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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신과 겨루는 중

 

어제 견적을 내 보았다. 물론 나 혼자서 사이트 뒤져가며 냈다. 업체에게 문의한 건 아니다. 최저가와 최고가를 나름대로 정리했다. 평균가까지도.

 

 

한 뭉탱이의 퇴직금은 나에게는 아주 큰 돈이면서 가벼이 쓸 수도 없는 돈이다. 이 돈을 어떻게 받은 건데(과정 :   ). 더더구나 실업자니까.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사진기 사자. 돈 남으면 여행 가자. 그런데 이러면 남는 돈이 없어져 버릴 것 같다는 암울한 예상이 드니 슬슬 괴로워진다. 요즘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드는데 말야.

 

시베리아-몽골 여행은 거의 지른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빠꾸할 수 없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허구한 날마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풍경을 상상하고 어떻게 사진에 담을까 고민하고 있으니까. (역시 닥치지도 않았는데 사진 찍을 걱정은...) 상황이 어찌 돌아가다 그리 되었는지 시베리아-몽골 여행도 사진을 열나 찍지 않으면 여행을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당분간 나 좋은 건만 하고 살려는데, 사진 마꾸 찍는 게 좋고 긴 여행을 떠나서 생경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찍고 싶으니 사진기와 여행이 다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린 거다. 결국 여행 가기와 사진기 사기는 덩어리 돈이 필요한 지출들의 결합이 되어버렸다.

 

 

내가 사진기를 새로 장만하려고 했던 건 꽤 오래 전부터였다. 몇 년 째 돈이 생긴다면, 혹은 모아진다면 사진기를 장만해야겠다고 맘 먹고 있었다. 내게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Nikon FM2라는 꽤 훌륭한 SLR 사진기가 있다. SLR 사진기는 들고 싸돌아댕길만한 크기에 화질도 좋고 렌즈를 교환해 가며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훌륭한 FM2가 나에게는 아주 적합하지 못한 점이 있다. 바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필름값과 현상-인화(혹은 스캔)비용이 든다는 거다. 이러니 마구 사진을 찍지 못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나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찾기가 어렵다. 나름대로 SLR만 23년을 찍었는데, 필름사진 찍기란 곧 돈이다 보니 원하는 만큼 찍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부자가 되기 전까지는 디지털SLR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필카의 화질을 아직은 따라잡지 못하는 DSLR이지만 내 처지에서 DSLR의 화질도 좋다. 행여 인화나 인쇄를 해야할 일도 생길지 모르니 보급형보다는 성능이 좋은 DSLR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지에 대한 까다로운 나의 기준도 만족할만한 기종. 그리고 나의 Nikon 호환 렌즈를 활용할 수 있도록 DSLR도 Nikon 모델. 결국 적당한 모델로 Nikon D200이라는 DSLR을 점찍어 두게 되었다.

 

D200과 이 사진기를 갖고 돌아댕기며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이런저런 물품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이제껏 없어서 불편했던 삼각대도 필요하고 사진기 식구가 느니 새가방도 필요하고 디지털이다 보니 메모리와 저장장치도 필요하고 등등. 이것들의 견적을 만들어 본 것이다. 그냥 200만 원쯤 했었던 D200을 위해서는 200만 원만 드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욕심까지 생겼는데 바로 접사 렌즈다. 사진을 찍다보면 순간 접사 렌즈의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접사 렌즈도 하나 마련해 볼까 생각하고 있다. 접사 렌즈 이 외에도 초광각이나 초망원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돈이 없다. 여행을 포기한다 해도 보자랄 판이니.

 

 

문제는 기대했던 공모에서 떨어지면서 여행 비용이 급상승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여행 비용이 얼마 들지 아직 확실하지도 않다. 대략 200만 원에 수십만원이 얹어질 것 같을 뿐이다. 이래서 사진기 사고 남은 돈으로 여행을 가고자 했던 애초의 다짐이 뒤집혔다. 그래서 사진기 등에 필요한 돈을 계산하면서 지금 내게 있는 돈, 앞으로 어쩔 수 없이 나갈 돈도 계산을 해 보았다. 아슬아슬하다.

 

결국 접사 렌즈를 살 것이냐 말 것이냐로 지름신과 겨루게 되었다. 내일쯤에는 장보러 나갈 생각이다. 현장에서 얼마나 후려치기가 잘 되느냐에 따라 접사 렌즈를 손에 쥘 지가 결정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