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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애도라는 것을 깊이 생각한다.
수많은 죽음을 제대로 직면하고 애도하지 못한 채
커다란 대의 뒤에, 나 자신에 대한 분노 뒤에, 열등감 뒤에 숨어서
마음과 몸이 너덜너덜하게 닳아 버리는 그 질량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나는 괴롭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라는 식의 안도, 자위.
내 몸이 닿아 있는 그녀와 그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었구나.
나의 마음도 어떻게 헤지고 바래지는지 몰랐구나.
그 슬픔 속 위안에
그 고통 속 아름다움에
캡쳐된 장면들이 가슴 속에 배접한 듯 남아 있다.
아네스의 노래
이창동 (양미자)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평소 잘 가지 않았던 장소를, 잘 가지 못했던 시간에 가서인지
뻑뻑하고 녹이 슨 관계들인 사람들을 만나고,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3~6개월짜리 비정규직에서, 1년 혹은 그 이상의 비정규직 계약으로 신분이 다소 상승한 탓인지(?)
머리 모양과 옷이 바뀌어 있기까지 하니, 더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아토팩토리 사업이나, 각종 레지던스들이
작업을 하고 있거나, 기획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서 다행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제도로의 수렴이 공동체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낼 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회/문화지리학적으로 흥미로운 지역들에 아트팩토리를 만들면
그것의 정치적 풍경과 중층적 맥락들을 살려서 가도 좋으련만,
그 공간의 사회/문화 지형들을 밀거나 들어내서
번쩍번쩍하게 지은 건물 속으로 우겨 넣는 것은 뭐랄까..
사회지리학적인 재개발같은 것이 아닐까.
일상의 사회적이고 정치적 맥락이 형성된 공간을, 새롭게 만든 '예술적 공간'이라는 표백되고 안전한 공간 속으로 바꾸어 넣는 것 말이다. 서울시가 거대한 화이트 큐브가 되는 것 같다.
이제 일상의 공간 자체가 하얀 갤러리에 전시되는 것일까봐 매우 걱정..된다.
MBC 100분 토론 노회찬이
황석영의 '변절'? 에 대해 비유하여 말하길
본인이 성전환자 성별정정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긴 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성전환 하는 것은 곤란하다라는 비유를 써서 표현했다.
그 순간 토론장에는 폭소가 터졌다.
그러니까 정치적 변절을
트랜스젠더의 성별을 (법률적으로) 바꾸는 것과 비유한 셈인데
-만약 법률적으로 바꾸는 걸 비유한 것도 아니고, 트랜스라는 정체성을 '스위치' 라는 것으로만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건 말하기가 매우 피곤해지는 일이다...
어떻게 그게 비유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나.
게다가 그 비유가 주는 효과가 황석영을 비웃는 데 유효할 뿐 아니라
대중들이 그 비웃음의 코드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하여 선택된 표현이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이라 더욱 황당할 뿐이다.
국민 대다수가 성별정정을 한다면(성별을 바꾼다면) 곤란하다고?
성별정정은, 노회찬의 말의 맥락에서 이야기된, 일종의 정치적 변절과 전혀 다르다.
어떻게 트랜스젠더의 인권문제인 성별정정이
(또 내 생각으로는, 개인인이 젠더를 자유롭게 위치하고 상상하 수 있는 급진적 섹슈얼리티 정치일 수도 있는데) 황석영의 정치적 '스위치-트랜스?'로 유비될 수 있는지! 이걸 희화화했기 때문에 더욱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피곤한 마음에...그냥 말실수인가 보다 생각도 했지만,
그냥 말실수로 넘어가기에는
그 자리(진보 대 보수)가 가지는 대표성이 과도하다.
(내가 대표성을 과도하게 생각하고 있는게 문제다 아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유통되고 영향력이 있으니까 문제라는 거다. )
그러니까, 노회찬이 드러내는 생각이란 게 진보신당의 대표자 자격으로 발언한 것이고
진보의 대표 논객으로 발언한 것이고,
그것이 '진보'라는 '우리'라는 것 안에 '묶여진' 성소수자의 이야기라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메롱.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감정을 느끼거나 경계짓거나
무엇인가가 신의 계시라고 느껴지고 운명의 영역에서 삶을 해석하거나..
소위 내가 볼 때에 가장 해방적?인 삶의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운명과 영성의 공간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정치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도의 윤리 밖에서 언어도 없는 사람들은 일종의 신비주의와 운명 속에 거처하게 마련.
이성, 합리, 효율, 자유, 권리, 인권...
이런 것 밖에서 사는 존재는
인간 보다 못한 무엇이거나 질병과 정신병의 상태일 뿐만 아니라-정신병자나 질병의 은유에서 '구원' 받아 제도 안에 안착하는 나름의 길도 발견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겠지?
-보통은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전근대 잔여물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아. 오만하였어라.
왜 이렇게들 비합리적이며 상식이 없느냐라고 호통을 치다니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잔인하고 일방적인 믿음의 체계-이런 면에서 자본주의는 종교임이 틀림없다- 때문이다.
비자본이 낙관적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문제는 이성적이지 않다거나 합리적이지 않다거나 하는 것 속에 있지는 않다, 적어도
언론총파업을 지지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MB 악법을 반대합니다.
pd 수첩 보다가..
아...웃다가 턱 빠지는 줄.
이렇게 진지하지조차 않게
근거도 없고
막무가내로
기가 차도록
우스운 공안정국은 또 오랜 만일세
한국 사회 내 '좌익' 세력을 척결하겠다고?
내가 볼 땐 그 '좌익' 기준부터가 글러 먹었다.
좌익하고 자유민주주의 하고 구분을 못해. ㅋㅋ
'자유민주주의' 의 표현, 사상의 자유나, 시장 경쟁의 논리 마저 무시하면서
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고?
아놔.. 니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적들이여.....!
니들 배후에 대체 누구냐!
히틀러 같은 독재체계의 나쁜 모습들을 고대로 빼다 박은 이명박 정권과 검찰아..
네들 배후에 대체 누구냐
진짜 알고 싶다.
대본이. 너무 웃긴다.
어제 집회에 갔다.
익숙한 얼굴을 만나 같이 걸으며 담배를 피고 수다를 떨다가, 그들과 헤어지고 난 이후엔
인사동과 광화문에 새롭게 선 보인 컨테이너 설치물을 관람했다.
거기에 바른 기름을 만지며 말도 못할 느끼한 상상을 떠올리며 한껏 웃다가, 기어이 컨테이너를 타고 넘어 보겠다는 어떤 사람의 몸부림이 퍼포먼스처럼 느껴져셔 잠시 감상도 했다. 사람들의 '내려와'라는 구호는 단막극이 넘어가는 효과음 같기도 했다.
뭔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남들이 쓰다 만 하얀 분필로 조계사 앞 도로에 잠시 낙서를 하고 씨네 큐브 앞까지 걸어가서는 잠시 담배를 피기도 했다. 그러다가 번듯한 흥국생명 건물의 가로등에 서서 오줌을 지리는 한 사람의 뒷태를 보면서 통쾌함과 불쾌함을 동시에 느끼며, 그것도 재미있다면서 잠시 즐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장 흥미로왔던 건 내가 어디에선가 만났던 사람들, 한 자리에서 보았던 사람들을 각기 다른 깃발들 아래에서 볼 수 있었던 거다.
퀴어로써 영화를 만드는 어떤 사람은, 한독협 깃발아래에서 볼 수 있었고
여성주의자이며 대학원에서 공부중인 어떤 사람은 모대학의 깃발 아래에서
청년회 회원이며 한 아이의 어머니인 어떤 친구는 지역의 깃발 아래에 서 있었다.
노동자이며 성소수자인 그녀는 무지개 행동의 깃발아래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고
노동자이며 여성주의자인 지인은 산별노조의 깃발 아래에서 비장한 모습이었다.
부럽기도 하고 나도 어딘가에 서고도 싶기도 했지만
나의 머리와 다리는 계속 머뭇머뭇거렸다.
어디에 속할 만도 한데 그러기엔 머리 속에 많은 모순적인 구호가 들어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집단을 뒤집어 쓰지도 못하니 자신있게 말하기도 쑥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런 간극과 틈들, 많은 차이들과 느슨한 연대의 공간은
내게 어떤 깃발 아래에도 설 수 있는 자유를 주기도 했다.
어떤 깃발과 함께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결코 섞일 수 없었고, 법접할 수도 없었던 (없다고 생각했던)
어느 지역의 이성애 가족 모임의 어머니, 아버지, 자녀들 안에서
레즈비언 커플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화물연대 사람들의 정연한 대오에 끼어 들어 애인과 함께 과격한? 민가를 한 소절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항상 레즈비언이거나,
여성이거나,
아이를 가지고 싶은 비혼이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활동가이거나
지역의 주민이거나
등등
그 중 하나로써 내 삶의 모순과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구분과 단절, 분열적인 존재로써의 내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로 내가 흐르고, 모든 위치들을 넘나들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어제 집회는 해방적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물론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서운하다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지만.
'정치적인 의식'의 내용이란 무얼까.
일상적 영역에서 변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존재의 모순을 통합하고, 내 안의 분열을 치유하는 데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그런 질문을 떠올리게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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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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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듣고 보니 그러네요 ㅠ_ㅠ;부가 정보
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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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진짜 피곤합니다부가 정보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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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릴 또 해댔군요.부가 정보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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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칼날은 서슬퍼렇다. 저마다 완벽한 문제제기형 논객이고, 실수없는 이상적인 인간이신가보다. 그래서 나는 진보가 싫다. 같은 편의 비유적인 표현조차 너그러이 안고 가지 못하는 살살벌한 자들에게 표를 찍는 사람들이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런 사람들이 힘을 얻게 되면 우리 모두가 끝없이 완벽함을 요구받게 될 테니까 얼마나 시달릴 것인가. 우리는 일상 속에서 남의 오점을 적당히 무시해주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아무리 옳은 말 해도 돌아오는 것은 손가락질 뿐이니까. 그 잘나신 진보님들 모이시는 사이트들마다 익명의 욕설로 가득찬 끝없는 상호 비방과 비난을 보면서 일찌감치 그들에 대한 신뢰를 포기했다. 모든 것은 적절한 균형이 중요하다. 사회에는 논리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정서적 공명과 옳든 그르든 사회구성원들이 오랫동안 형성해 온 합의 내지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국민이 성전환을 할 수도 있고,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 세상이 오길 나도 바라지만, 그것을 곤란하다고 표현했다고 해서(전통적인 상식에 기대어 있다고 해서)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뭐 하나 있으면 비판부터 해댈려는 지식인의 폭력들... 그들의 논리에 세상을 맞추려는 것이 엄청난 폭력이 됨을 우리는 지난 시대에 이미 경험했다. 논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논쟁거리를 던져줄 수도 있다. 몸을 정신에 종속된 존재로만 파악하는 카르티지언들의 충실한 후예들이 의학을 동원하여 몸을 물질로만 환원해 버리고 생명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과 성전환수술은 과연 무관할 것 같은가? 아니, 왜 90년대 초반부터 성소수자 문제가 이렇게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푸코가 말하는 성의 역사에 있어서의 요점이 무엇인지는 알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성소수자 인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것에 골몰하게 하는 논리들이 더 큰 중요한 문제들을 가려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야 한다. 노회찬이 얘기하는 것은 성전환의 문제이고, 성소수자의 인권은 성전환의 문제와는 반드시 일치되지 않는다. 성전환을 하든 안하든 소수자들을 품에 안고 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노회찬의 발언은 몸을 물질로 환원하는 근대생의학의 맹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마땅하다. 진보정당에서 성소수자 인권문제에 민감하지만, 어설픈 비판의 칼날을 함부로 들이대는 사람들 때문에 가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진중권이 "영어는 쓸 사람만 배우면 된다"는 말에는 왜 환호했는가? 진중권 말에는 영어를 쓸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말 아니던가. 신분제 사회에서 미래로 날아왔는가 보다. 나는 이 말이야말로 대단한 실언이라고 생각한다. 비판이란 해야 할 데서 해야 한다. 마치 조선시대 3류 유생들이 허구헌날 마을에서 노비들 괴롭히면서 논쟁이나 일삼던 것이나 학자도 아닌 사람들이 어설프게 배워서 허구헌날 지식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화려한 논쟁이 있을수록 지식의 향연이 되고 그로써 우리가 연대해야 할 민중들은 진입의 장벽을 느끼고 스스로의 무식에 오히려 분노하며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진보의 논객이라면 이제 슬슬 그런 말꼬리 붙잡기식 비판 보다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의제들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진중권이 미주알고주알 온갖 것에 참견이나 하고 다니는 말싸움꾼이 되어 버린 것은 결국 자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진정 지식인이라면 새로운 의제를 던져줘야 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이 있다. 진보신당의 정책입안자들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노화와 노년의 삶에 대해 어떤 이론과 어떤 논쟁, 어떤 정책을 내놓고 있는가? 노인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파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기존의 사회적 분위기에 근거해 노인 문제에 아둔하다면 역시 다른 논객들의 칼날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몸이 아파 집밖에 못나가는 노인들에게 삶의 희망과 존엄을 주려면 그저 부유세 신설해서 사회복지예산 확충하면 될 것 같은가? 그런 생각이야말로 경제만능의 우파적 발상이다. 노년의 삶에 대한 걱정을 안 하는 자, 우파는 아니지만 역시 진보도 아니다.다가올 미래의 문제를 위해 고민하고 대비하려는 노력들... 우파냐 좌파냐를 떠나서 지혜를 가지고 남을 포용하며 함께 가려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물론 지금은 내 말도 역시 비판을 하겠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지극히 근대적인, 타도의 대상인 발상이다.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는 포용력, 그것은 결국 경륜과 인격에서 나오는 법, 좀더 너그러워지기 바란다. 비판은 누구나 한다. 비판 잘 한다고 능력 뛰어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고 스스로 잘못을 깨닫도록 유도하는 사람, 남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실력을 가진 진보세력이 되길 바란다. 겸손함, 포용력, 그런 것이 없으면 지식인도 아니고 제대로 된 좌파도 아니며, 그저 미래의 황석영일 뿐이다. 원래 빈 깡통이 요란한 법. 진정한 고수는 무딘 칼을 쓴다. 김용의 신조협려도 안 읽었나? 서슬퍼런 칼을 쓰는 자는 하수이고, 겸손은 강자의 미덕임을 명심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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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 토론의 몇 분쯤에 그 발언이 나왔는지 대충 적어주기라도 하시면 도움이 될 텐데요 다 보려면 속이 안 좋아져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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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52분 시민논객이 노회찬에게 질문1시간 55분 노회찬이 생뚱한 말로 장내 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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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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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좀 많이 경솔하게 일반 가부장제와 남녀 이분할 및 이성애지배 사회의 상식을 자기 정치에 '자유롭게' 쓰고 있나보네요...? 매력 없어지는군요.....부가 정보
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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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긴 댓글.. 읽을만하네요. 근디 좀 길당~ ㅋㅋ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