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11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1/23
    연가집회 잘 다녀왔습니다^*^
    야단법석
  2. 2006/11/20
    선거와 투쟁
    야단법석

연가집회 잘 다녀왔습니다^*^

00선생님들께,

 

선생님들의 염려 덕택에 000, 000 연가집회 잘 다녀왔습니다^*^

 

그 어떤 교원정책과 교육정책도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만남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경쟁과 효율성도 교육공동체의 인격적인 관계를 훼손해선 안됩니다.

 

교원평가에 대하여 조,중,동을 비롯한 이땅의 메이저언론이 총동원되어 연일 '전교조연가투쟁' 비난과 징계방침을 보도했지요. 틈만 나면 대한민국의 공익이 우선이라는 그들 언론사들이 언제 선진국의 교원평가 사례나 교육공공성에 입각한 분석적인 기획기사 한 번 제대로 실어준적 있었는지요.

 

국민이 접할 수 있는 내용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다수의 교사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은 당사자로서 신분의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기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교원평가를 반대해왔지요.

 

하지만 교육가족임을 늘상 입버릇처럼 달고다니면서도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수업 외 잡무를 경감하고, 수업시수를 법제화해서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세워 달라는 학교현장의 필요불가결한 요구 앞에선 모르쇠로 일관하셨고, 한 술 더 떠 교원평가 공청회를 열기도 전에 교원평가를 강행을 공표하셨던 교육부장관님. 것도 모자라 교원평가 반대 연가원을 제출한 교사들을 법에도 어긋나는(법원판결에서조차 교육공무원 연가에 대한 확정판결이 없는 상태임) 징계방침(지금까지 연가참가로 징계를 내렸지만 전원 무혐의 구제됨, 2명의 교사만 판결 계류 중) 운운하시더니, 급기야 관리자 징계까지 들먹이시더군요. 친절하게도 아까운 경비를 들여 서한문까지 보내주시고, 낭독하게 하시고 말입니다.

 

그래서 00에서도 연가를 희망하는 두 교사와 관리자 간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잘 다녀오라는 격려도 없이 본원의 두 교사, 000와 000는 연가집회에 다녀오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씁쓸했냐구요? ‘전혀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40만 교원의 생존권과 직결된 교원평가를 불과 7개월의 시범실시와 평가조차 채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하겠다는 저 오만한 자신감'과 교단을 분열시키고 이간질하는 '교육당국의 치졸한 행태'가 괘씸할 뿐입니다. 한편으로 저 자신 교사로서의 신념에 대하여 더욱 분명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신 것에 대하여는 그저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 어떤 교원정책과 교육정책도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만남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경쟁과 효율성도 교육공동체의 인격적인 관계를 훼손해선 안됩니다.
 
00의 모든 선생님이 저와 같을 수도 없고, 같은 생각이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교육을 생각할 때, 우리의 경제수준에서 ‘지금의 교육여건과 교사의 근무여건은 시급히 개선되어야한다’는 것에 이의가 있는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단지 서 있는 위치와, 생각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겠지요.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따로또같이 교육동지로서 교단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겠지요.

 

보결수업 배정으로, '무단결근'으로나마 연가집회에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해주신 교장, 교감선생님께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친 점 죄송하단 말씀과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특히, 보결수업으로 저희들의 빈자리를 교육적으로 메워주신 5학년부장님과 선생님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혹여나 저희들의 연가집회 참석으로 여러 선생님들께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친 점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송구하단 말씀드립니다.

 

2006년 11월 23일 나무의 날에 연가집회에 다녀온 000, 000 드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선거와 투쟁

 

바야흐로 투쟁의 계절이다.

 

공교롭게도? 선거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겐 투쟁도 선거도 모두 버겁다.

 

의지로 낙관해보기로 하지만 버거운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늘 이모양이라 그려러니 하는 마음도 한켠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노무현정권을 포함한 자본과 지배권력의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는 동지들의 옹골찬 결의만큼,

 

한미FTA, 평택미군기지확장, 비정규악법, 노사관계로드맵으로 몰아치는 폭풍전야의 엄혹한 정세만큼,

 

조직화되는 규모나, 결합력의 정도는 실상 많은 부분 충분치 못하다.

 

1122 민중총궐기와 연가투쟁이 낼모레인 코앞으로 다가와있지만, 현장은 고요하고, 실로 차분하다. 물론 그 역동성을 안으로 감춘채 말이다.

 

한 술 더떠, 선거를 기화로 아예 노조간부활동가라는 작자들조차 공공연하게, 투쟁보단 선거에 올인한다(아무리 그것이 그네들의 운동기조요, 운동의 내용이라지만.) 물론 겉으론 투쟁을 외치고, 투쟁을 선전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오직 선거승리를 통해, 정치정세보단 쁘띠부르조아적 개량의 정서(그들이 말하는 소위 '대중의 바다'로) 투항하는 것.

그것이 오늘 총궐기를 앞두고 민중진영이 보다 힘차게 투쟁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 멀리, 더 깊이 보자면 만연한 신자유주의 15년이 가져다준, 설상가상으로 97년 IMF후폭풍이 부려놓은 만연한 근로인민대중의 열패감과 소외감의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 뿌리깊다. 물론 그로인한 불만의 강도도 비등해지고 있긴 하지만, 추측컨데 봉기와 혁명의 도화선에 붙일 분노의 불씨는 미약하기만 하다.

 

이럴 때 일수록, 멀리있는 고도의 추상논리에 빠지기보단 분회에서 연가투쟁의 의미를 선전하는 일, 교원평가 저지투쟁 등을 선언으로 묶어세우는 일 하나하나, 챙겨야겠다. 비록 버겁고,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가 그러더군. 운동을 왜 하냐고?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까워서 한다라고. 그렇다. 즐거워서 하건, 본전생각 때문에 하던 내 발밑을 챙길 일이다. 그것이 교원평가 저지선을 확보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쓰디쓴 담배 연기를 기꺼이 빨아들인다.

 

나로부터 시작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