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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촛불을 들었지만 군복을 벗지 못한 사람들(원제)

촛불 들었지만 군복 벗지 못한 사람들

- 군복을 벗지 못한 민주주의

 

작년 여름은 덥기도 했지만 촛불로 인해 달궈질 대로 달궈진 여름이었다. 여남소노(女男少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계층에서 촛불을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촛불 안에는 군복을 입고 촛불을 들었던 촛불예비군도 있었다. 제대한지 일 년도 안 된 나로서는 다시 입기 싫은 군복을 입고 집회를 나온 촛불예비군들이 참 신기한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촛불 예비군에 관한 모습도 보고 이야기도 보면서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도대체 저들은 왜 군복을 입고 나왔을까.

예비군의 역사는 5.16 쿠데타 직후 1962년 향토예비군 설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시작됐다. 이후 법안 개정을 거쳐 1968년에 예비군은 만들어졌다.

예비군은 관련법도 많고 법 개정도 많이 되었는데 기본이 되는 것은 ‘향토예비군설치법(이하 예비군법)’이다. 여기에 예비군의 임무와 목적이 나와 있다. 실제 예비군이 만들어진 68년 예비군법 개정 당시의 예비군의 임무는 무장공비의 침투가 있거나 침투예상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국한되었다.

그런데 1980년 5월 민중항쟁 직후 개정된 예비군법엔 이상한 임무가 추가된다. ‘무장소요가 있거나 그 우려가 있는 지역 안에서의 무장소요의 진압’이 예비군의 임무가 그것이다. ‘경찰력만으로 그 소요를 진압 또는 대처할 수 없는 경우에 한 한다’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눈에 띄는 점은 계엄법, 위수령 등의 법적․행정적 절차 없이도 정권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시위 진압에 예비군 동원이 가능한 것이다.

예비군법의 무장소요의 우려라는 부분을 보며 80년 5월을 다시 생각해봤다. 당시 군부로서는 다시 5월 항쟁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시민들이 사는 곳곳에 저항을 막기 위해 예비군의 임무에 시위 진압임무를 추가했다. 그리고 91년엔 실제로 예비군이 집회시위 진압을 할 뻔했다.

그런데 작년 여름, 그런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는 예비군들이 군복을 입고 거리로 나와 집회하는 시민들 앞에 섰다.

훈련 때랑 다른 게 있다면 훈련할 때 받는 구식 M1 소총 대신 촛불을 들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촛불 집회 참가자들과 노래하며 함께 행진하고, 경찰과 대치도 하고 시민들하고 도로 점거도 했다.

예비군을 만들었던 무덤의 박정희나, 예비군이 시위진압도 하도록 만든 사람들은 뒤통수를 잡고 입에 게거품을 물었을까? 그렇게 보면 참 통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예비군들은 진압하러 온 경찰 때문에 다칠 수 있다며 시민들을 제지하며, 특히 여성들을 제지하며 집회를 이끌어갔다.
왜 예비군들은 군복을 입고 시민들을 지키려고 했을까.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보면 좀 풀릴 것 같다.
필자의 어머니와 어머니가 다니는 직장 동료들 중에는 각종 선거 시기에 후보자들을 평가하는 기준 중에 꽤 절대적(!)인 기준하나가 있다. 군대 안 갔다 온 후보는 안 찍어준다는 것이다. 이건 군대의 부재자 투표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군 생활을 같이 한 친구가 부재자 투표를 할 때 나에게 말했다. ‘군대갔다온 놈 찍을 겁니다.’ 이럴 때 보면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진리’다.

이것을 좀 더 살펴보면 법의 영역을 떠나서 군복무를 거쳐야만 이 사회의 시민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군대를 안 갔다 온 사람은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시민)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 된다거나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이야기들이 바로 이러한 바탕에서 나오지 않는가 한다. 때문에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사람(때론 여성, 장애인 등)은 시민권을 보장 못 받는 사람, 혹은 2등 시민으로 여겨진다면 너무 부풀린 것일까.

이러한 한국 사회의 측면을 볼 때, 촛불 예비군은 의식했건 아니건 군복을 입음으로서 자신이 (평소 데모하는 사람들과 다르며) 잘못된 정부를 올바르게 바꾸려는 정상적인 국민임을 증명하려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촛불 예비군이 군복을 입은 것은 개인의 취향 등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촛불 예비군은 한국사회가 군대를 통해 이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남성)시민권이 어떻게 부여되는 지를 다시금 보여줬다.

국가가 ‘예비군법’에 따라 부여한 집회시위 진압 임무를 생각할 때 촛불예비군은 어떤 의미에서 국가를 넘어서는 것이었고 급진적이었다. 그러나 촛불 예비군이 군복을 입은 순간 그것은 국가의 권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촛불 예비군들은 새로운 ‘국가의 구성’을 요구하는 한에서 ‘진보적’이지만, 그 진보는 ‘국가’로 귀결되는 한에서 아주 반동적이고 권위적이며 보수적이었다. 그렇기에 촛불 예비군은 촛불을 들되 군복을 벗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촛불 예비군은 군복을 벗지 못한 남한사회의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이 사회의 민주주의와 시민권에서 어떻게 군복을 벗길지 함께 고민해 봐야한다.

 

[덧붙임]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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