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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공동체 노린 이스라엘의 집중폭격 “야만의 보복”

무슬림 공동체 노린 이스라엘의 집중폭격 “야만의 보복”

 

 
» 유엔 평화유지군 병사들이 24일 레바논 남부의 항만도시 티레에서 지난주 이스라엘 전투기의 공격으로 크게 부숴진 건물의 잔해를 들추며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AP=연합뉴스)
 
한 공동체만을 이토록 집중적으로 폭격하는 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에서만 볼 수 있다.”

베이루트 일간 <데일리스타> 발행인이자 편집자인 한나 안바르는 “이번 공격을 보면 이스라엘의 야만성이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세계 전쟁사를 훑어봐도 전쟁에서 한 공동체만 집중타격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전혀 없진 않다. 1982년 레바논을 침략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을 집중적으로 공격·학살한 사실이 있다.

열나흘째 접어든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공습은 남부 무슬림 지역만을 반복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그동안 이스라엘 정부 당국자들은 “헤즈볼라가 주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주민들이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다”고도 했다. 어느 쪽이 됐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시민 공격’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남부 무슬림 주거지역을 공습하고도 어떤 군사적 목표를 달성했는지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군사적 타격목표가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그저 “헤즈볼라의 토대를 궤멸시킨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시아파 무슬림들이 살아가는 베이루트 남부는 거의 같은 지점이 매일 공습을 받고 있다. 더 파괴시킬 것도 없을 정도다. 이곳은 구멍가게를 비롯한 각종 가게들이 1층에 있고, 그 위층에는 주민들이 사는 전형적인 상업·주거 지역들이다. 이번 이스라엘 공습으로 날아가 버리긴 했지만, 그 지역 안에 헤즈볼라라는 정치단체 사무실이 있었고, 헤즈볼라 방송사 <알마나르>도 있었다.

몇 해 전, 헤즈볼라를 취재하면서 남부 무슬림 지역을 들여다보았던 기억을 되살리면, 이스라엘이 밝힌 헤즈볼라 방송사와 헤즈볼라 본부 파괴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반건물 지하에 차린 간단한 스튜디오와 편집실을 거쳐 위성으로 송출하는 시스템을 지녔던 <알마나르>는 대규모 지상파 방송사와 달리 움직이는 ‘게릴라 방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알마나르>는 온전히 방송을 하는 중이다. 헤즈볼라 본부라는 것도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도로 앞쪽 문보다는 편안한 뒤쪽 주차장 ‘뒷문’으로 드나들었던 그 건물은 그저 일반 사무실에 지나지 않는다. 늘 이스라엘의 공격목표였던 헤즈볼라가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본부 같은 걸 꾸리겠는가.

그렇게 해서, 열나흘째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남부지역 공습은 헤즈볼라 궤멸과는 거리가 먼 ‘시민 보복’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의 말대로 베이루트 남부지역은 헤즈볼라 거점임이 분명하다. 또 주민들이 모두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주민들이 현재 레바논 정치판에 헤즈볼라(신의 당) 출신 국회의원 14명과 장관 2명을 배출시킨 동력이었다. 말하자면, 남부지역 주민들이 헤즈볼라를 레바논에서 합법적인 정치조직으로 키워낸 장본인이란 뜻이다.

이스라엘 폭격으로 삶터가 날아가 버린 주민 모하마드 라슈드(52)의 말을 들어보자. “헤즈볼라는 우리 삶의 전부다. 희망이기도 하고. 헤즈볼라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스라엘 침략자들을 몰아냈겠는가? 누가 우리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가졌겠는가?”

 

남부지역에서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헤즈볼라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이들은 없다. 실제로 헤즈볼라는 대이스라엘 투쟁뿐만 아니라, 정부가 하지 못하는 교육·의료·복지 같은 대민사업을 통해 남부지역 무슬림 공동체의 심장 노릇을 해 왔다.

레바논 언론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헤즈볼라를 비판해 왔고, 할 수 있는 <데일리스타>의 편집자 한나 안바르 같은 이들도 “헤즈볼라는 테러리스트 집단이 아니다”라며 이스라엘-미국의 논리만을 쫓는 일방적인 국제사회의 시각을 강력하게 부정했다.

베이루트 남부지역 무슬림 주민들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 헤즈볼라와 한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14일째 이어지는 고단한 보복공습의 날을 맞고 있다. 비록 오늘은 폭음 없는 조용한 하루를 보냈지만, 내일은 또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시민들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매일 베이루트를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라이스 덕분에 이스라엘이 공습을 하루 멈췄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베이루트/정문태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1440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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