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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멍~타임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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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라는 것을 깊이 생각한다.

수많은 죽음을 제대로 직면하고 애도하지 못한 채

커다란 대의 뒤에, 나 자신에 대한 분노 뒤에, 열등감 뒤에 숨어서

마음과  몸이 너덜너덜하게 닳아 버리는 그 질량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나는 괴롭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라는 식의 안도, 자위.

 

내 몸이 닿아 있는 그녀와 그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었구나.

나의 마음도 어떻게 헤지고 바래지는지 몰랐구나.

 

그 슬픔 속 위안에

그 고통 속 아름다움에

캡쳐된 장면들이 가슴 속에 배접한 듯 남아 있다.

 

 

 

 

아네스의 노래 

이창동 (양미자)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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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미술+그리고 살아남기=여이연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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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라는 화이트 큐브

평소 잘 가지 않았던 장소를, 잘 가지 못했던 시간에 가서인지

뻑뻑하고 녹이 슨 관계들인 사람들을 만나고,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3~6개월짜리 비정규직에서, 1년 혹은 그 이상의 비정규직 계약으로 신분이 다소 상승한 탓인지(?)

머리 모양과 옷이 바뀌어 있기까지 하니, 더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아토팩토리 사업이나, 각종 레지던스들이

작업을 하고 있거나, 기획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서 다행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제도로의 수렴이 공동체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낼 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회/문화지리학적으로 흥미로운 지역들에 아트팩토리를 만들면

그것의 정치적 풍경과 중층적 맥락들을 살려서 가도 좋으련만,

그 공간의 사회/문화 지형들을 밀거나 들어내서

번쩍번쩍하게 지은 건물 속으로 우겨 넣는 것은 뭐랄까..

사회지리학적인 재개발같은 것이 아닐까.

 

일상의 사회적이고 정치적 맥락이 형성된 공간을, 새롭게 만든 '예술적 공간'이라는 표백되고 안전한 공간 속으로 바꾸어 넣는 것 말이다. 서울시가 거대한 화이트 큐브가 되는 것 같다.

 

이제 일상의 공간 자체가 하얀 갤러리에 전시되는 것일까봐 매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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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토론_국민대다수 트랜스 곤란이라니..

MBC 100분 토론 노회찬이

황석영의 '변절'? 에 대해 비유하여 말하길

본인이 성전환자 성별정정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긴 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성전환 하는 것은 곤란하다라는 비유를 써서 표현했다.

그 순간 토론장에는 폭소가 터졌다.

 

 

그러니까 정치적 변절을

트랜스젠더의 성별을 (법률적으로) 바꾸는 것과 비유한 셈인데

-만약 법률적으로 바꾸는 걸 비유한 것도 아니고, 트랜스라는 정체성을 '스위치' 라는 것으로만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건 말하기가 매우 피곤해지는 일이다...

어떻게 그게 비유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나.

 

게다가 그 비유가 주는 효과가 황석영을 비웃는 데 유효할 뿐 아니라

대중들이 그 비웃음의 코드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하여 선택된 표현이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이라 더욱 황당할 뿐이다.

 

국민 대다수가 성별정정을 한다면(성별을 바꾼다면) 곤란하다고?

성별정정은, 노회찬의 말의 맥락에서 이야기된, 일종의 정치적 변절과 전혀 다르다.

어떻게 트랜스젠더의 인권문제인 성별정정이

 (또 내 생각으로는, 개인인이 젠더를 자유롭게 위치하고 상상하 수 있는 급진적 섹슈얼리티 정치일 수도 있는데) 황석영의 정치적 '스위치-트랜스?'로 유비될 수 있는지! 이걸 희화화했기 때문에 더욱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피곤한 마음에...그냥 말실수인가 보다 생각도 했지만,

 

그냥 말실수로 넘어가기에는

그 자리(진보 대 보수)가 가지는 대표성이 과도하다.

(내가 대표성을 과도하게 생각하고 있는게 문제다 아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유통되고 영향력이 있으니까 문제라는 거다. )

 

그러니까, 노회찬이 드러내는 생각이란 게 진보신당의 대표자 자격으로 발언한 것이고

진보의 대표 논객으로 발언한 것이고,

그것이 '진보'라는 '우리'라는 것 안에 '묶여진' 성소수자의 이야기라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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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방,변영주를 만나 당황에 빠졌네-.-;;

 

www.mapofm.net

 

www.femidio.net

 

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아.. 정말 기기 막히게 웃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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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어디로 빠르게 나아가는냐, 급진 다시 생각하기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감정을 느끼거나 경계짓거나

무엇인가가 신의 계시라고 느껴지고 운명의 영역에서 삶을 해석하거나..

 

 

소위 내가 볼 때에 가장 해방적?인 삶의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운명과 영성의 공간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정치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도의 윤리 밖에서 언어도 없는 사람들은 일종의 신비주의와 운명 속에 거처하게 마련.

 

이성, 합리, 효율, 자유, 권리, 인권...

 

이런 것 밖에서 사는 존재는

인간 보다 못한 무엇이거나 질병과 정신병의 상태일 뿐만 아니라-정신병자나 질병의 은유에서 '구원' 받아 제도 안에 안착하는 나름의 길도 발견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겠지?

-보통은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전근대 잔여물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아. 오만하였어라.

 

 

왜 이렇게들 비합리적이며 상식이 없느냐라고 호통을 치다니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잔인하고 일방적인 믿음의 체계-이런 면에서 자본주의는 종교임이 틀림없다- 때문이다.

 

 

비자본이 낙관적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문제는 이성적이지 않다거나 합리적이지 않다거나 하는 것 속에 있지는 않다,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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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파업]언론총파업지지

언론총파업을 지지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MB 악법을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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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정국인지 코메디인지

pd 수첩 보다가..

 

아...웃다가 턱 빠지는 줄.

 

 

 

이렇게 진지하지조차 않게

 

근거도 없고

 

막무가내로

 

기가 차도록

 

 

우스운 공안정국은 또 오랜 만일세

 

 

 

한국 사회 내 '좌익' 세력을 척결하겠다고?

 

내가 볼 땐 그 '좌익' 기준부터가  글러 먹었다.

 

좌익하고 자유민주주의 하고 구분을 못해. ㅋㅋ

 

 

'자유민주주의' 의 표현, 사상의 자유나, 시장 경쟁의 논리 마저 무시하면서

 

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고?

 

아놔.. 니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적들이여.....!

 

 

니들 배후에 대체 누구냐!

 

히틀러 같은 독재체계의  나쁜 모습들을 고대로  빼다 박은 이명박 정권과 검찰아..

 

네들 배후에 대체 누구냐

 

진짜 알고 싶다.

 

대본이. 너무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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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깃발 아래에도, 모든 깃발 아래에도

어제  집회에 갔다.  

익숙한 얼굴을 만나 같이 걸으며  담배를 피고 수다를 떨다가, 그들과 헤어지고 난 이후엔  

인사동과 광화문에 새롭게 선 보인 컨테이너 설치물을 관람했다.

 

거기에 바른 기름을 만지며 말도 못할 느끼한 상상을 떠올리며  한껏 웃다가, 기어이 컨테이너를 타고 넘어 보겠다는 어떤 사람의 몸부림이 퍼포먼스처럼 느껴져셔 잠시 감상도 했다. 사람들의 '내려와'라는 구호는 단막극이 넘어가는 효과음 같기도 했다.

 

 

뭔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남들이 쓰다 만 하얀 분필로 조계사 앞 도로에 잠시 낙서를 하고 씨네 큐브 앞까지 걸어가서는 잠시 담배를 피기도 했다. 그러다가  번듯한 흥국생명 건물의 가로등에 서서 오줌을 지리는 한 사람의 뒷태를 보면서 통쾌함과 불쾌함을 동시에 느끼며, 그것도 재미있다면서 잠시 즐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장 흥미로왔던 건 내가 어디에선가 만났던 사람들, 한 자리에서 보았던 사람들을 각기 다른 깃발들 아래에서 볼 수 있었던 거다.

 

 

퀴어로써 영화를 만드는 어떤 사람은, 한독협 깃발아래에서 볼 수 있었고

여성주의자이며 대학원에서 공부중인 어떤 사람은 모대학의 깃발 아래에서

청년회 회원이며 한 아이의 어머니인 어떤 친구는 지역의 깃발 아래에 서 있었다.

노동자이며 성소수자인 그녀는 무지개 행동의 깃발아래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고

노동자이며 여성주의자인 지인은 산별노조의 깃발 아래에서 비장한 모습이었다.

 

 

부럽기도 하고 나도 어딘가에 서고도 싶기도 했지만

나의 머리와 다리는 계속 머뭇머뭇거렸다.

 

어디에 속할 만도 한데 그러기엔 머리 속에  많은 모순적인 구호가 들어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집단을 뒤집어 쓰지도 못하니 자신있게 말하기도 쑥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런 간극과 틈들,  많은 차이들과  느슨한 연대의 공간은

 내게  어떤 깃발 아래에도 설 수 있는 자유를 주기도 했다.

 

 

어떤 깃발과 함께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결코 섞일 수 없었고, 법접할 수도 없었던 (없다고 생각했던)

어느 지역의 이성애 가족 모임의 어머니, 아버지, 자녀들 안에서

레즈비언 커플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화물연대 사람들의 정연한 대오에 끼어 들어 애인과 함께 과격한? 민가를 한 소절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항상 레즈비언이거나,

여성이거나, 

아이를 가지고 싶은 비혼이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활동가이거나

지역의 주민이거나

등등

 

그 중 하나로써 내 삶의 모순과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구분과 단절, 분열적인 존재로써의 내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로 내가 흐르고, 모든 위치들을 넘나들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어제 집회는 해방적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물론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서운하다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지만.

 

 

'정치적인 의식'의 내용이란 무얼까.

 일상적 영역에서 변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존재의 모순을 통합하고, 내 안의 분열을 치유하는 데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그런 질문을 떠올리게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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