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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수' 사건으로 둔갑하다

 

2005년도 민주노동당 당직선거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서울의 모지구당의 중앙위원인 U씨는 또 다시 중앙위원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중앙당 성폭력대책위원장이 이 사람을 불러서 출마 포기를 종용하였다.

 

U씨에게는 성폭력 2차 가해를 해서 지구당 운영위원회의 결의로 공개사과를 했던 전력이 있었다. 지구당 행사 뒷풀이에서 어떤 당원이 무슨 얘기를 했는데 합석하고 있었던 여성 당원에게 심히 성적 불쾌감과 모멸감을 주었다. 그 자리에서 여성 당원은 강한 문제제기를 했고, 당시 지구당 위원장이기도 했던 U씨는 나름이 분위기 유지를 위해 갈등을 '무마(?)'하려 했던 모양이다. 이 일로 그 지구당 운영위원회는 발언 당사자는 당기위에 제소를 했고, U씨에게는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U씨는 공개사과를 이행했다.

 

그런데, 선거철이 다가오자 U씨의 반대파였던 피해 여성 당원은 U씨의 전력을 중앙당 성폭력대책위원장 등에게 비공식적으로(!) 알렸고, 당시 성폭력대책위원장이자 여성위원장이었던 박씨(현최고위원)는 U씨를 조용히 불렀다. 중앙위원 출마를 포기하지 않으면 성폭력대책위에서 과거의 그 일을 조사한 후에 당기위에 제소하겠다고 했다.

 

U씨는 중앙위원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성폭력대책위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U씨가 결국 공개사과하게 되었던 그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중앙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일까? 그가 그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책임을 회피했다면 중앙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면? 이는 '정치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징계를 받았음에도 과거 전력을 충분히 반성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의 중앙위원 출마를 강력하게 비판할 수도 있다. 또한 징계 자체가 충분치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반면 징계를 이행했다면 과거의 잘못은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고 보고 지지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는 각각의 사례마다 그 조직(지구당/지역위)의 당원들이 실질적으로 가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성폭력대책위원장은 몰랐을까? 알고 있기때문에 조용히 불러서 '협박'을 했고 선거 후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민한 성폭력·성차별 문제를 선거에 악용하여 반대파에게 타격을 입히고자 했던 시도는, 단지 정치적 권리를 억압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성폭력·성차별이 제대로 규율되지 못하도록 한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민주노동당만 하더라도 수많은 성폭력·성차별 행위가 항상 적대적 정파 대립으로 왜곡된다. 심지어는 없던 일도 그렇게 만들어진다.

 

 

지난 10-11일 양일 간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이날은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건 진보정치연구소 건이다. 진보정치연구소의 K씨가 연구소의 공금을 유용한 것이다. 모가지 짤릴, 터무니 없는 일을 저지른 게 예결산위원장에 의해 보고되었다. 과거에 수백만원의 당비를 유용하고도 여전히 뻣뻣하게 중앙당에 남아있는 놈도 있다는 말로 봐주자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공금유용 사건'이 '공금으로 성매수 사건'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K씨는 평소 늦은 술자리가 잦았고 사무실 근처 L호텔 사우나에서 여러차례 잤던 모양이다. 그 사우나의 스포츠마사지를 받았는데 세 번을 연구소 법인 카드로 결재했던 것이다. 어처구니가 날라가는 모양새란...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김 예결산위원장은 중앙위원회에서 공금유용 사실을 보고한 후에, 처음에는 그 내역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말 못한다', '기자들 내보내야 한다', '이거 공개되면 큰 일 난다'는 말로 시작해서 결국, '내가 그곳에 확인차 직접 가봤는데 차마 말을 못하겠다', '남자들이 팬티만 입고 돌아다닌다' 따위의 말로 세간의 '안마시술소'로 둔갑을 시켰다. 그는 결코 '성매수', '성매매업소', '안마시술소'란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있던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공금으로 성매수를 했다'고 받아들였다.

 

 

김 예결산위원장은 정치적으로 빚을 진 이들이 있다. 그는 경기도의 모지역위원장이기도 한데 그가 그곳에서 지역위원장을 오래 지낼 수 있는 것은 최씨와 정씨의 '배려'이기도 하다. 최씨는 진보정치연구소의 이사인데 연구소 소장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로비를 해왔다. 연구소 이사회는 지난 가을에 이사회를 열어 새 소장을 임명제청했어야 했음에도, 권영길 이사장이 이사회 소집을 미루어온 것은 최씨의 로비가 수그러들기를 기다렸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최씨의 오른팔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또 다른 최씨(최2)로서 예결위원이다. 최2씨는 진보정치연구소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3일 내내 연구소의 회계자료를 분석했단다. 공금유용을 밝혀낸 것은 '꼬투리'가 아니라 훌륭한 감사의 결과였다. 감사 과정에서 예결산위원회는 연구소로부터 소명 공문도 받았고 결론은 명백했다.

 

어쨌든 예결산위원회의 감사 결과가 중앙위에 보고되기 전에 김 예결산위원장은 권영길 이사장 등을 만났다. 권영길 이사장에게는 무난하게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했단다. 문성현 당대표도 연구소 간부의 공금유용 건을 알고 있었다. 김 예결산위원장이 중앙위원회 자리에서 '말 못한다'고 했을 때 문대표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김 예결산위원장은 이 건에 대한 어떤한 소명도 받은 적이 없다고까지 중앙위에서 거짓 발언을 했다. 게다가 김 예결산위원장이 보고할 순서가 임박하자 연구소의 재정관리를 담당하는 김 부소장은 중앙위원회장에서 사라졌다가 결산 보고 건이 처리 된 이후에 나타났다. 김 부소장은 그 자리에서 소명을 했어야 할 책임을 지닌 사람이다. 김 부소장은 최씨가 연구소 소장이 될 수 있도록 나름 노력했던 사람이다. 미리 짜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여의도 L호텔의 사우나에서 운영하는 스포츠마사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당 간부들이 알고 있다. 소위 고위 당직자들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래서 연구소 K씨의 공금유용 건이 '성매수 사건'은 아니라는 것도 그들은 잘 안다. 이 건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김선동 사무총장, 김기수, 김성진, 홍승하 최고위원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는 '진실'을 당대회에 보고할 것이다.

 

그러나 '공금유용 사건'은 '공금으로 성매수 사건'으로 둔갑한 채 전국의 당원들에게 지금도 회자되고 있듯이 당대회 후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범죄'로 연구소와 K씨는 형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보고는 당대회 대의원이나 당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은 여타의 조직과 마찬가지로 성폭력·성차별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고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정파 간 싸움으로 변질되어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성차별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구성된 당의 기관은 언제나 정의로운 당원들로부터 부족함을 지적받았다. 당의 공식 기관은 이 문제에 있어서는 권위를 지년 본 적이 없다. 당연히 한시적으로 구성된 '일개' 진상조사위원회가, 그것도 최고위윈들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가 '정치적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길 것이다.

 

 

성폭력·성차별 문제를 귀찮고 짜증스러운 사건으로 치부하는 조직의 문화에서는 이런 식의 조작 사건은 필연적이라 믿는다. 가장 혐오스러운 범죄라는 정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권위로는 해결하지 못한다는 불신. 이를 잘 알고 있다면 정파 싸움에서 '좋은'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이번도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다면, 성폭력·성차별 사건은 죄다 문제 제기에서부터 해결 과정, 결과까지 온통 음모와 의혹 투성이라는 인식이 확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