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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진보넷 블로거 여러분 감사합니다.
2. 2008년 7월 27일(일) 저녁 7시, 서울 양천구 신월동성당에서 “진압의 도구에서 양심의 주체로 - 촛불진압 현역의경의 인간선언”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지난 2월, 의경에 입대한 이길준 이경은 촛불집회 진압작전에 투입되면서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인간선언을 하기로 결심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양심선언을 발표(*별첨1)하고 전의경제 폐지를 위한 농성을 시작하였습니다.
3. 기자회견 후부터 신월동 성당 요셉관에서 농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전날 농성장 소식과 일정(*별첨2)을 매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취재 부탁드립니다.
4. 이후 보다 많은 자료들을 농성장 카페를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카페 주소는 cafe.daum.net/resistjun입니다.
별첨 1
이길준 이경 양심선언문
"나는 저항한다"
저는 지금 현역 의경으로 복무를 하다 특별외박을 나와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선언하려 합니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이런 결정이 야기할 수많은 소통과 상처들, 특히 제 부모님이 겪으실 일을 수없이 생각했고, 그것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과정은 괴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저항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꽤나 거창하게 들리죠. 하지만 제가 하려는 일은 엄청난 대의를 가진 일이 아닙니다. 단지 삶에 있어서 제 목소리를 가지고, 저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그렇습니다. 제게 있어 저항은 주체성을 가지고 제 삶을 만들어나가는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니고 자신의 삶의 색채를 더해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의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지금껏 억압들에 대해 순응하며 살아온 제 삶을 내던지며 저항을 통해 제 삶을 찾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저는 지난 2월, 지원을 통해 의무경찰로 입대했습니다. 이런 결정에 대해 수많은 비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의 제 결정과 관련해서 말이죠. 저는 기본적으로 징병제에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제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복무하게 된다면 저나 사회를 위해 의미있는 일에 복무하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은 의무경찰이었죠.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고, 그에 대해 무책임한 선택이란 비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퇴색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경으로 있는 동안 제가 느낀 건, 언제고 우리는 권력에 의해 원치않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 달 간의 촛불집회를 진압대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촛불을 들며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 요구, 공기업,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 제도에 대한 반대 같은 것들이 이런 목소리로 느껴지더군요. 권력은 언제든지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말이에요.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고 모였고, 여러 모습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비장한 투쟁이 아닌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위한 즐거운 축제였습니다. 하지만 삶을 위협할 수 있는 권력에게는 소통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또래의 젊은이들과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시민들을 적개심을 가지고 맞붙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죠. 저와 같은 친구들이 특별히 악랄해서 시민들을 적으로 여기고 진압해야 했을까요? 모두가 저처럼 가족과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위해 2년이라는 시간을 복무하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에 누가 집회를 참여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들어갔겠어요. 하지만 권력은 시위대는 적이 아니라고 명심하라는 위선적인 말을 하며 실질적으로는 이미 우리에게 시민들을 적으로 상정하게 하고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추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힘 앞에서 개인은 무력해집니다. 방패를 들고 시민들 앞에 설 때, 폭력을 가하게 될 때, 폭력을 유지시키는 일을 할 때, 저는 감히 그런 명령을 거부할 생각을 못하고 제게 주어지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마찬가지에요. 우리를 사지로 내모는 권력은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암묵적으로는 그저 적으로 상정된 시위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며 상처를 덮고 합리화를 시키는 거죠.
이런 나날이 반복되고, 저는 제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진압작전에 동원될 때도, 기약 없이 골목길을 지키고 있어야 할 때도, 시민들의 야유와 항의를 받을 때에도 아무 말 못하고 명령에 따라야 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근무시간이 늘어나고 육체적으로 고통이 따르는 건 감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제가 하는 일이 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인가를 생각하면 더 괴로워지더군요. 누구도 그런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서라면 갓 스물의 젊은이들이 폭력적인 억압의 도구가 되어도 괜찮은가요? 그런 정당성은 누가 보장해주나요?
힘든 시간 동안 전 일단 어떤 식으로든 도피를 모색했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도피는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디에 있든 제가 그곳에 남아 있는 한 결국 억압의 구조를 유지시키는데 일조할 것이고 그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일 뿐이다 싶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남은 삶을 주체적으로 정립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금 저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로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대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명령에 순응하고 가해지는 상처를 외면하면 스스로에게 이율배반적이고 껍데기 뿐인 인간으로 남을 거란 불안도 있었고요.
가해자로서, 피해자로서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고민 속에 흐려져가는 삶을 정립하는 방법은 저항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제 삶을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늘 타협했을 뿐 자신있게 저항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느껴지더군요. 이번 기회는 제 삶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느껴졌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많겠지만 제가 원하는 저를 찾아간다는 것은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걱정하는 것처럼 전 스스로를 어지러운 정국의 희생양이나 순교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분위기를 탄 영웅이 되고 싶은 건 생각도 없어요. 정략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리거나 어떤 이득을 취할 생각도 없고요. 전 단지 스스로에게 인정될 수 있고, 타인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고, 그런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에요.
비장한 각오의 투쟁을 선언하고 싶진 않군요. 전 저항의 과정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억압의 조건은 힘겹지만 그에 대항해 자신을 찾고 목소리를 내는 과정은 무겁게 받아들일 일만은 아니에요. 저도 노력하겠지만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억압에 대해 저항해나가는 것도 제 작은 바람입니다.
제가 한 행동을 통해 저는 제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고 느끼고, 아울러 폭력이 강요되고 반복되는 지금의 구조들도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상처를 받을 수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도 고통 속에 밤을 지새우는 일만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끝으로 제 얘기를 듣고 저를 도와주시며 지금도 함께해주시는 많은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못난 아들을 위해 상처를 감수하고 이해하고 제 편이 되어주시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신 부모님께 다시 한 번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길준.
별첨 2. 전의경제 폐지를 위한 “이길준과 함께하는 저항” 농성장 소식과 일정
■ 7월 27일(일) 소식
1. 기자회견
저녁 7시 경 이길준 이경의 기자회견이 준비되고 있던 신월동 성당에 사복경찰들이 들어와서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사람들과 충돌이 벌어졌다. 이에 신월동성당 본당신부인 나승구 신부께서 정식으로 퇴거요청을 해 비로소 기자회견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길준 이경은 이 기자회견을 통해서 양심선언문을 발표했다. 본인이 의경에 입대하게 된 과정, 촛불집회 진압작전에 투입되면서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 도피처를 찾다가 저항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과정에 대해서 담담하게, 하지만 강력한 울림으로 전달하였다.
기자회견 장에서 가혹행위에 대한 자세한 묘사, 부당한 명령을 내린 상관에 대한 정보를 집요하게 요구받았음에도 “한 두 사람의 행위의 문제로 보는 것은 초점이 아니다. 전의경제 제도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며 장 내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진보신당 공동대표이자 민변회원인 이덕우 변호사는 군대를 지속적으로 시위진압에 동원하는 유일한 나라이며, 전의경제도가 헌법에 배치되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지향하는 평화와 이길준 이경의 양심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홍구 교수는 이길준 이경이 이러한 양심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 함께 하면서 굳은 결심을 확인했고, 이명박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서 전경과 의경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2. 촛불문화제
밤 10시에는 인터넷을 통해서 기자회견 소식을 접하고 모여든 200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신월동 성당 마당에서 촛불문화제를 진행하였다. 이길준 이경이 양심선언을 결심하면서 도움을 요청해 인연을 맺게 된 전의경제 폐지를 위한 연대 등 인권, 평화 활동가들은 시민들에게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무엇보다 이길준 이경의 결심을 지지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촛불문화제가 되자고 제안했고 시민들은 함께 결의했다. 또한 불과 며칠 전에 이길준 이경이 있었던 자리가 성당 담장밖에 배치된 경찰의 자리였음을 기억하면서 불필요한 시비나 마찰을 만들지 말자고 제안해서 공감을 이루었다. 아울러 이길준 이경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공간을 허락한 신월동 성당의 신부님, 신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농성이 진행되는 동안 신자와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 하자는 제안도 이루어졌다.
한편 이길준 이경이 근무하던 중량랑서 서장이 본당 신부님을 면담하러오면서 시민들이 항의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본당 신부님의 의사를 존중하여 면담이 이루어졌고, 끝난 후 성당 정문 바로 앞에 배치되었던 사복의 경찰병력은 주변으로 철수하였다.
후원의 손길도 이어졌다. 촛불문화제 안에서 돌려진 모금함에 작은 정성들이 모아졌고, 라면과 빵, 물, 모기향, 방석 등 물품들이 속속 도착했다. 촛불다방도 방문해서 참여자들에게 차를 제공했다.
마당에서 밤을 지샌 참가자들은 새벽 미사를 오는 신자들을 맞이하며 오전 5시 30분경 마당을 청소하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 7월 28일(월) 농성단 일정
농성장은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농성장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1. 매일 릴레이 강연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농성장에서는 매일 릴레이 강연을 통해서 농성장에 오신 분들과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월요일)은 홍기빈(정치경제학자, 투자자-국가직접소송제 저자)님의 강연 “2008년 세계 정치·경제와 이명박 정부의 미래"가 있습니다. 화요일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수요일은 박노자 오슬로 대학 교수의 강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2. 매일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릴레이 강연이 끝난 후 매일 8시 반부터 11시까지 성당 앞마당에서 이길준씨를 응원하기 위한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3. 오후시간에 지지방문을 오신 분들과 이길준 씨의 간담회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28일은 오후 1시, 4시에 진행됩니다. 지지방문과 간담회의 시간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4. 11시부터 5시까지 농성장 침탈을 대비한 규찰을 조직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ㅋㅋ 어제 아랫집에서 채식 김치를 담궜지요. 채식김치 담그기 프로젝트의 왕언니는 바로바로바로~~~~~~~~~~~~~ 여옥이었슴돠!
>> 보이시져? 김치를 씻고 있는 여옥의 저 포스!!!
이번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건 여옥이 평소 가꾸는 텃밭에서 배추를 많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현지의 도움을 받아 배추와 상추와 오이 등을 아랫집으로 공수하는 데 성공, 그제는 푸짐한 상추쌈에 어제는 채식김치까지.... ㅋㅋ
>> 주방 한 켠에 쌓여있는 배추들...
이제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서 김치 양념으로 쓰일 것들을 갈고 야채를 다듬고 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 파 다듬기에 열중하고 있는 효웅, 조은, 날맹
>> 다듬어 달라고 목 빼고 기다리고 계시는 쪽파여사와 미나리회장님
>> 그 어렵다는 가위로 배추 자르기? 김영진 열나 시도중...
>> 잘라진 배추에 소금을 뿌려 절이고 있는 여옥
>> 효웅 히메, 지나가다 V
절여진 김치를 씻고 물기가 빠지도록 두는 동안 양념을 준비했어요. 사과, 양파, 마늘, 생강 등의 과일과 야채를 곱게 갈고 시원한 맛을 내준다는 청각은 잘 안갈려서 대충 잘라 놓고(<-모양이 완죤 비호감) 찹쌀풀을 쑤어 고춧가루를 살짝 불렸다가 한데넣고 섞어주었어요.
>> 빗깔이 근사하져? 고무장갑의 주인공은 여옥
>> 절여진 배추와, 파, 미나리 등. 무우는 요즘 맛이 없다고 시장 아주머니께서 넣지 말라 하셨데요. 갓은 요즘 안나오는 계절이라 못넣고...
>> 열심히 버무리를 하고 있는 손들... 고무장갑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여옥, 나동, 조은의 손길. 조은과 나동은 살살 버무리지 않고 거의 빨래짜듯이 배추와 속을 버무려주는 쎈쑤~
>> 김치 맛을 보려고 하는 여옥. 배추가 살짝 싱겁게 절여진 듯도 하지만 흠흠... 구~~~~~~~웃!!!
>> 여기도 담고
>> 저기도 담고...
큰 통이 별로 없어 아랫집에 있는 작은 통이란 통은 다 동원했지요. 그래도 모자라 비닐봉지로 2개나 더 나왔다는 거...
>> 접사로 한 컷!! 먹음직스러 보이져?
채식김치 맛보러 아랫집에 놀러오세염. 어째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렇게 암 것두 할 줄을 모르는지... 나도 딱히 집에서 음식이나 살림을 배운 것도 아닌데... 남성으로, 여성으로 길러진 다는 것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암튼 다음 번 김치는 남성들끼리 담궈보는 것으로... 오케이?
6/13일 오후 두시에 서울 홍대근처에 있는 카페/술집 무대륙에서 피자매연대 루드와 육구 등과 에스페란토 친구들이 함께하는 대안달거리대 워크샵이 열립니다.
*일시: 2007년 6월 13일 수요일 오후 두시
*장소: 서울 홍대 근처 무대륙. 싸이월드에 무대륙을 쳐보세요.
(오는방법: 서울 합정역과 상수역 가는길 중간지점에 있어요. 홍대역쪽에서 오실 분들은 주차장 길을
끝까지 오신 다음에 좌회전을 하시면 15미터 전방에 2층에 있어요.)
*준비물: 가위, 수성펜/연필, 재료비 1000원 (융천, 똑딱단추), 동의하시는 분들만 강사비 1000원
이번에야말로 만들어보겠다 하시는 분
이제는 정말 써볼때가 됐다고 하시는 분
심심하신 분, 무대륙이 궁금하신 분
오세요오세요.
* 궁금한 사항은 피자매연대 홈페이지 www.bloodsisters.or.kr 로 오세요.
채식이야기 두 번째, 나에게 채식은
☮ 채식의 시작
신기하게도 아주 자연스러운 시작이었다. 마치 병역거부가 나에게 그러했듯이 채식을 받아들이는 데도 어떤 특별한 계기나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군대 갔던 친구들이 제대하면서 채식주의자가 되어 왔고 (이제는 이 미스테리를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그 조음부터 관계를 맺은 평화운동가들을 통해서 채식의 의미를 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나도 채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쉽진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거 보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머리가 아니라 몸이 채식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라는 친구의 조언에 정말 넉 놓고 기다렸고 몸이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채식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에게는 세상사는 데 커다란 두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하나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가는 즐거움이고 나머지는 나의 존재가 사람의 관계 속에 충만함을 느끼는 즐거움이다. 채식은 나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고 난 새로운 지식에 행복하며, 또 전혀 새로운 앎의 형태에 감사했다. 그 동안 가려져 있던 불편하고 추악한 진실들-거대한 자본집적의 육식산업이 어떻게 환경을 파괴하는지, 동물을 어떻게 학대하는지, 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제3세계 농민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생물졸의 다양성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을 알게 되었고, 또 그 지식들이 머리가 아닌 몸에 아로새겨지는 앎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항상 긴장하지 않으면 성찰하지 않게 되는 법. 나의 채식도 어느덧 습관으로 굳어지고 귀찮은 마음에 의미 찾는 것을 게을리 했다. 정말 귀찮았다. 채식이 귀찮았던 것이 아니라 채식을 설명하는 것이 귀찮았다. 이상하게도 유난히 채식에 적대적인 사람들(내 경험상 병역거부보다도 채식에 대한 적대감이 더 컸다. 특히 운동권들에게서 그런 적대감(?)을 많이 느꼈다)과 논쟁하거나 하는 것도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정말 별 소리 다 들었다. 채식하는 사람들이 평화 운운하는 거 역겹다. 채식은 고기 먹는 사람들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폭력적인 방식이다. 채식 때문에 GMO(유전자조작식품) 문제가 생긴다 등등. 때로는 이런 가시돋힌 말보다 이해를 가장한 일종의 무시(‘그러든지 말든지’하는 태도들)가 더 가슴 아팠다. 몇몇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채식을 중단(그들이 그렇다고 태도를 돌변한 것은 아니고, 여전히 고기를 지양하는, 잠재적인 베지테리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일시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중단’이라는 단어를 썼다)했다. 나 역시 위기라면 위기일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고기를 먹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큰 이유는 내 주위엔 그래도 몰이해보다는 나보다 더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감 후 경험들-저번에 밝혔던-이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위한 즐거운 상상의 계기를 던져 주었다.
☮ ‘음식’을 생각하다.
보다 넓게 ‘음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음식은 무엇일까? 5,000원 짜리 설렁탕, 3,000원 짜리 짜장면, 10,000원에 두 마리 통닭, 15,000원에 피자 투 판, 콜라는 서비스. 돈을 주고 구입하는 상품, 자동차나, 컴퓨터, 시계 등과 다를 바 없는 상품에 불과하다. 그보다 조금 높은 가치를 부여해도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기호품에 불과하다. 근데 인간과 음식의 이러한 관계는 사실 그리 오래된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본디 인간에게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환대권 씨의 글을 읽다가 ‘밥모심’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보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아무 의미도 느끼지 못하고 습관처럼 불렀던 “밥은 하늘입니다~”로 시작하는 농활에서의 밥가도 생각이 났다. 지금의 비록 돈 주고 사는 상품, 혹은 좀 더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음식은 본래 우리의 생명활동을 유지시켜주는 것이었다. 뭇 생명만큼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것은 없다. 음식은 비단 우리 몸에 생명의 에너지를 채워줄 뿐 아니라 다른 생명들과 우리를 이어주었다. 자연에서 식재료를 얻고,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먹고, 다시 배설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행위는 그 과정에 관련하는 모든 생명체를 서로 관계 맺어 주고 또한 그 순환을 통하여 그들을 영속적으로 존재케 한다.
음식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아가면서 나는 보잘것 없는 교도소의 밥과 반찬도 천천히 꼭꼭 씹어 보시기 쇼ㅣ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거룩한 이 생명활동 ‘음식모심’은 음식을 통해서 내 몸과 대화하고, 음식을 통해서 다른 생명과 만나며, 음식을 통해서 지구의 생명공동체와 관계를 느끼게 해 주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는 결국 내 몸을 어떻게 바라보며, 지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먹느냐인 것이다.
☮ ‘관계’를 회복하라.
오랫동안 우리 인간은 삶의 여러 측면에서 지구 생명공동체와 현명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인간의 가장 중요한 생명활동인 색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쌀을 주식으로 삼는 것, 섬나라 일본이 다양한 해산물 음식문화가 발달한 것, 유럽의 사람들은 쌀보다 밀에 의존하는 것,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들이 육류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것 모두 사실은 같은 모습이다. 자기가 딛고 사는 지구와의 관계를 지속시켜 가는 가장 현명한 방식으로 우리는 음식을 조달했던 것이다. 물론 인간이 지나친 욕심을 부리곤 했지만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 지구는 신비로운 그 자정능력으로 우리의 허물까지 깨끗이 씻어주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의 지나친 오만함이 모든 면에서 허용치를 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 대자연인 지구와의 관계 모두 그 파국이 멀지 않았음을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원인과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겠지만 난 ‘음식’에서 새로운 세계가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이야말로 태초부터 맺어온 생명관계망이고 우리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창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육식산업-그리고 거기에 길들여지고, 그것을 유지시켜주는 우리의 식생활-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며, 지구를 회복불가능으로 몰아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에 대한 정보는 책이나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채식이이 총체적으로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음식을 넘어서 생명창조와 영속과 지속의 매개체로서 음식을 다시 인식하는 것은 현재 음식산업의 가장 추악하고 거대한 음모, 거대축산업과 육류업계에 대한 거부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더 많은 고기를 먹기 위해서 제3세계의 농민을 굶주리게 하고, 유전자 변형 작물을 만들고, 가축에게 끔찍한 고통을 가하고,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음식에서 출발된 악몽은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좀 더 많은 고기를 싸게 생산하기 위해서 파괴되는 열대우림은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효율적인 사료생산을 위해서 점차 단일화 되어가는 농작물은 문화다양성(인간의 많은 문화는 기본적으로 농사일과 연관되어 발전해 왔음을 기억하자)과 연관이 있다. 음식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음식으로 풀 수 있다.
채식은 육식거부를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실천의 불발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난 채식이 좀 더 풍성해져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는 여러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고기보다는 야채나 곡류를 먹고, 가능하면 유기농을 먹고,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을 이용하고, 음식을 사먹기보다는 만들어 먹고, 더욱 노력하여 간단한 채소는 직접 재배해 먹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채식을 통해서 나는 내 몸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다른 생명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고, 지구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나의 역할을 자각하게 된다.
☮ 즐거운 채식을 위하여.
왜 하필 음식이냐고? 밥 안 먹고 사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모두의 문제이면서, 모두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오해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 오해들을 풀어가면서 정리하고자 한다.
채식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바라보거나, 반대로 극단성을 요구하는 시선들이 있다. 채식하는 사람은 뭘 먹고 사냐는 인식이 전자요, 고기만 안 먹는 사람에게 생선은 왜 먹느냐고 하고 생선도 안 먹는 사람에게 식물은 생명이 아니냐는 반응이 후자다. 이 두 가지 오해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채식을 극단으로 몰아가려는 시각이라는 점에서 같은 행동이다. 하지만 채식은 극단적이기보다는 가장 조화를 중요시하는 음식문화이다. 채식주의자는 우리의 모든 먹거리가 생태계의 순환에 가장 조화롭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때문에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라다크 사람들이 야크를 먹고, 훗카이도의 아이누족이 물고기를 주식으로 삼고, 알래스카의 에스키모가 육식을 주로 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고 비난할 수도 없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의 시스템과 가장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진정한 베지테리언이다. 가능한 한 상육하지 않으려고 덩치가 큰 야크로 여러 사람이 먹으며 야크를 위해 기도하고, 저장을 위한 필요 이상의 물고기를 잡지 않는 모습은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채식은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성찰과 꾸준한 노력을 요구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안 먹는 게 아니라 내가 먹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가는 것이다.
또 다른 오해는 채식 한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것이다. 즉 채식은 취향일 뿐이며(존중받아야 할 취향이라며 선심을 쓰기도 한다), 운동이라고 해도 그런 나이브(?)한 방식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병역거부는 어떻게 보면 그들의 종교적 취향(?)이었을 뿐이지만 그들의 희생을 밀알삼아 지금의 병역거부운동이 가능한 것이다. 운동은 정치적인 행위이고 결국 어떤 정치성을 부여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채식이 나이브한 방식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거대자본-국가-거대권력은 이미 우리의 가장 사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항상 눈 크게 뜨고 찾아내서 그것들과 결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권력을 진보세력이 획득하는 것보다, 자본가의 권력을 노동자들이 접수하는 것보다, 우리의 삶을 권력이 주는 안락함과 기득권에서 분리시키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채식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운동이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채식만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다.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동물인가.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사회는 더더욱 한 가지의 잣대만 가지고는 그 치수를 어림잡을 수도 없다. 그 세상을 바꾸려는데 한 영역에서 한 가지 방식으로만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지나친 오만 아니면 무식이다. 채식은 인간이 완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른 생명과 부족한 부분을 서로 메꾸며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때문에 부족한 인간의 모든 행위 또한 완전할 수 없음을 안다. 채식은 우리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해야 하는 수많은 노력 중의 하나일 뿐이고, 다만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따라서 중요한 키워드가 될 가능성을 내표했을 뿐이다.
비록 감옥에 갇혀서 주는 밥 먹고 있을 뿐이지만 난 나의 채식으로 무수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지금가지처럼 누구에게도 채식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권유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울 뿐이다. 다만 이렇게 글을 쓴다든지 캠페인 등을 통해서 육식의 문제점을 고발하거나 채식의 좋은 점을 선전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애시당초 논리적인 설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채식이 결국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음식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면 그것은 우리의 존엄한 생명창조활동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셈인데 이것이 인간의 부족한 논리와 이성으로 인식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고기를 먹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줄 것이다. 느리고 더디게 보일지는 몰라도 이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내가 변했듯이 다른 사람들도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채식은 비폭력시민불복종의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삶의 방식인 것이다. 내 주위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고민하고 가능한 한 육식을 지양하려고 노력하고, 하다못해 나와 있을 때는 고기를 안 먹게 되는 변화를 이미 보이고 있다. 죽기 전까지 세상을 뚝딱 바꿔 놓을 것이 아니면-그렇게 빨리 바뀌면 세상 망한다. 사람도 빨리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고 하지 않나 zz- 이 지긋한 변화의 가능성을 즐기는 것이 어떨까? 상추쌈에 풋고추 한 입 물고 천천히 씹어가며 한 번 즐겨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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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수수료는 0.4% (26만원 예상)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