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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투쟁

 

바야흐로 투쟁의 계절이다.

 

공교롭게도? 선거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겐 투쟁도 선거도 모두 버겁다.

 

의지로 낙관해보기로 하지만 버거운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늘 이모양이라 그려러니 하는 마음도 한켠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노무현정권을 포함한 자본과 지배권력의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는 동지들의 옹골찬 결의만큼,

 

한미FTA, 평택미군기지확장, 비정규악법, 노사관계로드맵으로 몰아치는 폭풍전야의 엄혹한 정세만큼,

 

조직화되는 규모나, 결합력의 정도는 실상 많은 부분 충분치 못하다.

 

1122 민중총궐기와 연가투쟁이 낼모레인 코앞으로 다가와있지만, 현장은 고요하고, 실로 차분하다. 물론 그 역동성을 안으로 감춘채 말이다.

 

한 술 더떠, 선거를 기화로 아예 노조간부활동가라는 작자들조차 공공연하게, 투쟁보단 선거에 올인한다(아무리 그것이 그네들의 운동기조요, 운동의 내용이라지만.) 물론 겉으론 투쟁을 외치고, 투쟁을 선전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오직 선거승리를 통해, 정치정세보단 쁘띠부르조아적 개량의 정서(그들이 말하는 소위 '대중의 바다'로) 투항하는 것.

그것이 오늘 총궐기를 앞두고 민중진영이 보다 힘차게 투쟁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 멀리, 더 깊이 보자면 만연한 신자유주의 15년이 가져다준, 설상가상으로 97년 IMF후폭풍이 부려놓은 만연한 근로인민대중의 열패감과 소외감의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 뿌리깊다. 물론 그로인한 불만의 강도도 비등해지고 있긴 하지만, 추측컨데 봉기와 혁명의 도화선에 붙일 분노의 불씨는 미약하기만 하다.

 

이럴 때 일수록, 멀리있는 고도의 추상논리에 빠지기보단 분회에서 연가투쟁의 의미를 선전하는 일, 교원평가 저지투쟁 등을 선언으로 묶어세우는 일 하나하나, 챙겨야겠다. 비록 버겁고,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가 그러더군. 운동을 왜 하냐고?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까워서 한다라고. 그렇다. 즐거워서 하건, 본전생각 때문에 하던 내 발밑을 챙길 일이다. 그것이 교원평가 저지선을 확보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쓰디쓴 담배 연기를 기꺼이 빨아들인다.

 

나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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