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차라리 조금은 더 역사적 진실에 가깝게 서 있다.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현지인들의 모습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점이다.

제주출신 감독이 제주의 배우들과 함께 제주의 가장 큰 역사적 문제를 다룬 독립영화였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제주인들의 모습은 외지인들이 만든 영화 속 제주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무도 생생한 삶의 모습과 걸죽한 사투리를 빼고 나면 제주인들의 모습은 ‘순박한 섬사람’ 그 자체였다. 불의에 맞서 죽음을 각오하고 총을 들고 싸웠던 당당한 모습은 단 한군데도 없고, 오직 악마와 같은 군인들에 의해 희생되는 순박함으로만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4.3보다 훨씬 짧은 기간 동안 싸웠고, 상대적으로 적은 이들이 희생된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 속의 광주인들은 불의에 분노할 줄 알았고, 정의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응원할 줄 아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런 당당함 속에 순박함이 녹아있고, 억울한 학살의 상처가 깊게 남아 있는 사람들의 도시로 광주를 떠올린다.

그런 강인한 이미지 때문에 광주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기도 한다. 그에 반해 제주 사람들의 이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박함으로만 그려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면 가슴 아파하기는 할 뿐이다. ‘무서운 섬놈들’이 아니라 ‘불쌍한 섬것들’이 되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제주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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