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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폐지주의자_델라 그레이스

 

젠더 폐지주의자(Gender Abolitionist) 

델라 그레이스(della grace 혹은 del lagrace volcano, della disgrace)

 

 


난. 이 사람을 ‘우리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이런 건 말할 수 있겠다. 1957년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고, 그 당시 이름이 데브라 다이안느 우드였으며 37년 동안 ‘여성’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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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 봤을 때 이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성정체성(sexuality)의 구분은 4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겠다 1. 이성애자 여성 2. 레즈비언 3. 양성애자 여성 4. 혹시, 트랜스젠더? 그렇지만 내가 가늠하고자 했고 쑤셔 넣으려 했던 이런 정체성의 구분들은 왕년의 ‘데브라’에게 딱 맞질 않았다. ‘그녀’는 모두에 속하기도 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남성이자 동시에 여성으로도 살고 있고, 양성구유 다이크, 트렌스젠더 남성, 양성애자, 레즈비언 에세머(SMer)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하사하며, 정체성의 경계들을 조롱하듯 넘나드는 이 사람은 모두를(혹은 나만?) 곤란케 한다. 그러게,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호명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누구의 시 구절을 참으로 무안케 하는 이 시점에서,‘ I NAME MYSELF’  ‘나의 이름은 내가 짓는다.’ 라는 그레이스의 말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는, 그/혹은 그녀의 삶이다.


이 사람, 젠더 욕보인 사연


그레이스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굴곡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배경삼아 상상해보자, 과연 이 사람은 어떤 작품들을 만들었을까? 이 사람에게 ‘여성의 나체’라는 게 하다못해 데생수업 안에서나마 ‘아름다움’으로 읽혀질 것인가라는 궁금함은 애시 당초 고개를 못든다. 그렇다고 그리스, 로마 시대 혹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 신체로써의 ‘남성’ 젠더로 표현된 수많은 명작들 또한 이 사람이 흥미를 가질만한 소재가 될 리 만무. 자신을 ‘젠더 테러리스트’이자 ‘젠더 파괴자’라고 지칭하는 그레이스는 오히려 ‘젠더’로 이분화 되어 있는 ‘이상적’ 인간의 그림자보다는 , 간성과 양성적 신체들을 재현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퀴어적 몸’의 아름다움을 설파하고 있다.

 

 

 


그레이스의 작업들 속 존재는 ‘여성’과 ‘남성’ 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여성’의 것이라 생각하는 ‘가슴’이나 ‘보지’ 등과 함께 ‘좆’과 근육이 한 사람의 몸에 병치해 있다. 또, ‘남성’ 젠더의 산실인 군대 안에서 숏컷의 머리에 납작한 가슴을 드러내며 상의를 벗는 모습이나, 서부의 개척자, 정복자처럼 낡은 진에 장총을 어깨에 들쳐 매고 있는 과장된 수염의 드랙킹사진 (Duke,King of the Hill, 1999), 손으로 그린 것을 뻔뻔하게 드러낸 구렛나루를 달고 있는 엘비스 분장의 커플 사진(Elvis & Elvis Herselvis 1997)을 보고 있을 때에는 ‘아, 드랙 한 번 끝장나게 잘했구나. 그렇지만 여자겠지?’라며 키득대기도 한다. 그레이스는 신체 뿐 아니라 태도와 역할, 미국의 역사와 미디어 속에서 젠더 스테레오 타입을 ‘걸친’ 존재들을 과장되게 재모방하여 젠더를 파괴하고자 했다. 1990년 중반의 커뮤니티 내부의 드랙킹 문화를 담은 ‘더 드래킹 The Drag King(1999)'이나 '멋진 돌연변이들? Sublime Mutation(2000)’ 등의 사진집에는 젠더를 파괴한 다양한 퀴어들의 모습들이 날 것으로 드러나 있다.

 

 

 


 

 

 

Volcano!, 새로운 땅을 돋우는


그러나 그레이스의 이런 과격한 젠더 파괴는 곧 많은 도전에 직면한다. 에쎄머(SMer)가 주요 소재인 사진 작업들은 레즈비언/게이 커뮤니티 내부의 SM 터부 때문에 영국에서 거의 팔리지 않았으며, 작품 속 레즈비언들의 남성성 갈망과 수행을 연결하여 해석한 직설적인 작업들은 페미니스트들과 레즈비언들에게 비판받았다.(Penis Envy 1991) 또 작품 속에서 ‘여성적’인 것 혹은 ‘여성’ 신체가 왜곡되거나 ‘여성성’이 비하되고 있다고 본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렇지만 가장 큰 도전은, 사람들에게 ‘정체성’에 대해 자문하도록 하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라도 ‘그 누구는 아니다’라는 결론에 다다른다는 점이다. ‘정체성’에 대한 세세한 경계와 구분들은, 따분하고 기준도 모호한 허상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과거와 경험, 현재의 차별과 억압의 경험과 그 위치를 명명해 주는 ‘딛고 설 땅’이기도 하다. 또 ‘젠더’가 깊숙이 살을 섞고 있는 삶의 영역들은, 과거와 역사 감정들이 뒤섞여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볼캐노가 제기하는 퀴어의 급진적 정치학이, ‘느리게 흐르는 라바(용암)처럼 속도는 느리지만, 젠더로 일구어진 일상을 뒤엎을 걸 알기에, 이성애자 뿐 아니라 레즈비언과 게이 트랜스젠더에게도,  델라 그레이스 볼캐노는 그 모든 걸 뒤엎어 버릴 화산인 셈이다.


‘너 진짜 레즈비언이니?’,‘너 진짜 트랜스젠더냐?’

그레이스의 급진적 퀴어 정치학의 화산, 뒤흔들리고 재편될 땅 위에서, 위와 같은 질문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것만은 틀림없다. 젠더가 폐지될 그 날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그 막대한 두려움과 설레임 앞에 새로운 친밀감의 땅울 돋우는 볼캐노의 작업들을 기대해 본다.


작품

1. TheArtistAs A Young Herm 2004, 작품 속 인물은 작가 자신

2. Elvis&Elvis Herselvis 1997

3. Duke,King of theHill 1997

4. Sublime Mutation cover

5. Lovebites cover

6. Pennis Envy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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