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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04
    지금 우리에게 레닌이 필요한가?(최세진 글)(1)
    야단법석
  2. 2006/12/17
    눈이, 저렇게 작심한듯, 처연히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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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가집회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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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9/16
    명망가와 활동가(2)
    야단법석

지금 우리에게 레닌이 필요한가?(최세진 글)

지금 우리에게 레닌이 필요한가?


최세진





‘종간호가 될 예정’이라는 12월호에 글을 준비해달라는 쪽지를 받고는 착잡한 기분으로 한동안 무엇을 쓰면 좋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작년 한국을 떠나서 베네수엘라를 거쳐서 현재 캐나다에 머물면서 품어온 생각을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먼저 현재 세계를 자극하고 있는 남미와 베네수엘라의 혁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는 혁명은 그야말로 세계 각국의 활동가 사이에서 관심의 촛점입니다. 제가 만나본 한 캐나다 활동가는 베네수엘라에 다녀온 뒤 ‘혁명의 사우나’에서 몸을 정화시키고 오는 기분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더군요. 베네수엘라에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 베네수엘라에 펼쳐지는 혁명에 자극받은 남미의 민중들은 현재 대륙 전체를 흔들면서 좌파 도미노 현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서도 차베스의 정책을 연구하거나, 최근베네수엘라와 남미 상황에 대한 기사나 글들이 발표되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런 연구와 글들은 ‘차베스’와 ‘차베스 정권’에 머물고 말더군요.
그런데 그 글들을 읽다 보면, 솔직히 그런 연구가 도대체 현재 한국의 민중운동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왜 민중을 입에 달고 사는 운동가들이 베네수엘라를 민중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차베스의 관점에서 보려 하는 걸까? 왜 차베스 정권을 만들기까지의 민중들의 투쟁을 보지 않고, 현재의 차베스 정책에만 관심을 가지는 걸까? 지금 우리에게 차베스가 없어서 운동이 질곡에 빠져 있는 건가? 아니 차베스가 한국에 오면 현재 베네수엘라와 같은 혁명이 가능하기나 한가? 베네수엘라에서 펼쳐지고 있는 정책들이 한국에서 대안으로 적용 가능한 것인가?

우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혁명을 이끌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선 민중적인 시각이 아닐 뿐더러, 베네수엘라 현실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착각일 뿐입니다. 오히려 차베스 정권 그 자체가 기나긴 베네수엘라 민중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작년에 베네수엘라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물론 차베스 정권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다 제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차베스의 영광이 아니고, 차베스 정권을 만들어 낸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기나긴 투쟁과 운동의 역사였습니다. (당시 이런저런 사정으로 현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도 계속 아쉬울 따름입니다) 겉에서 보면 차베스의 정책에 대해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베네수엘라 민중들과 운동진영은 차베스 대통령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야 ‘우리’의 말을 듣는 대통령이 나왔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여당(차베스의 정당)이든 야당(우파 정당)이든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혁명을 지지한다.” 즉, 민중들이 차베스 정권을 선택한 것이지, 차베스가 민중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중들은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습니다.

베네수엘라 민중 운동 진영은 약 20여 년 전부터 빈민들과 농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교육하고, 조직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베네수엘라 혁명에서는 바로 그들 민중이 혁명의 주체 세력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 ‘활동가’라는 말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민중과 활동가를 구별하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한 상태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베네수엘라 활동가들이 기존의 좌파적 전통과 달리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 버리고 다른 길을 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베네수엘라 활동가들은 민중공동체 안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보다는, 기존의 권력을 급속히 해체하고, 민중들을 공동체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만들었으며, 그들이 혁명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활동가와 일반 민중이 구별되지 않는 현재 상태를 낳은 것입니다. 이제 한세대를 넘어가는 역사를 갖는 지역 공동체들에서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민중을 위한 위대한 혁명가가 되는 꿈을 꿉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지금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미 혁명가이자 활동가라고 봐도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것은 차베스가 정권 초기 헌법 개정을 할 때 민중들에게 스스로 혁명 헌법을 만들도록 맡길 수 있었던 자신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또한 2002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을 당시, 좌파 활동가들은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를 떠올리며 도망가기 바빴는데, 민중들은 자발적으로 봉기하면서 이 군사 쿠데타를 무력화 시켜버렸습니다. 스스로 주인으로 인식하고, 혁명의 주체가 된 민중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차베스는 다음날 “여러분들 민중이 스스로 민중권력임을 입증한 날이었다.”고 연설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지요. “가난을 해결할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가난한 자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그 민중들은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민중들은 우파들의 공격에 맞서서 차베스 정권을 사수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지만, 안에서는 차베스 정권의 권력집중이나 그 관료들에 맞선 투쟁을 지금도 계속하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혁명 속의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이번에는 예전에 차베스 정권과 닮은꼴로 많이 비교되는 칠레의 아옌데 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봅시다.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후 3년 내에 약 10%의 인구가 줄어들었습니다. 최저 약 3000명에서 3만 명이 암살당하거나 실종되었으며, 대규모 망명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결과 아옌데가 집권할 당시 1천만 명이었던 칠레 인구가 3년 내에 900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그 100만 명이 모두 활동가는 아니었겠지만, 활동가였거나 최소한 적극적 지지자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로 치자면 현재 인구가 약 5천만 명이니까, 약 500만 명이 활동가거나 혁명의 적극적 지지자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바로 그 정도의 두터운 활동가층이 있었기 때문에, 아옌데의 선거 혁명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터운 활동가층이 있었음에도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세력에게 전복당하고 말았습니다. 현재의 우리 상태를 한번 보죠.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의 수가 2006년 6월 현재 76만 명이랍니다. 이 중에 활동가라고 볼 수 있는 건 몇 %정도 될까요?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당원 숫자가 약 8만, 그리고 그 외 다른 정치조직을 다 합치면 엄청나게 뻥튀기 해서 약 1만 명 될까요? 그럼 한번 계산해 봅시다. 이 사람들 중에 겹치는 사람이 없다고 치고, 그 인원을 전부 다 ‘활동가’로 봐도 겨우 100만 명을 넘지 못 합니다. 전체 인구의 2%가 안 됩니다. 실제로는 어떨까요? 심지어 NL 주사파까지 활동가라고 쳐도 남한의 활동가 숫자는 채 5만 명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전체 인구의 0.1%도 안 됩니다. 그런데 만약 좌파 활동가만 계산한다면?

왜 활동가의 숫자에 그렇게 집착하냐고 따지고 싶은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민중이 주체가 되지 못했던 ‘혁명’이 어떤 말로를 겪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민중들을 믿지 못해 혁명의 대열에서 민중을 소외시키고, 권력은 중앙으로 집중시킨 채 몇몇 ‘지도부’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그 혁명은 끝내 부패한 독재권력으로만 남아 결국 민중들에 의해 다시 한 번 거부당하는 운명을 맞이했었습니다.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너무도 깊기만 합니다.
이번에는 레닌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지요. 잘 알고 있는 사실처럼,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의 끝은 레닌과 볼셰비키가 마무리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 혁명을 과연 레닌이나 볼셰비키의 혁명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레닌은 당시 십 수 년을 외국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가 노동자 봉기 소식을 들은 후 러시아로 돌아왔고, 볼셰비키는 당시까지도 혁명 진영 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했으며, 진행 중인 혁명의 방향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볼셰비키는 소비에트 내에서 다양한 혁명진영 중 한 그룹에 불과했습니다. ‘노동계급 독재’라는 개념은 레닌이 복귀한 이후 제창된 것이었고, 최종적으로 ‘사회주의소비에트공화국’으로 그 혁명의 성격이 결정된 것은 레닌과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인 1918년 1월이었습니다.

조금 앞으로 돌아가 보지요. 우리가 보통 1905년 러시아 혁명을 이야기 할 때 그 출발선으로 1905년 1월 겨울궁전 앞에서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학살되었던 ‘피의 일요일’ 사건을 떠 올리고, 당시 인민 봉기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찍었던 오데사의 전함 포템킨 수병들의 봉기를 쉽게 떠올립니다. 하지만, 피의 일요일 그 시위대열을 이끌었던 것은 볼셰비키가 아니었고, 그 피의 학살 직후 노동자들의 파업을 조직한 것 또한 주로 멘셰비키였습니다. 나중에 레닌이 ‘러시아 혁명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평가했던 포템킨호의 봉기를 이끌었던 수병들이 실은 아나키스트들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포템킨호에서 노동자위원회 대표로 뽑혔던 마뚜센꼬는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 조직 혐의로 오데사에서 체포되어 1907년 사형 당했습니다. 또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는 당시 오데사의 수병들과 인민들의 봉기를 사수하기 위한 행동을 전혀 조직하지 못 했었습니다.

그럼 더 앞으로 가보기로 하지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기 3년 전 1902년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탁월한 문건을 발표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발표했을 당시 러시아 노동자의 60%가 그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 문건이 노동자들의 머리 속에 ‘레닌’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글을 참 많이들 읽고, 인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그 문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그 글 자체의 내용보다는 ‘노동자의 60%가 읽었다’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배경을 빼고 나면 그 글은 사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레닌이 무대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혁명을 기다리던 숫한 노동자들이 이미 거기에 존재했기에 그 글은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만일 당시 그렇게 준비된 노동자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탁월한 글이라고 할지라도 그 글은 그냥 꿈속에 사는 좌파의 의미 없는 선동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상황이라면 레닌은 아마도 전혀 다른 글을 썼겠지요.

저는 그 문건이 러시아 혁명의 시작이라고 생각지 않으니, 조금 더 앞으로 가봅시다. 잘 알다시피 레닌의 볼셰비키가 소속되어 있던 ‘맑스주의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자당’은 겨우 1898년에 조직된 신생 정당이었으며, 1903년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나누어질 때 볼셰비키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멘셰비키를 누르고 다수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신생 정당이 그 광대한 대륙의 노동계급을 그 단시간 내에 그렇게 조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건 대단한 오해거나, 승자의 과장된 포장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 이전 오랜 기간 러시아 민중운동의 성과를 레닌과 볼셰비키가 수확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지금 우리의 상황이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어 수확할 상황이라고 판단한다면, 레닌이 펼쳤던 당시의 전술이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80년대에 가졌던 그 커다란 착각을 지금까지 계속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80년대 이후 과연 우리에게 노동계급의 60%가 혁명적 문건을 찾던 시기가 있었던가요? 전체 인구의 10%가 활동가였던 때가 있었던가요? 러시아와 칠레는 그럼에도 실패했습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의 사망 이후 광범위한 대중들에 의해 진행되었던 촛불시위를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2002년 촛불시위에 도달하기까지 배경이 되었던 다양한 투쟁들과 사건들, 선전과 소통, 대중적 참여는 다 사라지고, 촛불만 남은 모습을 우리는 FTA 반대 투쟁에서 봅니다. 당시 촛불시위의 의미는 ‘촛불’에 있었던 것이 아닌데, 현재 민중운동 진영은 오로지 촛불만 기억하고, 그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2002년 이후 아무런 반성 없이 운동 조직의 관료화와 비민주적인 운영, 소수 명망가 중심의 집회문화는 그대로 둔 채 촛불만 켜면 대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만저만 심한 착각이 아닙니다. 좌파진영에게 있어서 꼭 레닌과 볼셰비키가 그런 촛불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혁명적 고양기도 아니고, 20세기초 러시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던져졌던 레닌은 우리의 착각만 크게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됩니다. 80년대 간절히 혁명을 원하던 우리는 그 시기를 레닌의 눈을 통해 20세기 초 러시아의 혁명적 시기라고 착각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민중운동의 성과를 수확하는 시기가 아니라, 아직 젊디젊은 우리의 운동이 이제 막 던져진 씨앗을 파릇파릇 새싹으로 가꾸어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중운동의 결과물을 수확하는 레닌이 아니라, 거름을 주고 잡초를 솎아내고, 오랜 기간 그 속에서 함께 할 활동가들입니다. 우리는 ‘맑스주의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자당’이 등장하기 이전의 러시아 민중운동을 살펴봐야 합니다. 민중들이 계급정당의 탄생을 요구하게 된 과정을 보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레닌의 막판 뒤집기가 아니라, 19세기의 러시아 민중운동일 것이며, 차베스 이전의 베네수엘라 민중운동 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가졌던 ‘혁명적’ 착각에서 벗어나 왜곡된 운동 진영의 구조를 개편하고, 새롭게 인식한 상황에 전망과 이에 걸맞는 활동가 재생산 일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만약 레닌에게 배워올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항상 주장했던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새로운 이론으로 무장하고, 대중들에게 알리고, 그 선전을 바탕으로 조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운동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 상황을 한번 돌아보지요. 좌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은 사회과학 서점과 출판사가 문을 닫고, 민중문화 단체가 하나둘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이건 새로운 현상도 아닙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입니다. 과연 한국에 ‘좌파’가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요? 현재 한국에 좌파가 존재하다면, 그 ‘소위’ 좌파는, 생각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토론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재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문화를 포기했습니다. 이는 ‘싸움’은 있더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은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투쟁들은 과거의 축적된 운동을 소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은 현재의 운동뿐만 아니라, 미래의 투쟁까지도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노정연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소식은 그래서 더 착잡합니다.

아직도 ‘커리큘럼’이라는 게 있는 곳들을 뒤져보면, 80년대 만들어진 학습 과정이 버젓이 버티고 있습니다. 80년대에 만들어진 19세기의 이론으로 21세기를 바꾸겠다고 주장하는 건 한마디로 코메디입니다. 이건 ‘운동’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입니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자기 꿈속에나 있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그건 활동가가 아니라 몽상가겠지요.

현재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안에서 그 ‘권력’을 쥐고 벌이는 주사파들의 삽질은 말 그대로 그냥 삽질일 뿐입니다. 그 삽질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도, 사람을 변화시키지도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조직 내 권력 싸움에 매몰되어서, 민중들로부터 이탈되고, 고립된 그런 삽질 권력다툼에 같이 동참해봐야 남는 건 ‘먼지구덩이’일 뿐입니다. 제발 이제라도 그 삽질에 동참하는 것을 중단합시다. 이는 그 조직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조직 내에서 우리의 활동방향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좌파는 다시 민중 속으로 들어가고,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해야 합니다. 다시 학습과 토론 시스템을 세우고, 대중과 조직 내에 좌파적 요구에 대한 선전을 강화하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조직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토론하고, 공부하고, 선전하고, 조직하는 게 안 되니까 그 쪼그마한 운동권내의 권력싸움에 뛰어드는 겁니다. 가장 쉬우며, 가장 빨리 망하는 길이 운동권 내 ‘권력’ 잡기 놀이판을 펼치는 것이고, 조직 밖의 98%의 민중들을 만나는 게 아니고, 채 2%도 안 되는 조직원 내에서 ‘권력 잡기’ 놀이를 펼치고, 거기에 역량을 투여하는 겁니다. 도대체 지금 그 안의 권력투쟁이 왜 중요할까요? 내일 혁명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안에서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이후 혁명의 진행에 필수적인 상황인가요? 저에게는 오히려 거기에 발목 잡힌 상황으로만 보일 뿐입니다.

최소한 30년을 준비하는 좌파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하자. 이게 기본입니다. 현재에 매몰되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 나갑시다. 각 조직에서는 헤게모니 싸움에 역량을 소비하기 보다는 2-3년 앞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의견으로 ‘조직내 조직활동’을 전개해 나갑시다.

제가 한번은 베네수엘라 활동가들에게 의문을 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빈부격차는 여전하고, 전면적인 경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차베스 정권 이후 무료 의료 등 여러 가지 복지제도가 들어섰지만,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서구형 복지국가를 벗어나기 힘들지 않겠느냐. 왜 현재 차베스는 전면적인 경제 혁명을 추진하지 않는 것이냐. 만일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차베스는 ‘포퓰리스트’라는 혐의를 벗기 힘들 것이다.” 그러자 그 활동가는 “네 말이 다 맞다. 아직 빈부격차는 여전하고, 전면적인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혁명을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모든 혁명이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생각을 버려라. 베네수엘라에는 베네수엘라에 맞는 혁명이 있는 거야. 만일 너희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건 또 다른 혁명이겠지. 우리는 러시아가 경제 체제를 먼저 변경하고, 정치 혁명을 진행하는 것과는 반대로 진행이 되었어. 우리는 먼저 정치 혁명이 일어난 후 경제 혁명으로 나아가는 단계에 있는 거야. 차베스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혁명에 있어서 그의 역할을 썩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혁명은 차베스가 하는 게 아니야. 바로 우리 민중들이 하는 거지.”

우리는 이제 우리의 혁명을 다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 혁명은 ‘우리’ 활동가의 혁명이 아니고, 민중과 노동계급의 혁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시작합시다. 다시 민중 속으로 들어갑시다.

글을 쓰다가 지나간 생각들

- 우파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돈 계산만 잘하면 된다. 주사파도 공부할 필요가 없다. 지도자 동지 말씀만 잘 따라가면 되니까. 하지만 좌파는 공부해야 된다. 민중이 믿을 거라곤 민중 자기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 레닌과 볼셰비키로 상징되는 러시아 혁명사 역시 승자의 기록이다.

- 레닌이 무엇을 했나 보다, 왜, 어떻게 당시 러시아 민중들이 레닌을 선택했는지 알아봐야 한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의 민중을 보지 않고, 레닌과 차베스를 찬양하느라 바쁜 사람들은 혁명을 위해서 ‘영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 골라서 자기들의 영웅을 만드는 운동을 하면 된다. 아니면 지가 영웅이 되던지.
 -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지도’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민중 혁명이나 계급 혁명으로 부를 것이 아니라 ‘지도부 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 싶어 하는 세상은 ‘운동권 세상’이 아니고, 민중이 해방된 세상이다. 자기 머리 속에 원하는 혁명을 위해 민중의 이름을 팔지 마라.

- 레닌, 차베스, 아옌데를 이야기하기 전에, 러시아 민중과 베네수엘라 민중, 칠레 민중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자.

- 미국 핑계 좀 대지 마라.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리는 남미는 지난 19세기까지 400여 년간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20세기 이후에는 남한이나 북한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훨씬 더 강력한 미국의 지배 아래 놓여있었다.

- 현재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관료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 내 대부분의 다른 단체들도 관료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 ‘관료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거기서 일하는 상근 활동가들을 ‘관료’라고 비난하는 건 사실 코메디다. 관료주의와 관료가 싫으면 의사결정과 집행체계에 있어서 골간이 되는 그 관료제를 먼저 바꿔야 한다.

-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 보면 다음 구절이 나온다.
주인공 셀던은 앞으로 3백년 후에 다가올 암흑의 세월 3만년을 예감하고, 그 3만년을 1천년으로 줄이기 위해 조직을 건설한다. 그에 대한 질문과 답변.

질문 : 인류의 전체 역사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가?
답변 : 네.
질문 : 쉽게?
답변 : 아니요. 엄청나게 어려울 것입니다.
질문 : 왜 그런가?
답변: 행성에 가득한 사람들의 역사심리학적인 경향은 거대한 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비슷한 수준의 관성과 만나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거나, 만일 관련된 사람의 숫자가 적다면 변화를 위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 맑스와 엥겔스, 로자가 살았던 독일조차 나치라는 가장 극악한 극우 정권을 막지 못했다. 나치가 태동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역사상 가장 자유롭고, 민주적인 헌법 체계를 가졌던 국가로 남아있다. 나치는 그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당시 독일 민중들은 왜 나치를 선택했으며, 왜 독일의 자유주의자들과 좌파 노동운동은 결국 나치를 막지 못하고 거듭해서 실패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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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저렇게 작심한듯, 처연히 내리고...

 

간 밤에 내린 눈이
느지막이 한 술 떠는 일요일 아침까지
끝날줄을 모르고 내린다.

지난 밤, 천둥 번개가 치더니
그예 또 비가 오는 게지
쉬 지나쳐버렸건만
잠자리까지 가져온 마누라의 눈걱정
대거리로 지나쳤는데

꼴깍 하룻밤을 지나
한낮이 가까운 시방까지도
무심한 나를 비웃듯
그칠 줄 모르네

교회 간 아들녀석 오면
찜질방에 가려던 마음
날은 오싹하게 추워
몸도 마음도 방구들에 눌러붙는데

눈이
저렇게 작심한듯
처연히 내리니

몸도, 마음도 자꾸 동한다
밖으로, 바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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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집회 잘 다녀왔습니다^*^

00선생님들께,

 

선생님들의 염려 덕택에 000, 000 연가집회 잘 다녀왔습니다^*^

 

그 어떤 교원정책과 교육정책도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만남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경쟁과 효율성도 교육공동체의 인격적인 관계를 훼손해선 안됩니다.

 

교원평가에 대하여 조,중,동을 비롯한 이땅의 메이저언론이 총동원되어 연일 '전교조연가투쟁' 비난과 징계방침을 보도했지요. 틈만 나면 대한민국의 공익이 우선이라는 그들 언론사들이 언제 선진국의 교원평가 사례나 교육공공성에 입각한 분석적인 기획기사 한 번 제대로 실어준적 있었는지요.

 

국민이 접할 수 있는 내용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다수의 교사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은 당사자로서 신분의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기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교원평가를 반대해왔지요.

 

하지만 교육가족임을 늘상 입버릇처럼 달고다니면서도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수업 외 잡무를 경감하고, 수업시수를 법제화해서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세워 달라는 학교현장의 필요불가결한 요구 앞에선 모르쇠로 일관하셨고, 한 술 더 떠 교원평가 공청회를 열기도 전에 교원평가를 강행을 공표하셨던 교육부장관님. 것도 모자라 교원평가 반대 연가원을 제출한 교사들을 법에도 어긋나는(법원판결에서조차 교육공무원 연가에 대한 확정판결이 없는 상태임) 징계방침(지금까지 연가참가로 징계를 내렸지만 전원 무혐의 구제됨, 2명의 교사만 판결 계류 중) 운운하시더니, 급기야 관리자 징계까지 들먹이시더군요. 친절하게도 아까운 경비를 들여 서한문까지 보내주시고, 낭독하게 하시고 말입니다.

 

그래서 00에서도 연가를 희망하는 두 교사와 관리자 간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잘 다녀오라는 격려도 없이 본원의 두 교사, 000와 000는 연가집회에 다녀오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씁쓸했냐구요? ‘전혀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40만 교원의 생존권과 직결된 교원평가를 불과 7개월의 시범실시와 평가조차 채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하겠다는 저 오만한 자신감'과 교단을 분열시키고 이간질하는 '교육당국의 치졸한 행태'가 괘씸할 뿐입니다. 한편으로 저 자신 교사로서의 신념에 대하여 더욱 분명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신 것에 대하여는 그저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 어떤 교원정책과 교육정책도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만남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경쟁과 효율성도 교육공동체의 인격적인 관계를 훼손해선 안됩니다.
 
00의 모든 선생님이 저와 같을 수도 없고, 같은 생각이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교육을 생각할 때, 우리의 경제수준에서 ‘지금의 교육여건과 교사의 근무여건은 시급히 개선되어야한다’는 것에 이의가 있는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단지 서 있는 위치와, 생각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겠지요.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따로또같이 교육동지로서 교단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겠지요.

 

보결수업 배정으로, '무단결근'으로나마 연가집회에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해주신 교장, 교감선생님께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친 점 죄송하단 말씀과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특히, 보결수업으로 저희들의 빈자리를 교육적으로 메워주신 5학년부장님과 선생님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혹여나 저희들의 연가집회 참석으로 여러 선생님들께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친 점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송구하단 말씀드립니다.

 

2006년 11월 23일 나무의 날에 연가집회에 다녀온 000, 000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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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투쟁

 

바야흐로 투쟁의 계절이다.

 

공교롭게도? 선거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겐 투쟁도 선거도 모두 버겁다.

 

의지로 낙관해보기로 하지만 버거운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늘 이모양이라 그려러니 하는 마음도 한켠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노무현정권을 포함한 자본과 지배권력의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는 동지들의 옹골찬 결의만큼,

 

한미FTA, 평택미군기지확장, 비정규악법, 노사관계로드맵으로 몰아치는 폭풍전야의 엄혹한 정세만큼,

 

조직화되는 규모나, 결합력의 정도는 실상 많은 부분 충분치 못하다.

 

1122 민중총궐기와 연가투쟁이 낼모레인 코앞으로 다가와있지만, 현장은 고요하고, 실로 차분하다. 물론 그 역동성을 안으로 감춘채 말이다.

 

한 술 더떠, 선거를 기화로 아예 노조간부활동가라는 작자들조차 공공연하게, 투쟁보단 선거에 올인한다(아무리 그것이 그네들의 운동기조요, 운동의 내용이라지만.) 물론 겉으론 투쟁을 외치고, 투쟁을 선전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오직 선거승리를 통해, 정치정세보단 쁘띠부르조아적 개량의 정서(그들이 말하는 소위 '대중의 바다'로) 투항하는 것.

그것이 오늘 총궐기를 앞두고 민중진영이 보다 힘차게 투쟁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 멀리, 더 깊이 보자면 만연한 신자유주의 15년이 가져다준, 설상가상으로 97년 IMF후폭풍이 부려놓은 만연한 근로인민대중의 열패감과 소외감의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 뿌리깊다. 물론 그로인한 불만의 강도도 비등해지고 있긴 하지만, 추측컨데 봉기와 혁명의 도화선에 붙일 분노의 불씨는 미약하기만 하다.

 

이럴 때 일수록, 멀리있는 고도의 추상논리에 빠지기보단 분회에서 연가투쟁의 의미를 선전하는 일, 교원평가 저지투쟁 등을 선언으로 묶어세우는 일 하나하나, 챙겨야겠다. 비록 버겁고,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가 그러더군. 운동을 왜 하냐고?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까워서 한다라고. 그렇다. 즐거워서 하건, 본전생각 때문에 하던 내 발밑을 챙길 일이다. 그것이 교원평가 저지선을 확보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쓰디쓴 담배 연기를 기꺼이 빨아들인다.

 

나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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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 한권

[책소개]

 

페미니즘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을 깨주는 책이다. 저자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여성의 눈으로 이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자고, 여성의 목소리로 이 세계를 재구성해보자고 요청한다.

기존 여성주의 책들이 여성주의 사유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에겐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이론적인 책들이었다면, 이 책은 기초부터 시작한다. 여성주의란 무엇인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 여성주의를 통해 나와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저자가 말하는 다른 목소리에는 여자뿐 아니라, 장애인, 유색 인종, 성판매 여성 등 지금까지 세상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변방의 목소리들도 포함된다. 저자는 여러 다양한 목소리들이 경쟁하고 소통하고 공존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한다.

이 책에는 여성운동가이자 여성학자로서, 저자 자신이 겪은 수많은 관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보아 왔으며, 그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성주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더욱이 편안할 수는 없다. 다른 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여성주의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배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대안적 행복, 즐거움 같은 것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은 고민하는 자를 능가할 수 없다.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문제'(젠더)를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존재해야 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정희진 -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 종교학과와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했다. 대학졸업 후 여성운동단체인 '여성의전화'에서 5년간 상근자로 일했다. 2006년 현재 대학과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에서 여성학을 강의하며, 다양한 여성조직에서 자문의원,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등이, 엮은 책으로 <한국여성인권운동사>, <성폭력을 다시 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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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을 떨치고...

잡념

잡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해야할 일은 많지만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지 않고ㅠㅠ..


그러다가 허겁지겁이다.

 

조합원조차 납입하지 않는 차등성과급2차 반납 독려가 그렇고, 분회장 조퇴투쟁을 앞두고 소속 조합원 전체에게 현재의 상황을 널리 알려 전교조가 처한 현재의 급박한 상황을 공유해야하고, 이를 통해 투쟁의 분위기와 결의를 끌어와야하는 전국대의원으로서의 막중한 책임 앞에 나는 잡생각만 한다.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 버린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거늘.

 

정녕 비겁하지 않은가?! 적극 동참하여 상황을 끌어내야하지 않겠나?! 저 망할 회피주의여 가라! 지금 앉은 자리에서 실천을 도모하라. 선동의 문장을 작성하라. 전 조합원에게 선전문을 멜로 쏘아라. 정녕, 교원평가, 교원구조조정의 시퍼런 칼날에 맞서는 길, 단결된 투쟁 말고  그 무엇으로 이루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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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김규항의 블로거에서

절대 공감한다. 대한민국 만세가 절대 아니다. 노동자, 근로인민 만세! 이거나 가진자, 자본가 지배계급 만세이거나!

 

계급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계급의식의 결핍'이다. 사회 문제는 기본적으로 계급 간의 문제인데 사회를 계급으로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니 사회 문제에 대한 온갖 요란스런 논의는 모조리 헛소리가 되어버린다. '대한민국은 하나'라는 거짓 레토릭이 정당한 현실 비판을 먹어치워버리며 결론은 언제나 '국익'이다. 국익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 사이에는 이해관계의 모순이 있는데 어떻게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이익’이 있을 수 있는가. '국익'이란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의 거짓 표현일 뿐이다. 계급의식이 결핍된 상태에서, 지금 한국처럼 대다수 인민들이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국익'에 열중하는 상태에서 사회 진보는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의 진보는 무엇보다 인민들의 계급의식이 얼마나 늘어나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유구한 반공주의 파시즘의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 '계급'이라는 말은 여전히 '빨갱이들의 말'이며 혐오어다. 그래서 '노동자'라는 말이 '근로자'로 대체되듯 계급은 계층이라는 말로 대체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계급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다. 특히 상층 지배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계급이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을 매우 공격적으로 표시한다. "당신 여전히 계급의식으로 세상을 보나!"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아니 그런 사람들일수록 제 삶에선 계급의식에 철저하다. 이를테면 번듯한 배경을 가진 청년이 보잘것없는 처녀와 결혼하려할 때 그들은 (계급의식을 근거로) 말한다. "안 맞아." 그들은 계급의식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인민들의 계급의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인민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은 하나'가 아님을 깨우칠 때, 대한민국을 계급으로 나누어보기 시작할 때 그들의 파국도 시작된다는 걸 그들은 안다. 그들은 정말이지 계급적이며, 그래서 그들은 지배한다. (2006.10.18 김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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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셋이상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는...

속담을 지어 만든 놈은 분명 남자이겠지(물론 나도 남자다. 이럴 때 걍 나도 남자인 것이 곤혹스럽다ㅠㅠ).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끼리(만) 모이면 정말 재미없거든. 남자들은 필수적으로 매개물(술?!)이 있어야 대화가 되니까(그게 남자의 속성이라고?... 어째 영 말빨이 떨어지지?!. 글고 그게 어디 남자만의 문제이겠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 속에서 그런 구조를 만들고, 온갖 권력에 호사를 누려온 지난 날의 특혜를 생각하면 책임한계는 분명해진다.)

 

뭐 남자 여자 잘 잘못을 따지자는 것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안되니 이쯤에서 넘어가자.

사실 하고 싶은 얘긴 따로 있으니까^^

 

오늘 분회 저녁모임(회식)을 했다. 걍, 단골인 산채정식(전모 샘이 우겼다지요, 아마)에서, 호명하면 강,김,박(박샘은 끝물에 딸래미 데불고),전,정,정,조샘이 참석(신샘은 친구따라 강남?가느라 미참ㅠㅠ)했다.

 

오늘모임은 그동안 바쁘단 핑게로 분회모임을 알차게 진행하지 못한 분회장 덕택에?, 언제나 우리 모임의 시작부터~ 끝까지랄 수 있는 수다로 푸는 모임이었다.

 

성과급 반납(전국 8만, 자료찾아보니 759억, 지부 1만 300에 79억, 물론 조합원수에는 약간 못미치고, 도대체 정부와 협상이 진행되는거냐, 교육부쪽은 협상대표도 없는 상황에서, 기약이 있는 거냐, 게다가 중알일보는 전교조, 반납 시늉만 한다, 차라리 그돈 사회에 기부해라로 얼르고 뺨치는 상황에서 2차 반납 힘들거다. 게다가 경기도는 전국 최고 만만디라 2차성과급도 전국최초로 추석 직전에 전격 지급할 예정이고, 걱정이다걱정이다)

 

오늘의 단연 탑은 영어인증제_스텝엔점프(분회장이 지부대의원대회 거론. 경기지부에서 적극 대응하지 못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등교사들에게 강제잡무를 부과(부교재 지도_아침시간 등)했고, 법에서 정하지도 않은 걸 교육감이 지시한 것이므로 벌률적으로 고발사항이다. 아마 2학기엔 지부에서 보다 강력히 대응할 걸로 보여 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봄. 고양시의 경우 절반이상의 초등학교에서 희망자 위주로 시험보게 되어 과반이 훨 넘는 아이들이 인증시험 안보았다고.

다음으로 영어 인증시험. 과정에 울 학교에서 진행된 사항의 문제점들 거품물고 지적. 담당자의 치밀하지 못한 일처리와 안내 부족에 해당부장의 방관자적 태도가 더해져 학년별로 일관되게 추진되지 못하고 잦은 변동. 효율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점. 학교재량의 잇점을 살리지 못한 점들 또한 거품물고 지적. 혹 옆테이블에 있는 선샘들이 엿들어도 되나, 하면서도 신나게 성토하고 공감하는 수다모임.

 

수다를 생산적(이 말부터 지배적이고 권력자의 구린 냄새가 밴 말같은데)이지 못한 한담으로 폄하하는 것이 오랜 버릇인데, 실은 뒤집어 놓고 보면 가장 현실감있고, 생생한 지금, 여기의 이야기 아닌가?! 나도 남자이기에 그리 생각해왔던 게 사실이고 보면, 지금, 여기(한국사회, 교육계, 초등학교) 참 문제 많은 곳임을 느끼게 된다. 전략적 유연성은 제국인 미국에 지금, 필요한 것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지금, 여기서 헤쳐나갈 소통의 시간이 더욱 필요한 것이리라. 물론 전략적 유연성을 뛰어넘는 전략의 올바름과 함께 말이다.

 

다음 모임에서도 여지없는 수다를 기대해요^^

 

*다음 정기 모임은 10월 10일(화)인데요, 분회 창립행사 관련으로 담주 중에 번개모임을 가질까 해요. 말 그대로 번개치면 모여주세요.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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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후기

오랜 만에 문학교육 모임에 참석했다.

U샘과 K샘, 나 달랑 셋이다.

텍스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갈래별 글쓰기(우리교육)'다.

U샘은 1학년, K샘은 3학년 난 5학년을 맡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 수록 전자매체에 빠지고, 지리한 학원생활에 치여 문학 수업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U샘이 갖고온 1학년 아이들 시를 보니 한결 낫다. 1학년 아이들의 느낌이 콕콕 묻어난다. 살아 있다.

K샘이 뭔가를 꺼낸다. A4반절로 된 종이다. 아이들과 시공부 하려니, 마땅한 텍스트가 없단다. 교과서 시들은 대개 어른들이 썼는데, 몇몇을 빼곤, 아이들의 생활, 정서와 거리가 있어 이곳저곳 뒤져 괜찮은 시들을 모아 A4반절로 편집한 뒤 학교 인쇄실에서 다량 인쇄하여, 아이들 한 명 한명에게 다 나눠줬단다. 썩 괜찮아 보인다. 시들도 좋고.

 

이슬

 

풀잎이 모여서

간들간들 웃고 있네.

말강말강한 기 앉아 있네.

(인천 대곡분교 3 박귀봉)

 

형식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가슴의 울림에 귀를 기울여 가슴속에서 흘러 나오는 자기 노래를 글로 담아내는 시...쓰기 지도

흉내내기 같은 시가 아니라, 자기만의 느낌, 생각, 그리고 보고, 들은 것을 쓰게 하는 것이 필요... 노미화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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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망가와 활동가

명망가...자신의 이름 석자를 위해 친구와 동지, 심지어 가족까지 이용하고 팔아먹으며 끝내 역사속으로 명멸할 자.

 

활동가...가난한 이웃을 위해, 노동하는자가 주인될 세상을 위해, 동지를 위해, 그 과정과 결과로서 마침내 가족을 위해 자신 마저도 팔 자이며 끝내 역사 속에서 아름답게 부활할 자. 

 

아, 나는 한 때 저 고결한? 명망가들에게 내 신념을 팔고, 심지어 영혼까지 넘겨줬었지. 

-나의 대학 초반은 DJ에게 빠져있었고, 처절하게도 배신을 당했다.. 유난히 춥고 암울했던 80년대 말의 그 겨울을 잊지 못한다.

-20대 후반, 천리타향 임지에서 순진하게 교직생활 시작했을 때, 나에게 전교조와 참실활동의 진수를 보여줬던, 보기만 해도 그저 아뜩하고, 존경이 저절로 묻어나던, 교사로서 내 삶의 구심같았던  그 잘나신 L선생은 지금 어디 가 계신가?!....놈현 정권의 교육 참모부에서 뭘 하시는지.

-30대 초반, 하다본께 맡게된 전교조 지회 말딴 간부를 시작할 때, 전교조 활동의 최고 정점으로 여겨졌던 역시 L선생은 여전하신가? ...교육노동자, 이땅의 노동자로서, 노동자의 자긍심으로 살아계신가?!...부디 노욕일랑 버리시고 잘 사시길!

 

이제는 조금 보인다. 누가 진짜 내 친구이고 동지인지.

아직도 철이 덜 들었는지 교장교감과 침튀기며 싸우다가도 필요이상으로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가끔, 내가 원칙과 아량을 혼동하지 않는지 놀랄 때도 아직 있지만.

 

난, 언제 가난한 이웃과 노동하는 자가 주인되는 세상은 고사하고,

이 가볍고, 석자나 빠진 내 이름 석자(노,동,자) 제대로 건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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