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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vs. "선생님"

 

말걸기님의 [호칭과 지칭, 그리고 존칭과 존댓말] 에 관련된 글.

 

 

말걸기가 평등한 관계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 관계만 맺고 살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평등한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는 사람들하고만 지낼 수는 없다. 그래서 말걸기는 언제부턴가 열심히 호칭에서도 세태와 타협하고 있다.

 

 

요즘 말걸기는 예전에는 겪지 못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도 두 가지나. 하나는 사진 배우러 다니는 곳에서이고 또 하나는 제철 맞은 논술학원에서이다. (그러고 보니 한편에서는 배우고 다른 편에서는 가르치고 있구나.)

 

"선생님, 작품 가지고 오셨어요?"

"선생님, 원고지에다 이렇게 써도 돼요?"

 

말걸기는 배우는 곳에서나 가르치는 곳에서나 '선생님'으로 불린다.

 

 

사진 배우는 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 지긋한 양반들이다. 그곳 교수나 강사들보다 나이가 많다. 물론 젊은 20대도 있고 30도 적지 않지만 모두들 '사회생활'하는 사람들이고 하니, 교수나 수강생이나 서로들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교수님'나 '사장님'이란 호칭도 통용되고 젊은 사람들이끼리는 친해지면 '아무개야'나 '누구씨'로도 부른다. 말걸기가 다니는 반은 나이 많은 양반들이 많아서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걸기는 대체로 '누구씨'로 통한다.

 

재미 있는 건 말걸기보다 나이 많은 주임교수들은 말걸기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젊은 강사나 조교는 '누구씨'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또 하나, 나이든 아저씨들은 '누구씨'라고 부르는데 나이든 아주머니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주임교수들이 수강생 모두에게 나이에 상관없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건 40대 교수들 세대의 문화적 환경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의 반영인 듯한 느낌도 든다. '선생님', 얼마나 겸손한 듯하면서도 고상한 표현인가? 말걸기가 그곳에서 처음로도 '선생님'이라는 소릴 들었을 때 속으로는 화들짝 놀랐다. 경기 일으키는 줄 알았다. 여전히 어색하지만 대충 적응했다.

 

강사나 조교들은 나이도 그렇고 '선생님' 문화에 아주 잘 적응하지는 못한 듯하다. 이들도 나이 많은 수강생들에게는 '선생님' 소리 하지만 말걸기에게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 말걸기에게 차마 '선생님' 소리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더 정이 간다.

 

아마 아주머니들은 조금 더 친근해지면 '누구씨'라고 부를 것 같다. 말걸기가 다니는 반에서는 말걸기만 소위 '젊은 사람'인데 그래서 아주머니들은 말걸기를 '챙긴다'. 나이 든 사람 사이에서 불편하다는 걸 알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건 아저씨들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점이다. 성별에 따른 문화는 정말 다르다.

 

 

반면에 알바 다니는 학원에서는 가르친다는 의미로 '선생님'으로 불린다. 여기서 '누구씨'로 불리는 건 무척 어색하긴 하겠다. 하지만 두 가지 의미에서 편치 않은 점이 있다.

 

말걸기가 정말 '가르치는 사람'일까 싶다. 요즘 말걸기가 하는 일이 수능 끝나고 정시 전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응시생들이 쓴 논술답안을 봐주는 거다.  과연 이 기간 동안 응시생들은 얼마나 배울 수 있을까? 말걸기는 대체로 무난하게, 혹은 잘 가르치고 있다고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학생들 실력이 늘까? 결국 가르치는 것도 별 거 없으면서 '선생님' 행색이나 하고 있는 듯하다.

 

또 하나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면서 학원에서도 위계의 상위를 점한다. 학원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도 한다. 순수하게 글쓰기를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런 위계가 그들에게도 아주 자연스럽게 베어 있다. 과거에 말걸기가 그랬던 것처럼. 말걸기는 이 위계에 아주 잘 적응을 하고 있는데 그게 '돈 잘 버는 방법'과 내연의 관계에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인 것 같다.

 

평소에는 어떤 상황에서 만난 사람이든 처음 만났거나 사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나이 불문 절대 반말 안 한다. 그게 예의이니까. 좀 친해졌다고 형, 오빠, 선배 노릇한다는 게 얼마나 재수가 없냐 이거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아주 쉽게 반말이 나온다. "아무개, 이리 와 봐" 따위.

 

 

어쨌거나 불편한 '선생님' 관계이다. 불쾌하거나 재수없거나 그런 건 아닌데 불릴 때마다 왠지 솔직하지 못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하다. 이런 관계는 정말이지 '계약' 관계인 것 같다. 계약이 끝나면 함께 끝인 관계. 계약 만료 후 다른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면 다시 만나도 불편할 관계.

 

호칭은 이처럼 관계를 정해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