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오랜만에 영화, <메종 드 히미코>/<엘리자베스타운>

어찌어찌하여 나는 또 감기로 절절 누워있음.

학기 중도 아닌데, 방학 한가운데, 이 무슨 챙피스런 일. 나의 체력은 정말 바닥?

오늘 할 일은 죄다 취소하고 하루종일 뒹굴겠음, 결심.

그동안 컴퓨터를 붙잡고 일을 많이 해서인지(방학에는 행정잡무에 시달림) 왼쪽눈이 시리고 아파 오늘 하루 전자파에서 좀 벗어나보자,중얼중얼하면서 비디오가게에 갔다?

그런데, 나, 정말 늙었나보다.

영화 본지 삼천만년만이라, 죄다 안 본 영화들 투성이인데, 그 많은 새로운 영화들 말고 옛날에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이 다시 보고싶어지는 것이다. 자꾸 그 쪽에 손이 가려는 것을 자제하며 고른 영화는 (한 편도 아니고 두 편)......

 

 

 

<엘리자베스 타운 Elizabeth town>

백인남녀가 나오는 것은 이제 정말 손이 안 가는구나, 하는 순간, 눈에 띄었음.

 

 

 

그러나 눈에 띄었다고 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카메론 크로우 어쩌구 하는 이름이 뒷통수에 걸리면서.. 이 사람이 누구더라, 누구더라,  누구더라, 누구더라.... 느끼한 그 남자는 러셀 크로우인데... 비디오 껍데기를 구석구석 살펴보니, <올모스트 훼이모스>의 감독이었었다고.그렇다, <올모스트 훼이모스> 이것은 내가 좋아했던 영화, 이 영화에서 페니 레인을 보고 케이트 허드슨을 좋아하게되었지. 록 밴드 '스틸워터' 콘서트를 좇아다니며 '롤링스톤즈'잡지에 기사를 쓰게된 고등학생 이야기. 70년대 음악이 좍 나오고. 재미있었다, 그 영화.

 

그래서 이 영화까지 빌리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케이트 허드슨은 아니지만, 비슷한 커스틴 던스트다. 원래 <올모스트 훼이모스>에서도 커스틴 던스트가 페니 레인 역을 하기로 했었는데, 얘가 싫다는 바람에 케이트 허드슨에게로 돌아갔던 거였단다. 덕분에 케이트 허드슨만 땡잡았지.

 

카메론 크로우가 어디가나, 이 영화도 초반부부터 옛날 음악 좍 깔리며  시작.

그런데 너무 미국스럽다. 그 수다하며, 표정하며, 설정하며... 이런 게 눈에 걸려서 영화를 잘 못 보겠다. 커스틴 던스트와 남자주인공 올란도 블룸(얘 이름은 어쨰 올란도 일까, 나는 자꾸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가 생각나 머리 속에 딴생각이 떠오름)은 비행기에서 만나 헤어지고는, 전화데이트를 하는데, 전화기를 붙잡고 정말 밤을 샌다. 저런 미친 짓. 나는 스물초반에도 저런 짓은 안 했다. 밤에 잠 안 자고 할 짓이 없어서 전화기를 붙잡고 밤을 새냐. (아, 싸우느라고 전화기 붙잡고 새벽까지 있었던 적은 있었나보다.)

 

올란도 블룸의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바람에 장례식을 치루게 되는데, 엄마 역으로 수잔 새런든이 나온다.  장례식장에서 남편을 기리는 한 말씀 하는데.. 나는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데서 눈물이....

....이러이러해서 당신 없는 세상은 너무 달라요, 당신이 없으니까 나는 벼라별 경험을 하게 되죠... 당신, 좋은 남편이었어요, 보고싶어요. 곧 만나요, 안녕....  뭐, 이런 대사... '아, 남편 죽은 다음에 저런 대사를 하면서 남편을 그리워할 수 있다면 좋겠다' , 이런 류의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렸던 것 같다... 으...

 

그리고 장례식장에는 레너드 스키너드의 '후리 버드'가 나온다. '후리 버드'는 <올모스트 훼이모스>안에서도 참으로 사랑스러운 장면에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도 꽤나 독특하게 의미심장한 장면에 나온다. 카메론 크로우가 디게 좋아하나보다.

 

 

 

 커스틴 던스트와 올랜도 블룸은 키스를 자제해 가며, 우리가 이런 것을 자제할 수 있다니 정말 훌륭하지 않냐, 우린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라며 저렇게 따로따로 앉아 일출만 볼 때는 언제고, 곧 사랑해,하고 엉겨붙는다. 영화에서 선남선녀가 나오면 다 커플이 되는 양식을 깨보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까리하다가 결국 뻔하게 흐른다.  앞에 전화씬에서 벌써 이 뻔한 커플링은 예고된 편. 그래도 이제는 영화에서 선남선녀가 무조건적으로 맺어진다는 피하려고 하는 분위기인가보다. 잘 된 일이다. 하지만 헐리웃에서는 어쩔 수 없이 뻔할 뻔자 일 것이다.

 

그리고 본 영화는 <메종 드 히미코>

이거 <조제, 물고기...>감독이 만든 거라고 해서 일찌감치 보고싶었던 거라, 당장 비디오껍데기를 빼들었으나, 표지에 너무 잘생긴 남자배우가 주인공으로 떡 나와서 망설였다. 저런 식의 잘 생긴 얼굴은 영화 보는 데 방해되기 때문이다.

 

 

<조제, 물고기..>에서도 그러더니, 감독이 예쁜 남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 아냐?!

오다기리 죠라고 하는데,

 

 

헉, 숨 막혀. 이러니 어떻게 영화를 잘 볼 수가 있나. (허리하고 엉덩이 선은 또 어떻고..)

특히 마지막 장면의, '뽀뽀해도 돼?'하는 데부터, 뒤로 돌려 두 번 더 봤음. 오다기리 죠 보려고.

'뽀뽀해도 돼?'부분이랑, 여자주인공을 이끌어 안으로 들어가는 부분이랑 표정 예술임.

머리 속에 확 박아놓고 싶어. 그 표정.

 

 

그나저나, 남자 얘기가 아니라, 영화 얘기를 하자면, 아... 저런 집,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내내...  은퇴한 (남성)게이들의 공동체, 메종 드 히미코. 워낙에 이곳이 아름다워서 별다른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런 공동체라면, 나도 남성게이가 되어 들어가면 안될까....

 

영화를 보다보니, 잘생긴 남자가 저 역을 맡을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

저 남자는 그러니까, 여자주인공의 아버지의 애인 역인데, 아버지는 오래전에 게이선언을 하고 아내와 자식을 떠났었다. 그러니 여자주인공은 아버지를 생리적으로 미워할 밖에.. 아버지 애인이란 작자는 도저히 눈에 들어올 수도 없는 인물이다. 그러니 둘이 잠깐 눈이 맞으려면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여야 했을 것이란 생각. 저 잘생긴 얼굴에 자꾸자꾸 눈이 가고, 자꾸자꾸 마음이 끌리도록.

영화에 선남선녀가 나오면 둘은 결국 커플이 되는 법칙. 이것이 게이영화에서는 예외가 되나했더니, 여전히다. 역시 이성애는 막강이데올로기?? 둘이 살짝 눈이 맞을 기미가 보이기 훨씬 전부터 나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남자랑 저 여자랑 키스 한 번 하지않고 영화가 끝나는 것은 뭔가 아깝다?라는 느낌을 나도 모르게 갖고있었다. 게이영화를 보면서, 게이인 남자를 보면서 그 남자가 잘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여자와 자꾸 로맨스를 엮어주려는 심정은 이성애자인 나를 위한 심리적 작동이겠지? 저런 남자가 아무리 게이라지만, 그래도 여자랑 한 번 쯤은 키스를 해주어야 ............ 이성애자인 나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

 

영화도 끝까지 나의 이런 심리를 '안돼'라고 못 한다.

마지막에, 오다기리 죠(저 잘생긴 남자)와 여주인공이 지금껏 관계를 청산하며 버스정류장까지 걷는 장면.

남자는 여자가 회사 사장이랑 잤다는 얘기를 회사 사장한테 들었다고 여자한테 말한다.

(배경설명 좀더 하자면, 그 회사 사장이랑 오다기리 죠가 사업건으로 만날 예정이었는데, 그때 한 번 잘 수 있을까,하고 오다기리 죠가 기대했던 적이 있었음)

그러면서 하는 말, "좀 부러웠어."

"네가 부러웠다는 게 아니고, 너의 회사 사장이..."

 

흠... 그러니까 나도 이성애자가 되어 너랑 자고 싶다는 말씀?

(둘은 살짝 눈이 맞아 시도를 했다가 오다기리 죠가 할 수 없다고 멈춰버린 적이 있었음)

 

생각해보니, 나도 레즈비언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이 생각이 드니, 오다기리 죠의 저 대사는 굳이 쌍심지에 불을 켜며 듣지 않아도 될 말인듯..

그냥 부럽다는 거지, 뭐. 너랑 섹스를 한 남자가. 나도 너랑 자고 싶은데 말이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