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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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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봤던 뮤지컬 영화 중에 가장 오래된 영화는 ‘쉘부르의 우산’일 거다.

징그럽게 뻔한 내용이었는데 음악과 분위기가 좋았다는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라라랜드’는 기억 저 밑에 있던 그 ‘쉘부르의 우산’을 다시 떠올리게했다.

  

차들로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시작된 춤과 노래는 70년대 청춘 뮤지컬을 연상시켰고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는 과정은 60년대 통속 멜로물의 법칙을 그대로 따랐다.

사용됐던 음악도 온통 복고풍이어서 시대적 배경이 헷갈릴 정도였지만

주인공들은 분명히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요즘 세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져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뭐 하긴, 세상 돌아가는 것과는 담을 쌓고 통속적인 사랑타령이나 하는 얘긴데 시대적 배경이 문제될 건 없었을거다.

밖은 엄청 춥고 박근혜 때문에 머리가 아프지만, 난방 빵빵하게 돌아가고 불꺼진 영화관에서는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즐겁게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는 순간, 영화는 엄청 편하고 즐거워졌다.

  

영화는 작정하고 향수와 낭만의 이미지를 자극했다.

경쾌한 음악과 춤으로 기선제압을 하고는

발랄하고 우아한 스텝과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세련된 연주와 노래로 몸과 마음이 흔들리게 만들더니

여배우의 크고 맑은 눈망울로 혼을 사로잡아 버렸다.

쉼없이 춤과 음악이 흘러넘치는데

피곤하기는커녕

손가락이 까닥까닥거려지다가

어느 순간 가슴도 뛰더니

살며시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이렇게 뻔하고 통속적인 얘기에 내 몸과 마음이 반응할줄이야...

  

재즈 연주처럼 정해진 멜로디 위에서 중간 중간 변주가 일어나는데

시각적 효과를 적절히 사용한 그 변주가 더 매력적이어서

연주회가 아니라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중간에 영화가 약간 늘어지면서 마비됐던 이성이 다시 살아나니

영화의 문제점과 한계가 잠시 보이는 듯 했지만

심기일전한 영화는 다시 내 몸과 마음을 빨아들어버렸다.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클럽에서 춤을 출 때처럼 그냥 아무 생각없이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흠벅 빠져있다가 영화관을 나섰더니

잠시나마 세상이 낭만적으로 보였다.

뭐, 그 낭만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여주인공인 엠마 스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오래된 배우 잉그리트 버그만이 자꾸 떠올랐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안개 자욱한 공항에서 험프리 보가트를 기다리는 우수에 젖은 그 얼굴이 오버랩됐다.

아주 예전에 그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이 짠해졌었는데, 오래간만에 엠마 스톤의 얼굴을 보며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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