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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깃발 아래에도, 모든 깃발 아래에도

어제  집회에 갔다.  

익숙한 얼굴을 만나 같이 걸으며  담배를 피고 수다를 떨다가, 그들과 헤어지고 난 이후엔  

인사동과 광화문에 새롭게 선 보인 컨테이너 설치물을 관람했다.

 

거기에 바른 기름을 만지며 말도 못할 느끼한 상상을 떠올리며  한껏 웃다가, 기어이 컨테이너를 타고 넘어 보겠다는 어떤 사람의 몸부림이 퍼포먼스처럼 느껴져셔 잠시 감상도 했다. 사람들의 '내려와'라는 구호는 단막극이 넘어가는 효과음 같기도 했다.

 

 

뭔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남들이 쓰다 만 하얀 분필로 조계사 앞 도로에 잠시 낙서를 하고 씨네 큐브 앞까지 걸어가서는 잠시 담배를 피기도 했다. 그러다가  번듯한 흥국생명 건물의 가로등에 서서 오줌을 지리는 한 사람의 뒷태를 보면서 통쾌함과 불쾌함을 동시에 느끼며, 그것도 재미있다면서 잠시 즐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장 흥미로왔던 건 내가 어디에선가 만났던 사람들, 한 자리에서 보았던 사람들을 각기 다른 깃발들 아래에서 볼 수 있었던 거다.

 

 

퀴어로써 영화를 만드는 어떤 사람은, 한독협 깃발아래에서 볼 수 있었고

여성주의자이며 대학원에서 공부중인 어떤 사람은 모대학의 깃발 아래에서

청년회 회원이며 한 아이의 어머니인 어떤 친구는 지역의 깃발 아래에 서 있었다.

노동자이며 성소수자인 그녀는 무지개 행동의 깃발아래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고

노동자이며 여성주의자인 지인은 산별노조의 깃발 아래에서 비장한 모습이었다.

 

 

부럽기도 하고 나도 어딘가에 서고도 싶기도 했지만

나의 머리와 다리는 계속 머뭇머뭇거렸다.

 

어디에 속할 만도 한데 그러기엔 머리 속에  많은 모순적인 구호가 들어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집단을 뒤집어 쓰지도 못하니 자신있게 말하기도 쑥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런 간극과 틈들,  많은 차이들과  느슨한 연대의 공간은

 내게  어떤 깃발 아래에도 설 수 있는 자유를 주기도 했다.

 

 

어떤 깃발과 함께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결코 섞일 수 없었고, 법접할 수도 없었던 (없다고 생각했던)

어느 지역의 이성애 가족 모임의 어머니, 아버지, 자녀들 안에서

레즈비언 커플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화물연대 사람들의 정연한 대오에 끼어 들어 애인과 함께 과격한? 민가를 한 소절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항상 레즈비언이거나,

여성이거나, 

아이를 가지고 싶은 비혼이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활동가이거나

지역의 주민이거나

등등

 

그 중 하나로써 내 삶의 모순과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구분과 단절, 분열적인 존재로써의 내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로 내가 흐르고, 모든 위치들을 넘나들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어제 집회는 해방적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물론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서운하다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지만.

 

 

'정치적인 의식'의 내용이란 무얼까.

 일상적 영역에서 변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존재의 모순을 통합하고, 내 안의 분열을 치유하는 데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그런 질문을 떠올리게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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