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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9
    금강산의 백도라지(2)
    하얀저고리

금강산의 백도라지(2)

 북한전래옛이야기

                                                                                

 

 

금강산의 백도라지(2)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왔어요.

어느날 민부자놈은 도씨 노인을 불러들였어요.

영문을 알리 없는 도시 노인은 머리도 들지 못한 채 마루아래 엉거주춤 서 있었어요.

 

놈은 술상까지 차려 놓고 노인을 끌어 상 앞에 앉히는 것이었어요.

여느때 없이 차려지는 후한 대접에 노인은 어쩔바를 몰라 어리둥절하였어요.

 

민부자놈은 노인에게 술을 몇잔 권하더니 이윽고 은근한 어조로 묻는 것이었어요.

 

"그래, 금년농사는 잘 된 것 같은가?"

 

그러자 노인은 반쯤 머리를 쳐든채 애원하다시피 말했어요.

 

"올해 농사도 그리 시원치 않소이다.

게다가 올 가을에는 라지 에미 삼년상도 치르어야 할텐데....

제발 우리 사정을 봐서 이번 한해만이라도 좀 더 말미를 줄 수 없소이까?"

 

"그런가, 그거 참 안됐구만. 빚도 빚이려니와 그럼 금년 겨울은 어떻게 지내겠나?"

 

민부자놈은 동정이라도 하듯 지껄여대더니 도씨노인의 무릎을 탁 치며 말했어요.

 

"이보라구, 그러지 말고 내 말대로 하라구. 아무리 뼈빠지게 일해도 어디 신통한 수가 있던가?"

 

도씨 노인은 이놈이 또 무슨 오그랑수를 쓰려나 하는 의심이 부쩍 생겼어요.

 

 

"거 임자네 라지를 우리 집에 후실로 드려보내게나.

그애야 우리 집에 오면 먹을 걱정 있겠나 입을 걱정 있겠나.

말 그대로 호의호식할게 아닌가.

아. 그뿐이겠나. ...

라지에미 삼년상도 내가 다 도와주지 않으리...."

 

청천벽력과도 같은 민가놈의 말에 노인은 그만

땅에 잦아드는 듯하여 몸을 가늠할 수 없었어요.

그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기다시피 마루를 내려섰어요.

 

"제발 그애만은... 제 눈에 흙이 들어간대도 그렇게는 못하겠소이다."

 

노인의 태도에 성이 머리 끝까지 치민 민가놈은 대청마루를 구르며 호통을 쳤어요.

 

"아니, 뭐라구? 빚도 못물어, 라지도 들여보내지 못해, 그럼 어쩌자는건가?

 남의 돈을 생무우 잘라먹듯 그렇게 뚝 떼먹자는 심본가.

좌우간 섣달 보름날까지 빚을 다 물지 않았다간 라지를 무조건 끌어올 줄 알게."

 

허청허청 마당가를 걸어나오는 노인의 귀에는 윙윙 소리만 울릴 뿐

그 놈의 호통소리는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았어요.

 

노인은 비실거리며 여우 고개마루에 올라섰어요.

마을을 내려다보니 자기 집 굴뚝에서도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하루종일 베틀에 앉아 있던 라지가 아버지를 기다리며

저녁밥을 짓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더욱 눈앞이 아찔했어요.

째지게 가난한 살림에도 그 딸 하나를 믿고 지금껏 살아온 노인에게 있어서

라지가 없는 생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이 일은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노인은 맥없이 마당을 들어서는데 라지가 부엌문을 열고 반가이 마주나왔어요.

 

"아버지, 이제 오세요. 오늘 퍽 늦으셨군요."

 

"음, 일이 있어 저 아래 동네에 갔다가 한 상 잘 대접 받고 오는 길이다."

 

방안에 들어선 노인은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어요.

이 날부터 그는 밥 한 술 입에 대지 못한 채 며칠을 그렇게 앓아 누웠어요.

 

영문을 알리 없는 라지는 아버지에게 안타까이 물었어요.

 

"아버지,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벌써 그렇게 묻기를 수십번, 그러나 노인의 입에서는 여전히 한가지 대답뿐이었어요.

 

"아무 것도 아니다. 아마 몸살이 난 것 같구나."

 

"아버지,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세요.

이 딸에게 말못할 무슨 사연이 있는가요?

네. 아버지..."

 

라지는 너무도 안타까와 밖에 나와 물바자를 붙잡고 흐느껴 울었어요.

                                   

 

이 때 어디서 오는 길인지 무량이가 불쑥 나타났어요.

다짜고짜 라지의 손을 잡아끌고 집뒤에 이른 무량은 모두숨을 씩씩거리며 물었어요. 

 

"라지, 민부자놈이 라지를 후실로 데려가겠다구 했는데 정말이야?"

 

순간 라지는 가슴이 후드득 뛰고 다리가 떨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어요.

 

"그래서 아버님이 그토록 괴로와하시면서도 나한테는 말한마디 안하셨구나. 흑 ------"

 

"아니 그럼 라지는 그일을 모르고 있었단 말이야?"

그럴수록 라지의 흐느낌 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어요. 

 

"라지, 진정하고 내말을 들어.

자. 이 돈이라도 먼저 가져다주어. 몇푼 안되지만 여름내 나무해다 판 돈이야."

 

무량은 피춤에서 꼬깃꼬깃 싼 돈을 꺼내 라지의 손에 꼭 쥐여주었어요.

그러고는 간절히 말했어요.

 

"라지, 절대로 그놈의 집에 들어가서는 안돼. "

 

라지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무량을 쳐다보며 안타까이 말했어요.

 

"그러니 어쩐단 말이야. 무슨 수로 섣달 보름날까지 그 많은 돈을 다 장만하나."

 

흐느낌 속에 겨우 이어지는 라지의 말소리는 무량의 가슴을 후비는 듯 하였어요.

 

"내가 떠돌아다니면서 품을 팔아서라도 돈을 좀 마련해 보겠어.

그러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무량은 그 누가 당장 라지를 빼앗아가기라도 하듯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어요.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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