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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웬 가리늦가 워낭소리냐 하면,

 

오늘 도서관에 갔다오니 부모님이 조금 더 늦게 들어오셨다.

 

그래서 어딜 다녀오시냐고 여쭈었더니,

 

워낭소리를 보고 오셨단다.

(읍네 새마을금고에서 밀양영화학교 주관으로 무료영화상영을 하고 있다. 거기에 다녀오신 것이다.)

 

며칠 전 아버지께서

"워낭소리 재미있냐?"

 

난 "아뇨. 재미없어요. 보지 마세요."

 

"니는 보고 왔으니 재미없다고 말하지-. 왜 다들 재미있다던데."

 

결국 오늘 보고 오신 것이다.

"우찌. 재미있섭디꺼?"

"우와- 워낭소리 재미없더라."

"거 보세요. 재미없다고 했잖아요."

"재미있는 줄 알았지. 피곤해서 보다 좀 잤다. 놈놈놈은 재밌나?"

"그건 재미있을거라예."

 

좀더 늦게 어머니께서 들어 오셨다.

"워낭소리 재미있섭디꺼?"

"그냥 할배할매 사는데 소 키우고 소꼴 뜯고 그런 얘기데. 그냥 할배할매 나와서 할배가 소꼴 뜯고, 밥 주고 일하고, 그러다 소가 죽더라."

"저도 봤습니더."

"그랬나? 할배들이 보고 한심스럽다 카더라-."

"누가예? 영화가예? 그 할배들이예?"

"그 할배들이."

"영화는 재미있습디꺼?"

"아니. 그저그렇더라. 재미없더라. 집으로는 어떻노?"

"그것도 촌에 할매, 손자 얘깁니더."

"그렇나? 내나 똑같겠네."

 

이상이 부모님가 내가 나눈 대화다. 부모님께서 영화보는 눈이 나빠서 영화가 재미없는 건 아닐테다. 내나 촌에서 옛날에 경험한 얘기인데, 무어 재미있을 것이 있겠는가? 뭐 다른 것이 있겠는가? <워낭소리> 속 할배와 동네 할배의 삶은 유독 소를 사랑했다는 것 빼놓고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 과대선전의 피해자가-비록 공짜지만- 된 셈이다. 나 역시 보고 좀 심드렁한 기분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내 친구는 보고 금방 눈물이 쏟아지더라던데 나는 별로였다. 그만큼 회자되고 극찬할 만큼의 영화는-다큐로서도- 아니었다. 범작 수준? 아니면 B급 정도?

 

영화는 인간과 동물의 우정을 놓고 보았을 때, 동물농장이나 주주클럽 딱 그정도다. 딸랑거리는 워낭소리가 주구장창 대리선동을 하여 오히려 기분이 나빠질 정도다. 애써 눈물을 쥐어짜내려는 삼류멜로처럼.

 

<워낭소리>는 '신-구문명의 충돌과 구문명의 패배'의 관점으로 보면 그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영화가 된다. (이렇게 보면 위 어머니와의 대화 중 동네 할버지들의 한심스럽다는 말은 중의성을 띤다. 불편하고 좁은 의자에서 애써 시간을 내 저딴 영화를 보는 자신들이 한심스럽다는 것과 구문명의 실질적인 패배자로서의 한심함이 그것이다.)

 

늙은 소와 할배와 고된 노동은 전통-구-문명을 대표하고, 젊은 소와 할배할매의 아들딸들과 석유 때는 농기계는 현대-신-문명을 대표한다. 할매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현대문명을 옹호하는 역할을 한다. 시종일관 영화는 전통문명을 고된 노동과 골병을 반복해서 부정적으로 보여준다. 그나마 인간과 동물을 우정이라는 포장을 통해 긍정적 감성을 자극한다. 마찬가지로 현대문명에 대해서는 매정함을 보여준다. 늙은 소를 여물통 밖으로 몰아내는 젊은 소, 농삿철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여가삼아 내려와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소팔라!'라고 외치는 자식들. 그들은 농삿일을 돕지도 않거니와 병원 한번 모시고 가지 않는다.

 

늙은 소와 할배는 할매의 끊임없는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고집스럽게 고수하지만, 추수철 콤바인에게 한 번 도움을 받고, 소팔라는 자식들 소리에 좌절하고, 늙은 소가 노사하면서 할아버지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아파!'라고 외치고, 한편으로는 워낭소리를 딸랑거리며 마침내 패배를 선언한다.

 

이렇게 <워낭소리>는 '전통문명의 마지막 장, 패배 선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큐란게 원래 그렇고 그래서는 안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영화는 어떠한 희망이나 대안도 보여주지 않는다. 즉 자기 목소리라는 것이 없다. 이 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희망과 대안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니 우리가 찾아야 한다. <워낭소리>를 본 그 수많은 도시 사람들이 그 희망과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이것에도 나는 부정적이다.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남대문 방화사건.

 

난 그 때 뉴스를 보면서, 불타버린 남대문을 보면서, 사람들의 외침, 절규와 그들의 눈물을, 생방송으로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로 빵 터졌다. 어찌나 웃기고 역겹던지.

 

그들은 남대문이 불타버린 것이 대한민국 전통문화의 크나큰 상처, 손실로 보았는데, 그것이 같잖았다.

 

남대문 물론 국보 1호로 대단한 문화유산이다. 그것도 유형의.

하지만 서구문화를 동경해 한시빠비 전통문화를 내팽겨치고 없애버린 그들이, 소젖보다 Milk를 좋아하는 그들이. 외국에 팔거리-관광상품-가 아니면 돌보지 않는 그들이. 좋은 것을 보러 유럽으로 날아가는 그들이. 동강이 아니라 세느강과 허든슨강을 사랑하는 그들이. 남대문을 빙 둘러싸고 남대문이 탄다고 민족의 자존심이 탄다고 슬퍼하고 있다. 발을 동동굴리며 오열하고 있다. 이 얼마나 쓰디쓴 유머인가? 뉘라손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닥종이, 전통 나룻배, 가산오광대 등-이 밖에도 무진장 많다- 무형문화재는 후계자가 없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다. 그들의 죽음에는 조문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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