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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농업의 시작이다.

오랜만에 농사 글이다. 지난 가을 배추 수확을 마지막으로 밭에 가지 않았다. 조금 추운 날씨이지만 감자를 심을 때가 되어 더 늦출수 없어 밭에 갔다. 오랜 만에 가는데 추운 겨울을 지내고 한쪽 귀퉁이에 있는 원추리는 파랗게 자라 웃는 얼굴로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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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수확하고 그대로 둔 밭이라 낙엽과 고구마 줄기 등이 뒤섞여 나 뒹굴고 있다. 부지런한 농부 같으면 가을에 빈 밭이라도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땅도 파 두었을텐데 수확물만 가져오기 바빴다. 불량 농부에게도 땅은 도망가지 않고 느즈막히 봄이 되어서야 찾아오는 농부를 맞아준다. 이곳에서 농사하기 시작한지 3년이 되니 처음에 직경 20cm가 넘는 나무를 베어 냈는데, 이제 그 나무도 다 썩어 뿌리채 뽑히고 있다. 올해는 이곳에서 농사하고 싶지 않았고, 농사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농사를 시작하는 때이고 경작본능 때문에 밭을 일구지만 지금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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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농사를 계속하게 되면 이제는 태평농업을 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무경운 무투입으로, 거름도 주지 않고 땅도 파지 않고 그냥 씨뿌리고 풀을 뽑고 열매 맺는대로 거두려고 하는 것이다. 농사에 많은 시간을 빼았기고, 밭의 환경이 좋지 않아 농사도 잘 되지 않으며, 수확을 해도 제대로 소비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꿩이 고구마와 땅콩을 완전히 다 파 먹었고, 수확한 배추를 나누어 주느라 고생도 했다. 물이 없고 그늘이 많으며 높은 곳이면서, 짐승까지 있으니 무엇을 어떻게 심어야 할지 작부체계를 짜기도 힘들다.
감자를 심는데 씨감자를 칼로 자르고, 재로 소독도 하지 않고, 지난해 밭의 고랑에 괭이로 조금만 골을 파서 씨감자를 넣고 발로 흙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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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를 심었던 밭에는 아예 파지도 않고 고랑에 씨감자를 듬성듬성 떨어트리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전에 어떤이가 땅을 파지도 않고 그대로 씨를 뿌린다고 해서 신기하게 보았는데, 나도 그렇게 심고 말았다. 이 정도로 무성의하게 심으니 한편으로 감자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나중에 얼마나 소출이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땅은 인간보다 정직해서 어느정도의 소출은 선사할 것이다. 4월 초에 심은 감자는 이 달에 싹을 틔울 것이고 5~6월 자라 7월에는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자수확을 하는 손길에 즐거움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어떤 손길들이 함께 할까?  씨앗들이면 어떨까?  물방울도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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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에 뽑지 않고 두었던 쪽파는 한 겨울을 지나고 파릇파릇하게 자라고 있다. 봄에 마늘 양파 밀 보리 파 같은 작물이 한 겨울을 이기고 파랗게 싹을 틔우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 너무 신기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농사 초년에는 파가 겨울에는 죽는다고 가을에 다 뽑기도 한 적이 있다. 쪽파 밭에 풀을 메어주고 조금 뽑아 왔다. 파전이라도 붙여 먹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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