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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월간 네트워커 칼럼 기고문 - 0411122>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이런저런 일도 많고 참으로 시끄럽다. 세상이 시끄럽다는 건 그만큼 역동적인 사회란 뜻이겠지만 시끌벅적 다툰 결과가 우리 사회에 유익하다면야 모든 걸 견디고 이해하겠지만, 우리 귀를 자극하는 소란한 사태 중 여럿은 별 도움도 못되는 싸움이라는 게 문제다.


지난 11월 12일 정보통신부는 KT, 하나로텔레콤 등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에게 31개 '친북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도록 명령했다. 정부가 또 사고쳤다.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는 불법통신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번에 차단한 31개 사이트가 제53조 제1항 8호인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에 해당한다며 정통부 장관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차단 명령을 내린 것이다. 배경에는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요청이 있었다.


정부의 '친북사이트' 접속 차단은, 표현의 자유·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측면에서,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인터넷 사이트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등등,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처분이다. 그런데, 그 '친북사이트'들은 예전부터 운영되고 있었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필요와 선호로 '애용'해 왔던 사이트들이었는데, 하필 지금 그런 명령을 내렸을까? 그것도 '대규모'로.


정부는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 법률도 만들고 투자도 안내하고 무역도 허하고 관광도 부추긴다. 북한방송을 보여주는 것도 안 말린다. 실컷 그래놓고선 이번엔 '친북사이트'라며 31개를 골라서 차단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은 웬만한 서점과 도서관에서 다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사회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진 않았다. 마찬가지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저작이 서점과 도서관,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북한의 이념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회의 권력은, 허용해서는 안 될 목록은 차츰 줄이면서도 유독 북한과 관련한 목록을 줄이는 데는 신경을 곤두세운다. 북한, 혹은 북한의 주장이 이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이번 정신분열적 조치는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로 수구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이 쌈박질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보안법은 반공규율을 상징함과 동시에 수구세력의 존재 징표이다. 그 때문에 거대여당은 자기들의 존재 근거를 잃지 않으려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진다는 것은 87년에 이루지 못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것이며 새로운 합리적 보수주의의 출현을 강제하는 것일 뿐이다.


우스운 건, '친북사이트'야 아무리 막아도 볼 사람은 다 볼 터인데, 우리를 위하는 척하면서 수구세력의 준동에 부응하여 이들 사이트를 차단하는 정부의 작태다.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여당을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정부조직이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친북사이트'를 차단했겠냐마는, 대통령과 여당의 무능함을 조롱하기보다는, 오늘은 정부조직을 야단쳐야겠다.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공익과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정부가 '사고'를 칠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이젠 제발 시대에 뒤떨어진 거 말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머리 맞대고 지혜를 나누고 싶다. 누구랑? 정부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