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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죽음을 대하고 - 김남주

죽음을 대하고

김남주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네 언제라도
지금이라도 나는 벗이여 사십 년이란 내 삶의
뒤안길을 머뭇거리며 돌아보지 않고
의연하게 먼산을 바라보며 저승의 사자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네
그것이 어떤 이름의 죽음일지라도 상관없이
왜냐하면 삶과 한가지로 죽음도
스스로 기꺼이 맞이해야 할 설이고 추석이고 축제이기 때문이네
마지못해 영위되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네
억지로 가는 길은 노예의 길이네

그러나 다만 억울한 것은 벗이여(그대는 믿어주겠지)
사랑의 팔로 여인의 육체를 단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하고 가는가 하는 것이라네
소위 저 세상으로 말이네
다만 억울한 것은 벗이여(그대는 고개를 끄덕여주겠지)
세상의 모든 죄악의 뿌리
사유재산의 뿌리를 뽑아버리지 못하고 가는가 하는 것이라네

그러니 벗이여 내가 죽거들랑 속삭여주게
바람에 날려 대지 위를 굴러가는 가랑잎의 귀에 대고
남주에게도 여인이 있었다고 혼신의 힘으로 사랑했던
그녀가 나를 사랑했는지 사랑했다면 어떻게 사랑했는지
이제 와서 알 수도 없거니와 내 알 바도 아니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고 손익계산의 척도로
사랑의 눈금을 재지는 않았다고
그러니 내가 죽거들랑 벗이여 전해다오
가난에 주눅이 들고 땅에서 학대받는 이들에게
부자들을 저주하다가 남주는 죽었다고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원수는 갚으라고 저기 저렇게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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