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엑소더스상황실

2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1/21
    jms 신도들에게 드립니다.(3)
    깡통

jms 신도들에게 드립니다.

 

엑소더스 대표 아침안개 이광흠이 jms 신도들에게 드립니다.


jms 가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9년 1월 황양 납치사건이지 3월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아닙니다.


황양 납치범들은 대전지방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고 황양이 자신이 정명석과 성행위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황양은 자신과 함께 정명석을 상대로 성행위를 했다며 이양을 지목하자 이양은 자신의 처녀성을 입증하고자 처녀막 재생수술을 했습니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 2번째 방송 1999년 7월 24일) 자신의 처녀성을 입증하고자 처녀막 재생수술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jms 신도들은 황양 납치사건에 대해 경찰저널이라는 것을 가지고 말하는데 엑소더스(http://antijms.net)에 들어와 근거자료게시판 24번 게시글 “황양납치판결문(1999)”를 보시면 황양 납치범들에 대한 판결문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황양 납치사건은 김도형과 상관이 없이 진행된 범죄였습니다.


반JMS 회장인 김도형의 제보로  SBS 방송이 나왔다고 주장하는데 반JMS 단체인 엑소더스와 정의연대는  SBS 방송이 나온 뒤에야  결성되었습니다. 그러니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나오던 당시 1999년 3월 이전엔 김도형이 반JMS 회장이라는 말은 말도 안됩니다.


SBS 방송이 나오던 당시 김도형은 카이스트 학생이었고 jms와 마찰로 인해 김도형이 폭행을 당하자 카이스트에서 김도형을 보호해야 한다고 비대위가 형성되었을 뿐입니다. 엑소더스와 정의연대가 결성이 되었을 때에도 김도형은 일반 회원이었고 2001년 엑소더스와 정의연대가 하나의 단체인 현재의 엑소더스로 통합되었을 때 초대 회장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jms 신도들은 2005년 합의 논의가 있을 당시 김도형이 쓴 편지 내용을 가지고 김도형이 돈을 목적으로 반jms 활동이 이뤄진 것이라 주장을 하는데 2003년 정명석이 홍콩에서 불법체류자로 체포된 후 추방과 관련한 소송 중 보석금 10만달러를 지불하고 보석허가를 받고 나와 도망을 간 후 반jms 사람들은  jms 광신도들에 의해 무지 막지한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김도형의 아버지는 60대의 어르신인데 집으로 들어가는 차에서 jms에서 이른바 목사, 전도사라 불리던 자들에 의해 야구방망이등으로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전 너무 놀라 쓰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어르신 얼굴이 마치 축구공처럼 부어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2003년 홍콩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국내에 들어와 고소를 했지만 성범죄에 있어 고소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jms 에서는 피해여성들이 고소를 취하하기를 바랬습니다. 때문에 당시 정명석을 고소한 여성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그 결과 합의를 해서라도 신변을 보장 받고 싶어 했습니다. 이 점은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누구도 그녀들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김도형이 작성한 편지를 jms 신도들은 제대로 읽기나 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제대로 읽었다면 김도형이 돈을 목적으로 반JMS 활동을 했다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김도형 편지의 일부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테러사건의 범인 전원에 대한 검거 및 사법처리가 선행되어야 함을 알립니다. 둘째로는 EXODUS 회원 다수의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피해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며“


“모든 일이 마무리 되어, EXODUS가 제기한 모든 사건의 고소취하가 진행될 때에는, 막대한 액수의 손해배상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jms 신도 여러분은 손해배상의 의미를 아십니까? 당신들이 인용하는 김도형의 편지에 막대한 액수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피해여성들이 합의를 보자고 했고 김도형은 JMS 와 합의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김도형은 정명석에게 합의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테러한 범죄자들과 다수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jms 신도들은 아직도 김도형의 편지가 피해보상과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정명석이 죄가 없다는 편지로 보이십니까?


김도형을 지금까지 반JMS 활동을 하게 만든 것은 jms 지도부들이 아니라 정명석 본인이었습니다. 정명석이 성범죄들을 하지 않았다면 김도형은 공부만 하던 학생으로 남았을 것이고 지금 쯤 김도형의 아버지가 그렇게도 바라시던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생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반JMS 활동은 김도형이 불을 붙였지만 김도형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수 많은 반JMS 활동가들이 정명석의 범죄행위를 알고 경악했으며 더 이상 이와같은 사회악은 끝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늘까지 반JMS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1월 10일 대법원에서 판결난 여성들은 김도형의 편지에 들어가지도 않은 여성들입니다. 그 중 일본 여성은 겨우 일천만원 판결이 났습니다. 그 일천만원 받으려고 남의 나라에서 재판을 8년간 해야 합니까? 돈이 목적이었다면 jms와 더 많은 금액으로 합의를 했을 겁니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형사 사건에서 위증으로 고소된 장양에 대한 판단을 통해 정명석의 성행위를 인정했습니다(2003년 7월 15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민사 사건에서 정명석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한 여성들에게 각각 일천만원, 오천만원을 정명석은 배상을 해야 한다고 인정했습니다(2008년 1월 10일).


jms 신도 여러분 대한민국 대법원 형사부는 정명석의 성행위를 인정했으며, 대한민국 대법원 민사부는 정명석의 성행위는 강간이라 인정했습니다.



jms 신도들은 아래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명석과 관련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jms 신도들은 밑줄 쫙, 별표, 땡땡이 그려가면서 읽으세요


1987년 정명석은 보호자간음, 사기, 명예훼손으로 고소 된 적이 있습니다(관악경찰서 형제 76279).

처분 결과는 보호자간음 - 불기소(공소권없음),  사기, 명예훼손 - 불기소(혐의없음)으로 나왔습니다. 만약 보호가간음이 사실이 아니라면 혐의없음으로 나와야 하지만 공소권없음으로 나왔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은 엑소더스(http://antijms.net) 관련증거 게시판 재판기록자료 37번 게시글 “87년 정명석 관악경찰서 조사”를 보시면 됩니다.


1999년 1월 황양납치사건발생했습니다.

당시 황양은 자신이 정명석과 성행위를 할 때 함께 성행위를 했다며 이양을 지목했지만 황양에게 지목된 이양은 자신이 정명석과 성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위해 당시 jms 신도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처녀막재생수술을 했습니다(1999년 7월 24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내용임).

jms 는 황양과 합의 후 사건 무마했으나 납치범들 실형을 살았습니다(대전지방법원 제4형사부). 이 사건에 대한 판결문은 엑소더스(http://antijms.net) 관련증거 게시판 재판기록자료 24번 게시글 “황양납치판결문(1999)”을 보시면 됩니다.


1999년 3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탄이 방송되었습니다(3월 21일보도).

jms 에서는 방송을 막고자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제출했으나 기각되었고(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제1민사부 결정-3월 16일) 이 결정문은 엑소더스(http://antijms.net) 관련증거 게시판 재판기록자료 30번 게시글 “SBS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에 JMS 기각된 결정문(1999.3)”을 보시면 됩니다.


이 방송가처분 신청에서 증언을 했던 맹양은 정명석과 성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다 위증으로 고소되 지방법원, 고등법원에서 실형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선서의 법적효력 문제로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맹양과 관련된 판결문은 엑소더스(http://antijms.net) 관련증거 게시판 재판기록자료 28번 “정명석의 구릅섹스 인정된 위증 1심과 2심 판결문(2002.8)”과 29번 “정명석의 구릅섹스 인정된 위증 대법원판결문(2003.7)”을 보시면 됩니다.


1999년 10월 JMS가 동서크리스챤연합에서 기독교복음선교회(CGM)으로 이름 변경하였습니다. 당시에 JMS는 정명석과 거리를 두겠다고 했으나 지금도 정명석은 JMS의 총재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2000년 6월 정명석 상대 손해배상청구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3명, 4명으로 총 7명이의 여성이 정명석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해 지방법원 모두 승리, 고등법원 1명 패소(시효문제), 4명 합의 2명 대법원 승리했습니다(2008년 1월 10일). 이 재판과 관련한 판결문은 엑소더스(http://antijms.net) 관련증거 게시판 재판기록자료 27번 “성폭행 민사재판 승소판결문(2003.7)”를 보시면 됩니다.


당시 손해배상청구 재판에서 jms 측 증인으로 나왔던 장양은 정명석과 성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다 위증으로 고소되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실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장양과 관련된 판결문은 엑소더스(http://antijms.net) 관련증거 게시판 재판기록자료 28번 “정명석의 구릅섹스 인정된 위증 1심과 2심 판결문(2002.8)”과 29번 “정명석의 구릅섹스 인정된 위증 대법원판결문(2003.7)”을 보시면 됩니다.


2001년 3월 국내에 들어온 정명석을 출금금지시키고자 3월 14일 앵벌이 고소했으나 3월 16일 대만에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끝나고 들어오겠다고 하고서 출국 후 2007년 중국에서 체포되기까지 국내에 단 한차례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2001년 9월 7일 맹양과 장양 위증으로 고소

맹양과 장양과 관련된 판결문은 엑소더스(http://antijms.net) 관련증거 게시판 재판기록자료 28번 “정명석의 구릅섹스 인정된 위증 1심과 2심 판결문(2002.8)”과 29번 “정명석의 구릅섹스 인정된 위증 대법원판결문(2003.7)”을 보시면 됩니다.


2001년 6월 29일 사기 혐의로 첫 기소중지됨(대전지방검찰청 2001년 형제 10526호)

정명석에 대한 첫 번째 기소중지된 것이며 이 처분결과는 엑소더스(http://antijms.net) 관련증거 게시판 재판기록자료 39번 “사기범 정명석 지명수배 원본”을 보시면 됩니다.


2001년 11월 30일 대전지검에서 정명석을 상대로 성추행혐의로 기소중지

말레이시아에서 강제추행당한 국내 여성이 형사고소한 사건으로 이 형사 고소가 성범죄에 대한 형사고소의 본격적인 시작이었고 정명석은 성범죄 혐의로의 첫 기소중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2003년, 2006년 국내 여성들이 홍콩과 중국에서 강간을 당했고 국내로 돌아와 정명석을 형사고소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