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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삶과 투쟁 - 전태일 평전 중에서

철조망, 그것은 법이다. 질서이다. 규범이며 도덕이며 훈계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억압이다. 겹겹이 철조망을 둘러치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철조망을 넘어서려는 사람을 짖밟고 그 쓰러진 얼굴 위에다 침을 뱉는다. 쓰러져 짖밟힌 인간의 이지러진 얼굴 위로 고통스런 죄의식의 올가미가 덮어 씌워진다. 그리하여 철조망을 넘는 과정은 무뢰한으로 전락하는 과정, 법과 질서의 테두리 밖으로 고독하게 추방되는 과정, 양심과 인륜을 박탈당한 비인간으로 밀려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인간으로 회복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그 어떤 법률과 질서와 도덕과 훈계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자신의 삶의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철조망 앞에 결박당하여 의식이 마비되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생명력, 인간의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조영래)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 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런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태일)

아버지께서는 매일 폭음을 하시고, 방세를 못 준 어머니께서는 안타까워하시고, 동생은 방학책 값, 밀린 기성회비 때문에 학교에 안 가겠다고 아침마다 울면서 어머니의 지친 마음을 괴롭힐 땐, 나는 하루가 또 돌아온다는 것이 무서웠다.
(전태일)

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값을 털어서 1원짜리 풀빵을 사 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은 주린 창자를 안고 온종일 시달린 몸으로 다리를 휘청거리며 미아리까지 걸어가면 밤 12시 통금시간이 되어 야경꾼에게 붙잡혀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다시 도봉산까지 걸어서 집에 당도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사이에 파출소 순경들도 사정을 알고 그냥 통과시켜, 밤 한 시나 두 시가 지나 집에 돌아오는 일이 버릇처럼 되었는데, 이것은 그 뒤 그가 죽을 때까지 3, 4년 동안 계속되었다.
(조영래)

그러던 어느 날 한 미싱사 처녀가 일을 하다가 새빨간 핏덩이를 재봉틀 루이에다가 왈칵 토해내었다. 각혈이었다. 태일이 급히 돋을 걷어서 병원에 데려가보니 폐병 3기라는 것이었다. 평화시장의 직업병 중의 하나였다. 그 여공은 해고당하고 말았다. 이 사건이 태일에게 준 충격은 맹 컸다.
각혈을 한 여공은 평화시장 생활 몇 년에 그 동안 번 돈보다도 더 많은 돈을 들이더라도 고치기 어려운 병만 얻고 거리로 쫓겨난 것이었다. 그야말로 '밑지는 생명'이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길은 십중팔구 젊디 젋은 나이에 썰렁한 판잣집 방구석에 누워서 치료 한번 변변히 못 받고 죽어가거나, 아니면 요행 살아남아도 폐인이 되는 것밖에 없었다. 누가 알아주랴. 아무리 그녀가 아무런 잘못 없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죽어간다 한들... 불쌍한 가족들의 가난한 살림살이를 돕기 위하여 혹은 어린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하여, 남들이 한창 까불고 뛰놀고 배우고 할 나이 때부터 잠 한번 푹 못 자고 주린 창자 한번 양껏 채우지 못하고 어두운 뒷골목에서 연약한 허리가 꺾어지도록 일만 해온 그녀가 이제 명랑하게 한번 사는 것처럼 살아보지도 못하고, 캄캄한 절망 속에서 죽어가야 한다. 그 사실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태일의 가슴은 통곡과 분노로 들끓었다. 그 시각에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주목하지 않았어도, 아니 모두가 그것을 외면했어도 전태일의 작은 가슴 하나만은 그가 일기장에다 아무렇게나 자주 낙서했듯이 "왜? 왜? 왜?..."하고 울부짖다가 파열(破裂)했다.
(조영래)

재단사로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부터 그는 어느샌가 피곤해서 견디지 못하는 어린 시다들을 일찍 집에 보내주고 밤늦도록 혼자 작업장에 남아 시다가 할 일을 대신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하루는 그날 역시 몸이 아픈 아이가 있어서 모두 먼저 내보내고 혼자 남아 작업장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업주에게 그만 들켜버렸다. 업주가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어서 태일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기업주가 불쾌한 낯빛으로 "재단사는 재단사가 할 일만 하지 왜 시다들의 일까지 참견하느냐? 자꾸 그러면 시다들의 버릇이 나빠진다"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 업주가 다시 밤 늦게 작업장에 올라가 보니 여전히 태일이 혼자 남아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어제 일껏 주의를 주었는데도 왜 또 마음대로 일찍 내보냈느냐?"
"죄송합니다. 며칠 전 밤일하고 난 뒤부터 하도 피곤해 하길래 애처로워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애들 일할 만큼 제가 대신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마음해로 해! 주인 말 안 듣고 그렇게 제멋대로 하는 재단사하고는 나도 같이 일할 수 없으니 내일부터는 나올 필요 없네..."
업주와 재단사 사이에 이런 따위 말다툼이 몇 번 오가고 나서 그는 간단하게 해고당해버렸다.
원래 업주는 태일을 곱게 보지 않았다. 재단사가 미싱사와 시다들의 사정을 들어주고 생각해주는 것이 업주에게 이로울 리 없었던 것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 하는 종업원이 업주에게는 가장 반가운 사람이다. 그런데 이놈의 재단사는 어찌된 셈인지 아무 때고 시다가 좀 아프기만 하면 약방에 데려간다고 자리를 비우기 일쑤고, 애들에게 밤일 좀 시키려고 하면 번번이 낯을 찌푸리고 하니... 그러던 판에 때마침 적절한 트집거리가 생겼으니 업주는 이때다 하고 그를 내쫓았던 것이다.
해고당한 사실 자체는 태일에게 있어서 아무 것도 아니었다. 평화시장에서 그 정도의 재단기술이 있으면 일자리는 아무데서나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바닥에서는 최소한의 인정을 베푸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가 처음 재단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던 때의 일을 생각했다. 그때 그는 처음 재단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던 때의 일을 생각했다. 그때 그는 재단사로서 약한 직공들을 돕고, 불쌍한 '시다'들에게 잘해주자고 마음먹었던 것이 아닌가? 주인이 자신에게 차마 그것마저도 못 하게 막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여기에 생각이 미쳤을 때 그는 자신이 이제껏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영래)

그는 자신이 택한 길이 그 자신의 '양심의 명령'이므로 진리이며, '역사가 (그것을) 증명'헐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저 주어진 현실'에 순종하면서 남들처럼 안일한 생활을 추구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 때면 그는 그러한 생활이 가치 없는 것이며 현명한 삶의 길이 아니라고 그 자신을 꾸짖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안일한 생활은 그것이 "아무리 화려한 생활의 연속일지라도 감방 안에 갇힌 죄수가 감방 벽의 돌담에 화려한 그림을 그려놓고 자기도취에 취한 꼴"에 불과한, 어리석은 행복의 환각이며, 인간의 참된 기쁨은 서로 서로를 사랑하는데 있는 것이고, 오늘보다 내일이 낫도록 노력하는 것이 참된 인생의 길이라고 그는 거듭거듭 확인하였다.
(조영래)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나의 직장. 나의 행위는 분명히 인간 본질을 해치는 하나의 비평화적·비인간적 행위이다. 하나의 인간이 하나의 인간을 비인간적인 관계로 상대함을 말한다. 아무리 피고용인이지만 고용인과 같은, 가치적(으로) 동등한 인감임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할 인간적 문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전태일)

업주들은 한 끼 점심값에 2백 원을 쓰면서 어린 직공들은 하루 세 끼 밥값이 50원, 이건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들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생각할 줄 알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할 줄 알고, 즐거운 것을 보면 웃을 줄 아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연장, 즉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 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종교는 만인이 다 평등합니다.
법률도 만인아 다 평등합니다.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더러운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입니다. 부한 자의 생명처럼 약자의 생명도 고귀합니다. 천지만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은 다 고귀합니다. 죽기 싫어하는 것은 생물체의 본능입니다.
선생님, 여기 본능을 모르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저 빨리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는 생명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미생물이 아닌, 짐승이 아닌, 인간이 있습니다. 인간, 부한 환경에서 거부당하고, 사회라는 기구는 그들 연소자를 사회의 거름으로 쓰고 있습니다. 부한 자의 더 비대해지기 위한 거름으로.
선생님, 그들도 인간인고로 빵과 시간, 자유를 갈망합니다.
                       1970년 초의 소설작품 초고에서
(전태일)

대통령 각하...
저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번지 2통 5반에 거주하는 22살의 청년입니다. 직업은 의류 계통의 재단사로서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직장은 시내 동대문구 평화시장으로서 종업원은 3만여 명이 됩니다. 큰 맘모스 건물 4동에 분류되어 작업합니다. 한 공장에 평균 30명은 됩니다. 근로기준법에 해당이 되는 기업체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3만여 명이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미싱사의 노동이라면 모든 노동 중에서 제일 힘든(정신적·육체적으로) 노동으로 여성들은 견뎌내지를 못합니다. 또한 3만여 명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서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70원 내지 160원의 급료를 받으며 1일 15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각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을 좀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근로기준법에서는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 못합니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피끓는 청년으로서, 이런 현실에 종사하는 재단사로서 도저히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실을 찾아가 구두(口頭)로서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일과 셋째 주일, 2일은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서는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하고 곧 쇠퇴해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여공들은 대부분 6년 전후의 경력자들로서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해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응당 근로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 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시에는 필름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이것도 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속히 신체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5시간의 작업시간을 1일 10시간~12시간으로 단축해주십시오. 1개월 휴일 2일을 늘려서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원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현재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1969년 11월경에 집필한 것인데 발송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임)
(전태일)

이 섬뜩하도록 정확한 예감, 그 자신의 죽음의 예감 앞에서 그는 깊은 인간적인 고뇌에 빠져 있었다. 치욕적인 굴종의 삶에 대한 혐오, 짓밟히고 있는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들의 참상에 대한 가슴 찢는 연민, "인간 본질의 희망을 말살시키고 있는 모든 타율적인 구속"에 대한 증오와 울분이 가슴속에서 미칠 듯이 끓어오를 때면 그는 몸을 떨며 죽음을 통한 승리에의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 망설임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제 겨우 만 스물 한 살, 꽃다운 나이였다. 가족들 생각, 못 다 이룬 꿈, 해보고 싶은 일들, 숲과 산과 바다와 하늘과 별과 바람과, 그리고 삶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추억과 유혹과 미련들, 이런 것들이 그의 상념을 사로잡을 때면 그는 머리를 흔들어 "절망은 없다" "절망은 없다"고 부르짖으면서 죽음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려고 발버둥쳤다.
(조영래)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1970년 8월 9일
(전태일)

한 인간이 현실을 철저하게 비판할 수 있을 때에 그는 비로소 그 현실에 철저하게 저항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변혁할 수 있게 된다.
(조영래)

자아의 좁은 환상에 집착하여, 그 속에 밀폐되어 껍질을 쌓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 것도 참으로 사랑할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참으로 소망할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많은 것을 희망하고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부와 권력과 명예와 미모의 이성(異性)과... 그러나 그것들은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더욱 처절한 고통과 고독의 심연으로 몰아넣는 허구의 욕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전태일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다"라고 썼던 것이다.
한 인간이 그의 인간성을 풍성하게 하는 과정은 곧 좁은 자아의 환상을 버리고, 그 껍질을 깨고, 자신과 이웃과 세계에 대한 참되고 순수한 관심의 햇살이 비치는 곳을 향하여 나오는 과정을 뜻한다. 참된 소망, 참된 사랑, 참으로 순수한 그리움만이 인간을 구원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참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참으로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절절하게 사랑하고 희망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가 사랑하고 소망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향하여 "당신은 나의 죽음 속으로 오셔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전태일에게는 참으로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나라였다. 약한 자도, 강한 자도,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귀한 자도, 천한 자도, 모든 구별이 없는 평등한 인간들의 '서로간의 사랑'이라는 참된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는 세상, '덩어리가 없기 때문에 부스러기가 존재할 수 없는' 사회, '서로가 다 용해되어 있는 상태', 그것을 그는 바랐다. 부유하고 강한 자들의 횡포 아래 탐욕과 이해관계로 얽혀진 '불합리한 사회현실'의 덩어리 - 인간을 물질화하는 '부한 환경' - '생존경쟁이라는 이름의 없어도 될 악마'의 야만적인 질서, 그것이 분해되기를 그는 바랐다.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들이 그 잔혹한 채찍으로부터 구출되기를 그는 너무나도 절절하게 바랐다.
(조영래)

집을 떠날 때의 전태일의 모습은 가족들이 보기에 참으로 이상하였다. 그는 평소에 옷차림 같은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텁수룩한 모습으로 다니는 편이었는데, 그날 아침따라 웬일인지 유난히 깨끗한 차림새를 갖추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닌가? 간밤에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알 수 없었으나,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스레 세수를 하고 방을 깨끗이 정돈하고, 그리고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몇 번 빗고, 작업복 바지도 새로 다리고 평소에는 입지 않던 헌 검정 바바리코트를 꺼내어 먼지를 깨끗이 털고 걸쳐 입는 것이었다. 그렇게 차림새를 갖추면서도 낯빛은 몹시 침울해 보였다.
얼마 후 그는 무엇을 찾는 듯이 두리번거렸다. 말할 것도 없이 근로기준법 책이었다. 한찬 동안을 혼자 찾아해매던 그는 어머니에게 책을 어디에다 감추셨느냐고 하면서 기어이 찾아내 달라고 졸라댔다. 어머니는 모르겠다고도 하다가, 또 그 책 때문에 아무래도 사고가 날 것 같아서 내다버렸다고도 하다가, 나중에는 제발 그놈의 책 이제 그만 가지고 다니지 말아달라고 애원도 해보았다. 그러나 태일은 "다른 것은 다 어머니 말씀대로 할 수 있어도 이 일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책을 안 내준다고 화까지 내었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책을 꺼내 주었다. 책을 받아든 그는 "죄송하다"고 하면서 무엇을 더 말하려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입을 굳게 다물고 침울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이나 묵묵히 앉아 있었다.
밥상이 들어왔다. 라면이었다. 말없이 식사를 하고 있는 그를 보고, 여동생 순옥이 옆에 앉아 있다가 조심스레 "오빠, ... 15일까지 돈 좀 안 될까?"하고 물었다. 이 말을 듣고 태일은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던 것일까? 그는 "순옥아... 미안하구나"하는 한마디를 남기고는 젓가락을 놓고 일어서서 방문을 나섰다.
따라서 일어서는 순옥을 등진 채로 그는 다시, "순옥아, 며칠만 기다려라, 곧 월급을 타올 테니... 그리고 순옥아, 아무리 살기가 어렵더라도 어머니께 돈 때문에 졸라대지 않도록 하라"하였다.
이 순간의 그의 가슴은 찢는 통곡을 우리가 말로써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무엇이라고 표현한단 말인가?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이 죽음의 길을 떠나는 이 마지막의 순간에까지 그의 심장을 비수처럼 후벼팔 때, 그것은 과연 누구의 탓이었던 것일까?
전태일은 막내 동생 순덕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집을 나섰다.
(조영래)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니는 품속에 품고 온 성경책을 아들의 머리맡에 놓아주었다. 그러는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며 전태일은 말했다.
"어머니 담대하세요.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그래야 내가 말을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고 아들은 말을 계속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만은 나를 이해할 수 있지요? 나는 만인을 위해 죽습니다. 이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버림받은 목숨들, 불쌍한 근로자들을 위해 죽어 가는 나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이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조금도 슬퍼 마세요. 두고두고 더 깊이 생각해보시면 어머니도 이 불효자식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 저를 원망하십니까?"
어머니는 웬일인지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흉하게 탄 아들의 얼굴에서 눈도 돌리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 어찌 원망하겠니? 원망하지 않는다."
아들은 빙그레 웃었다.
"역시... 우리 어머니는 나를 이해해."
한마디를 하고는 손을 내밀려는 듯 몸을 움칫하다가 되레 잠잠해지며,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곡 이루어주십시오" 하였다.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달라는 아들의 이 한마디는 어머니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어 박혔다. 입술을 깨물어 그 말을 되새기면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약속을 했다.
"그래, 아무 걱정 마라.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
......
그때 전태일은 어머니에게 친구들을 좀 불러달라고 부탁하였다. 병원에 와 있던 선 명의 친구들이 그의 머리맡으로 다가섰다.
"... 자넨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네. 뭐니뭐니 해도 사람이란 부모에게 잘못하면 안 돼... 너희 부모들게 효도하고, 그리고 조금 시간이 남으면 우리 어머님께도 날 대신해서 효도를 해주게... 우리가 하려던 일, 내가 죽고 나서라도 꼭 이루어주게. 아무리 어렵더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네. 쉽다면 누군들 안 하겠나? 어려울 때 어려운 일 하는 것이 진짜 사람일세. 내 말 분명히 듣고 잊지 말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조영래)

저녁이 되면서부터 전태일은 기력이 탈진해가는 듯 잠잠하게 누워 있었다.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듯하더니 눈을 떠서 힘없는 소리로 "배가 고프다..."라고 하였다. 12일 아침 집에서라면 한 그릇 먹고 나간 후로 이틀 동안 아무 것도 안 먹고 굶었던 그였다. 아니, 평생을 굶주림으로부터 벗아나보지 못했던 그였다. 이 한마디, 그의 스물 두 해의 고통을 말해주는 이 한마디가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조영래)

청옥 시절의 동창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그가 우리 모두에게 남기 유서의 전문은 다음과 같았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도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指環, 金力을 뜻함)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못 다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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