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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내용과 형식을 가르지 않는다...김정환론

시는 내용과 형식을 가르지 않는다

 
                                                                            김정환(시인)

  먼저 여러분이 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시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은 채 시인 지망생으로서 습작을 해 나가면서 무엇이 가장 힘든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7년 동안 등단을 목표로 글을 써 나가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학교'를 맡아 꾸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인 지망생들로부터 문의 전화를 받는 일이 많습니다. 전화를 하시는 분 중에는 자신의 습작시를 읽어주며 "내가 뭘 썼는데 이게 시인지 아닌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말하는 순진무구하고 궁금증이 많은 분에서부터, "이게 시가 아니라면 우리 나라 시단은 전부 자폭해야 된다"는 과격한 테러리스트까지 다양합니다. 그만큼 시의 비밀은 숱한 시들이 창작되었고, 또 정의가 시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속시원하게 풀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따라서 '시는 무엇인가?' 하는 폭력적인 질문보다는, '도대체 왜 다른 글은 시가 아니라고 하면서 이건 시라고 하는가' 라는 생각의 언저리를 왔다갔다하면서 정말로 궁금했던 것이 있으시면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청중 : 저는 그 동안 시의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에 여러 군데를 쫓아다니곤 했습니다. 어쩔 때는 제 자신한테 화가 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앞에서 내가 쓴 시에 대해 평론가들이 얘기하듯이 멋진 수사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의 가치관이나 사상을 매개로 하여, 내 시는 이렇게 해서 형성이 되었고 이렇게 썼다고 하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내 시가 난도질당할 때마다 항상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를 숙이곤 했습니다. 나는 가슴 뜨겁게 시 앞에 앉고, 내면에 있는 것들을 충분히 운율을 살려서 글로 옮겼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사람들 앞에 작품을 내보일 때에는 항상 작아지고 비참해짐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삼류라고까지 매도해서 제 시작(詩作) 의욕을 꺾음은 물론 인간적인 비애까지 맛보게 하고 있습니다.

 

김정환 : 자신으로서는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남들에게 난도질을 당하다 보면, 본인의 가슴이 뜨거워져 있는데다 남은 여지없이 난도질을 해대니까 덩달아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겁니다. 동료들로부터 분석적 읽기를 통한 비판을 들으면서,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무슨 소리인지 수긍이 가지 않는다'라고 생각되는 대목은 없었습니까?

 

청중 : "넋두리다. 왜 이 넋두리에서 너는 헤어나지 못하느냐"고 비판이 다반사지요. 저는 때에 따라서는 시단에서 자연 친화적인 시들이 주목을 받는 걸 보면 그 쪽으로 달려가고, 또 다른 경향의 시들이 쏟아지면 친구 따라 가듯이 덩달아 '나도 이런 풍으로 써보면 어떨까' 하고 쏠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런 풍으로도 써보지만 결국 내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들고 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황지우의 시들처럼 제 습작의 분위기가 황폐한 면이 강하다 보니까, "너무 추상적이다"는 비판 앞에서 제 스스로 '아, 이것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시다'라고 자신감을 가졌다가도, 사람들 앞에서 난도질을 당할 때면 '아, 나는 과연 안 돼' 하면서 주저앉곤 합니다.


"왜 이 시가 나에게 와 닿는 것일까?"

김정환 : 제가 듣기에는 "황지우 시처럼 황폐하고…"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지우 시를 가리켜 황폐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시 소재나 제목 따위를 그것이 담고 있는 매혹만으로 보는 것이지요. 어떤 글이 황폐할 수 있고 기름질 수 있고, 환경을 노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개인의 사랑을 얘기할 수도 있고 아니면 공동체적인 사랑을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입니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시는 분량이 짧기 때문에 더욱 분간이 안 되는 어떤 경지를 강조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황지우 시를 읽었을 때 좋다고 하면, 내용인지 형식인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시를 대했을 때, 시의 내용이 내가 원하는 것이어서 좋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글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끼리의 만남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거꾸로 어떤 시의 내용 자체는 내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내가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일지도 모르는데, '왜 이 시가 나한테 와 닿는 것일까? 그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황폐한 시를 좋아하지는 않지요.
어떤 시를 볼 때는 기본적으로 감동이라는 것과 충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를 읽고서 감동을 받았을 때, 그것을 정말로 좋은 시를 쓰는 밑거름으로 쓰려면, 이 감동이라는 것이 정말로 나한테 제대로 된 것인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감동이라는 것과 만만한 것이라는 것이 구분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나도 대충 쓰는데 이 친구도 대충 쓰네. 나는 아직 나가지도 않았지만 이 친구는 벌써 유명해졌네. 하지만 만만하고 얘 수준도도 나랑 비슷하네.'
이러한 생각들을 우리가 감동으로 생각하고 착각한다면, 이 사람은 미망(未忘)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걸 감동이라고 할 수가 없고 '나랑 비슷하기는 한데, 이건 나로부터 출발된 것이지만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단 한 줄이 보여주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감동(感動)'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진짜 감동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7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80년대, 90년대 들어 문학이 대중화되면서 가장 손해본 말이 감동이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베스트셀러를 보고 감동 받았다고 하는 걸 보면, 제가 느끼기에는 '만만하다, 내가 바쁘니까 그렇지, 나도 바쁘지 않으면 이 정도는 쓰겠다' 즉 자기 수준과 비슷하다는 말을 감동이라는 말로 치환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일들이 체질화되면 정말로 좋은 시인이나 좋은 소설가가 되는 길 중의 하나가 막힙니다. 즉 좋은 글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좋은 글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끝까지 가지고 있다면 좋은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정쩡한 감동이라는 말로 자기 비슷한 것, 자기와 비슷한 소재를 발견한 것 정도를 가지고 감동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가령 학창 시절에 데모를 해서 징역을 산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어떤 시를 읽고서 '아, 이 사람은 데모하고 징역을 살아서 이렇게 쓰네.'라고 생각하면서 동질의 경험을 단순히 감동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중요한 배움의 길이 막혀 버립니다.
충격이라는 것은 자기와 다른 것을 전제하는 것이지요. 그냥 충격으로만 친다면 정말 엽기적인 사건처럼 충격적인 것이 없지요. 누구한테 배반당하거나 혹은 신문에서 뭘 보는데 엄마가 자기 아들을 시켜서 아버지를 죽인다거나 하는 것들이 문학으로 엽기적(獵奇的)이다라고 했을 때는 어느 정도 제련을 거쳐서 나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것을 생략한 채 새로운 것이나 충격적인 것만을 찾는다면, 그것은 문학인지 사건인지, 문학사에 들어가야 할 작품인지 사회사에 들어가야 할 작품인지를 모르게 됩니다. 제가 충격과 감동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감동 안에 충격적인 부분이 있고, 충격 안에 감동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즉 감동이 없는 충격이라는 것은 신문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일이고, 충격이 없는 감동이라는 것은 내 주변과 다를 것 없이 그저 밋밋하고 만만한 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자기한테 좋은 시라고 읽혔을 때 '아, 이 사람도 나랑 비슷한 부류의 시를 쓰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건 위험합니다. 또 '아,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한 고통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위험합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내용과 형식이 구분이 안 될 때 큰 감동을 일으킵니다. 어떤 작품을 읽고서 감동을 받았을 때, 형식 때문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혹은 형식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내용 때문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혹은 내용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구분이 안 될 때, 그 작품이야말로 진짜 좋은 작품입니다. 또 그 감동은 신선하고 좋은 배움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어떤 시를 봤을 때,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충격과 감동이 구분되지 않을 때,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충격이 감동이고 감동이 충격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한 구절을 만났다면, 우리는 그 시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을 선생으로 만들 길이 마련되었다는 뜻입니다.


남이 어떻게 썼나보다 자기 안의 치열성 있어야

넋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남이 어떻게 쓰는가라기 보다는 자신의 작품 앞에서 내 자신에게 만족이 되는가, 어떤 시상이 떠올랐을 때 '이거 안 쓰면 정말 미치겠어'라는 생각이 드는가, 습관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뭐가 나와서 이걸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계속 불편하고 신경질이 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기 머리속에서는 정말 근사하게 될 줄 알았지만, 아무리 초일류 시인이라 하더라도 자기 머리 속에 '아, 이건 정말 잘될 것 같애'라고 하는 만큼 쓰여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이 곧 이상과 형상화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이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자기가 쓰고 싶었던 글을 써놓고 보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 쓰는 겁니다. 자신의 작품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든다면 더 이상 쓸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 불편함이 아니면 글을 계속 쓰는 이유가 없습니다. 늘 자기가 쓰고 싶었던 것보다 글로 되어 나타난 것이 못마땅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그 다음 글을 쓰는데, 그 글이 처음에 못 메웠던 간극보다 더 많은 것을 메우고 동시에 더 큰 간극을 만드는 게 글쟁이들이 글을 써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형상화와 이상의 관계라는 것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꿈이 있었는데 그걸 이루지 못했다던가, 평생을 살아도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못했다던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었는데 못했다던가… 이런 이상과 실제로 한 일의 간극(間隙)보다도 훨씬 더 매력적이기 때문에 글을 계속 쓰는 거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큰 문제는 한편의 글을 쓰고 난 다음 제대로 남의 평가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글을 쓸 때에 어떤 불꽃이 내 안에서 터져서 이 글을 시작했는가, 불꽃으로 글은 시작되지만 끝날 때는 생애가 걸리는 겁니다. 짧은 시건 긴 소설이건 한 작품은 탄생과 함께 작품의 생애를 겪게 마련입니다. 나로 하여금 글 앞에 앉혔던 섬광 혹은 불꽃이 제대로 살아 있는가, 그것이 제대로 형상화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것을 몸체 즉 세계로 만드는 과정에 더 늘어난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글을 단련시키는 것 못지 않게 글이 사람을 단련시키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보다 더 자기 자신에게 더 누추해지는 경험을 갖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평론가들은 좋은 작품이 왜 좋은지를 설명해줄 수는 있어도,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학자, 글쟁이와 연결된 존재라서, 글의 비어 있는 데를 찾아주지는 않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창작 교육 능력을 가진 교수사 등의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론가에게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청중 : 작년부터 시 공부를 해가면서 습작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시는 소설과는 달리 짧은 글 속에 많은 내용을 표현하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생기는 문제점으로,  그 함축된 내용을 필자 혼자만 알아야 되는가 아니면 필자 아닌 다른 사람한테도 필자가 쓰고자 하는 내용이 전달이 되도록 써야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떤 시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고, 좀 쉽게 풀이한 것은 대강 어떤 뜻인가 추상을 해볼 수 있는데, 필자 외에 다른 사람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지 혼자 내 마음에 들도록 썼을 때 이것을 시로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꼭 타인에게 잘 전달되도록 써야 될까요?

김정환 ; 정말 꼭 알아듣고 오해가 없게 써야 되는 것은 공문서입니다. 우리가 문학을 한다는 것은 알아듣는 것을 바탕으로 하기는 하지만, 이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이 다르게 해석되는 면 즉, 공적인 것에 대한 저항,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저항,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공적인 것의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저울질하기 마련입니다. 보다가 용감했으면 상대방을 챙길 수 있었는데 비겁해서 평생 한탄한 사람도 있고, 또 아직 사랑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아 시간을 두고 다가가야 하는데 서둘렀다가 파경의 슬픔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첫째로 공적인 논리와는 다른 공적인 논리를 포괄하는 언어가 문학의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각기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고 해서, 아무도 모른다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즉 여러 겹의 언어를 구사하는 겁니다. 여러 사람이 보면 자기의 느낌대로 자기가 살아온 대로 여러 개로 할 수 있는 겁니다. 흔히 고전(古典)이라는 말을 합니다만, 한 시대에 이미 정평이 난 작품이라 할지라도, 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읽어보면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달리 보이기 마련입니다. 또 이 백년 뒤에 읽어보면 그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내용은 같지만 달리 보입니다. 누가 새롭게 달리 쓴 적이 없는데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여러 겹의 언어의 핵심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좋은 문학 작품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을 발견해 내서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글을 써 나가면서 '나는 천재다. 남들은 저것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하느님이 아무리 좋은 능력을 주셨다고 해도 그 사람은 발전을 못합니다.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일반 사람들과 늘 만나면서 그 사람들과 싸우든 친하든 가르치든 배우든 관계 속에 존재해야 합니다. 언어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아이큐가 높은 사람일지라도 인생을 알기 전에는 제대로 문학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어떤 때는 그것 때문에 핍박을 받고 어떤 때는 그것 때문에 살아남아 왔었던 것입니다.
 

좋은 시는 천재성 아닌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안에 대중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 언어인데, 늘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중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대중이라는 존재를 제일 모릅니다. 여기 있는 나를 비롯해서 모두가 대중이면서 대중이란 말을 제일 오해하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언론에서 '이것이 대중이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안에 있는 일원이 대중인데, 내 안에 있는 것이 대중인데, 대중이란 걸 남한테 듣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것에는 시청률을 생각하기 때문에 대중은 뭐다라고 하는 것이 병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 안에 대중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내 안에 대중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안의 대중과 대화를 할 수 있어야 자기 밖의 대중과도 대화를 할 수 있고, 대중의 좋은 점이 무엇인가도 보이면서 겸손해지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늘 텔레비전 시청률을 가지고 대중을 따지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일입니다. 일일이 마이크를 대고 '일일 연속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으면서 우리는 대중을 잘못 대접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면서도 시청률 70%,  80%라는 물신(物神)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상업 논리 안에서 대중상(大衆像)이 이런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대중, 자기 안에서 지향하는 대중에 끝간 데까지 가보는 것이 시이겠고, 가장 폭넓은 데로 가보는 것이 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환 : 시에서 비유라는 것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첫 욕망일 것입니다. 비유 때문에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자기 마누라를 지지고 볶다가 갑자기 좋아져서 감동을 했을 때 그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뭐 같은 우리 마누라'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여자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남편이 맨날 술만 먹고 돈을 벌어오지도 않고 주정만 하다가, 어떤 때 오래 산 맛을 느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뭐 같은 우리 남편'일 것입니다. 그게 다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심(詩心)입니다. 이 시심이라는 것은 백만 명이면 백만 명한테 다 있습니다. 백만 명이 다 시심을 갖고 있지만 그 중에 시인이 되는 것은 한 명도 될까말까 합니다. 우리나라의 시인이 4천 명이라고 하는데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숫자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좋은 시인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좋은 시와 소설을 낳는 것은 시작은 비유(比喩)입니다. 어떤 비유가 제일 좋은 비유라고 생각하십니까? 비유의 수준은 곧 시의 수준을 대는 척도입니다. 흔히 변덕스러운 사람을 가리켜 카멜레온이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시적인 비유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변덕스럽다'는 쉽게 들리지만 이 말 속에는 인간사의 온갖 기기묘묘하고 복잡한 양상을 일개 동물인 카멜레온에 비유했을 때 이것은 폭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한꺼번에 이미지를 전달하는 광고라든가 선동 등에 어울리는 것이지요. 8,90년대 운동권에서 유행한 말 가운데 '개떼처럼 몰려가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런 말은 아주 타락한 비유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 말은 선동하는 효과는 있지만 문학적 효과는 없다고 보아집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복잡다단한 사람들이 몰려가는데, 이를 획일화해서 비유하는 건 그야말로 비유의 테러리즘이지 문학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회주의 70년 역사를 보면 그런 비유 때문에 정치도 망했다고 봅니다. 스탈린은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말을 썼습니다만, 이것은 문학적인 유혹이라고 볼 수 없는 정치적 유혹이거나 폭력적인 유혹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국회의원 선거 등에 즈음하여 후보자를 천박하다고 합니다만, 그들에게 '대중을 이런 식으로 선동하면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를 한번 치를 때마다 폐해를 문학적으로 복구하려면 20년씩 걸립니다. 아무튼 이런 것들을 뿌리치면서 비유의 수준을 높여 가는 것이 문학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남들이 쓴 비유를 다시 쓸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생애가 걸려져 있는 비유를 써야 합니다. 문학의 근대가 시작되면서 가장 중요한 현상은 비유 수준이 인간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초생달 같은 눈썹, 앵두 같은 입술, 요즘도 시를 처음 쓰는 사람은 씁니다만 이런 자연의 비유, 문학이 근대화되면서 비유가 인간사회 속으로 들어와 버립니다. 예를 들어 돈을 꿔간 친구가 갚기는커녕 갚는다고 약속한 날을 2, 3일이 넘겨 겨우 물어보니, 그제서야 "아, 그거 못 갚았어."라는 말을 들었다 합시다.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열 받았다"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비유에 인간의 세계가 들어오는 거지요. 물론 아직도 탕진하지 않은 자연의 비유들이 남아 있습니다. '별처럼 아름다운'이나 '보름달처럼 밝은'이란 표현은 너무나 많이 써먹은 것이지만, 자연이라는 것이 워낙 넓은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비유를 아직 탕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학이 근대로 넘어오면서부터 특징적인 것은 비유 수준이 인간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속담도 수준이 갈수록 달라지는 겁니다. 문화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가 옛날에는 속담 수준이 높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속담 수준이 낮아져 갑니다. 속담이 아니라 삼행시나 사행시로 바뀌어 갑니다. 문화 수준이나 정신구조의 수준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문학의 역할이라는 것은 결국 이런 일들을 보면서 그대로 못 참는 것입니다. 저는 신문을 1년 동안 일체 안 보다가 다시 계속 보다가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체 안 보는 이유는 거기에 들어있는 비유나 언어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지는 걸 보면서 때문에 열 받느니, 안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또 그래도 1년을 참고 보는 것은 그걸 가지고 싸우면서 이걸 높이려고 해야지 나 혼자 잘났다고 외면해서는 문학의 언어에 대화의 통로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어려운 입장에 있는 것이고 문학이라는 것은 원래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만족만 가지고 사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비유의 수준이 높아져야만 하는 게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청중 : 시를 쓰면서 행갈이를 어쩔 때 합니까? 일반적으로 시는 어떻게 쓰고 언제 쓰는지 그리고 김정환 시인의 경우는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김정환 : 소설로 말하면 단락이고 시는 행을 가는 경우인데 어떤 때 그러고 싶을까요? 행갈이가 지망생들이 처음에 빠지는 가장 위험한 함정인 것 같습니다. 행갈이를 조심하고 비유 수준을 높일 생각을 하고 경어를 너무 쓰면 내용이 형식에 빠져 버립니다. 시인 지망생들에게 저는 우선 김수영 시집을 읽도록 권합니다. 거기에는 경어가 하나도 없고, 산문과 시가 구분이 안 되는데도 시입니다. 시와 산문 사이의 경계를 겹치면서 시로 끌어들이는지, 행갈이가 어디서 되는지 경어니 구투니 이런 부분이 완벽하게 없어지는 점에서 시를 지망하는 분들이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시의 길에 왕도는 없습니다. 각자 나름의 독특한 영역을 확보해 나가면서 내용과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온몸으로 감동을 낳는 시작을 꾸준히 해 나가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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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3)

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3)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3-3) - 노동자 선동하는 송경동 시인

                                                                         송경동 (시인) 

노동문학은, 운동은 무엇을 해 왔는가

과거 우리 노동문학은 주요하게 이런 혁명적 삶, 변혁적 삶을 소개하고 재현해내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일상을 현미경처럼 보여만 주는 일은 사회주의 리얼리스트들이 보기에 너무도 한가한 일이었고 재미없는 일이었다. 구체성 없이 자신의 주관에 휩쓸려 낭만적 포즈만을 취하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었다. 세계의 변혁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런 삶들을 형상화하고, 이를 사람들과 나눠 보고자 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사회주의 국가 수립 이후 사회주의 관제작가들의 삶은 오히려 편했을지 모르지만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싸우던 시기 리얼리스트들의 삶 역시 어느 혁명적 삶들 못지않게 고단했다. 혁명적 활동들 속에 있지 않고는 혁명적 문학을 표현해 볼 수 없었기에 모든 위대한 리얼리스트들 대부분은 조직운동과 함께 해 왔다. 조직운동이 아니더라도 조직운동이 벌어지는 그곳에 더불어 함께 있어야 했다. 조직운동이 없었던 시기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조직운동을 꿈꾸는 삶의 꿈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생존의 현장 곁에 그들은 있었고, 있어야 했다.
한국사회 노동문학만 하더라도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친숙한 작가들 중 대부분이 이런 민중운동, 노동운동과 함께 삶을 살아 왔다. 때에 따라서는 그들은 문학가로가 아니라 조직가로 운동의 전선 속에 있었다. 이 즈음에서 실제 그러했는가를 확인해보기 위해 역사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보자. 다음 내용은 1925년부터 1935년까지의 KARP(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운동 시 제시되었던 창작 방향 목록이다.

1. 전위의 활동을 이해하게 하여 그것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작품
2. 사회민주주의, 민족주의자치운동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
3. 대공장의 파업
4. 소작쟁의
5. 공장, 농촌 내 조합의 조직, 어용조합의 반대, 쇄신동맹의 조직
6. 노동자와 농민의 관계를 이해시키는 작품
7. 생략
8. 조선토착부르조아지와 그들의 주구가 제국주의자와 야합하여 부끄럼없이 자행하는 적대적 행동, 반동적 행동을 폭로하며, 또 그것을 맑스주의적으로 비판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결부한 작품
9. 반파쇼반제국주의 투쟁을 내용으로 하는 것
10. 조선 프롤레타리아트와 일본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적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작품,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연대심을 환기하는 작품

우리가 흔히 노동문학을 한다, 하겠다할 때 근거해야 할 역사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또 앞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문학 조직 내에서 어떻게 목적의식적으로 준비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우리가 1980년대와 90년대에 논쟁했던 문학운동의 고민들이 그대로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예술가들이 정치투쟁을 직접 수행할 것을 주장하는 노선이 있었는가 하면, 예술가들은 예술운동 조직을 통하여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의 생활과 사상 감정을 재현할 것, 대중 속에서 작가가 나와야 한다는 노선 등 전문적 문학예술의 대중화와 문학예술 창작의 대중화를 지금보다 더 첨예하게 고민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작가 중 한 명이었고 후일 북으로 넘어갔던 한설야의 다음 이야기도 참 재밌다.
창작이론과 작품행동의 매개-창작이론이 대중을 파악하고 그 역사적 직능을 성취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양자의 매개 형태는 작자가 조직을 통하여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생활하는 무산자적 제 생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직을 통하여 또는 조직을 결성하여 대중의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그래서 그들과 같이 생활하고 묵도하여 그들의 생활을 재현하고, 그리고 그들의 동향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작가는 서재에서가 아니라 공장에서 일터에서 농촌에서 나야 하고 또 그리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서는 도저히 소위 ‘전위의 눈’을 얻을 수 없고 그러한 작품을 제작할 수 없다.
우리가 80년대 중반 이후 실험했던 대부분의 활동들이 당시 일제 치하에서도 실험되었다는 사실이 재밌다.
카프 운동은 일제의 문화통치 시기가 끝난 1935년 이후 탄압의 시기에 모두 지하화하거나 탄압에 못 이겨 전향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한 전향자의 말은 ‘잃은 것은 예술이요,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라는 말이다.
이러한 단절을 거쳐 다시 노동문학운동이 복원된 것은 1950년 해방정국이었다. 이 시기의 문학은 ‘조선문학건설본부(문건)’과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으로 각기 나뉘어져 전개되었다. 각각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 완수를 위해 민족통일전선에 입각한 민족문학론, 당의 지도를 받아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를 확고히 틀어쥐어야 한다는 프롤레타리아 문학론을 지도 이념으로 내세웠지만 곧바로 문건 주도의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었다.
당시의 상황이 작품 생산보다는 정치적 선동이나 조직 활동을 그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음으로해서 작품 생산은 지극히 미미했다. 아는 바대로 한국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 남한 사회의 진보의 싹은 향후 수십년 동안 완벽하게 거세당했다. 노동문학은 꿈도 못 꾸고 노동자라는 말 한 마디도 내뱉기 힘든 죽음의, 폭압의 세월이 계속되었다.
노동자들의 삶이 담긴(전형성이니 당파성이니 하는 단어들은 80년대 후반 들어와서야 비로소 정치적으로 복권되었다.) 글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서다. 그 대부분은 황석영, 조세희, 신경림, 정희성, 이시영 등 일부 양심적 작가들에 의해 수행된 소수의 작품 활동 이외에는 수기의 형태였다.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 등이었다. 본격문학의 형태로 노동문학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다. 박영근의 <공장의 옥상에 올라>,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정명자의 <동지여 가슴을 맞대고>, 김해화의 <인부수첩>, 김기홍의 <공친 날> 등이 이 시기 주요한 노동자문학들이었다.
양심적 작가들에 의해 다시 민족문학의 틀이 꾸려지기 시작한 것도 1970년대다. <창작과 비평>동인, 이들을 아우르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민족문학의 새 진용과 조직체 역할을 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이후 현재의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발전해 왔다.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진보적 문학은 대부분 이 조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좀더 민중적인 흐름이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고 본격적으로 노동계급문학이 고민 실천되던 시기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부터 90년대 초반까지였다.
민족문학에서 바로 노동(자)문학으로 건너 온 것은 아니었다. 민족문학은 자연스레 민족문제 해결의 주체가 누구냐는 물음을 가져왔다. 현대 민족문제의 핵심이 역시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인 제국주의 극복의 문제임은 앞에서 밝혔다. 제국주의의 본질은 강압적 폭력적 방식(전쟁이나 침략)을 통한 잉여의 착취에 있다.
아직 한국사회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출연이 없던 시기 그것은 자연스레 민중문학론으로 발전, 모색되었다. 이론적으로는 김명인의 <지식인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상>과 백진기의 <노동문학, 그 실천적 가능성을 위하여> 등으로부터 비롯된 민중적 민족문학론 및 이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된 조정환의 <민주주의 민족문학론>, 그리고 채광석의 글 등이 이를 받쳤다. 다양한 그룹운동(이는 당시 정치조직운동들과 직간접적으로 함께 했다.)들이 전개되었고 무크지 운동 등을 통해 새로운 작가군들이 출현했다.
백무산 시인

이 시기를 전후해 노동문학은 맨 처음 백무산 시인의 수상 소감처럼 ‘노동계급의 혁명적 진출’을 감행했다. 민중문학론을 넘어 노동해방문학론이 주창되었고, 이를 따르는 무수한 창작그룹(노해문, 녹두꽃, 민애문)들과 매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 태동되었던 것이 현재 제3회 전국노동자여름문학한마당을 준비하는 일 주체인 <전국노동자문학연대(전신은 전국노동자문학회대표자회의였다.), 이하 전노문>였다. 자생적 대중적 노동자문학조직으로 일컬어지는 전노문이었다.

전노문은 전체 노동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당시 쏟아져 나온 무수한 노동문학창작인 즉, 박노해, 백무산, 방현석, 김해화, 이인휘, 안재성, 김한수, 김남일 등등등의 문학인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그 영향력면에서 현저히 부족했지만, 이들이 개별창작 이외에 문학운동을 전면에 내세운 대중문예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창작의 집단화, 조직화와 관련해서 여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는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전문문인대중조직의 공백을 메꾸고 분명한 노동예술가대중조직(일제하의 카프나, 미군정기의 조선문학가 동맹 등)의 건설을 추동하는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기능할 수도 있었다.
창작 그룹들이 주로 이론 생산과 작품 생산을 통한 활동에 주력했다면 전노문은 대중조직으로서 현장문학반 건설 사업, 도서대출 사업, 공단이나 지역 내 대중문학강좌, 집단창작 활동, 문예선전활동(문예신문 발간, 기관지 발간, 시화전, 시낭송회밤 및 시낭송단 운영, 노조편집부 교육 등), 현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일상적인 문예 창작 및 학습, 그리고 정치 학습 등을 자기의 근간으로 삼았다.
기본적으로 노동자대중조직이라는 일반성 위에 문예조직이라는 특수성이 결합된 방식이어서 초기엔 사업의 집중성이 분산되기도 했지만 추후 문예조직으로서의 위상 강화로 초점이 정리되었다. 하반기로 갈수록 ‘전문성 강화’가 과제로 세워졌다. 전반적인 운동의 퇴조기를 맞으면서는 노동자대중조직으로서의 일반성은 더욱 약화되고,(전체 노동운동과의 단절) 문예활동 역시 계급적 문예운동에서 일반 문학 동호인 모임들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선까지로 약화되어 왔다. 민족문학운동도 보수화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략 이런 전개 과정을 거친 후, 한국사회 노동계급문학의 현재는 다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해져 있다. 먼저 창작운동의 측면을 살펴보자면 노동문학을 이끌었던 진보적 창작자들은 이미 오래전 창작활동을 놓거나 축소하였고, 개별적으로도 노동운동 등 진보운동과의 관계의 선들이 단절되어 있는 상태다. 아예 창작 내용의 중심을 옮긴 작가들도 숱하다.
따로이 이런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 작가 집단(과거와 같은 동인 형태 등)도 거의 유실된 상태라고 보는 게 맞다. 그나마 <삶이 보이는 창>과 <전태일문학상운영위원회>와 <전노문>에 일부 소수의 노동문학 창작인들이 포진되어 있을 뿐이다. 전형적 조직 형태가 아니더라도 공명하는 창작인 그룹들이 형성되어 왔던 과거와 비교하더라도 창작인 중심의 노동문학조직운동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삶이 보이는 창> 창간, <노동자문예 삶글>(전노문은 몇 해전 자족적 형태의 기관지를 대중적 문예지로 격상시키고, 이를 새로운 노동문학운동의 마당으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실험을 전개했었다.) 창간 등을 기화로, 그리고 1996년 노동법개정투쟁, 1998년 IMF 사태 등을 맞으며 계급적 각성들이 다시 고양되는 틈을 타 잠깐 다시 활발한 모색과 소통, 그리고 남아 있는 노동문학진영의 연대를 모색해 보았지만 돌이켜보자면 이를 조직화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판단이다.
좀 더 대중적 문예실천단위로는 <작은책>이 편집 방향을 통해서나 글쓰기 모임 등을 통해 노동자문학운동의 대중적 실천 가능성을 유지해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문예활동가들이 대부분 유실되었다는 것이다. 노동자문예운동은 그 성격상 목적의식적 활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외부의 이데올로기 공세들이 그 작은 공동체를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자생적 문예조직이었다고 표현되는 전노문의 건설에만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예활동가 실천가 그룹들이 목적의식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이보이는창
혁명적 이론도 혁명적 조직도 혁명적 인자도 혁명적 실천도 혁명적 대중도 잘 보이지 않는 이 암흑 속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떤 나침판을 들고 저 먼 길을 항해해 가야만 하는가. 혁명적을 빼고 자생적, 일상적, 문화적, 개혁적으로 고치면 그것은 가능할까. 혁명적 민족에서 혁명적 민중에서 혁명적 노동자에서 개혁적 국민으로, 관용의 시민으로, 자율적 다중으로, 혁명적 아나키스트로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으로 주체 개념과 이행 전략을 바꾸면 그것은 가능할까.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나는 앞 단락 맨 끝의 물음의 답을 모른다. 주제도 안 되거니와 나 역시 겪고 있는 피로감이 그런 정치한 물음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회로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알았다면 물음의 형태를 피해 설득의 형식을 취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지금-여기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게 인간의 운명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도대체 무어라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처럼 느껴지는 게 살아 있는 사람의 정신이고 몸이다.
먼저 멀리 가지 않더라도 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진행되었던 노동자문학운동의 논리와 한계를 짚어보고 우선은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될 부분과 전술적으로 버려야 할 부분 등을 간추려야 할 것 같다.
- 먼저 창작에서 구래의 도식화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작방식을 버려야 한다. 특히 그 보이지 않는 구 사회주의당들의 눈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슬프게도 그런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전무하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 이야기를 하나. 노동자문학하면 먼저 위의 창작방식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가 새로운 창작자들과의 소통과 창작의욕들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록해놓은 모든 전술적 차원의 문예이론들은 역사적으로 습득하되 모방해서는 안 된다. 거기서 얻을 것은 그들이 초기에 가졌던 자본주의 이후 인간해방에 대한 끊이지 않는 꿈꾸기의 정신과, 뜨거운 애정, 실천의 품성들이지 그 방법은 아니다.
특히나 작품 형태와 내용의 단순모방은 이제 지긋지긋한 수준까지로 올라가고 있다. 한 사람의 대중도 감화시키고 선전선동시키지 못하는 문학작품은 오히려 혁명의 적이다.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선대의 사회주의 문학가들은 단 한번도 무엇을 답습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창조는 정확히 그 시대 대중들이 바라는 꿈의 묘사에 있었다.
당신이 진정 노동자계급문학의 전통 속에 있다면 이 시대 누구보다도 새로운 문학을 꿈꾸어라. 누구보다도 발랄하고 생동감 넘치고, 감동적인 문학을 꿈꾸라. 없었던 문학을 꿈꾸라. 만약 그 꿈이 노동자를 죽이며 가야 하는 길이라면 그 길로 가라. 만약 그 꿈이 현존했던 사회주의를 한번 더 재차 죽이고 가야 하는 길이라면 그 길로 가라. 제2의 박노해, 제2의 백무산은, 제2의 김남주가 되려 하지 말고 제1의 아무개가 우리는 필요하다.
자기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자, 그래도 세상은 똑같다고만 되뇌이고 있는 자는 사실은 보수주의자에 다름 아니다. 변화를 즐거워하는 자, 그가 진보주의자고 현실을 넘어서는 세계를 꿈꾸는 자들이 할 일이다.
그러나 제발 노동의 대지-이는 현존 사회주의를, 민주노총을, 민주노동당을, 사회당을, 노동자의 힘을, 전국연합만을, 또 어떤 어떤 현존하는 정치조직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이 세계의 본질적 요소로서의 노동의 대지를 말한다.-를 떠나는 누만은 겪지 않기를. 말하자면 반자본 반제국을 넘어서는 모든 새로운 기획과 품성을 잃지 말기를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성(性)으로 갈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생태로 갈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인권으로 갈 수도 있다.
공장에 모두가 붙어 있던 시기는 지났다. 현대는 사회 전체가 공장화 되어 있다. 업종 역시 서비스업 노동자수가 제조업노동자수를 육박하는 한국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더더욱 800만의 노동자들이 비정규불안정노동에 놓여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공장문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이젠 그곳만이 아니다.
파업조차를, 조직조차를 만들어 보는 일조차 불가능한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이 비참한 사회에서 내가 다시 펜을 들고 들어가야 하는 곳은 어디인지를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모든 인간적 가치가 자본주의 상품화되고 있는 이 땅에서 나는 사람살이의 어떤 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적 속성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그 본질을 햇볕 앞으로 끄집어내어 자연스레 퇴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모든 창작적 소재는 늘 내 주변에 깔려 있고, 더더욱 지난 15년새 다시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와 있다. 일례로 나는 현장의 이야기를 다룬 어떤 노동자들의 시에서도 현장 내에서의 성 문제를 다룬 작품을 보지를 못했다. 왜 우리 공장은 남성들뿐일까. 왜 우리 공장은 여성들뿐일까. 아무렇지도 않은 질문 같지만 그런 질문 속에서 새로움이 싹트지 않을까.
현재 대부분의 노동문학가들은 과거처럼 과중한 조직일에 시달릴 일도 없다. 이러한 때라면 좀더 창작에 전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작품이 없는 곳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작품들이 나와야 이론이 서고, 다른 모색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노동문학운동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 창작운동이다. 조직운동과 창작운동을 병행하던 그때보다 더 치열하게 창작에 전념해야 한다. 조직운동과 관련을 맺더라도 그것은 과거처럼 조직운동의 일원으로 조직 내 일의 한 영역을 맡는 형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유롭게 소통하며 내용적 고민을 나누는 형태가 될 것이다.
- 한편, 진보적인 문학가들 간의 소통과 작품 내용을 둘러싼 모색의 테이블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문학가들의 만남은 거의 사적 만남이거나 친목 형태의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만남의 틀이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 생각키로 가장 바람직한 현 시기 노동자문학운동, 그리고 그것의 조직운동의 형식은 첫째, 새로운 창작동인들의 조직 형태다. 동인으로는 현재 <일과시>가 남아 있지만 피로감에 휩싸여 있는 상태다. 다른 동인들이 가능할까.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만이 아니라 연대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작가들을 찾고 묶는 게 필요할 것이다. 이 동인은 철저히 창작에 대한 고민만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두 번째로는 사업을 통한 풀 형성이다. 가장 유효한 형태는 100인 편집동인 정도를 만들어 매체 사업(반년간 정도의 종이잡지와 인터넷문학매체)을 축으로 최소한의 만남들을 수평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대신 슬로건은 좀더 명확히 하는 것이 현 시기에서는 오히려 서로에게 도움을 줄 거라는 판단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하는 작가모임 형식으로 말이다. 서로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야 분명한 창작과 활동상들이 잡힐 것이다. 종이잡지는 새로운 신세대 창작군들과 만나는 계기 정도를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만고만하게 유지하고 있는 문학소그룹들의 자기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적자원과 재원, 그리고 사업의 좀더 효과적인 집중과 분산을 위해서 말이다. 말하자면 조금씩의 차이들을 넘어 낮은 단계의 통합(서로가 자유스러울 수 있는)을 이루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조직적 노력을 현재의 민주노조운동들이 대중적으로 엄호해 주는 일은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 사실 현 시기 노동문학운동이 담당해야 할 과제는 너무 넘쳐날 지경이다.
창작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크게 보면 현대 사회의 자본주의 메카니즘에 대한 폭로와 고발, 이를 넘어서는 대안의 인간관 제출이 필요하고, 좁게 가면 현재 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한 고발, 특히 비정규불안정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는 긴급하다.
문예대중화 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터넷을 통한 담론 형성에 개입해 들어갈 수 있는 대안적 문예활동들과 그에 맞는 사이버상의 조직활동들이 요구된다. 두 번째로는 조직대중들을 중심으로 한 진일보한 문학교육 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문학으로부터, 문화활동으로부터 소외되어 문화상품의 소비자로만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벗어나고자 하는 일만 하는 기계의 상태다. 현재 민주노총 금속연맹/노조에서는 내부에 금속노동자문화발전특위를 꾸리고 그 안에 노동문학발전위를 두고 있는 상태지만 이를 엄호 지지해 줄 수 있는 조직적 단위와 인자들이 너무도 취약한 상태다.
- 한편 대중문예운동의 새로운 형식 모색이 필요하다. 우리는 과거 수행해 왔던 방식은 크게 종이 매체를 통한 집단 형성, 그리고 지역을 축으로 하는 집단 형성 방식이었다. 당시는 참 창조적이었다. 도서대여 사업, 벽시운동, 문예신문운동, 시낭송단 사업 등등. 유통의 형식도 그러다 보니 새로웠다.
기존의 서점만을 통해 소통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때론 공장 안으로 위장취업해 들어가 찌라시를 읽혔고, 지역 내에 무료 책대여점을 차리는 형식이었다. 공단에 벽시를 붙이고, 찾아가서 시낭송을 해주는 사업이었다. 찾아가서 함께 시를 지어보는 일들이었다.(집단창작방식이 이거였다.)
이런 사업을 모두 지금은 관 조직인 문예진흥원에서 돈 줄테니 제발 좀 하라고 한다. 이름도 찾아가는 문화예술이다. 아무런 인센티브를 주지 않아도 청춘을 바쳐서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잠잠한데 이제 제발 관에서 그 일을 해 달라고 한다. 그 모든 새로운 유통의 형식들은 지금은 관에서 자본에서 다 한다.

 
우리는 무료로 책 대여 사업을 했지만 동네책대여점은 돈을 받고 책을 대여해준다. 그것도 검증되지 않은 질낮은 도서를. 우리는 무료로 비디오 상영과 대여를 했는데 그후 문을 연 비디오방은 돈을 요구했다. 노동자문예운동은 그만큼 창조적이었던 것이다. 창조적인 게 노동자문예운동이었던 것이다. 그 창조성이 그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모두 과거 했던 유통형식, 문예운동 방식의 답습이거나 모방, 그것도 충분한 믿음없이 하는 형편이다. 아니 그 정도의 사업이라도 수행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안 된다.

 
그런데 안 되는 것에는 다 까닭이 있다. 그것은 이제는 좀 다른 방식에 대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직 형식, 사업 형식의 새로운 개발이 필요하다. 이 고민은 의외로 새로운 문예운동의 조직들을 만들 수도 있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상업자본들에게 밀려 예를 들어 인터넷 환경이라는 혁명적 변화의 계기에도 새로운 상황에 맞는 어떤 진일보한 문예운동 방식도 내놓지 못했다. 그 순간 우리는 보수가 된다. 보수가 다른 게 아니다.

가령 인터넷은 그 질의 고하를 떠나 인터넷 공간 안에 수천 개의 온라인 문학모임들을 만들어 냈다. 네이버나 다음 등등 사이트엘 가서 문학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정말로 한 사이트 당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문학동호회 모임들이 나타난다. 지금은 그 보다 나아가 누구나 개인 블로그를 주어 일상적인 ‘생활글쓰기운동’을 인터넷 매체들이 지원하고 있다.

 
종이 매체처럼 한 편의 글을 쓰고 몇 십일을 몇 달을 기다려야 할 필요도 없다. 소통의 욕망이 문학의 욕망이라면 인터넷 공간보다 더 좋은 매체는 이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글만 좋으면 실시간으로 수백 수천 명과 바로 소통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소통에 대한 욕망보다도 권력에 대한 욕망에 더 집착한 보수주의자들이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과거의 수구보수꼴통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보수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새로운 정신은 새로운 형식을 만든다. 김수영이 내용과 형식은 함께 간다 했을 때의 말의 의미가 이것일 것이다. 새로운 정신만 있고 새로운 형식은 없는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있을 수 없다. 형식과 내용은 함께 간다.

그것이 공간일지, 시간일지, 대상일지 우리는 깊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지역에 뿌리박는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지역 안에서 어떤 위상과 일들, 관계들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지역에 있다는 의미가 성립되는 것인가. 등등.

발제자의 고민은 사실 다른 무엇을 떠나서 문학인들에게는 작품의 내용일 거라고 본다. 작품이 있으면 새로운 유통 방식은 널려 있다. 고전적 전통적 모던적 방식에서부터 현대적 포스트모던적 방식까지. 결국은 정신의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작품 생산은 여전히 수공업적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성과 학습을 인터넷이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육화의 경험을 정보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정보 생산자가 정보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일 필요는 없다. 정보는 모두 현실의 구체적인 사람들의 일 속에서 나온다. 하지만 대중문예운동의 방식은 이런 개별 창작자의 처지와는 다를 수 있다.

인터넷의 예를 들기는 했지만 여하튼 노동자대중문예운동의 새로운 조직과 사업 형식 개발은 시급하다.

 
- 주객관적 상황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자꾸 수세적인 활동보다 오히려 공세적으로 무슨 진보적인 문학가동맹이라도 하나 떠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얼마전 세간엔 잘 안 알려졌지만 6.15민족작가협회<공식이름은 확인필요함>가 구성되기는 했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남북통합 문학인 조직이 그 모태다. 하지만 왠지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시대적으로 진보적인 아우라 속에 있음에도 왜 그러는 것일까.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6.15가 앞에 붙으니 과제 중심의 과도기적 문학조직일 수 있겠다.) 모든 게 오픈된 시대에, 국가보안법도 사문화된 시대에, 운동권(비하되어서 그렇지 나쁜 말은 아니다. 누군가를 대상화 시키는 말도 아니고) 알기를 무슨 사기약장사꾼이나(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사업장 간부들의 최근 비리가 사회화되는 현상을 보라) 어리광부리는 아이 보듯이(노무현과 개혁세력들은 늘 민주노총 철들어라고 훈계한다.)하는 이 시대에 왜 가슴 속 양심을 감출 것인가. 모습 좀 감추어서 어떤 떡고물을 얻어먹을 것인가. 그렇게 살면 작가적 양심이 내 자신을 가만두겠는가. 대놓고 하자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 나라가 저희 공화국이라고 떳떳이 말하는 삼성처럼, 제 모습 감추지 않고 아무나 쥐어박고 때리고 죽이는 미국처럼, 변형된 형태의 내용상 포르노를 버젓이 안방극장에 상영하며 돈 버는 저 공영방송들처럼 그렇게 말이다.

 
- 겁 없이 문예운동, 특히 조직운동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아보았다. 고민으로 들어주고 간신히 숙제는 마친 것이라고 보아주면 좋겠다.
송경동 시인은 얼마 전 포항건설노동자 집회에서 시를 낭송했다는 이유로 포항경찰서에서 출두요구서를 받았다. 책상에서 쓰는 시보다 공사판에서 투쟁현장에서 쓰는 시가 많다고 한다. 2006년에 첫시집 <꿀잠>을 삶이보이는창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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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조기영어교육인가

누구를 위한 조기영어교육인가


조 진 희(서울영일초등학교 교사)


영어 공화국에서 초등교사로 살아가기


“The tiger is stronger than the rabbit.” 영어 수업이 끝날 무렵 6학년 33명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이런 비교급 문장이 5개 더 있는 책을 들고서) 나는 이 시간이 가장 공포스럽다. 호랑이는 tiger이라고 써라, 비교급이니 strong 뒤에 er을 붙여라, ‘~보다’라는 뜻의 영어는 then이 아니라 than이다, rabbit 앞의 the는 소문자로 써야 한다….

비교급 4번째이자 마지막인 쓰기 시간인데도 아이들에게 비교급 개념은 잡혀 있지 않다. 고칠 점 하나 없이 통과되는 아이가 거의 드물어 화장실 갈 시간도, 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어 아이들에게 물 한잔을 ‘요청’해야 한다. “Can I have some water?” 이미 6학년 다른 학급 아이들이 영어실에 들어와 떠들며 수업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 영어 10년 효과는 있었는가


한국에서는 영어가 ‘왜’ 필요하고 ‘얼마나’ 필요한가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원어민처럼’ 능통하게 만들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1997년 초등학교 3학년에 영어과가 처음 들어온 지 올해로 10년째다. 하지만 정부(영어조기교육 확대 방안은 10개 이상의 부처가 연합해 범정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와 영어교육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초등영어정책 평가서를 내놓지도 않은 채, 지난 1월 「초등영어교육 확대 시범 실시 방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지난 9월 1일부터 전국 50개 초등학교에서 1~2학년 영어교육이 시범 실시되고 있다. 이 연구학교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부는 2008년부터 확대 여부를 검토한다고 한다.

초등 영어 10년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도 없이 불도저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초등 1~2학년 영어교육 시범 실시의 배경은 ▲학부모 및 전문가들 조기영어교육 찬성 ▲도시와 지방의 영어교육 격차 해소 ▲사교육 및 해외 연수로 인한 국고 낭비 축소 등이다. 현재 3학년 이상부터 실시되고 있는 영어교육도 정상화되지 못했는데 모국어교육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1학년부터 영어를 배우는 데 반대하는 많은 초등교사들과 국어학자들의 지적을 정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FL 환경에서 영어 시작 시기는 무의미


서울대 영어교육학과장 이병민 교수는 『녹색평론』(2006년 7~8월호)에서 “5~6천 시간 이상 영어시간을 제공해주지 못할 바에는 우리와 같은 외국어 교육환경에서 영어를 처음 배우는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면서 “외국어 교육환경에서 언어학습의 절대적 시기가 있다고 믿고 그것에 근거하여 영어교육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고 단언하였다.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이 한국은 대표적인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즉 외국어 교육환경 나라이다.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환경과 달리 EFL 환경에서는 언어습득장치(LAD)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언어입력과 언어필요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 영어를 언제 배우냐는 중요하지 않다. 주당 1~2시간 이루어지는 영어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영어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과학적ㆍ실증적 근거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어떤 영어교육과 교수는 3~4학년 1시간씩 배우는 것보다 4학년부터 2시간씩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EFL에서는 일찍 배우는 것보다 영어 노출시간과 학습강도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어 학업성취도, 사회계층과 정비례


영어는 모든 사회적 관문 통과하는데 수문장 역할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권력이 되고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지표가 되고 있다. 학부모들은 문화자본이 되어 버린 영어에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빚을 내서라도 미국이나 캐나다는 못 가도 필리핀 어학연수 아니 영어캠프 정도는 보내줘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런 학부모들의 바람을 타고 정치인들은 영어마을 조성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학부모의 사회계층과 영어 학업성취도와의 관계는 놀랍도록 정비례한다. 사회계층이 위로 갈수록 영어 사교육은 개별화ㆍ고급화ㆍ장기화되고 있다. 최상층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성취도가 높았으나 중산층ㆍ저소득층ㆍ극빈층 아이들은 거기서 거기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에서 사교육이 100% 차단되는 ‘순수한 공교육에 의한’ 영어 학업성취도 향상 정도를 실험할 수 있는 조건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교육 방법 또한 널뛰기를 하고 있다. 잘하는 아이에게는 심화과정을, 못하는 아이에게는 보충과정을 해주라더니, 이제는 심화과정의 상당 부분을 모든 아이들에게 가르치라고 한다. 처음 영어가 들어올 때에는 듣기ㆍ말하기 의사소통 위주의 교육이 돼야 한다더니 읽기ㆍ쓰기도 같이 해야 효과가 있단다. 지난 8월 교육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초등 영어 7차 교육과정을 수정고시했다. 2009년부터 아이들은 읽기를 3학년부터, 쓰기를 4학년부터 1년 빨리 배운다(공교롭게도 2009년은 1~2학년 영어가 처음 시작될지도 모르는 해이다).


영어 문화자본 그리고 영어 양극화


어린이집에 다니는 4살짜리 딸이 올해부터 영어 특별활동을 배우기 시작했다. 원장 선생님 왈, 얘들은 1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울 것이기 때문이란다. 영어 공화국에서 학부모로 살아가는 것은 교사보다 더 힘들다. 도대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갸우뚱하면서도, 내 아이가 이 공화국에서 생존해야 하므로, 괜찮다는 사교육을 좇지 않을 수 없다(이병민 교수는 아이를 원어민처럼 만들고 싶다면 가급적 빨리 영어권 국가로 이민을 가라고 충고한다. 단 한국 국적은 버리고.....).

단언컨대, 초등 1~2학년에서 영어를 배워도 외국인 만나서 의사소통 하기는 쉽지 않다. 영어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유아 및 초등학생의 영어 사교육은 10배는 심화될 것이다. 모국어 습득에 미칠 부정적 영향, 창의성ㆍ흥미ㆍ자신감 등 정의적인 발달에 미칠 악영향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영어 문화자본은 최상위 계층에게 부와 권력을 재생산 해줄 뿐 서민층 자녀들의 장밋빛 미래는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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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2)

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2)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3-2) - 노동자 선동하는 송경동 시인
송경동(시인) 
착시 현상을 벗어나서

그렇다면 정말 노동자문학은 이제 끝난 것인가? 노동자계급운동은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할 퇴물인가? 혁명에 대한 꿈을 더 꿀 필요없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하는가? 하지만 우리의 답은 아직 아니다이다. 이 모든 건 착시 현상이거나 역사 파고에도 늘 있는 고점과 저점에서 저점, 흔히 반동이라는 시기에 있음으로 판단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세계 진보운동의, 계급운동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을 본다. 자본주의 역사는 채 100여년 밖에 안 되었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험 역시 길어야 8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현세를 사는 우리는 늘 내가 사는 육체적 나이에 근거해 역사를 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역사적 상상력 속에서 100여년의 세월이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우린 그 시간동안 중세봉건적 사회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경험해 보고 있다. 크게 보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역사 체재들이 그것이었다.

이 둘의 역사 체재는 아예 만날 수 없는 수평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기실 알고 보면 비슷한 사회운영 원리 속에 있기도 하다. 둘 모두가 뿌리박고 선 대지의 가장 큰 규정성은 노동세계라는 시대적 원리다. 농노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자에 의존해야 하는 시대. 노예가 아니기에 최소한의 시민권을 인정해야 하고 천년만년 이어지는 왕조의 역사가 아니기에 최소한 사회 구성원들이 인정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택해야 한다.

노예가 아니기에 근로계약이 일을 시키고자 하는 자와 일을 하고자 하는 이 사이에 체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현상적으로 보면 근대 자본가들을 당시의 혁명가들에 비유하기도 한다. 중세봉건영주들로부터 노예들을 해방시킨 사람들로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착시 현상이거나 사실의 오도다. 노예해방은 노예이기를 이제 더 이상은 거부하는 인간들의 피나는 희망으로부터 노력으로부터, 세계정신으로부터 이루어졌다.

자본주의가 어떤 혁명적 조치들을 취하기 이전에 이미 있어 왔던 그 수많은 노예들의 반란, 농노들의 반란을 생각해보라. 근대 자본가들은 이런 시대 변화상의 본류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그곳에 무임승차 몸을 실은 사람들이다. 파도와 바람이라는 큰 흐름을 느끼고 돛을 어느 쪽으로 올려야 하는지를 안 약삭빠른 사람들이다. 자본주의는 그래서 최소한 인권의 보편성, 기회의 균등을 이야기한다.

우린 누구나 ‘자유’롭고, ‘민주’적이라는 게 자유민주주의로 이어져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보통선거권을 도입하고, 사적소유의 자유를 얘기한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에 의한 통치, 법치주의를 이야기한다. 자본은 이제 누구나 성실하면 가질 수 있는 사회공공적 부고, 자본만 있으면 누구던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진정으로 민주적이지 못했다. 그런 사실은 자본주의 초기 과정부터 금세 밝혀졌다. 자본주의는 부패할 수밖에 없는 기생의 체재였다. 현대 노동자들은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했으되 중세의 농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때에 따라서는 중세의 농노보다 더 끔찍한 인간성의 소외와 착취,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토지와 다르게 공장은 24시간 풀가동이 가능했다. 임금(생존권)을 미끼로 자본가들은 언제든지 노동자들을 노예화 시킬 수 있었다. 정작 자본가들이 한 역할은 사회공공적 부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가치(자본화폐화된)의 과도한 선점을 통해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이었다.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의 절대화를 통해 화폐를 신격화했다.

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가끔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자본가들이 만들어 낸 각종 제도와 시스템들을 들어 자본가들 역시 생산적 노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갖게 하지먄 그 대부분은 사실 생산과 분배의 민주적 시스템들과는 무관하다. 그 들의 일은 노동에 대한 착취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생의 시스템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사회 그 많은 ‘생산적 활동’들이 하고 있는 실내용을 보라. 교육에 종사하는 자본의 하수인들이 하는 것은 산교육이 아닌 죽은 교육의 재생산에 있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그 많은 자본의 하수인들은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노동행정에 종사하고 있는 하수인들은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수많은 군인들은 도대체 왜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진정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사고한다면, 진정으로 인류들의 창조성과 의식성을 믿는다면 자본가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는 이 사회 시스템 중 대부분은 폐기되고 난 후에도 영영 웃음거리가 될 고물들에 다름 아닐 것이다.

물론 그 중 생산적 활동들도 있지만 본 바대로 그것은 그만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인류 진보의 유산들이다. 그것은 꼭 자본주의가 아니더라도 자본가들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유지 존속 더 진보 발전될 사회적 가치와 일들이다.

자본가들은 이러한 역사의 진보를 두려워하기에 교육과 언론과 정치와 이를 강제하는 물리적 힘인 법과 군대와 경찰력을 놓지 않는다. 이런 물리력과 이데올로기적 공작이 없으면 기생충인 자신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자본가들은 바보가 아니다. 참 똑똑하고 영리한 놈들이다. 다만 그 좋은 머리가 타인의 불행을 획책하는 쪽으로만 쓰여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의 소금이 아닌 종양이 된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정치적 자유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이미 그들은 교육을 통해 언론을 통해 법을 통해 군대를 통해 일상적으로 선거운동들을 펼치고 있다. 이 모든 선거수단들을 가지지 못한 정치적반대파(진보주의자들)들은 단지 부르조아 선거법이 명시하고 있는 선거운동기간을 통해서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가끔 진보주의자들이 대중(민중이라 부르던 노동계급이라 부르던 노농계급이라 부르던, 전선이라 부르던, 시민이라 부르던 다중이라 부르던)들의 무지에 좌절해 대중을 한탄하거나 무시하거나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믿지 못하고 반대파에 전향하거나 반대파와 타협하거나 개량으로 돌아서기도 하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도 멍청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예지가 아닌 무지를, 이성이 아닌 야만을 교육받고 교육받아 온 절대다수의 대중들이 어떻게 진보적일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가 개진하고 있는 진보적인 정치활동이 단지 전술인지, 전략인지, 타협인지, 개량인지를 주도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전술적인 활동들을 타협이나 개량으로만 치부해서도 안 되고, 전술을 전략으로 격상하여 꿈꾸기의 중단을 가져오는 폐해는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 현실운동은 현실 대중들과 함께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현실의 구체적 대중과 함께 할 생각이 없는 진보주의자들은 가끔 극좌와 극우가 통한다는 사실을 재미없게 되풀이해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악한 이들은 다른 세계, 다른 체제 구성을 꿈꾸었다. 그것이 자본주의 태내에서 자라나(이 말도 어패가 있다.) 자본주의를 전복하고자 한 사회주의적 이상들이었다. 사회주의는 기생하는 자본주의와 다르게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받지 않는 사회 체제를 꿈꾸었다. 노동을 소외시키지 않는 교육과 문화 정치를 꿈꾸었다.

자본가들의 대의기구에 불과한 부르조아 정치 집단과 그 이데올로기 형식인 다당제를 넘어 노동자계급혁명일꾼들로 구성된 혁명적 당일꾼들을 상정했고, 노동자계급 집단지도체제로서 1당 독재체제를 선호했다. 그것을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선 직접민주주의의 형식으로 보았다. 보이지 않는 손(철저히 자본의 이익에 따르는)에 의해 작동되는 자유시장의 폐해를 넘어 노동과정과 생활과정에서 일어나는 2차적 소외를 없애기 위해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에 우선 주안점을 두는 국가계획경제를 주창했다.

어떤 이도 삶으로부터 소외당하면 안 된다는 기본 취지하에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을 실험했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기간산업과 사회적 부는 개별 자본가들이 아닌 국가, 즉 노동자당이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이것을 국유화 프로젝트라고 한다. 자본가들의 국가가 아닌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국가. 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기획인가.

노동과정에서의 착취와 생활 속에서의 착취 분을 메우기 위해 또 착취의 연속인 노동의 쳇바퀴 속을 굴러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조금만 일하고도 생활이 지속될 수 있다는 꿈. 그 나머지 시간들은 온전히 나를 위한 창조적 문화노동에 할여할 수 있다는 꿈. 통치의 대상이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하게 이 사회의 운영에 진정한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꿈. 누구도 누구를 착취하거나 폭력으로 위압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존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꿈. 동료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나의 생존이 위태로워진다는 정신병적 상태를 벗어나 위계와 차별이 아닌 아름다운 차이로 서로가 공존할 수 있다는 꿈 등등.

하지만 이런 세계를 자본주의가 호락호락 용인할 리가 없기에 이들은 민중무력혁명(전민항쟁)이라는 방식을 택했다.(아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십수년 밖에 안되었는데도 이런 말들은 이미 사어 취급을 받고 있다.) 각 민족이 처한 환경에 따라 이는 우선적으로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인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해방전쟁으로 표출되기도 했고, 사회주의 혁명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주력군은 노동자부대였고, 연대군은 농민부대였고, 진보적 학생과 지식인들, 양심적 종교인들, 중소영세상인들과 룸펜프롤레타리아, 입장들에 따라 평가가 다른 중소자본가 민족자본가 층들이 엄호군이라는 그림이었다. 파업은 그 유효한 수단 중 하나였다. 파업은 혁명의 교육장이자 계기였다.

노동문학 작품들에서 숱하게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큰 목적하에서 이루어졌다. 한때 노동문학에서 전형성을 이야기할 때 결국 목적했던 것은 이런 전위적 활동, 대중적 활동의 형상화였다.

이 지난한 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출혈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착취가 본성인 자본의 성격 그대로 자본은 자신의 체재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대해 절대 관대하지 않다. 짐승이 자신의 먹이를 빼앗으려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무자비하듯이 자본 역시 그렇다. 자본 자체의 성격이 태생적으로 인간에 가깝기보다는 짐승에 가깝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근래에만도 미국자본이 저지른 그 수많은 테러와 전쟁을 돌아보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그 수많은 양민학살을 기억해 보라.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저질렀던 그 수많은 야만을 생각해 보라. 이 정도의 표현도 사실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다. 그 수많은 산재와 비관자살, 정신파탄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이 정도의 표현은 정말 정말 인간적인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여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온 까닭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결코 배 다른 자식들이 아니라는 것이다.(여기서 누구는 재빨리 그래서 노동과 자본 간의 화통의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겠지만 그런 뜻은 아니다.) 그 둘은 모두 노동이라는 인간의 대지 위에 서 있다. 하나는 기생의 형태로, 하나는 공감의 형태로. 그래서 우리는 늘 어떤 역사적 체재, 역사적 이데올로기를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 이 노동의 대지에 기반 해 생각과 꿈과 전망을 개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노동의 대지는 때로 가혹하여 자신의 뜻에서 너무 가버린 체제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메스를 덴다. 그래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패퇴는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국가들을 전복시킨 것도 아니다. 노동의 대지, 그 본성에 가깝지 않은 체재 하나가 그 토양으로부터 배제당해 그 수명을 다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현실 사회주의의 패배를 자본주의의 승리로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사회주의는 그렇게 노동의 대지로부터 ‘숙청’ 당했는데, 왜 그보다 못하다는 현실 자본주의는 오히려 영원불사할 것처럼 오히려 창궐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음은 너무나 이분법적이다. 우회적으로 답한다면 사회주의 체재는 그렇게 자신을 돌이키고 자신들이 모자란 부분들을 향해 두 손 두 발 들고 문을 여는데 자본주의 체재는 왜 그러질 못하는가를 생각해 보자. 왜냐하면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역사적으로 그 한계가 증명된 사회주의의 똑같은 재반복 재구성이 아니라 다시 자본주의 이후이기 때문이다.

난 사실 현존 사회주의의 패배는 현존 사회주의의 후기 시절을 구성했던 전위들의 패배이지 사회주의 대중들의 패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패배했다면 그 다음엔 무엇이 남는가. 역사에 대한 허무감 밖에 남을 것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들의 대중들이 ‘아직’ 패배하지 않았듯이 사회주의 사회의 대중들 역시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대중들은 그들의 무능하고 부패한 당을 역사의 뒤로 퇴출시켰다. 그들의 당은 그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지 못했다. 나중엔 정치적 자유마저 현저히 후퇴시켰다. 불가피한 체재 경쟁과 냉전은 더더욱 그런 폐해들을 부추겼다.

자본주의의 개인들에 비해 사회주의의 집단은 너무나 몸이 비대해졌고 무거웠다. 정치는 권력화했고, 창조적 열정은 꺾였다. 그렇게 ‘현존 사회주의’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우리는 다시 우군을 잃은 상태에서 자본주의의 일상을 뛰어넘기 위한 다른 기획들을 준비해야 한다. <기사 이어집니다>
송경동 시인은 얼마 전 포항건설노동자 집회에서 시를 낭송했다는 이유로 포항경찰서에서 출두요구서를 받았다. 책상에서 쓰는 시보다 공사판에서 투쟁현장에서 쓰는 시가 많다고 한다. 2006년에 첫시집 <꿀잠>을 삶이보이는창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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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1)

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1)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3-1) - 노동자 선동하는 송경동 시인

송경동(시인) 

민중언론 참세상은 잊혀지거나 몰랐던, 하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노동문학 작가들의 삶과 문학의 솔직한 고백을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의 제목으로 연재한다. 앞으로 연재될 글들은 지난 7월 8일 '인천남구 학산 문화원'의 주최로 스무 명의 노동문학 작가가 참여하여 진행된 '노동문학 작가대회-노동문학의 회고와 전망'의 자리에서 발표된 글이다. 이번 기획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진행합니다. - 편집자 주


세계적 시야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시 부문 수상자인 노동자 시인 백무산(35) 씨는 “이 상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로 받아들인다” 기운찬 발언으로 수상 연설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조국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습니다. 보호받을 재산도, 보장받을 자유도, 꿈꾸는 미래도 없습니다. 천만 노동자계급을 외면하는 조국은 누구의 조국입니까? 노동자계급의 진출과 싸움은 너무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보다 인간답게 살겠다는 집단적 분노,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사상은 바로 그런 현장에서 싹트고 있습니다. 역사를 뒤로 돌리려는 자, 반민중적인 6공에 대해 노동자계급과 함께 투쟁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는 연설 도중 오른팔을 치켜들고 구호를 선창하기도 했다. “출판자유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기성 문학계가 마련한 상을 노동자가 받는 그런 시상식은 우리 문학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에 걸맞는 그런 수상 연설은 ‘정신적 귀족주의’로 잘 다듬어진 시상식장 분위기를 일거에 교란시켜 버렸다.

1989년 제1회 이산문학상 수상식을 다룬 한 언론의 신문기사 내용이다. 신문기사의 내용도 가히 혁명적이다. 분단 이후 맥이 끊겼던 사회주의 문학, 노동문학의 재현이 마침내 이루어지던 시기. 모든 좋은 문학은 ‘노동문학’이라는, ‘노동문학’일 수밖에 없다는 명제가 자연스레 통용되던 시기의 사회 분위기를 위 시기는 함축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리곤 다시 15년여가 흘러갔다. 그 시절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가장 큰 변화는 1990년대 초반 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이었다. 노동자들의 소비에트가, 혁명적 당을 중심으로 한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이 자체 모순을 이기지 못하고 ‘세계사적인 전향’을 시도한 물결은 이제 막 혁명‘적’ 진출의 발을 떼고 있는 한국사회 ‘계급’에게는 대홍수와 같은 것이었다.

근대 시민혁명을 넘어 선 시대의 꿈의 키워드로 불리던 민족해방운동, 그리고 노동자계급혁명의 결과는 보이는 현상으로만 따지자면 비참하고 참담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왔던 비판의 요지들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도식화 위험을 감수하고 일별해 보면 이렇다.

무오류의 당은 오류투성을 넘어 부패했고,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던 서구의 합리적 이성보다도 더 이성적이고 과학적이어서 인간적이지 못했다. 노동자 직접민주주의로 이야기되는 권력의 해체와 분산, 평등은 요원해지고 사회주의 1당 독재는 오히려 관료주의와 권력의 집중을 가져왔다. 그 아래에서 민중권력은 점점 요식화 되고 새로운 선민들이 키워졌다.

사회주의적 생산(중앙계획경제)은 오히려 무능을 낳았고, 퇴보를 낳았다.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자율적 공동체는 꾸려지지 않았다. 민중들의 창의력은 배제당하고 수동적 인간형들이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전체 생산력이 떨어지고, 근로 의욕은 감퇴되면서, 창조적 노동의 힘은 키워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이후를 목표로 싸워왔던 구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상을 버리고 자본주의의 사적소유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자유경쟁(우리는 이를 기회의 균등이 배제된 불평등 경쟁이라고 불러 왔다. 사악한.)을 인정하고, 사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인정했다. 독점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과다 축적을 인정했다. 자본주의는 계급해방 무력투쟁을 통해서, 통해서만 물리쳐질 수 있고, 절멸시켜야 되는 사회의 악에서 더불어 공존해 나가야 할 필요악 정도로 복권되었다.

이런 현상들은 어떤 이에 따라서는 자본주의 이후는 없다는 확고한 믿음들을 갖게 했다. 자본주의의 꽃인 사적소유, 자유시장, 자유경쟁, 부르주아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선 더 이상의 꿈의 체제, 꿈의 제도, 꿈의 주체들은 없다는 역사의 죽음을 선포케하기도 했다.

이렇게 전 사회적으로 반동의 물결이 득세하자 우리들의 삶의 가치들도 바뀌어 갔다. 자본주의를 인정하거나, 아니면 자본주의를 넘어 설 수 있다는 구체적 꿈을 유보 상태로 두는 순간 자본주의 넘어서려는 모든 인간적 고뇌와 실천, 희생 역시 더 이상 덕목이 아닌 무의미하고 시대착오적이며 우스꽝스런 낭만적 포즈처럼 되어 버렸다.

자연스레 백무산 시인의 낙관적인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국사회 내의 ‘혁명적’ 분위기는 사그러들었다. 혁명적 분위기가 사그러들었다는 것은 혁명적 주체들 역시 사그러들었다는 이야기이다. 확고하고 명징하게 모두를 설득할 수 있고 스스로도 최면에 빠질 수 있는 혁명적 이론이 없으니 혁명적 주체들이 없고, 혁명적 주체들이 없으니 혁명적 대중들과 혁명적 상황들이 없고, 혁명적 대중들과 혁명적 상황들이 없으니 혁명적 꿈들조차 더 이상 꾸어지지가 않았다. 이제 막 역사의 무대로 화려하게 등장한 ‘노동계급 문학’이 퇴조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꿈이 사라진 곳에 남는 것은 리얼리즘에서 꿈이 빠질 때 자연주의만이 남듯 쳇바퀴도는 일상만이 남은 현실이다. 현실은 철저히 자본주의의 대지 위에 뿌리박을 때만이 최소 생존이 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과거와는 다른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들과 자리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예는 정말 부지기수로 많았지만 일정한 패턴을 따랐다. 노동자 곁에서 시민 곁으로 자본가 곁으로, 거리에서 공간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희생에서 사적이익으로, 실천에서 지식으로, 단체에서 기업으로, 당파성에서 관용으로, 민중권력에서 자본권력으로, 실천에서 이론으로, 이름없음에서 이름있음으로 등등.

물론 이러한 현상을 노동자계급문학이라는 확고한 자기 당파성 속에 서 있는 무리들만의 상처로 바라볼 까닭은 없다. 전체 사회의 변화였고, 시대 담론의 변화였고, 전체 사회 대중들이 이런 변화로 인한 결과 속에 있다. 전체 민족민중문학이 퇴조기를 맞았고, 더 나아가 ‘문학’이 위기를 맞았고, 더 나아가 삶의 문화 전체가 위기에 몰렸다. 쏟아져 나오는 그 수많은 문화상품들 속에서도 민중들은 문화생활을 찾지 못한다.

인터넷 게임이, 문화상품의 소비가 문화적 삶을 예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상품들 자체가 문화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삶이 문화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을 부추긴다는 기제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나의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내용의 문화상품들은 노동으로부터의 자기 소외와 더불어 2차 소외를 경험하게 한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가치와 부로부터 더욱 더 고립되는 현대인들의 삶 그 자체가 포괄적인 노동의 문화이다. 운동의 부문화를 넘어 총체적이고자 했던 노동자계급문학의 본령을 생각한다면 사실 주체 스스로가 주체 이외의 모든 사회계층과 상황으로부터 소외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이런 반동적 흐름, 패배적 관점으로부터 빨리 탈피해 나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동문학이, 노동자계급운동이 대중들로부터 소외당했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런 전도 현상을 일컬을 때 쓰여질 것이다.

이런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한국사회 노동자문학운동 역시 수세기를 면치 못했다. 유능한 활동인자들이 활동을 접고, 남아 있던 유능했던 활동인자들도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난망해 했다.

창작은 당당한 개진에서 회고로 넘어가고 다른 모색으로 넘어가고 절필로 넘어갔다. 있던 재산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물에 젖은 소금이 빠져나가듯 술술 빠져 나가는 모습을 대책없이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새로운 꿈과 활동의 상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해왔던 사업들은 모두 관성화되거나 정신이 빠진 채 형식화되었다. 유대감은 점점 경계없이 허물어지고 도대체 어느 경계에서 계급이 나뉘어지는 것인지, 세계관이 나뉘어지는 것인지 모호해 졌다. (기사 이어집니다)
송경동 시인은 얼마 전 포항건설노동자 집회에서 시를 낭송했다는 이유로 포항경찰서에서 출두요구서를 받았다. 책상에서 쓰는 시보다 공사판에서 투쟁현장에서 쓰는 시가 많다고 한다. 2006년에 첫시집 <꿀잠>을 삶이보이는창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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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싫어하게 된 소설가의 변명...안재성氏

* 아닌게 아니라 정말이지 요즘, 볼만한 소설 찾기 정말 힘들다. 서점 소설 코너에서 서성대다 결국 뒤돌아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사정은 인터넷 서점에서도 마찬가지. 결국 고전인가, 조이스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 이도 만만치가 않다. 소설의 시,공간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탓이다. 이제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을 다시 보고있다. 내 바람은 우리 소설 속에 조이스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언어와 삶을 사실적이되 풍부한 비유와 표현력으로 무장한 소설 말이다. 물론 안재성의 다큐같은 소설도 좋지만.

아래글은 민중언론 참세상에 소개된 소설가 안재성이 말하는 일종의 '소설론'이다. 참고할만하여 전문을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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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싫어하게 된 소설가의 변명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1) - 포크레인 운전하는 소설가 안재성
안재성(소설가) 

민중언론 참세상은 잊혀지거나 몰랐던, 하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노동문학 작가들의 삶과 문학의 솔직한 고백을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의 제목으로 연재한다. 앞으로 연재될 글들은 지난 7월 8일 '인천남구 학산 문화원'의 주최로 스무 명의 노동문학 작가가 참여하여 진행된 '노동문학 작가대회-노동문학의 회고와 전망'의 자리에서 발표된 글이다. - 편집자 주



1. 나는 가끔, 공개하기 부끄럽도록 단순하고 유치한 주장을 하곤 한다. 정치문제, 여성문제, 문학의 문제까지 도무지 지성적이지 못한 해석과 냉소적인 처방으로 친구들의 핀잔을 듣는다. 친구들은 나의 이 단순무식이 십여 년 세월을 포클레인 기사로 막노동판을 누비고 다닌 탓이라 변호해주지만, 사실은 그것이 나의 본질적인 한계이자 때로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 자신은 잘 알고 있다.

거짓말이란 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소설을 쓰느니 사실에 근거한 역사 다큐멘터리를 쓰겠다는 선언은 그 중에서는 상당히 합리적인 결정에 속한다.

소설가라는 사람이 소설을 우습게보게 된 사연에 별다른 논리나 철학이 있던 건 아니다. 알량한 소설 두어 편 펴낸 이후로는 욕심에 맞는 수준의 글이 써지지도 않고 억지로 쓴 책들마저 평단과 독자들의 냉대를 받을 때부터 소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90년대 들어 한국문단을 주도한 새로운 경향의 소설들이 불만을 누적시켰다. 이들 소설들 속에서 80년대까지 때로는 교조주의 도식처럼 소설의 주제가 되었던 인간의 문제, 정의의 문제, 이타적인 희생의 가치 따위는 비웃음거리로 치부되었다.

불륜을 토대로 한 온갖 뒤틀리고 비틀어진 연애담, 독자로부터 동정도 감동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소위 쿨한 사랑과 결혼, 이혼 이야기들, 정 쓸 게 없으면 소설가 이야기를 쓰다 못해 엽기적인 소재들을 들춰내는 소설들이 도무지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몰래 읽었던 포르노보다도 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행위 묘사가 필수처럼 되어, 한때 민중주의적인 문학을 했다는 후배들의 작품들 속에서도 없어도 되는 양념이 되어 참맛을 버리는 것도 우스웠다.

새로운 작가들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감칠맛 나는 문장들은 글 못 쓰는 소설가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만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 읽어본 책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역겨운 작품이 더 많았다. 아무리 훌륭한 문장과 감성을 갖추었더라도 사적인 감정을 다루었을 뿐인 ‘사소설’에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꼭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그것도 세련된 가식으로 포장된 가짜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 들뿐이었다.


벗어나기 힘든 80년대 경험의 한계에 갇혀 고지식한 주의주장과 직설적인 문장의 한계에서 벗어날 능력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나는 도저히 그들의 풍부한 감수성과 현대적 감각을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그런 글들에 매달리는 출판문화와 처녀독자들의 독서취향이 싫어졌다. 소설이 싫어졌고 소설가들이 싫어졌으며 독자들마저 경멸하게 되었다. 물론 아무것도 쓰지 않게 되었다.

포클레인 기사로, 복숭아 과수원과 소규모 한우 농장을 하면서 십년 가까이 문학을 멀리하던 끝에 내가 선택한 방식은 소설의 수법을 차용해 보다 읽기 좋게 만든 다큐멘터리였다. 2년 전 발간한 <경성트로이카>와 이번에 출판되는 <이관술 1902-1950>이 그것이다.

소설도, 논문도 아닌 애매한 형식이 되다보니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기 어려운 처지가 되어버렸지만 적어도 역사와 사회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숨겨졌던 진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물론, 나의 단순명쾌한 해법이 다른 작가들에게는 전혀 생경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며칠 전, 절친한 친구가 퍽이나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말 한다고 서운해 하지 마라. 이런 말하기 미안하지만, 내가 보니까 너는 소설보다 다큐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아. 너의 문장이나 관심이 그래. 이런 말 한다고 충격 받는 거 아니지?”

관념주의적인 작가도 아니고 노동문학으로 시작해서 지금도 전업 작가로서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 이야기만 쓰고 있는 녀석의 말이야말로 나를 무척 놀라게 했다. 소설보다 다큐에 어울린다는 평가가 왜 서운하고 미안하고 충격이란 말인가?

인터넷 서점의 집계에 따르면 <경성트로이카>의 주된 독자는 신문방송기자요 다음이 역사학자, 노동운동가들이었다. 내가 쓴 책이 사실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다는 데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소설이 아니라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식의 평가를 듣다니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여기서 나의 그 무지막지한 말버릇이 또다시 발동하는 것을 어쩌랴? 소설가들이여 네 주제를 알라! 어설픈 거짓말로 너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 말고 타인의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을 각색해 보라, 안되면 차라리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써라. 그러면 모든 것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2. 누구로부터 배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내 의식 속에는 소설가의 기원이 광대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지배자들의 유흥 장소에서, 아니면 시장바닥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잔돈을 챙기는 어릿광대들로부터 소설을 포함한 문학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해 왔다.

소설, 혹은 소설가가 대중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고 지도적인 위치를 갖게 된 것은 불과 1,2백 년 전 계몽주의 시대 들어서라고 말이다. 빅토르 위고, 톨스토이, 헤밍웨이 같은 대가들이 당대의 사회상을 그리고 인류가 나갈 길을 제시함으로서 존경을 받게 되었다고 말이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게 된 것 역시 계몽주의 시대의 작품들 때문이었다.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만난 작가들은 재담이나 들려주는 광대가 아니라 선생이요 학자요 지도자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의 소설가들은 계몽가의 직함을 버리고 새로운 지위를 추구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는 90년대 들어 변화가 시작되었다. 광대도 선생도 아닌 이 새로운 위치를 딱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생각나지 않지만 본인들이 인식하든 말든 또 다른 특권층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문제는 오늘의 소설가들이 중세 이전의 광대들은 물론 계몽주의 시대 소설 선생님들보다도 더 인기가 없고, 존경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계몽주의 시절인 7,80년대는 소설가가 존경도 받고 책도 제법 잘 팔렸다. 웬만하면 수십만 권씩 팔렸으니까.

90년대 이후로는 그런 재미가 없어졌다. 유명하다는 작가들조차 1만부 팔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니 말이다. 개봉 보름 만에 1천만 관객을 자랑하는 진짜 ‘괴물’같은 영화들이 등장하는 시대에 불과 수천 독자를 얻기가 힘드니 안쓰러운 정도가 아니다.

포클레인 기사의 무지막지한 시각으로 보건데 이는 명백히 자업자득이다. 누가 돈을 주고 남의 사생활 일기를 사보려 하겠는가? 안네프랑크의 절박한 일기도 아니고 한량한 소설가의 고충이니 연애담이나 늘어놓은 느끼한 문장의 일기를 돈 주고 사겠는가?

기름을 처바른 듯 감각적이고도 난해한 문장, 줄거리조차 불명확한 지루한 이야기들, 주인공의 이름도 외우기 힘든 외국 배경의 소설들을 읽어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작가 본인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문학적으로는 새로운 시도라 칭송받겠지만 나 같은 단순무식한 독자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남을 즐겁게 하고 눈물과 웃음을 던져주는 전통적인 의미의 광대에서 타인을 가르치고 계몽하는 사상가의 반열까지 올랐던 소설가들의 변신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문학의 죽음은 이제 공공연한 화두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든 대중의 사랑을 받아보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해 보지만 존재마저 위태로운 처지가 되어 버렸다. 존경도 인기도 잃어버린 가난하고 외로운 존재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3. 거름더미 속의 지렁이 떼를 들여다보듯 살아남으려 버둥대는 소설가들의 몸부림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일시적으로 다큐작가로 변신하기는 했으나 언젠가는 다시 소설의 세계를 기웃거릴 처지를 생각해 냉소를 거두고 진지하게 몇 마디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깡무식을 자처한 마당에 잘 팔리는 영화들과 고전문학의 공통점을 나열해 보고 싶다. 고귀하고 수준 높은 문학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다분히 폭력적인 진단으로 보이겠지만 나의 태생이 그런 걸 어찌 하겠는가?

내가 보건데 수백만의 관객이 몰리는 영화들과 수많은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고전문학의 첫 번째 공통점은 연애 혹은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는 점이다. 혹은 ‘괴물’이나 ‘한반도’처럼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반면, 순수한 연애영화는 수십만 관객을 끌어들이기도 어렵다. 관객들이 진지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우리를 몰입시키게 만든 대부분의 세계명작이나 한국의 7,80년대 소설들에서 연애이야기는 극히 부수적인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들 소설이나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사회와 역사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과 희생, 이타적인 사랑과 정의 같은 것들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매우 사실주의적이라는 점이다. 역사물은 물론 공상영화조차도, 눈만 뜨고 있으면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고 의문을 품을 여지도 없이 가공의 현실에 흡입되고 만다.

뒤틀리고 엽기적인 심리영화 내지 실험적인 영화들, 혹은 기본적인 사실주의 기술에 미치지 못하는 단편영화의 관객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과 비교가 된다. 인간의 말초적인 본능이나 분노 같은 것들을 엽기적인 줄거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김모 감독은 한국영화 관객들의 저질성을 비난하며 다시는 한국에서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했다는데, 본인이야말로 가장 저질적인 상업영화 제작자일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수많은 독자를 열광케 하던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서양문학과 80년대 이전의 한국문학이 극히 사실주의적인 줄거리와 표현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니 실험정신 따위는 학교에서나 배우고 나와서는 싹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셋째, 눈물이 있으되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에게 바쳐지는 감동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연인이 헤어지는 장면에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등장인물에게 바치는 감동의 깊이와 같을 수는 없다.

그 타인이라는 것이 국가일 수도 있고 정의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지만, 이타적인 희생은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훌륭한 재료다. 이 역시 세계명작들의 공통점의 하나임은 물론이다. ‘쿨’이니 ‘세련’이니 하는 용어들은 본인이 연애할 때나 활용하기를 바란다.

그밖에도 이들 영화와 명작들의 공통점은 많은데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상식적이다. 잘 된 영화는 감독의 시점이 아니라 관객의 시점에서 허점이 보이지 않도록 철저히 완성도를 높인다. 좋은 소설도 작가의 주관적인 시각을 배재하고 독자의 시각에 맞추어 쓰기 때문에 한 번 책을 들면 좀처럼 놓을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이 높다.

여기서 문학성의 기본이 되는 문장력, 사건 전개의 합리성, 일관성 같은 것들은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어려울 정도의 필수사항이다. 만약 작가라는 사람이 이런 것들이 안 된다 토로한다면 앞으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할 게 틀림없다.

소설을 영화처럼만 쓸 수는 없고, 영화가 지고의 가치인 것은 물론 아니다. 소설이든 영화든 많은 사람이 본다고 최고의 작품인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요즘 영화들이 과거 계몽시대 문학, 말 그대로 문학의 전성시대와 매우 유사한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참고할 만하지 않을까? 저 많은 대중이 좋아하는 방식을 유치하다는 한 마디로 평가절하하려는 특권의식부터 버리고 말이다.
 

4. 문학이 죽어간다는 아우성으로 숨이 넘어가는 판에 계몽주의니 사실주의 문학을 회고해 보라고 떠들다니 시대착오적이란 비웃음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요즘 신세대들의 감정을 연구하고 이해해 보라느니, 감각적인 문장기법을 공부하라느니, 새로운 시대에 맞는 주제의식을 설정하라는 소리들도 뒤따라온다.

당신들이 틀렸다. 미안하게도 나는 복고주의자가 아니다. 나름대로 냉철한 현실주의자일 뿐이다. 나야말로 말하고 싶다. 문학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말고, 소설을 실험대상으로 삼지 말고, 이 시대에 어떤 이야기가 필요한가를 좀 더 냉정히 생각해 보라고. 당신들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소설 좀 그만 쓰라고. 저 단순하고 계몽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영화에 왜 1천만 명이 몰려가는지 연구 좀 해보라고.

따지고 보면 오늘의 문학 위기는 작가란 사람들이 광대도 아니고 선생도 아닌, 새로운 특권층이 되려다가 빚어낸 현상 아니냐고. 그렇게 귀족이 되고 싶거든 논술선생으로 진출해 돈이나 왕창 벌어 강남에 집을 사라고 말이다.

여전히 희망은 있다는 식의 상투적인 결론으로 맺고 싶지는 않지만, 요즘 우송되어 오는 몇몇 작가들의 신간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곤 한다. 그래, 이거야. 이런 작가들이 나와야 해. 장래성이 있어. 좀 더 재미있게 쓰기만 한다면 한국소설의 미래를 담보할 거야. 혼자서 격려하고 기뻐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또 다른 작가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게 너무 좋다. 그들에게 힘을 합치자고 말하고 싶다. 서로 격려도 하고 현실에 격분도 하고 자료도 공유하며 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들의 이름은 비밀이다.
소설가 안재성은 소설 <파업>으로 노동소설의 큰 장을 열었다. <황금이삭>에 이어 <경성 트로이카>를 발표하면서, 그가 살아있음을 알렸다. 최근에 <이관술 1902-1950>을 '사회평론'에서 출간하였다. 노동문학이 '한 물 갔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안재성은 작품으로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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