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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레닌이 필요한가?(최세진 글)

지금 우리에게 레닌이 필요한가?


최세진





‘종간호가 될 예정’이라는 12월호에 글을 준비해달라는 쪽지를 받고는 착잡한 기분으로 한동안 무엇을 쓰면 좋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작년 한국을 떠나서 베네수엘라를 거쳐서 현재 캐나다에 머물면서 품어온 생각을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먼저 현재 세계를 자극하고 있는 남미와 베네수엘라의 혁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는 혁명은 그야말로 세계 각국의 활동가 사이에서 관심의 촛점입니다. 제가 만나본 한 캐나다 활동가는 베네수엘라에 다녀온 뒤 ‘혁명의 사우나’에서 몸을 정화시키고 오는 기분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더군요. 베네수엘라에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 베네수엘라에 펼쳐지는 혁명에 자극받은 남미의 민중들은 현재 대륙 전체를 흔들면서 좌파 도미노 현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서도 차베스의 정책을 연구하거나, 최근베네수엘라와 남미 상황에 대한 기사나 글들이 발표되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런 연구와 글들은 ‘차베스’와 ‘차베스 정권’에 머물고 말더군요.
그런데 그 글들을 읽다 보면, 솔직히 그런 연구가 도대체 현재 한국의 민중운동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왜 민중을 입에 달고 사는 운동가들이 베네수엘라를 민중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차베스의 관점에서 보려 하는 걸까? 왜 차베스 정권을 만들기까지의 민중들의 투쟁을 보지 않고, 현재의 차베스 정책에만 관심을 가지는 걸까? 지금 우리에게 차베스가 없어서 운동이 질곡에 빠져 있는 건가? 아니 차베스가 한국에 오면 현재 베네수엘라와 같은 혁명이 가능하기나 한가? 베네수엘라에서 펼쳐지고 있는 정책들이 한국에서 대안으로 적용 가능한 것인가?

우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혁명을 이끌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선 민중적인 시각이 아닐 뿐더러, 베네수엘라 현실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착각일 뿐입니다. 오히려 차베스 정권 그 자체가 기나긴 베네수엘라 민중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작년에 베네수엘라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물론 차베스 정권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다 제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차베스의 영광이 아니고, 차베스 정권을 만들어 낸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기나긴 투쟁과 운동의 역사였습니다. (당시 이런저런 사정으로 현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도 계속 아쉬울 따름입니다) 겉에서 보면 차베스의 정책에 대해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베네수엘라 민중들과 운동진영은 차베스 대통령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야 ‘우리’의 말을 듣는 대통령이 나왔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여당(차베스의 정당)이든 야당(우파 정당)이든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혁명을 지지한다.” 즉, 민중들이 차베스 정권을 선택한 것이지, 차베스가 민중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중들은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습니다.

베네수엘라 민중 운동 진영은 약 20여 년 전부터 빈민들과 농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교육하고, 조직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베네수엘라 혁명에서는 바로 그들 민중이 혁명의 주체 세력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 ‘활동가’라는 말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민중과 활동가를 구별하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한 상태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베네수엘라 활동가들이 기존의 좌파적 전통과 달리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 버리고 다른 길을 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베네수엘라 활동가들은 민중공동체 안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보다는, 기존의 권력을 급속히 해체하고, 민중들을 공동체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만들었으며, 그들이 혁명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활동가와 일반 민중이 구별되지 않는 현재 상태를 낳은 것입니다. 이제 한세대를 넘어가는 역사를 갖는 지역 공동체들에서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민중을 위한 위대한 혁명가가 되는 꿈을 꿉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지금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미 혁명가이자 활동가라고 봐도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것은 차베스가 정권 초기 헌법 개정을 할 때 민중들에게 스스로 혁명 헌법을 만들도록 맡길 수 있었던 자신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또한 2002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을 당시, 좌파 활동가들은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를 떠올리며 도망가기 바빴는데, 민중들은 자발적으로 봉기하면서 이 군사 쿠데타를 무력화 시켜버렸습니다. 스스로 주인으로 인식하고, 혁명의 주체가 된 민중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차베스는 다음날 “여러분들 민중이 스스로 민중권력임을 입증한 날이었다.”고 연설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지요. “가난을 해결할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가난한 자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그 민중들은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민중들은 우파들의 공격에 맞서서 차베스 정권을 사수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지만, 안에서는 차베스 정권의 권력집중이나 그 관료들에 맞선 투쟁을 지금도 계속하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혁명 속의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이번에는 예전에 차베스 정권과 닮은꼴로 많이 비교되는 칠레의 아옌데 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봅시다.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후 3년 내에 약 10%의 인구가 줄어들었습니다. 최저 약 3000명에서 3만 명이 암살당하거나 실종되었으며, 대규모 망명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결과 아옌데가 집권할 당시 1천만 명이었던 칠레 인구가 3년 내에 900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그 100만 명이 모두 활동가는 아니었겠지만, 활동가였거나 최소한 적극적 지지자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로 치자면 현재 인구가 약 5천만 명이니까, 약 500만 명이 활동가거나 혁명의 적극적 지지자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바로 그 정도의 두터운 활동가층이 있었기 때문에, 아옌데의 선거 혁명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터운 활동가층이 있었음에도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세력에게 전복당하고 말았습니다. 현재의 우리 상태를 한번 보죠.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의 수가 2006년 6월 현재 76만 명이랍니다. 이 중에 활동가라고 볼 수 있는 건 몇 %정도 될까요?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당원 숫자가 약 8만, 그리고 그 외 다른 정치조직을 다 합치면 엄청나게 뻥튀기 해서 약 1만 명 될까요? 그럼 한번 계산해 봅시다. 이 사람들 중에 겹치는 사람이 없다고 치고, 그 인원을 전부 다 ‘활동가’로 봐도 겨우 100만 명을 넘지 못 합니다. 전체 인구의 2%가 안 됩니다. 실제로는 어떨까요? 심지어 NL 주사파까지 활동가라고 쳐도 남한의 활동가 숫자는 채 5만 명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전체 인구의 0.1%도 안 됩니다. 그런데 만약 좌파 활동가만 계산한다면?

왜 활동가의 숫자에 그렇게 집착하냐고 따지고 싶은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민중이 주체가 되지 못했던 ‘혁명’이 어떤 말로를 겪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민중들을 믿지 못해 혁명의 대열에서 민중을 소외시키고, 권력은 중앙으로 집중시킨 채 몇몇 ‘지도부’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그 혁명은 끝내 부패한 독재권력으로만 남아 결국 민중들에 의해 다시 한 번 거부당하는 운명을 맞이했었습니다.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너무도 깊기만 합니다.
이번에는 레닌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지요. 잘 알고 있는 사실처럼,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의 끝은 레닌과 볼셰비키가 마무리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 혁명을 과연 레닌이나 볼셰비키의 혁명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레닌은 당시 십 수 년을 외국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가 노동자 봉기 소식을 들은 후 러시아로 돌아왔고, 볼셰비키는 당시까지도 혁명 진영 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했으며, 진행 중인 혁명의 방향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볼셰비키는 소비에트 내에서 다양한 혁명진영 중 한 그룹에 불과했습니다. ‘노동계급 독재’라는 개념은 레닌이 복귀한 이후 제창된 것이었고, 최종적으로 ‘사회주의소비에트공화국’으로 그 혁명의 성격이 결정된 것은 레닌과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인 1918년 1월이었습니다.

조금 앞으로 돌아가 보지요. 우리가 보통 1905년 러시아 혁명을 이야기 할 때 그 출발선으로 1905년 1월 겨울궁전 앞에서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학살되었던 ‘피의 일요일’ 사건을 떠 올리고, 당시 인민 봉기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찍었던 오데사의 전함 포템킨 수병들의 봉기를 쉽게 떠올립니다. 하지만, 피의 일요일 그 시위대열을 이끌었던 것은 볼셰비키가 아니었고, 그 피의 학살 직후 노동자들의 파업을 조직한 것 또한 주로 멘셰비키였습니다. 나중에 레닌이 ‘러시아 혁명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평가했던 포템킨호의 봉기를 이끌었던 수병들이 실은 아나키스트들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포템킨호에서 노동자위원회 대표로 뽑혔던 마뚜센꼬는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 조직 혐의로 오데사에서 체포되어 1907년 사형 당했습니다. 또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는 당시 오데사의 수병들과 인민들의 봉기를 사수하기 위한 행동을 전혀 조직하지 못 했었습니다.

그럼 더 앞으로 가보기로 하지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기 3년 전 1902년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탁월한 문건을 발표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발표했을 당시 러시아 노동자의 60%가 그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 문건이 노동자들의 머리 속에 ‘레닌’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글을 참 많이들 읽고, 인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그 문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그 글 자체의 내용보다는 ‘노동자의 60%가 읽었다’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배경을 빼고 나면 그 글은 사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레닌이 무대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혁명을 기다리던 숫한 노동자들이 이미 거기에 존재했기에 그 글은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만일 당시 그렇게 준비된 노동자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탁월한 글이라고 할지라도 그 글은 그냥 꿈속에 사는 좌파의 의미 없는 선동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상황이라면 레닌은 아마도 전혀 다른 글을 썼겠지요.

저는 그 문건이 러시아 혁명의 시작이라고 생각지 않으니, 조금 더 앞으로 가봅시다. 잘 알다시피 레닌의 볼셰비키가 소속되어 있던 ‘맑스주의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자당’은 겨우 1898년에 조직된 신생 정당이었으며, 1903년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나누어질 때 볼셰비키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멘셰비키를 누르고 다수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신생 정당이 그 광대한 대륙의 노동계급을 그 단시간 내에 그렇게 조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건 대단한 오해거나, 승자의 과장된 포장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 이전 오랜 기간 러시아 민중운동의 성과를 레닌과 볼셰비키가 수확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지금 우리의 상황이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어 수확할 상황이라고 판단한다면, 레닌이 펼쳤던 당시의 전술이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80년대에 가졌던 그 커다란 착각을 지금까지 계속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80년대 이후 과연 우리에게 노동계급의 60%가 혁명적 문건을 찾던 시기가 있었던가요? 전체 인구의 10%가 활동가였던 때가 있었던가요? 러시아와 칠레는 그럼에도 실패했습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의 사망 이후 광범위한 대중들에 의해 진행되었던 촛불시위를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2002년 촛불시위에 도달하기까지 배경이 되었던 다양한 투쟁들과 사건들, 선전과 소통, 대중적 참여는 다 사라지고, 촛불만 남은 모습을 우리는 FTA 반대 투쟁에서 봅니다. 당시 촛불시위의 의미는 ‘촛불’에 있었던 것이 아닌데, 현재 민중운동 진영은 오로지 촛불만 기억하고, 그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2002년 이후 아무런 반성 없이 운동 조직의 관료화와 비민주적인 운영, 소수 명망가 중심의 집회문화는 그대로 둔 채 촛불만 켜면 대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만저만 심한 착각이 아닙니다. 좌파진영에게 있어서 꼭 레닌과 볼셰비키가 그런 촛불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닌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혁명적 고양기도 아니고, 20세기초 러시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던져졌던 레닌은 우리의 착각만 크게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됩니다. 80년대 간절히 혁명을 원하던 우리는 그 시기를 레닌의 눈을 통해 20세기 초 러시아의 혁명적 시기라고 착각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민중운동의 성과를 수확하는 시기가 아니라, 아직 젊디젊은 우리의 운동이 이제 막 던져진 씨앗을 파릇파릇 새싹으로 가꾸어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중운동의 결과물을 수확하는 레닌이 아니라, 거름을 주고 잡초를 솎아내고, 오랜 기간 그 속에서 함께 할 활동가들입니다. 우리는 ‘맑스주의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자당’이 등장하기 이전의 러시아 민중운동을 살펴봐야 합니다. 민중들이 계급정당의 탄생을 요구하게 된 과정을 보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레닌의 막판 뒤집기가 아니라, 19세기의 러시아 민중운동일 것이며, 차베스 이전의 베네수엘라 민중운동 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가졌던 ‘혁명적’ 착각에서 벗어나 왜곡된 운동 진영의 구조를 개편하고, 새롭게 인식한 상황에 전망과 이에 걸맞는 활동가 재생산 일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만약 레닌에게 배워올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항상 주장했던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새로운 이론으로 무장하고, 대중들에게 알리고, 그 선전을 바탕으로 조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운동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 상황을 한번 돌아보지요. 좌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은 사회과학 서점과 출판사가 문을 닫고, 민중문화 단체가 하나둘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이건 새로운 현상도 아닙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입니다. 과연 한국에 ‘좌파’가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요? 현재 한국에 좌파가 존재하다면, 그 ‘소위’ 좌파는, 생각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토론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재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문화를 포기했습니다. 이는 ‘싸움’은 있더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은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투쟁들은 과거의 축적된 운동을 소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은 현재의 운동뿐만 아니라, 미래의 투쟁까지도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노정연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소식은 그래서 더 착잡합니다.

아직도 ‘커리큘럼’이라는 게 있는 곳들을 뒤져보면, 80년대 만들어진 학습 과정이 버젓이 버티고 있습니다. 80년대에 만들어진 19세기의 이론으로 21세기를 바꾸겠다고 주장하는 건 한마디로 코메디입니다. 이건 ‘운동’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입니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자기 꿈속에나 있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그건 활동가가 아니라 몽상가겠지요.

현재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안에서 그 ‘권력’을 쥐고 벌이는 주사파들의 삽질은 말 그대로 그냥 삽질일 뿐입니다. 그 삽질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도, 사람을 변화시키지도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조직 내 권력 싸움에 매몰되어서, 민중들로부터 이탈되고, 고립된 그런 삽질 권력다툼에 같이 동참해봐야 남는 건 ‘먼지구덩이’일 뿐입니다. 제발 이제라도 그 삽질에 동참하는 것을 중단합시다. 이는 그 조직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조직 내에서 우리의 활동방향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좌파는 다시 민중 속으로 들어가고,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해야 합니다. 다시 학습과 토론 시스템을 세우고, 대중과 조직 내에 좌파적 요구에 대한 선전을 강화하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조직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토론하고, 공부하고, 선전하고, 조직하는 게 안 되니까 그 쪼그마한 운동권내의 권력싸움에 뛰어드는 겁니다. 가장 쉬우며, 가장 빨리 망하는 길이 운동권 내 ‘권력’ 잡기 놀이판을 펼치는 것이고, 조직 밖의 98%의 민중들을 만나는 게 아니고, 채 2%도 안 되는 조직원 내에서 ‘권력 잡기’ 놀이를 펼치고, 거기에 역량을 투여하는 겁니다. 도대체 지금 그 안의 권력투쟁이 왜 중요할까요? 내일 혁명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안에서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이후 혁명의 진행에 필수적인 상황인가요? 저에게는 오히려 거기에 발목 잡힌 상황으로만 보일 뿐입니다.

최소한 30년을 준비하는 좌파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하자. 이게 기본입니다. 현재에 매몰되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 나갑시다. 각 조직에서는 헤게모니 싸움에 역량을 소비하기 보다는 2-3년 앞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의견으로 ‘조직내 조직활동’을 전개해 나갑시다.

제가 한번은 베네수엘라 활동가들에게 의문을 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빈부격차는 여전하고, 전면적인 경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차베스 정권 이후 무료 의료 등 여러 가지 복지제도가 들어섰지만,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서구형 복지국가를 벗어나기 힘들지 않겠느냐. 왜 현재 차베스는 전면적인 경제 혁명을 추진하지 않는 것이냐. 만일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차베스는 ‘포퓰리스트’라는 혐의를 벗기 힘들 것이다.” 그러자 그 활동가는 “네 말이 다 맞다. 아직 빈부격차는 여전하고, 전면적인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혁명을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모든 혁명이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생각을 버려라. 베네수엘라에는 베네수엘라에 맞는 혁명이 있는 거야. 만일 너희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건 또 다른 혁명이겠지. 우리는 러시아가 경제 체제를 먼저 변경하고, 정치 혁명을 진행하는 것과는 반대로 진행이 되었어. 우리는 먼저 정치 혁명이 일어난 후 경제 혁명으로 나아가는 단계에 있는 거야. 차베스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혁명에 있어서 그의 역할을 썩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혁명은 차베스가 하는 게 아니야. 바로 우리 민중들이 하는 거지.”

우리는 이제 우리의 혁명을 다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 혁명은 ‘우리’ 활동가의 혁명이 아니고, 민중과 노동계급의 혁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시작합시다. 다시 민중 속으로 들어갑시다.

글을 쓰다가 지나간 생각들

- 우파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돈 계산만 잘하면 된다. 주사파도 공부할 필요가 없다. 지도자 동지 말씀만 잘 따라가면 되니까. 하지만 좌파는 공부해야 된다. 민중이 믿을 거라곤 민중 자기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 레닌과 볼셰비키로 상징되는 러시아 혁명사 역시 승자의 기록이다.

- 레닌이 무엇을 했나 보다, 왜, 어떻게 당시 러시아 민중들이 레닌을 선택했는지 알아봐야 한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의 민중을 보지 않고, 레닌과 차베스를 찬양하느라 바쁜 사람들은 혁명을 위해서 ‘영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 골라서 자기들의 영웅을 만드는 운동을 하면 된다. 아니면 지가 영웅이 되던지.
 -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지도’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민중 혁명이나 계급 혁명으로 부를 것이 아니라 ‘지도부 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 싶어 하는 세상은 ‘운동권 세상’이 아니고, 민중이 해방된 세상이다. 자기 머리 속에 원하는 혁명을 위해 민중의 이름을 팔지 마라.

- 레닌, 차베스, 아옌데를 이야기하기 전에, 러시아 민중과 베네수엘라 민중, 칠레 민중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자.

- 미국 핑계 좀 대지 마라.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리는 남미는 지난 19세기까지 400여 년간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20세기 이후에는 남한이나 북한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훨씬 더 강력한 미국의 지배 아래 놓여있었다.

- 현재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관료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 내 대부분의 다른 단체들도 관료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 ‘관료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거기서 일하는 상근 활동가들을 ‘관료’라고 비난하는 건 사실 코메디다. 관료주의와 관료가 싫으면 의사결정과 집행체계에 있어서 골간이 되는 그 관료제를 먼저 바꿔야 한다.

-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 보면 다음 구절이 나온다.
주인공 셀던은 앞으로 3백년 후에 다가올 암흑의 세월 3만년을 예감하고, 그 3만년을 1천년으로 줄이기 위해 조직을 건설한다. 그에 대한 질문과 답변.

질문 : 인류의 전체 역사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가?
답변 : 네.
질문 : 쉽게?
답변 : 아니요. 엄청나게 어려울 것입니다.
질문 : 왜 그런가?
답변: 행성에 가득한 사람들의 역사심리학적인 경향은 거대한 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비슷한 수준의 관성과 만나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거나, 만일 관련된 사람의 숫자가 적다면 변화를 위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 맑스와 엥겔스, 로자가 살았던 독일조차 나치라는 가장 극악한 극우 정권을 막지 못했다. 나치가 태동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역사상 가장 자유롭고, 민주적인 헌법 체계를 가졌던 국가로 남아있다. 나치는 그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당시 독일 민중들은 왜 나치를 선택했으며, 왜 독일의 자유주의자들과 좌파 노동운동은 결국 나치를 막지 못하고 거듭해서 실패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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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저렇게 작심한듯, 처연히 내리고...

 

간 밤에 내린 눈이
느지막이 한 술 떠는 일요일 아침까지
끝날줄을 모르고 내린다.

지난 밤, 천둥 번개가 치더니
그예 또 비가 오는 게지
쉬 지나쳐버렸건만
잠자리까지 가져온 마누라의 눈걱정
대거리로 지나쳤는데

꼴깍 하룻밤을 지나
한낮이 가까운 시방까지도
무심한 나를 비웃듯
그칠 줄 모르네

교회 간 아들녀석 오면
찜질방에 가려던 마음
날은 오싹하게 추워
몸도 마음도 방구들에 눌러붙는데

눈이
저렇게 작심한듯
처연히 내리니

몸도, 마음도 자꾸 동한다
밖으로, 바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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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집회 잘 다녀왔습니다^*^

00선생님들께,

 

선생님들의 염려 덕택에 000, 000 연가집회 잘 다녀왔습니다^*^

 

그 어떤 교원정책과 교육정책도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만남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경쟁과 효율성도 교육공동체의 인격적인 관계를 훼손해선 안됩니다.

 

교원평가에 대하여 조,중,동을 비롯한 이땅의 메이저언론이 총동원되어 연일 '전교조연가투쟁' 비난과 징계방침을 보도했지요. 틈만 나면 대한민국의 공익이 우선이라는 그들 언론사들이 언제 선진국의 교원평가 사례나 교육공공성에 입각한 분석적인 기획기사 한 번 제대로 실어준적 있었는지요.

 

국민이 접할 수 있는 내용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다수의 교사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은 당사자로서 신분의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기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교원평가를 반대해왔지요.

 

하지만 교육가족임을 늘상 입버릇처럼 달고다니면서도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수업 외 잡무를 경감하고, 수업시수를 법제화해서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세워 달라는 학교현장의 필요불가결한 요구 앞에선 모르쇠로 일관하셨고, 한 술 더 떠 교원평가 공청회를 열기도 전에 교원평가를 강행을 공표하셨던 교육부장관님. 것도 모자라 교원평가 반대 연가원을 제출한 교사들을 법에도 어긋나는(법원판결에서조차 교육공무원 연가에 대한 확정판결이 없는 상태임) 징계방침(지금까지 연가참가로 징계를 내렸지만 전원 무혐의 구제됨, 2명의 교사만 판결 계류 중) 운운하시더니, 급기야 관리자 징계까지 들먹이시더군요. 친절하게도 아까운 경비를 들여 서한문까지 보내주시고, 낭독하게 하시고 말입니다.

 

그래서 00에서도 연가를 희망하는 두 교사와 관리자 간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잘 다녀오라는 격려도 없이 본원의 두 교사, 000와 000는 연가집회에 다녀오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씁쓸했냐구요? ‘전혀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40만 교원의 생존권과 직결된 교원평가를 불과 7개월의 시범실시와 평가조차 채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하겠다는 저 오만한 자신감'과 교단을 분열시키고 이간질하는 '교육당국의 치졸한 행태'가 괘씸할 뿐입니다. 한편으로 저 자신 교사로서의 신념에 대하여 더욱 분명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신 것에 대하여는 그저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 어떤 교원정책과 교육정책도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만남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경쟁과 효율성도 교육공동체의 인격적인 관계를 훼손해선 안됩니다.
 
00의 모든 선생님이 저와 같을 수도 없고, 같은 생각이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교육을 생각할 때, 우리의 경제수준에서 ‘지금의 교육여건과 교사의 근무여건은 시급히 개선되어야한다’는 것에 이의가 있는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단지 서 있는 위치와, 생각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겠지요.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따로또같이 교육동지로서 교단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겠지요.

 

보결수업 배정으로, '무단결근'으로나마 연가집회에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해주신 교장, 교감선생님께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친 점 죄송하단 말씀과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특히, 보결수업으로 저희들의 빈자리를 교육적으로 메워주신 5학년부장님과 선생님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혹여나 저희들의 연가집회 참석으로 여러 선생님들께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친 점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송구하단 말씀드립니다.

 

2006년 11월 23일 나무의 날에 연가집회에 다녀온 000, 000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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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투쟁

 

바야흐로 투쟁의 계절이다.

 

공교롭게도? 선거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겐 투쟁도 선거도 모두 버겁다.

 

의지로 낙관해보기로 하지만 버거운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늘 이모양이라 그려러니 하는 마음도 한켠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노무현정권을 포함한 자본과 지배권력의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는 동지들의 옹골찬 결의만큼,

 

한미FTA, 평택미군기지확장, 비정규악법, 노사관계로드맵으로 몰아치는 폭풍전야의 엄혹한 정세만큼,

 

조직화되는 규모나, 결합력의 정도는 실상 많은 부분 충분치 못하다.

 

1122 민중총궐기와 연가투쟁이 낼모레인 코앞으로 다가와있지만, 현장은 고요하고, 실로 차분하다. 물론 그 역동성을 안으로 감춘채 말이다.

 

한 술 더떠, 선거를 기화로 아예 노조간부활동가라는 작자들조차 공공연하게, 투쟁보단 선거에 올인한다(아무리 그것이 그네들의 운동기조요, 운동의 내용이라지만.) 물론 겉으론 투쟁을 외치고, 투쟁을 선전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오직 선거승리를 통해, 정치정세보단 쁘띠부르조아적 개량의 정서(그들이 말하는 소위 '대중의 바다'로) 투항하는 것.

그것이 오늘 총궐기를 앞두고 민중진영이 보다 힘차게 투쟁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 멀리, 더 깊이 보자면 만연한 신자유주의 15년이 가져다준, 설상가상으로 97년 IMF후폭풍이 부려놓은 만연한 근로인민대중의 열패감과 소외감의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 뿌리깊다. 물론 그로인한 불만의 강도도 비등해지고 있긴 하지만, 추측컨데 봉기와 혁명의 도화선에 붙일 분노의 불씨는 미약하기만 하다.

 

이럴 때 일수록, 멀리있는 고도의 추상논리에 빠지기보단 분회에서 연가투쟁의 의미를 선전하는 일, 교원평가 저지투쟁 등을 선언으로 묶어세우는 일 하나하나, 챙겨야겠다. 비록 버겁고,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가 그러더군. 운동을 왜 하냐고?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까워서 한다라고. 그렇다. 즐거워서 하건, 본전생각 때문에 하던 내 발밑을 챙길 일이다. 그것이 교원평가 저지선을 확보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쓰디쓴 담배 연기를 기꺼이 빨아들인다.

 

나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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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 한권

[책소개]

 

페미니즘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을 깨주는 책이다. 저자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여성의 눈으로 이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자고, 여성의 목소리로 이 세계를 재구성해보자고 요청한다.

기존 여성주의 책들이 여성주의 사유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에겐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이론적인 책들이었다면, 이 책은 기초부터 시작한다. 여성주의란 무엇인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 여성주의를 통해 나와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저자가 말하는 다른 목소리에는 여자뿐 아니라, 장애인, 유색 인종, 성판매 여성 등 지금까지 세상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변방의 목소리들도 포함된다. 저자는 여러 다양한 목소리들이 경쟁하고 소통하고 공존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한다.

이 책에는 여성운동가이자 여성학자로서, 저자 자신이 겪은 수많은 관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보아 왔으며, 그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성주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더욱이 편안할 수는 없다. 다른 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여성주의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배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대안적 행복, 즐거움 같은 것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은 고민하는 자를 능가할 수 없다.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문제'(젠더)를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존재해야 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정희진 -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 종교학과와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했다. 대학졸업 후 여성운동단체인 '여성의전화'에서 5년간 상근자로 일했다. 2006년 현재 대학과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에서 여성학을 강의하며, 다양한 여성조직에서 자문의원,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등이, 엮은 책으로 <한국여성인권운동사>, <성폭력을 다시 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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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을 떨치고...

잡념

잡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해야할 일은 많지만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지 않고ㅠㅠ..


그러다가 허겁지겁이다.

 

조합원조차 납입하지 않는 차등성과급2차 반납 독려가 그렇고, 분회장 조퇴투쟁을 앞두고 소속 조합원 전체에게 현재의 상황을 널리 알려 전교조가 처한 현재의 급박한 상황을 공유해야하고, 이를 통해 투쟁의 분위기와 결의를 끌어와야하는 전국대의원으로서의 막중한 책임 앞에 나는 잡생각만 한다.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 버린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거늘.

 

정녕 비겁하지 않은가?! 적극 동참하여 상황을 끌어내야하지 않겠나?! 저 망할 회피주의여 가라! 지금 앉은 자리에서 실천을 도모하라. 선동의 문장을 작성하라. 전 조합원에게 선전문을 멜로 쏘아라. 정녕, 교원평가, 교원구조조정의 시퍼런 칼날에 맞서는 길, 단결된 투쟁 말고  그 무엇으로 이루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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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내용과 형식을 가르지 않는다...김정환론

시는 내용과 형식을 가르지 않는다

 
                                                                            김정환(시인)

  먼저 여러분이 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시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은 채 시인 지망생으로서 습작을 해 나가면서 무엇이 가장 힘든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7년 동안 등단을 목표로 글을 써 나가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학교'를 맡아 꾸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인 지망생들로부터 문의 전화를 받는 일이 많습니다. 전화를 하시는 분 중에는 자신의 습작시를 읽어주며 "내가 뭘 썼는데 이게 시인지 아닌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말하는 순진무구하고 궁금증이 많은 분에서부터, "이게 시가 아니라면 우리 나라 시단은 전부 자폭해야 된다"는 과격한 테러리스트까지 다양합니다. 그만큼 시의 비밀은 숱한 시들이 창작되었고, 또 정의가 시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속시원하게 풀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따라서 '시는 무엇인가?' 하는 폭력적인 질문보다는, '도대체 왜 다른 글은 시가 아니라고 하면서 이건 시라고 하는가' 라는 생각의 언저리를 왔다갔다하면서 정말로 궁금했던 것이 있으시면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청중 : 저는 그 동안 시의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에 여러 군데를 쫓아다니곤 했습니다. 어쩔 때는 제 자신한테 화가 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앞에서 내가 쓴 시에 대해 평론가들이 얘기하듯이 멋진 수사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의 가치관이나 사상을 매개로 하여, 내 시는 이렇게 해서 형성이 되었고 이렇게 썼다고 하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내 시가 난도질당할 때마다 항상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를 숙이곤 했습니다. 나는 가슴 뜨겁게 시 앞에 앉고, 내면에 있는 것들을 충분히 운율을 살려서 글로 옮겼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사람들 앞에 작품을 내보일 때에는 항상 작아지고 비참해짐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삼류라고까지 매도해서 제 시작(詩作) 의욕을 꺾음은 물론 인간적인 비애까지 맛보게 하고 있습니다.

 

김정환 : 자신으로서는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남들에게 난도질을 당하다 보면, 본인의 가슴이 뜨거워져 있는데다 남은 여지없이 난도질을 해대니까 덩달아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겁니다. 동료들로부터 분석적 읽기를 통한 비판을 들으면서,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무슨 소리인지 수긍이 가지 않는다'라고 생각되는 대목은 없었습니까?

 

청중 : "넋두리다. 왜 이 넋두리에서 너는 헤어나지 못하느냐"고 비판이 다반사지요. 저는 때에 따라서는 시단에서 자연 친화적인 시들이 주목을 받는 걸 보면 그 쪽으로 달려가고, 또 다른 경향의 시들이 쏟아지면 친구 따라 가듯이 덩달아 '나도 이런 풍으로 써보면 어떨까' 하고 쏠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런 풍으로도 써보지만 결국 내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들고 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황지우의 시들처럼 제 습작의 분위기가 황폐한 면이 강하다 보니까, "너무 추상적이다"는 비판 앞에서 제 스스로 '아, 이것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시다'라고 자신감을 가졌다가도, 사람들 앞에서 난도질을 당할 때면 '아, 나는 과연 안 돼' 하면서 주저앉곤 합니다.


"왜 이 시가 나에게 와 닿는 것일까?"

김정환 : 제가 듣기에는 "황지우 시처럼 황폐하고…"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지우 시를 가리켜 황폐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시 소재나 제목 따위를 그것이 담고 있는 매혹만으로 보는 것이지요. 어떤 글이 황폐할 수 있고 기름질 수 있고, 환경을 노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개인의 사랑을 얘기할 수도 있고 아니면 공동체적인 사랑을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입니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시는 분량이 짧기 때문에 더욱 분간이 안 되는 어떤 경지를 강조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황지우 시를 읽었을 때 좋다고 하면, 내용인지 형식인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시를 대했을 때, 시의 내용이 내가 원하는 것이어서 좋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글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끼리의 만남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거꾸로 어떤 시의 내용 자체는 내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내가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일지도 모르는데, '왜 이 시가 나한테 와 닿는 것일까? 그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황폐한 시를 좋아하지는 않지요.
어떤 시를 볼 때는 기본적으로 감동이라는 것과 충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를 읽고서 감동을 받았을 때, 그것을 정말로 좋은 시를 쓰는 밑거름으로 쓰려면, 이 감동이라는 것이 정말로 나한테 제대로 된 것인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감동이라는 것과 만만한 것이라는 것이 구분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나도 대충 쓰는데 이 친구도 대충 쓰네. 나는 아직 나가지도 않았지만 이 친구는 벌써 유명해졌네. 하지만 만만하고 얘 수준도도 나랑 비슷하네.'
이러한 생각들을 우리가 감동으로 생각하고 착각한다면, 이 사람은 미망(未忘)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걸 감동이라고 할 수가 없고 '나랑 비슷하기는 한데, 이건 나로부터 출발된 것이지만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단 한 줄이 보여주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감동(感動)'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진짜 감동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7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80년대, 90년대 들어 문학이 대중화되면서 가장 손해본 말이 감동이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베스트셀러를 보고 감동 받았다고 하는 걸 보면, 제가 느끼기에는 '만만하다, 내가 바쁘니까 그렇지, 나도 바쁘지 않으면 이 정도는 쓰겠다' 즉 자기 수준과 비슷하다는 말을 감동이라는 말로 치환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일들이 체질화되면 정말로 좋은 시인이나 좋은 소설가가 되는 길 중의 하나가 막힙니다. 즉 좋은 글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좋은 글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끝까지 가지고 있다면 좋은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정쩡한 감동이라는 말로 자기 비슷한 것, 자기와 비슷한 소재를 발견한 것 정도를 가지고 감동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가령 학창 시절에 데모를 해서 징역을 산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어떤 시를 읽고서 '아, 이 사람은 데모하고 징역을 살아서 이렇게 쓰네.'라고 생각하면서 동질의 경험을 단순히 감동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중요한 배움의 길이 막혀 버립니다.
충격이라는 것은 자기와 다른 것을 전제하는 것이지요. 그냥 충격으로만 친다면 정말 엽기적인 사건처럼 충격적인 것이 없지요. 누구한테 배반당하거나 혹은 신문에서 뭘 보는데 엄마가 자기 아들을 시켜서 아버지를 죽인다거나 하는 것들이 문학으로 엽기적(獵奇的)이다라고 했을 때는 어느 정도 제련을 거쳐서 나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것을 생략한 채 새로운 것이나 충격적인 것만을 찾는다면, 그것은 문학인지 사건인지, 문학사에 들어가야 할 작품인지 사회사에 들어가야 할 작품인지를 모르게 됩니다. 제가 충격과 감동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감동 안에 충격적인 부분이 있고, 충격 안에 감동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즉 감동이 없는 충격이라는 것은 신문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일이고, 충격이 없는 감동이라는 것은 내 주변과 다를 것 없이 그저 밋밋하고 만만한 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자기한테 좋은 시라고 읽혔을 때 '아, 이 사람도 나랑 비슷한 부류의 시를 쓰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건 위험합니다. 또 '아,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한 고통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위험합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내용과 형식이 구분이 안 될 때 큰 감동을 일으킵니다. 어떤 작품을 읽고서 감동을 받았을 때, 형식 때문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혹은 형식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내용 때문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혹은 내용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구분이 안 될 때, 그 작품이야말로 진짜 좋은 작품입니다. 또 그 감동은 신선하고 좋은 배움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어떤 시를 봤을 때,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충격과 감동이 구분되지 않을 때,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충격이 감동이고 감동이 충격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한 구절을 만났다면, 우리는 그 시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을 선생으로 만들 길이 마련되었다는 뜻입니다.


남이 어떻게 썼나보다 자기 안의 치열성 있어야

넋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남이 어떻게 쓰는가라기 보다는 자신의 작품 앞에서 내 자신에게 만족이 되는가, 어떤 시상이 떠올랐을 때 '이거 안 쓰면 정말 미치겠어'라는 생각이 드는가, 습관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뭐가 나와서 이걸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계속 불편하고 신경질이 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기 머리속에서는 정말 근사하게 될 줄 알았지만, 아무리 초일류 시인이라 하더라도 자기 머리 속에 '아, 이건 정말 잘될 것 같애'라고 하는 만큼 쓰여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이 곧 이상과 형상화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이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자기가 쓰고 싶었던 글을 써놓고 보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 쓰는 겁니다. 자신의 작품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든다면 더 이상 쓸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 불편함이 아니면 글을 계속 쓰는 이유가 없습니다. 늘 자기가 쓰고 싶었던 것보다 글로 되어 나타난 것이 못마땅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그 다음 글을 쓰는데, 그 글이 처음에 못 메웠던 간극보다 더 많은 것을 메우고 동시에 더 큰 간극을 만드는 게 글쟁이들이 글을 써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형상화와 이상의 관계라는 것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꿈이 있었는데 그걸 이루지 못했다던가, 평생을 살아도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못했다던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었는데 못했다던가… 이런 이상과 실제로 한 일의 간극(間隙)보다도 훨씬 더 매력적이기 때문에 글을 계속 쓰는 거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큰 문제는 한편의 글을 쓰고 난 다음 제대로 남의 평가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글을 쓸 때에 어떤 불꽃이 내 안에서 터져서 이 글을 시작했는가, 불꽃으로 글은 시작되지만 끝날 때는 생애가 걸리는 겁니다. 짧은 시건 긴 소설이건 한 작품은 탄생과 함께 작품의 생애를 겪게 마련입니다. 나로 하여금 글 앞에 앉혔던 섬광 혹은 불꽃이 제대로 살아 있는가, 그것이 제대로 형상화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것을 몸체 즉 세계로 만드는 과정에 더 늘어난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글을 단련시키는 것 못지 않게 글이 사람을 단련시키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보다 더 자기 자신에게 더 누추해지는 경험을 갖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평론가들은 좋은 작품이 왜 좋은지를 설명해줄 수는 있어도,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학자, 글쟁이와 연결된 존재라서, 글의 비어 있는 데를 찾아주지는 않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창작 교육 능력을 가진 교수사 등의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론가에게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청중 : 작년부터 시 공부를 해가면서 습작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시는 소설과는 달리 짧은 글 속에 많은 내용을 표현하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생기는 문제점으로,  그 함축된 내용을 필자 혼자만 알아야 되는가 아니면 필자 아닌 다른 사람한테도 필자가 쓰고자 하는 내용이 전달이 되도록 써야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떤 시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고, 좀 쉽게 풀이한 것은 대강 어떤 뜻인가 추상을 해볼 수 있는데, 필자 외에 다른 사람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지 혼자 내 마음에 들도록 썼을 때 이것을 시로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꼭 타인에게 잘 전달되도록 써야 될까요?

김정환 ; 정말 꼭 알아듣고 오해가 없게 써야 되는 것은 공문서입니다. 우리가 문학을 한다는 것은 알아듣는 것을 바탕으로 하기는 하지만, 이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이 다르게 해석되는 면 즉, 공적인 것에 대한 저항,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저항,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공적인 것의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저울질하기 마련입니다. 보다가 용감했으면 상대방을 챙길 수 있었는데 비겁해서 평생 한탄한 사람도 있고, 또 아직 사랑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아 시간을 두고 다가가야 하는데 서둘렀다가 파경의 슬픔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첫째로 공적인 논리와는 다른 공적인 논리를 포괄하는 언어가 문학의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각기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고 해서, 아무도 모른다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즉 여러 겹의 언어를 구사하는 겁니다. 여러 사람이 보면 자기의 느낌대로 자기가 살아온 대로 여러 개로 할 수 있는 겁니다. 흔히 고전(古典)이라는 말을 합니다만, 한 시대에 이미 정평이 난 작품이라 할지라도, 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읽어보면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달리 보이기 마련입니다. 또 이 백년 뒤에 읽어보면 그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내용은 같지만 달리 보입니다. 누가 새롭게 달리 쓴 적이 없는데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여러 겹의 언어의 핵심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좋은 문학 작품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을 발견해 내서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글을 써 나가면서 '나는 천재다. 남들은 저것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하느님이 아무리 좋은 능력을 주셨다고 해도 그 사람은 발전을 못합니다.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일반 사람들과 늘 만나면서 그 사람들과 싸우든 친하든 가르치든 배우든 관계 속에 존재해야 합니다. 언어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아이큐가 높은 사람일지라도 인생을 알기 전에는 제대로 문학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어떤 때는 그것 때문에 핍박을 받고 어떤 때는 그것 때문에 살아남아 왔었던 것입니다.
 

좋은 시는 천재성 아닌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안에 대중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 언어인데, 늘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중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대중이라는 존재를 제일 모릅니다. 여기 있는 나를 비롯해서 모두가 대중이면서 대중이란 말을 제일 오해하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언론에서 '이것이 대중이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안에 있는 일원이 대중인데, 내 안에 있는 것이 대중인데, 대중이란 걸 남한테 듣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것에는 시청률을 생각하기 때문에 대중은 뭐다라고 하는 것이 병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 안에 대중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내 안에 대중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안의 대중과 대화를 할 수 있어야 자기 밖의 대중과도 대화를 할 수 있고, 대중의 좋은 점이 무엇인가도 보이면서 겸손해지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늘 텔레비전 시청률을 가지고 대중을 따지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일입니다. 일일이 마이크를 대고 '일일 연속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으면서 우리는 대중을 잘못 대접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면서도 시청률 70%,  80%라는 물신(物神)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상업 논리 안에서 대중상(大衆像)이 이런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대중, 자기 안에서 지향하는 대중에 끝간 데까지 가보는 것이 시이겠고, 가장 폭넓은 데로 가보는 것이 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환 : 시에서 비유라는 것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첫 욕망일 것입니다. 비유 때문에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자기 마누라를 지지고 볶다가 갑자기 좋아져서 감동을 했을 때 그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뭐 같은 우리 마누라'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여자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남편이 맨날 술만 먹고 돈을 벌어오지도 않고 주정만 하다가, 어떤 때 오래 산 맛을 느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뭐 같은 우리 남편'일 것입니다. 그게 다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심(詩心)입니다. 이 시심이라는 것은 백만 명이면 백만 명한테 다 있습니다. 백만 명이 다 시심을 갖고 있지만 그 중에 시인이 되는 것은 한 명도 될까말까 합니다. 우리나라의 시인이 4천 명이라고 하는데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숫자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좋은 시인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좋은 시와 소설을 낳는 것은 시작은 비유(比喩)입니다. 어떤 비유가 제일 좋은 비유라고 생각하십니까? 비유의 수준은 곧 시의 수준을 대는 척도입니다. 흔히 변덕스러운 사람을 가리켜 카멜레온이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시적인 비유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변덕스럽다'는 쉽게 들리지만 이 말 속에는 인간사의 온갖 기기묘묘하고 복잡한 양상을 일개 동물인 카멜레온에 비유했을 때 이것은 폭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한꺼번에 이미지를 전달하는 광고라든가 선동 등에 어울리는 것이지요. 8,90년대 운동권에서 유행한 말 가운데 '개떼처럼 몰려가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런 말은 아주 타락한 비유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 말은 선동하는 효과는 있지만 문학적 효과는 없다고 보아집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복잡다단한 사람들이 몰려가는데, 이를 획일화해서 비유하는 건 그야말로 비유의 테러리즘이지 문학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회주의 70년 역사를 보면 그런 비유 때문에 정치도 망했다고 봅니다. 스탈린은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말을 썼습니다만, 이것은 문학적인 유혹이라고 볼 수 없는 정치적 유혹이거나 폭력적인 유혹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국회의원 선거 등에 즈음하여 후보자를 천박하다고 합니다만, 그들에게 '대중을 이런 식으로 선동하면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를 한번 치를 때마다 폐해를 문학적으로 복구하려면 20년씩 걸립니다. 아무튼 이런 것들을 뿌리치면서 비유의 수준을 높여 가는 것이 문학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남들이 쓴 비유를 다시 쓸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생애가 걸려져 있는 비유를 써야 합니다. 문학의 근대가 시작되면서 가장 중요한 현상은 비유 수준이 인간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초생달 같은 눈썹, 앵두 같은 입술, 요즘도 시를 처음 쓰는 사람은 씁니다만 이런 자연의 비유, 문학이 근대화되면서 비유가 인간사회 속으로 들어와 버립니다. 예를 들어 돈을 꿔간 친구가 갚기는커녕 갚는다고 약속한 날을 2, 3일이 넘겨 겨우 물어보니, 그제서야 "아, 그거 못 갚았어."라는 말을 들었다 합시다.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열 받았다"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비유에 인간의 세계가 들어오는 거지요. 물론 아직도 탕진하지 않은 자연의 비유들이 남아 있습니다. '별처럼 아름다운'이나 '보름달처럼 밝은'이란 표현은 너무나 많이 써먹은 것이지만, 자연이라는 것이 워낙 넓은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비유를 아직 탕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학이 근대로 넘어오면서부터 특징적인 것은 비유 수준이 인간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속담도 수준이 갈수록 달라지는 겁니다. 문화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가 옛날에는 속담 수준이 높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속담 수준이 낮아져 갑니다. 속담이 아니라 삼행시나 사행시로 바뀌어 갑니다. 문화 수준이나 정신구조의 수준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문학의 역할이라는 것은 결국 이런 일들을 보면서 그대로 못 참는 것입니다. 저는 신문을 1년 동안 일체 안 보다가 다시 계속 보다가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체 안 보는 이유는 거기에 들어있는 비유나 언어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지는 걸 보면서 때문에 열 받느니, 안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또 그래도 1년을 참고 보는 것은 그걸 가지고 싸우면서 이걸 높이려고 해야지 나 혼자 잘났다고 외면해서는 문학의 언어에 대화의 통로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어려운 입장에 있는 것이고 문학이라는 것은 원래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만족만 가지고 사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비유의 수준이 높아져야만 하는 게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청중 : 시를 쓰면서 행갈이를 어쩔 때 합니까? 일반적으로 시는 어떻게 쓰고 언제 쓰는지 그리고 김정환 시인의 경우는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김정환 : 소설로 말하면 단락이고 시는 행을 가는 경우인데 어떤 때 그러고 싶을까요? 행갈이가 지망생들이 처음에 빠지는 가장 위험한 함정인 것 같습니다. 행갈이를 조심하고 비유 수준을 높일 생각을 하고 경어를 너무 쓰면 내용이 형식에 빠져 버립니다. 시인 지망생들에게 저는 우선 김수영 시집을 읽도록 권합니다. 거기에는 경어가 하나도 없고, 산문과 시가 구분이 안 되는데도 시입니다. 시와 산문 사이의 경계를 겹치면서 시로 끌어들이는지, 행갈이가 어디서 되는지 경어니 구투니 이런 부분이 완벽하게 없어지는 점에서 시를 지망하는 분들이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시의 길에 왕도는 없습니다. 각자 나름의 독특한 영역을 확보해 나가면서 내용과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온몸으로 감동을 낳는 시작을 꾸준히 해 나가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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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김규항의 블로거에서

절대 공감한다. 대한민국 만세가 절대 아니다. 노동자, 근로인민 만세! 이거나 가진자, 자본가 지배계급 만세이거나!

 

계급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계급의식의 결핍'이다. 사회 문제는 기본적으로 계급 간의 문제인데 사회를 계급으로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니 사회 문제에 대한 온갖 요란스런 논의는 모조리 헛소리가 되어버린다. '대한민국은 하나'라는 거짓 레토릭이 정당한 현실 비판을 먹어치워버리며 결론은 언제나 '국익'이다. 국익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 사이에는 이해관계의 모순이 있는데 어떻게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이익’이 있을 수 있는가. '국익'이란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의 거짓 표현일 뿐이다. 계급의식이 결핍된 상태에서, 지금 한국처럼 대다수 인민들이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국익'에 열중하는 상태에서 사회 진보는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의 진보는 무엇보다 인민들의 계급의식이 얼마나 늘어나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유구한 반공주의 파시즘의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 '계급'이라는 말은 여전히 '빨갱이들의 말'이며 혐오어다. 그래서 '노동자'라는 말이 '근로자'로 대체되듯 계급은 계층이라는 말로 대체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계급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다. 특히 상층 지배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계급이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을 매우 공격적으로 표시한다. "당신 여전히 계급의식으로 세상을 보나!"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아니 그런 사람들일수록 제 삶에선 계급의식에 철저하다. 이를테면 번듯한 배경을 가진 청년이 보잘것없는 처녀와 결혼하려할 때 그들은 (계급의식을 근거로) 말한다. "안 맞아." 그들은 계급의식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인민들의 계급의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인민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은 하나'가 아님을 깨우칠 때, 대한민국을 계급으로 나누어보기 시작할 때 그들의 파국도 시작된다는 걸 그들은 안다. 그들은 정말이지 계급적이며, 그래서 그들은 지배한다. (2006.10.18 김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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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3)

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3)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3-3) - 노동자 선동하는 송경동 시인

                                                                         송경동 (시인) 

노동문학은, 운동은 무엇을 해 왔는가

과거 우리 노동문학은 주요하게 이런 혁명적 삶, 변혁적 삶을 소개하고 재현해내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일상을 현미경처럼 보여만 주는 일은 사회주의 리얼리스트들이 보기에 너무도 한가한 일이었고 재미없는 일이었다. 구체성 없이 자신의 주관에 휩쓸려 낭만적 포즈만을 취하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었다. 세계의 변혁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런 삶들을 형상화하고, 이를 사람들과 나눠 보고자 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사회주의 국가 수립 이후 사회주의 관제작가들의 삶은 오히려 편했을지 모르지만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싸우던 시기 리얼리스트들의 삶 역시 어느 혁명적 삶들 못지않게 고단했다. 혁명적 활동들 속에 있지 않고는 혁명적 문학을 표현해 볼 수 없었기에 모든 위대한 리얼리스트들 대부분은 조직운동과 함께 해 왔다. 조직운동이 아니더라도 조직운동이 벌어지는 그곳에 더불어 함께 있어야 했다. 조직운동이 없었던 시기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조직운동을 꿈꾸는 삶의 꿈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생존의 현장 곁에 그들은 있었고, 있어야 했다.
한국사회 노동문학만 하더라도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친숙한 작가들 중 대부분이 이런 민중운동, 노동운동과 함께 삶을 살아 왔다. 때에 따라서는 그들은 문학가로가 아니라 조직가로 운동의 전선 속에 있었다. 이 즈음에서 실제 그러했는가를 확인해보기 위해 역사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보자. 다음 내용은 1925년부터 1935년까지의 KARP(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운동 시 제시되었던 창작 방향 목록이다.

1. 전위의 활동을 이해하게 하여 그것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작품
2. 사회민주주의, 민족주의자치운동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
3. 대공장의 파업
4. 소작쟁의
5. 공장, 농촌 내 조합의 조직, 어용조합의 반대, 쇄신동맹의 조직
6. 노동자와 농민의 관계를 이해시키는 작품
7. 생략
8. 조선토착부르조아지와 그들의 주구가 제국주의자와 야합하여 부끄럼없이 자행하는 적대적 행동, 반동적 행동을 폭로하며, 또 그것을 맑스주의적으로 비판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결부한 작품
9. 반파쇼반제국주의 투쟁을 내용으로 하는 것
10. 조선 프롤레타리아트와 일본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적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작품,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연대심을 환기하는 작품

우리가 흔히 노동문학을 한다, 하겠다할 때 근거해야 할 역사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또 앞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문학 조직 내에서 어떻게 목적의식적으로 준비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우리가 1980년대와 90년대에 논쟁했던 문학운동의 고민들이 그대로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예술가들이 정치투쟁을 직접 수행할 것을 주장하는 노선이 있었는가 하면, 예술가들은 예술운동 조직을 통하여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의 생활과 사상 감정을 재현할 것, 대중 속에서 작가가 나와야 한다는 노선 등 전문적 문학예술의 대중화와 문학예술 창작의 대중화를 지금보다 더 첨예하게 고민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작가 중 한 명이었고 후일 북으로 넘어갔던 한설야의 다음 이야기도 참 재밌다.
창작이론과 작품행동의 매개-창작이론이 대중을 파악하고 그 역사적 직능을 성취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양자의 매개 형태는 작자가 조직을 통하여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생활하는 무산자적 제 생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직을 통하여 또는 조직을 결성하여 대중의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그래서 그들과 같이 생활하고 묵도하여 그들의 생활을 재현하고, 그리고 그들의 동향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작가는 서재에서가 아니라 공장에서 일터에서 농촌에서 나야 하고 또 그리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서는 도저히 소위 ‘전위의 눈’을 얻을 수 없고 그러한 작품을 제작할 수 없다.
우리가 80년대 중반 이후 실험했던 대부분의 활동들이 당시 일제 치하에서도 실험되었다는 사실이 재밌다.
카프 운동은 일제의 문화통치 시기가 끝난 1935년 이후 탄압의 시기에 모두 지하화하거나 탄압에 못 이겨 전향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한 전향자의 말은 ‘잃은 것은 예술이요,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라는 말이다.
이러한 단절을 거쳐 다시 노동문학운동이 복원된 것은 1950년 해방정국이었다. 이 시기의 문학은 ‘조선문학건설본부(문건)’과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으로 각기 나뉘어져 전개되었다. 각각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 완수를 위해 민족통일전선에 입각한 민족문학론, 당의 지도를 받아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를 확고히 틀어쥐어야 한다는 프롤레타리아 문학론을 지도 이념으로 내세웠지만 곧바로 문건 주도의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었다.
당시의 상황이 작품 생산보다는 정치적 선동이나 조직 활동을 그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음으로해서 작품 생산은 지극히 미미했다. 아는 바대로 한국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 남한 사회의 진보의 싹은 향후 수십년 동안 완벽하게 거세당했다. 노동문학은 꿈도 못 꾸고 노동자라는 말 한 마디도 내뱉기 힘든 죽음의, 폭압의 세월이 계속되었다.
노동자들의 삶이 담긴(전형성이니 당파성이니 하는 단어들은 80년대 후반 들어와서야 비로소 정치적으로 복권되었다.) 글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서다. 그 대부분은 황석영, 조세희, 신경림, 정희성, 이시영 등 일부 양심적 작가들에 의해 수행된 소수의 작품 활동 이외에는 수기의 형태였다.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 등이었다. 본격문학의 형태로 노동문학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다. 박영근의 <공장의 옥상에 올라>,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정명자의 <동지여 가슴을 맞대고>, 김해화의 <인부수첩>, 김기홍의 <공친 날> 등이 이 시기 주요한 노동자문학들이었다.
양심적 작가들에 의해 다시 민족문학의 틀이 꾸려지기 시작한 것도 1970년대다. <창작과 비평>동인, 이들을 아우르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민족문학의 새 진용과 조직체 역할을 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이후 현재의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발전해 왔다.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진보적 문학은 대부분 이 조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좀더 민중적인 흐름이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고 본격적으로 노동계급문학이 고민 실천되던 시기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부터 90년대 초반까지였다.
민족문학에서 바로 노동(자)문학으로 건너 온 것은 아니었다. 민족문학은 자연스레 민족문제 해결의 주체가 누구냐는 물음을 가져왔다. 현대 민족문제의 핵심이 역시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인 제국주의 극복의 문제임은 앞에서 밝혔다. 제국주의의 본질은 강압적 폭력적 방식(전쟁이나 침략)을 통한 잉여의 착취에 있다.
아직 한국사회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출연이 없던 시기 그것은 자연스레 민중문학론으로 발전, 모색되었다. 이론적으로는 김명인의 <지식인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상>과 백진기의 <노동문학, 그 실천적 가능성을 위하여> 등으로부터 비롯된 민중적 민족문학론 및 이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된 조정환의 <민주주의 민족문학론>, 그리고 채광석의 글 등이 이를 받쳤다. 다양한 그룹운동(이는 당시 정치조직운동들과 직간접적으로 함께 했다.)들이 전개되었고 무크지 운동 등을 통해 새로운 작가군들이 출현했다.
백무산 시인

이 시기를 전후해 노동문학은 맨 처음 백무산 시인의 수상 소감처럼 ‘노동계급의 혁명적 진출’을 감행했다. 민중문학론을 넘어 노동해방문학론이 주창되었고, 이를 따르는 무수한 창작그룹(노해문, 녹두꽃, 민애문)들과 매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 태동되었던 것이 현재 제3회 전국노동자여름문학한마당을 준비하는 일 주체인 <전국노동자문학연대(전신은 전국노동자문학회대표자회의였다.), 이하 전노문>였다. 자생적 대중적 노동자문학조직으로 일컬어지는 전노문이었다.

전노문은 전체 노동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당시 쏟아져 나온 무수한 노동문학창작인 즉, 박노해, 백무산, 방현석, 김해화, 이인휘, 안재성, 김한수, 김남일 등등등의 문학인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그 영향력면에서 현저히 부족했지만, 이들이 개별창작 이외에 문학운동을 전면에 내세운 대중문예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창작의 집단화, 조직화와 관련해서 여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는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전문문인대중조직의 공백을 메꾸고 분명한 노동예술가대중조직(일제하의 카프나, 미군정기의 조선문학가 동맹 등)의 건설을 추동하는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기능할 수도 있었다.
창작 그룹들이 주로 이론 생산과 작품 생산을 통한 활동에 주력했다면 전노문은 대중조직으로서 현장문학반 건설 사업, 도서대출 사업, 공단이나 지역 내 대중문학강좌, 집단창작 활동, 문예선전활동(문예신문 발간, 기관지 발간, 시화전, 시낭송회밤 및 시낭송단 운영, 노조편집부 교육 등), 현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일상적인 문예 창작 및 학습, 그리고 정치 학습 등을 자기의 근간으로 삼았다.
기본적으로 노동자대중조직이라는 일반성 위에 문예조직이라는 특수성이 결합된 방식이어서 초기엔 사업의 집중성이 분산되기도 했지만 추후 문예조직으로서의 위상 강화로 초점이 정리되었다. 하반기로 갈수록 ‘전문성 강화’가 과제로 세워졌다. 전반적인 운동의 퇴조기를 맞으면서는 노동자대중조직으로서의 일반성은 더욱 약화되고,(전체 노동운동과의 단절) 문예활동 역시 계급적 문예운동에서 일반 문학 동호인 모임들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선까지로 약화되어 왔다. 민족문학운동도 보수화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략 이런 전개 과정을 거친 후, 한국사회 노동계급문학의 현재는 다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해져 있다. 먼저 창작운동의 측면을 살펴보자면 노동문학을 이끌었던 진보적 창작자들은 이미 오래전 창작활동을 놓거나 축소하였고, 개별적으로도 노동운동 등 진보운동과의 관계의 선들이 단절되어 있는 상태다. 아예 창작 내용의 중심을 옮긴 작가들도 숱하다.
따로이 이런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 작가 집단(과거와 같은 동인 형태 등)도 거의 유실된 상태라고 보는 게 맞다. 그나마 <삶이 보이는 창>과 <전태일문학상운영위원회>와 <전노문>에 일부 소수의 노동문학 창작인들이 포진되어 있을 뿐이다. 전형적 조직 형태가 아니더라도 공명하는 창작인 그룹들이 형성되어 왔던 과거와 비교하더라도 창작인 중심의 노동문학조직운동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삶이 보이는 창> 창간, <노동자문예 삶글>(전노문은 몇 해전 자족적 형태의 기관지를 대중적 문예지로 격상시키고, 이를 새로운 노동문학운동의 마당으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실험을 전개했었다.) 창간 등을 기화로, 그리고 1996년 노동법개정투쟁, 1998년 IMF 사태 등을 맞으며 계급적 각성들이 다시 고양되는 틈을 타 잠깐 다시 활발한 모색과 소통, 그리고 남아 있는 노동문학진영의 연대를 모색해 보았지만 돌이켜보자면 이를 조직화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판단이다.
좀 더 대중적 문예실천단위로는 <작은책>이 편집 방향을 통해서나 글쓰기 모임 등을 통해 노동자문학운동의 대중적 실천 가능성을 유지해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문예활동가들이 대부분 유실되었다는 것이다. 노동자문예운동은 그 성격상 목적의식적 활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외부의 이데올로기 공세들이 그 작은 공동체를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자생적 문예조직이었다고 표현되는 전노문의 건설에만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예활동가 실천가 그룹들이 목적의식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이보이는창
혁명적 이론도 혁명적 조직도 혁명적 인자도 혁명적 실천도 혁명적 대중도 잘 보이지 않는 이 암흑 속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떤 나침판을 들고 저 먼 길을 항해해 가야만 하는가. 혁명적을 빼고 자생적, 일상적, 문화적, 개혁적으로 고치면 그것은 가능할까. 혁명적 민족에서 혁명적 민중에서 혁명적 노동자에서 개혁적 국민으로, 관용의 시민으로, 자율적 다중으로, 혁명적 아나키스트로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으로 주체 개념과 이행 전략을 바꾸면 그것은 가능할까.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나는 앞 단락 맨 끝의 물음의 답을 모른다. 주제도 안 되거니와 나 역시 겪고 있는 피로감이 그런 정치한 물음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회로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알았다면 물음의 형태를 피해 설득의 형식을 취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지금-여기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게 인간의 운명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도대체 무어라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처럼 느껴지는 게 살아 있는 사람의 정신이고 몸이다.
먼저 멀리 가지 않더라도 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진행되었던 노동자문학운동의 논리와 한계를 짚어보고 우선은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될 부분과 전술적으로 버려야 할 부분 등을 간추려야 할 것 같다.
- 먼저 창작에서 구래의 도식화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작방식을 버려야 한다. 특히 그 보이지 않는 구 사회주의당들의 눈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슬프게도 그런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전무하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 이야기를 하나. 노동자문학하면 먼저 위의 창작방식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가 새로운 창작자들과의 소통과 창작의욕들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록해놓은 모든 전술적 차원의 문예이론들은 역사적으로 습득하되 모방해서는 안 된다. 거기서 얻을 것은 그들이 초기에 가졌던 자본주의 이후 인간해방에 대한 끊이지 않는 꿈꾸기의 정신과, 뜨거운 애정, 실천의 품성들이지 그 방법은 아니다.
특히나 작품 형태와 내용의 단순모방은 이제 지긋지긋한 수준까지로 올라가고 있다. 한 사람의 대중도 감화시키고 선전선동시키지 못하는 문학작품은 오히려 혁명의 적이다.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선대의 사회주의 문학가들은 단 한번도 무엇을 답습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창조는 정확히 그 시대 대중들이 바라는 꿈의 묘사에 있었다.
당신이 진정 노동자계급문학의 전통 속에 있다면 이 시대 누구보다도 새로운 문학을 꿈꾸어라. 누구보다도 발랄하고 생동감 넘치고, 감동적인 문학을 꿈꾸라. 없었던 문학을 꿈꾸라. 만약 그 꿈이 노동자를 죽이며 가야 하는 길이라면 그 길로 가라. 만약 그 꿈이 현존했던 사회주의를 한번 더 재차 죽이고 가야 하는 길이라면 그 길로 가라. 제2의 박노해, 제2의 백무산은, 제2의 김남주가 되려 하지 말고 제1의 아무개가 우리는 필요하다.
자기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자, 그래도 세상은 똑같다고만 되뇌이고 있는 자는 사실은 보수주의자에 다름 아니다. 변화를 즐거워하는 자, 그가 진보주의자고 현실을 넘어서는 세계를 꿈꾸는 자들이 할 일이다.
그러나 제발 노동의 대지-이는 현존 사회주의를, 민주노총을, 민주노동당을, 사회당을, 노동자의 힘을, 전국연합만을, 또 어떤 어떤 현존하는 정치조직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이 세계의 본질적 요소로서의 노동의 대지를 말한다.-를 떠나는 누만은 겪지 않기를. 말하자면 반자본 반제국을 넘어서는 모든 새로운 기획과 품성을 잃지 말기를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성(性)으로 갈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생태로 갈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인권으로 갈 수도 있다.
공장에 모두가 붙어 있던 시기는 지났다. 현대는 사회 전체가 공장화 되어 있다. 업종 역시 서비스업 노동자수가 제조업노동자수를 육박하는 한국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더더욱 800만의 노동자들이 비정규불안정노동에 놓여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공장문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이젠 그곳만이 아니다.
파업조차를, 조직조차를 만들어 보는 일조차 불가능한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이 비참한 사회에서 내가 다시 펜을 들고 들어가야 하는 곳은 어디인지를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모든 인간적 가치가 자본주의 상품화되고 있는 이 땅에서 나는 사람살이의 어떤 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적 속성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그 본질을 햇볕 앞으로 끄집어내어 자연스레 퇴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모든 창작적 소재는 늘 내 주변에 깔려 있고, 더더욱 지난 15년새 다시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와 있다. 일례로 나는 현장의 이야기를 다룬 어떤 노동자들의 시에서도 현장 내에서의 성 문제를 다룬 작품을 보지를 못했다. 왜 우리 공장은 남성들뿐일까. 왜 우리 공장은 여성들뿐일까. 아무렇지도 않은 질문 같지만 그런 질문 속에서 새로움이 싹트지 않을까.
현재 대부분의 노동문학가들은 과거처럼 과중한 조직일에 시달릴 일도 없다. 이러한 때라면 좀더 창작에 전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작품이 없는 곳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작품들이 나와야 이론이 서고, 다른 모색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노동문학운동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 창작운동이다. 조직운동과 창작운동을 병행하던 그때보다 더 치열하게 창작에 전념해야 한다. 조직운동과 관련을 맺더라도 그것은 과거처럼 조직운동의 일원으로 조직 내 일의 한 영역을 맡는 형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유롭게 소통하며 내용적 고민을 나누는 형태가 될 것이다.
- 한편, 진보적인 문학가들 간의 소통과 작품 내용을 둘러싼 모색의 테이블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문학가들의 만남은 거의 사적 만남이거나 친목 형태의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만남의 틀이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 생각키로 가장 바람직한 현 시기 노동자문학운동, 그리고 그것의 조직운동의 형식은 첫째, 새로운 창작동인들의 조직 형태다. 동인으로는 현재 <일과시>가 남아 있지만 피로감에 휩싸여 있는 상태다. 다른 동인들이 가능할까.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만이 아니라 연대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작가들을 찾고 묶는 게 필요할 것이다. 이 동인은 철저히 창작에 대한 고민만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두 번째로는 사업을 통한 풀 형성이다. 가장 유효한 형태는 100인 편집동인 정도를 만들어 매체 사업(반년간 정도의 종이잡지와 인터넷문학매체)을 축으로 최소한의 만남들을 수평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대신 슬로건은 좀더 명확히 하는 것이 현 시기에서는 오히려 서로에게 도움을 줄 거라는 판단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하는 작가모임 형식으로 말이다. 서로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야 분명한 창작과 활동상들이 잡힐 것이다. 종이잡지는 새로운 신세대 창작군들과 만나는 계기 정도를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만고만하게 유지하고 있는 문학소그룹들의 자기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적자원과 재원, 그리고 사업의 좀더 효과적인 집중과 분산을 위해서 말이다. 말하자면 조금씩의 차이들을 넘어 낮은 단계의 통합(서로가 자유스러울 수 있는)을 이루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조직적 노력을 현재의 민주노조운동들이 대중적으로 엄호해 주는 일은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 사실 현 시기 노동문학운동이 담당해야 할 과제는 너무 넘쳐날 지경이다.
창작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크게 보면 현대 사회의 자본주의 메카니즘에 대한 폭로와 고발, 이를 넘어서는 대안의 인간관 제출이 필요하고, 좁게 가면 현재 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한 고발, 특히 비정규불안정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는 긴급하다.
문예대중화 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터넷을 통한 담론 형성에 개입해 들어갈 수 있는 대안적 문예활동들과 그에 맞는 사이버상의 조직활동들이 요구된다. 두 번째로는 조직대중들을 중심으로 한 진일보한 문학교육 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문학으로부터, 문화활동으로부터 소외되어 문화상품의 소비자로만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벗어나고자 하는 일만 하는 기계의 상태다. 현재 민주노총 금속연맹/노조에서는 내부에 금속노동자문화발전특위를 꾸리고 그 안에 노동문학발전위를 두고 있는 상태지만 이를 엄호 지지해 줄 수 있는 조직적 단위와 인자들이 너무도 취약한 상태다.
- 한편 대중문예운동의 새로운 형식 모색이 필요하다. 우리는 과거 수행해 왔던 방식은 크게 종이 매체를 통한 집단 형성, 그리고 지역을 축으로 하는 집단 형성 방식이었다. 당시는 참 창조적이었다. 도서대여 사업, 벽시운동, 문예신문운동, 시낭송단 사업 등등. 유통의 형식도 그러다 보니 새로웠다.
기존의 서점만을 통해 소통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때론 공장 안으로 위장취업해 들어가 찌라시를 읽혔고, 지역 내에 무료 책대여점을 차리는 형식이었다. 공단에 벽시를 붙이고, 찾아가서 시낭송을 해주는 사업이었다. 찾아가서 함께 시를 지어보는 일들이었다.(집단창작방식이 이거였다.)
이런 사업을 모두 지금은 관 조직인 문예진흥원에서 돈 줄테니 제발 좀 하라고 한다. 이름도 찾아가는 문화예술이다. 아무런 인센티브를 주지 않아도 청춘을 바쳐서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잠잠한데 이제 제발 관에서 그 일을 해 달라고 한다. 그 모든 새로운 유통의 형식들은 지금은 관에서 자본에서 다 한다.

 
우리는 무료로 책 대여 사업을 했지만 동네책대여점은 돈을 받고 책을 대여해준다. 그것도 검증되지 않은 질낮은 도서를. 우리는 무료로 비디오 상영과 대여를 했는데 그후 문을 연 비디오방은 돈을 요구했다. 노동자문예운동은 그만큼 창조적이었던 것이다. 창조적인 게 노동자문예운동이었던 것이다. 그 창조성이 그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모두 과거 했던 유통형식, 문예운동 방식의 답습이거나 모방, 그것도 충분한 믿음없이 하는 형편이다. 아니 그 정도의 사업이라도 수행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안 된다.

 
그런데 안 되는 것에는 다 까닭이 있다. 그것은 이제는 좀 다른 방식에 대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직 형식, 사업 형식의 새로운 개발이 필요하다. 이 고민은 의외로 새로운 문예운동의 조직들을 만들 수도 있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상업자본들에게 밀려 예를 들어 인터넷 환경이라는 혁명적 변화의 계기에도 새로운 상황에 맞는 어떤 진일보한 문예운동 방식도 내놓지 못했다. 그 순간 우리는 보수가 된다. 보수가 다른 게 아니다.

가령 인터넷은 그 질의 고하를 떠나 인터넷 공간 안에 수천 개의 온라인 문학모임들을 만들어 냈다. 네이버나 다음 등등 사이트엘 가서 문학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정말로 한 사이트 당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문학동호회 모임들이 나타난다. 지금은 그 보다 나아가 누구나 개인 블로그를 주어 일상적인 ‘생활글쓰기운동’을 인터넷 매체들이 지원하고 있다.

 
종이 매체처럼 한 편의 글을 쓰고 몇 십일을 몇 달을 기다려야 할 필요도 없다. 소통의 욕망이 문학의 욕망이라면 인터넷 공간보다 더 좋은 매체는 이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글만 좋으면 실시간으로 수백 수천 명과 바로 소통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소통에 대한 욕망보다도 권력에 대한 욕망에 더 집착한 보수주의자들이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과거의 수구보수꼴통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보수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새로운 정신은 새로운 형식을 만든다. 김수영이 내용과 형식은 함께 간다 했을 때의 말의 의미가 이것일 것이다. 새로운 정신만 있고 새로운 형식은 없는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있을 수 없다. 형식과 내용은 함께 간다.

그것이 공간일지, 시간일지, 대상일지 우리는 깊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지역에 뿌리박는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지역 안에서 어떤 위상과 일들, 관계들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지역에 있다는 의미가 성립되는 것인가. 등등.

발제자의 고민은 사실 다른 무엇을 떠나서 문학인들에게는 작품의 내용일 거라고 본다. 작품이 있으면 새로운 유통 방식은 널려 있다. 고전적 전통적 모던적 방식에서부터 현대적 포스트모던적 방식까지. 결국은 정신의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작품 생산은 여전히 수공업적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성과 학습을 인터넷이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육화의 경험을 정보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정보 생산자가 정보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일 필요는 없다. 정보는 모두 현실의 구체적인 사람들의 일 속에서 나온다. 하지만 대중문예운동의 방식은 이런 개별 창작자의 처지와는 다를 수 있다.

인터넷의 예를 들기는 했지만 여하튼 노동자대중문예운동의 새로운 조직과 사업 형식 개발은 시급하다.

 
- 주객관적 상황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자꾸 수세적인 활동보다 오히려 공세적으로 무슨 진보적인 문학가동맹이라도 하나 떠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얼마전 세간엔 잘 안 알려졌지만 6.15민족작가협회<공식이름은 확인필요함>가 구성되기는 했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남북통합 문학인 조직이 그 모태다. 하지만 왠지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시대적으로 진보적인 아우라 속에 있음에도 왜 그러는 것일까.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6.15가 앞에 붙으니 과제 중심의 과도기적 문학조직일 수 있겠다.) 모든 게 오픈된 시대에, 국가보안법도 사문화된 시대에, 운동권(비하되어서 그렇지 나쁜 말은 아니다. 누군가를 대상화 시키는 말도 아니고) 알기를 무슨 사기약장사꾼이나(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사업장 간부들의 최근 비리가 사회화되는 현상을 보라) 어리광부리는 아이 보듯이(노무현과 개혁세력들은 늘 민주노총 철들어라고 훈계한다.)하는 이 시대에 왜 가슴 속 양심을 감출 것인가. 모습 좀 감추어서 어떤 떡고물을 얻어먹을 것인가. 그렇게 살면 작가적 양심이 내 자신을 가만두겠는가. 대놓고 하자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 나라가 저희 공화국이라고 떳떳이 말하는 삼성처럼, 제 모습 감추지 않고 아무나 쥐어박고 때리고 죽이는 미국처럼, 변형된 형태의 내용상 포르노를 버젓이 안방극장에 상영하며 돈 버는 저 공영방송들처럼 그렇게 말이다.

 
- 겁 없이 문예운동, 특히 조직운동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아보았다. 고민으로 들어주고 간신히 숙제는 마친 것이라고 보아주면 좋겠다.
송경동 시인은 얼마 전 포항건설노동자 집회에서 시를 낭송했다는 이유로 포항경찰서에서 출두요구서를 받았다. 책상에서 쓰는 시보다 공사판에서 투쟁현장에서 쓰는 시가 많다고 한다. 2006년에 첫시집 <꿀잠>을 삶이보이는창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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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조기영어교육인가

누구를 위한 조기영어교육인가


조 진 희(서울영일초등학교 교사)


영어 공화국에서 초등교사로 살아가기


“The tiger is stronger than the rabbit.” 영어 수업이 끝날 무렵 6학년 33명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이런 비교급 문장이 5개 더 있는 책을 들고서) 나는 이 시간이 가장 공포스럽다. 호랑이는 tiger이라고 써라, 비교급이니 strong 뒤에 er을 붙여라, ‘~보다’라는 뜻의 영어는 then이 아니라 than이다, rabbit 앞의 the는 소문자로 써야 한다….

비교급 4번째이자 마지막인 쓰기 시간인데도 아이들에게 비교급 개념은 잡혀 있지 않다. 고칠 점 하나 없이 통과되는 아이가 거의 드물어 화장실 갈 시간도, 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어 아이들에게 물 한잔을 ‘요청’해야 한다. “Can I have some water?” 이미 6학년 다른 학급 아이들이 영어실에 들어와 떠들며 수업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 영어 10년 효과는 있었는가


한국에서는 영어가 ‘왜’ 필요하고 ‘얼마나’ 필요한가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원어민처럼’ 능통하게 만들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1997년 초등학교 3학년에 영어과가 처음 들어온 지 올해로 10년째다. 하지만 정부(영어조기교육 확대 방안은 10개 이상의 부처가 연합해 범정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와 영어교육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초등영어정책 평가서를 내놓지도 않은 채, 지난 1월 「초등영어교육 확대 시범 실시 방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지난 9월 1일부터 전국 50개 초등학교에서 1~2학년 영어교육이 시범 실시되고 있다. 이 연구학교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부는 2008년부터 확대 여부를 검토한다고 한다.

초등 영어 10년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도 없이 불도저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초등 1~2학년 영어교육 시범 실시의 배경은 ▲학부모 및 전문가들 조기영어교육 찬성 ▲도시와 지방의 영어교육 격차 해소 ▲사교육 및 해외 연수로 인한 국고 낭비 축소 등이다. 현재 3학년 이상부터 실시되고 있는 영어교육도 정상화되지 못했는데 모국어교육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1학년부터 영어를 배우는 데 반대하는 많은 초등교사들과 국어학자들의 지적을 정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FL 환경에서 영어 시작 시기는 무의미


서울대 영어교육학과장 이병민 교수는 『녹색평론』(2006년 7~8월호)에서 “5~6천 시간 이상 영어시간을 제공해주지 못할 바에는 우리와 같은 외국어 교육환경에서 영어를 처음 배우는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면서 “외국어 교육환경에서 언어학습의 절대적 시기가 있다고 믿고 그것에 근거하여 영어교육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고 단언하였다.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이 한국은 대표적인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즉 외국어 교육환경 나라이다.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환경과 달리 EFL 환경에서는 언어습득장치(LAD)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언어입력과 언어필요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 영어를 언제 배우냐는 중요하지 않다. 주당 1~2시간 이루어지는 영어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영어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과학적ㆍ실증적 근거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어떤 영어교육과 교수는 3~4학년 1시간씩 배우는 것보다 4학년부터 2시간씩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EFL에서는 일찍 배우는 것보다 영어 노출시간과 학습강도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어 학업성취도, 사회계층과 정비례


영어는 모든 사회적 관문 통과하는데 수문장 역할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권력이 되고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지표가 되고 있다. 학부모들은 문화자본이 되어 버린 영어에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빚을 내서라도 미국이나 캐나다는 못 가도 필리핀 어학연수 아니 영어캠프 정도는 보내줘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런 학부모들의 바람을 타고 정치인들은 영어마을 조성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학부모의 사회계층과 영어 학업성취도와의 관계는 놀랍도록 정비례한다. 사회계층이 위로 갈수록 영어 사교육은 개별화ㆍ고급화ㆍ장기화되고 있다. 최상층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성취도가 높았으나 중산층ㆍ저소득층ㆍ극빈층 아이들은 거기서 거기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에서 사교육이 100% 차단되는 ‘순수한 공교육에 의한’ 영어 학업성취도 향상 정도를 실험할 수 있는 조건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교육 방법 또한 널뛰기를 하고 있다. 잘하는 아이에게는 심화과정을, 못하는 아이에게는 보충과정을 해주라더니, 이제는 심화과정의 상당 부분을 모든 아이들에게 가르치라고 한다. 처음 영어가 들어올 때에는 듣기ㆍ말하기 의사소통 위주의 교육이 돼야 한다더니 읽기ㆍ쓰기도 같이 해야 효과가 있단다. 지난 8월 교육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초등 영어 7차 교육과정을 수정고시했다. 2009년부터 아이들은 읽기를 3학년부터, 쓰기를 4학년부터 1년 빨리 배운다(공교롭게도 2009년은 1~2학년 영어가 처음 시작될지도 모르는 해이다).


영어 문화자본 그리고 영어 양극화


어린이집에 다니는 4살짜리 딸이 올해부터 영어 특별활동을 배우기 시작했다. 원장 선생님 왈, 얘들은 1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울 것이기 때문이란다. 영어 공화국에서 학부모로 살아가는 것은 교사보다 더 힘들다. 도대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갸우뚱하면서도, 내 아이가 이 공화국에서 생존해야 하므로, 괜찮다는 사교육을 좇지 않을 수 없다(이병민 교수는 아이를 원어민처럼 만들고 싶다면 가급적 빨리 영어권 국가로 이민을 가라고 충고한다. 단 한국 국적은 버리고.....).

단언컨대, 초등 1~2학년에서 영어를 배워도 외국인 만나서 의사소통 하기는 쉽지 않다. 영어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유아 및 초등학생의 영어 사교육은 10배는 심화될 것이다. 모국어 습득에 미칠 부정적 영향, 창의성ㆍ흥미ㆍ자신감 등 정의적인 발달에 미칠 악영향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영어 문화자본은 최상위 계층에게 부와 권력을 재생산 해줄 뿐 서민층 자녀들의 장밋빛 미래는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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