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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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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의 소시민성을 너무도 날카롭게 드러내서 불편했고
그런 불편함이 성찰로 이어지던 것이 홍상수 영화의 매력이었다.
그런데 ‘옥희의 영화’ 이후 홍상수는 성찰을 내던지고 기예를 뽐내기 시작했다.
오랜 성찰 속에 갈고딲은 그의 기예는 화려했지만 성찰이 사라진 기예는 그저 오락영화일 뿐이었다.

 

그렇게 홍상수 영화와 멀어지나 했었는데
웬걸, 김민희와 스캔들을 만들면서
그 자신이 영화 속 캐릭터가 되더니
‘바람피는 찌질한 남자’에 대한 영화를 계속 내놓고 있었다.
그것도 몇 달 사이에 연달에서

 

그 호기심에 ‘밤에 해변에서 혼자’를 보고싶었지만
바람피는 감독과 여배우의 영화를 제주도 극장에서는 거부하는 바람에 볼수 없었는데
웬걸, ‘그후’는 롯데시네마에서 개봉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홍상수 영화를 보러갔다.

 

검은 화면에 배우 이름과 타이틀이 장난스럽게 보여진 후 영화가 시작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막바로 영화가 시작하고 배우 이름과 타이틀이 그 위로 찍혔다.
“뭐야 이건? 변화를 준건가?”하고 있는데
밥을 먹는 남편과 마주 앉은 아내가 “당신 좋아하는 여자 생겼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남편의 대응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우와, 시작부터 왜이래?”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장면은 얘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수없게 흐트러놓아버렸다.
그렇게 영화는 초반부터 살짝 긴장하고 불편하게 만들며 시작했다.

 

흐트러놓았던 이야기는 이내 흐름을 찾아서 그다지 어지럽지 않았고
홍상수 영화 특유의 ‘바람피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로 역시나 내달렸고
술을 마시며 서로의 감정을 밀고당기는 매력은 여전했는데
홍상수답지 않게 곳곳에서 그 감정들이 폭발하고 있었다.

 

사장의 부인은 회사로 달려가 다짜고짜 신입 여직원의 뺨을 후려갈기고
힘들어서 떠났던 내연녀는 갑자기 사장 앞에 나타나서 다시 시작하자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그 사이에 낑겨있던 신입 여직원은 졸지에 팽당하는 것에 분노하고
여자들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사장은 어쩌할줄 몰라 버럭 화를 내고...
홍상수 영화에서는 좀처럼 볼수 없는 감정의 폭발들이었다.
차분하게 감정의 밀당을 즐기고 그것을 기예처럼 뽐내기에는
감독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이 너무 강한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흑백화면은 의도적으로 밝기를 환하게 해버려서 눈이 피로할 정도인데
곳곳에서 격하게 감정들은 분출하고
영화관 에어컨은 너무 강해서 춥기까지 하니
영화를 보는 과정이 힘들었다.

 

그렇게 조금 피곤하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갔더니
내연녀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 사장의 모습이 나왔다.
그렇게 마무리되는 영화를 보며 “역시 홍상수!”라는 감탄이 나왔다.

 

여배우와의 스캔들이 이어지는 한복판에서
홍상수는 ‘바람피는 찌질한 남자’라는 특유의 주제를 놓지 않았고,
그런 영화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알면서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배우와의 사랑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당당함(또는 뻔뻔함)을 보이더니,
감정들이 살벌하게 폭발하는 영화는
세상 사람들이 통속적으로 예상하는 그런 결말을 그려넣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성찰을 영화 속에 끌어다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성찰은 관객과의 거리두기를 하며 대화 속에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역시 홍상수는 성찰이 뭔지를 아는 감독이었다.

 

영화가 아무리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홍상수 얘기만하고 김민희 얘기가 없으면 예의가 아니듯해서 한마디 하면
그의 연기는 역시나 빛났다.
사장과 부인과 내연녀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버린 하루짜리 여직원 역할이었는데도
등장인물들 중에 가장 빛났다.
감정의 칼부림이 일어나는 무림 속에서 어정쩡한 포지션을 넘어서 중심에 우뚝서는 그의 연기력은 두 말이 필요없었다.

 

그런데 그런 연기력과 실제 감독과의 관계를 감안했을 때
김민희가 그렇게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있을 것이 아니라
내연녀나 부인의 자리에 있었다면 영화의 성찰적 힘은 더 커졌을 것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지 못했기에 조금 조심스럽지만
홍상수의 성찰은 아직 정면을 향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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