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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10/30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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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8/20
    야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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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3/20
    한일전 야구, 다행 패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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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11/15
    스포츠 중계를 보지 못하는 이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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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저녁, 규민의 손을 잡고 시장에서 골목으로 꺽어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절박한 목소리.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정말 위로받을 데가 없기 때문이야.

알았지?

그러니까 그냥 도장찍고 살라고 하고, 너는 그거 꼭 챙겨 니꺼로 해."

 

누구야?

찾아보니 가로등도 비껴있는 충충한 곳에 뚱뚱한 중년여자가 서있다.

비도 안 오는데 앞머리는 비 맞은 것처럼 축축 늘어져 얼굴의 중간까지 가리고 있다.

부시시한 파마머리에 부시시한 살결이 우중충한 조명에서도 까끌까끌하다.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넣고, 대충 봐도 키도 크고 뚱뚱한 거구의 아줌마.

술도 한 잔 걸친 것 같고.

아닌가, 그냥 목소리가 걸걸한 양반인지도.

 

나도 규민이에게 저렇게 호소해야하는 날이 올까.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말이야, 정말 위로 받을 데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날 이해해주련?

 

엄마는 위로 받을 데가 없어 담배로 위로를 삼는데도 자식에게 민망하구나.

 

요즘은 도통 영화를 보지 않아 무슨 영화가 어떻게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영화는 보지 않지만, 김혜리의 영화를 멈추다, 란 한겨레 신문의 한 섹션을 좋아했는데, 그것도 이제 연재를 마친단다.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 순간은 없었는데 김혜리의 연재는 아쉬웠다.

 

지나 데이비스가 야구선수로 나오는 영화 생각이 났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에스케이가 승리했다며 헹가레에 난리를 치고 있을 때.

좀, 도식적이지만, 나는 담배 핀 것으로 자식의 아량을 구하는 거구의 여자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자들끼리만,의 풍경은 나로하여금 꼭 못된 생각을 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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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야구경기 보는 것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얘기는 전에 한 번 한 적 있다.

 

투수가 공 던지기 전에 이리저리 쳐다보고 허리 굽혔다 폈다 할 때, 나는, 공 던지기 전까지만 딴 생각해야지, 하고 딴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새 타자는 공 쳤고 그러다 아웃됐고 다른 타자 들어서고 투수는 또 공 던지기 전에 이리저리 쳐다보고 허리 굽혔다 폈다 하고 있다.

 

그러나 나도 한 때 야구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야구 같이 생긴 찜뽕.

야구랑 룰은 똑같은데(똑같나?), 고무공을 투수 없이 타자가 한 손으로 던지고, 야구배트 없이 나머지 한 손으로 주먹쥐어 치고 달리는 것이다. 나의 초등학생 시절 무렵, 이거 골목골목마다 죄다 하고들 살았다. 해가 점점 넘어가고 점점 어두워지는데 엄마의 밥 먹으라는 소리까지 합세하는 그 시점이 항상 제일 재미있을 때였다.

 

그리고 프로야구 원년. 오비베어즈, 엠비씨청룡, 해태타이거즈,롯데자이언트,삼미슈퍼스타즈,삼성라이온즈.

박철순 말고도 아는 야구선수 이름이 꽤 있었다. 너구리 장명보(이사람은 더 이후인가?), 이만수, 백인천.........

양다리를 쭉 찢으며 공을 잡는 수비 폼으로 전격 유명한 신경식을 나도 알고 있었을 정도다.(흠, 이만하면..)

그리고 그때엔, 사람들이, 나는 오비베어즈야, 나는 청룡이야, 나는 해태타이거즈야, 나는 어디야,하며 각각 좋아하는 팀을 가지고 응원하는 게 재미있었다. 애도 아니고 어른들이 그러는 것이. 내가 보기엔 오비베어즈가 젤로 멋있는데다 젤로 잘 해서 사람들이 죄다 오비베어즈만 좋아할 거 같은데, 다들 골고루 (심지어 롯데자이언트까지. 그 시절 나는 롯데자이언트가 제일 못나보였다. 삼미슈퍼스타즈가 매일 꼴찌했지만, 내눈에는 롯데자이언트가..  롯데자이언트도 못 했었나? 선수들이 못 생겼었었나.. 기억이 안나네. ) 안배해서 이팀저팀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나중에 그게 자기 고향 따라 가는 것이라는 걸 알았는데, 롯데 자이언트쪽이 고향인 사람들은 참 안됐다, 그렇지만 착하다, 그런데 어느 한 팀에만 몰리지 않게 고향따라 팀을 정할 수 있다니 참 좋다,고 순진하게도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앞에서 말했듯, 야구경기를 보지 못 한다.

나와 야구는 여기서 오로라가 보이는 남극만큼 멀어졌다.

대학때 남자친구랑 야구장을 간 적 있었는데, 무슨 경기를 보러갔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싸가지고 갔던 피자 한 판과 맥주 서너캔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학교 우리반 남자아이들 몇이 지난 학기에 야구에 꽂혔다.

거의 매일 축구를 하고 사는데, (그들중 몇은 정말 잘 한다.) 어느날 형들이 하는 것을 보고 해봤는데 재밌었는지 체육시간에 야구하자고 맨날 조르고 그래서 어쩌다 한 번 하면 무지 열심히 흥분하며 하였다.

나는 그때 심판을 보았었는데(이래도 기본 룰은 다 알고 있음), 나도 껴서 배트도 휘두르고 진루도 해봤으면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어느덧 일주일>에 보면 초등학생때 야구글러브를 선물받고 기뻐어쩔줄 몰랐던 심정을 가슴에 아직도 품고사는 서른 살 남자가 나오는데, 딱 남편얘기이다. 고교야구도 야구장까지 가서 보러다니고, 뭐 어쨌대나 저쨌대나..

그런 사람이어서 그남자랑 결혼하고 이런 일도 했는데,  글러브를 사서 캐치볼(공주고받기) 하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내 동생 글러브를 내 손에 몇 번 껴본 일은 있지만, 글러브를 끼고 공을 받아본 일은 그때까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야심차게 동대문운동장 근처 체육사를 방문하여 고심고심하며 가격 대비 품질을 논의하고 그 중 우리에게 적절한 가격 보다는, 앞으로 오래도록 할 것을 고려하여 좀더 우수한 품질의 글러브를 사자 결정하고 집에 가져와 길들이기 위하여 고이고이 눌러두었다가 돌아오는 휴일에 품에 넣고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첫 캐치볼 플레이를 하였다. 남편은 성심성의껏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뿌듯한 마음으로 첫 플레이를 마치고 뒷풀이로 맥주를 마셨다. 많이 마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싸웠다. 나는 화가 났다. 그래서 글러브 두 개가 들어있던 내 가방을 확 내팽겨쳐버리고 씩씩 걸어 집에 왔다. 그리고 정신이 번뜩 들어, 내 가방,하고는 쏜살같이 튀어나가 다시 골목을 거꾸로 걸어가며 샅샅이 찾아봤지만 이미 글러브 두 개 들어있는 가방은 흔적도 남기지 않았었다. 그것으로 우리의 캣치볼은 끝났다.

 

그런데 나는 오늘 글러브로 공도 잡고, 배트를 휘둘러 공도 치고, 비록 진루는 못했지만, 1루로 뛰고, 1루를 밟는데 더 뛰어 더 뛰어, 외치는 소리에 2루로 뛰어가다 아웃도 당해봤다.

역사적인 날이다. 8월19일, 기억해둬야지.

 

규민이 어린이집 아빠들이 얼마전 술먹다가 부산 얘기가 나왔단다. 그러다가 한 아빠가 부산은 회 아니면 야구야. 그거 둘 밖에 없어,하는 바람에 야구 얘기로 샜는데, 야구 얘기가 시작하자마자 왕년에 야구했던 얘기가 봇물처럼 나오더랜다. 누구는 왕년에 날리는 포수였고, 누구는 뭐였고, 어쨌고, 뭐했고...

그래서 야구를 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모였다.

글러브를 손에 들고 오는 것은 보통이고, 야구방망이도 들고 나왔고, 심지어는 야구복까지 입고 나온 아빠도 있었다.

그래서 광복절날 그들은 야구를 했는데, 입을 귀에 걸고 했다.

그러다가 천둥이 쾅 치고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졌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라는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비는 폭우로 바뀌고 비를 쫄딱 맞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흩어졌다.

아, 골목에서 야구, 아니 찜뽕하던 어렸을 때 같아.

비오면 와,하고, 비 쫄딱 맞고 집으로 뛰어가던 거.

비 맞는 것도 재미있었지, 그 때는, 왜...

 

그리고 오늘 야구 2차 모임에 나도 글러브 들고 나갔다(이번에도 야심차게 동대문운동장 근처 체육사에 가서 산 것이다. 제일로 싼 것을 샀다.)

남편이랑 캐치볼 연습하고 타격연습하고 경기에 투입, 으하하.

지금 왼쪽 손목 너무 아프다.

글로브 끼고 공 잡는다고 너무 신경써서 그런가보다.

 

p.s. 태깅 너무 재밌어. 옛날글까지 뒤져서 태그붙인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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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야구, 다행 패배

뻔한 이야기임.

 

97년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그에게 거의 한 눈에 반했던 나는 그 남자와 어디든 싸돌아다니고 있던 때였는데,

그 무렵 그 남자는 하이텔(이란 이름 정말 오랜만이다)에 '록키호러픽쳐쑈 소모임'을 만들어놓고 거기 사람들(어차피 원래 술먹던 사람들)과 술먹고 노는 일이 많았다. (그러고보니 '록키호러 픽쳐쑈'도 그남자 덕분에 보게되었군.) 어느날 그 소모임의 한사람이 제안하여 홍대앞 어느 까페에서 에스에프영화 상영회를 하기로 하였다. 불과 (라고 써놓고 보니 어느새 거의 10년전이군) 97년도나 된 시절이지만, 그때에는 인터넷도 그리 쓰이지 않았었고, 디비디란 것도 없어서 누군가 희귀한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 모여 까페에서 상영회하는 것이 소소한 재미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소한 게 아니라 나름 큰 재미였다. 지금보다 훨씬. (하여간에 다시 한 번 갓댐 디지털)

 

약속 시간에 딱 맞춰 그 까페에 들어섰는데, 어두컴컴하고 흰 커텐같은 거에 틀어진 영상에 사람들이 벌써 집중하고 있었다. 간신히 그 남자를 찾았더니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바에 앉아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다니 열화와 같은 반응이구나,하며, 그 사이를 비집고 그의 바로 옆에 앉아 그 영상이란 것을 쳐다보니, 어랍쇼, 축구였다. 아니 야구였었나. 하여간에 무슨 경기였는데 한일전이었다. (그래도 그때에는 대한민국이라고 안했다.) 지루해죽겠는데도, 그떄그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아, 어, 으,하는 탄성에 나도 동반해주며 경기는 끝났고, 까페에 불이 켜졌다. 상영회 시작하기로 한 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볼 영화 보자,고 사람들이 우르르 담합할 줄 알았다. 근데, 사람들은 우르르 까페 밖으로 나갔다. 죄다 축구인지 야구인지 보러 들어왔던 사람들이었고, 에스에프 상영회에 실제로 참석한 사람은, 나와, 내 남자친구와, 모임을 제안했던 남자와, 그 남자의 추종자로 보이는 서넛이 전부였다. 애게.

그래도 우리는 영화 잘 보았고(지금은 토성의 어쩌구 밖에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 그래도 꽤 오래동안 쇼킹한 그 줄거리를 되새겼던 것 같다.), 영화 끝나고 나름 토론회 같은 것도 했고(상영회를 제안했던 남자가 에스에프계 거물인 줄 그 토론회에서 알아보았음. 그 남자가 하는 소리가 뭔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었다), 하여간에 즐거웠다.

 

내가 이 날의 일을, 그 에스에프 영화의 제목도 까먹은 지금껏 이렇게 기억하는 이유는, 이제부터다.

그 나름 토론회가 대충 끝나고 나와 남자친구는 까페에서 나왔는데, 무슨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아까 보았던 축구인지 야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나는 축구이건 야구이건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걸 내색하면 이 남자에게 점수를 깎일라, 그냥 스물일곱(내가 그땐 스물일곱살이었다!)해 익힌 눈치대로, 맞장구를 치려하고 있었는데, 이 남자 하는 말이 나에게 복음이었던 거다.

 

그 -- "너 아까 되게 재미있어하는 거 같던데."

나 -- "아니 그냥....."

그 -- "난 한국져라, 일본이겨라,하고 있었는데."

 

내가 재미없으면 그냥 재미없다고 해도 되는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었다.

신성불가침 타이틀인 양 구는 한일전, 대학때 그 숱한 경기전들, 아, 거기에 침을 뱉어도 되는거구나.

 

나는 그때 스포츠를 스포츠로 보는 진정한 깨우침을 얻었다.

거기에 학교가 붙고 나라가 붙는 게 웃기는 짬뽕이구나.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그러면 온국민 밤낮없이 축구야구만 열라하면 되겠네.

더더군다나 공식적 여자경기는 없는(지금은 있나?) 거면서.

하여간에 결론은 난 축구, 야구, 싫다, 재미없다.

 

얼마전 한겨레의 김어준 칼럼에, 김어준이 오바 좀 하자면서, 한국야구가 미국 야구이겼으니, 한국이 미국 이겼다고 오바 좀 하자는 얘기인 듯한 글을 썼다. 무슨 주장인가 싶어 읽어보려 했다가, 첫 줄 부터 내가 알아들 을 수 없는 경기용어라서 관둬버렸다. 작년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코메디언 김승대가 개그맨 기획사 문제로 뉴스가 되었을 때 김어준이 썼던 칼럼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때 확 휀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김어준 칼럼을 꼬박꼬박 읽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황우석부터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가(황우석에 대한 기사와 뒷얘기를 아주 속속들이 알고 있지않는 한 김어준의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듯한 인상을 받았음) 갑자기 야구 경기 이긴 것을 미국 이겼다고 오바 좀 하자는 건, 으흠....

 

김어준처럼 '공식적으로' 전제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언론사들이 이미 오바하고 있다. 시청앞 광장에 왜 사람들이 모였으며, 그건 왜 카메라로 찍고 있으며, 왜 뉴스 앞대가리 다 경기이야기로 채우는냐 말이다.

 

 

나는 당신들이 외치는 대~한민국이 싫다.

새만금도 그렇고(그래도 대법원은 다를 줄 알았다), 에프티에이도 그렇고, 비정규직법 통과된 것도 그렇고, 최연희인지 뭔지가 국회의원인 것도 그렇고, 애들은 성추행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도 그렇고, 평택에 들이미는 미군은 어떡할꺼며 또또..........................................

 

 

야구, 볼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은 한 집에 같이 사는 그 옛날 그 남자는, 겐이치로처럼 야구를 '우아하고 감상적'이라고 생각('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도 내게는 어려운 소설)하는 야구 휀이라서 우리집 티뷔에도 열두시부터 야구가 중계되고 있었던 바람에 보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래서 나는, 정말 마음 속으로, 한국 져라, 일본 이겨라, 하고 응원했다.

여기서 이기면 정말 좋은 나라라고 오바한다. 제발 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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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중계를 보지 못하는 이유

얼마전에 한국의 프로야구 코리안시리즈 우승팀과 일본의 프로야구팀과의 친선경기가 몇 경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십대 초반 나도 야구장에 가봤다. 야구장에 가서 피자와 캔맥주를 먹자는 말에 넘어가 피크닉 가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엉덩이 들썩하는데 부화뇌동하기도 쉽고, 부화뇌동 하는 가운데 먹는 피자와 캔맥주가 꽤 맛있었다. 하지만 나는 피자와 캔맥주가 끝나면 또 아이스크림을 먹고 아이스크림이 끝나면 또 무언가를 먹고 내차 먹다가 먹을 게 없어지면 몸을 꼬았다.

 

하지만 나에게도 일생일대 잊지 못할 정도로 역사적인 스포츠 경기가 있다.

국민학교 6학년때였는데, 한국 대 일본의 야구경기였다.

일본팀이 2점(인가? 이것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젠 가물가물하네) 선점하고 있었고, 한국팀은 도통 방망히 한 번 휘두르지 못했었다. 당시 같이 살고 있던 이모는 즉석 떡볶기를 좋아했었다. 그녀 나이 스물일곱, 집에서는 한창 노처녀 취급을 받고있었다. 지금 생각하기에 그녀는 즉석떡볶기 중독이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광화문 내자호텔 근처 살고 있었는데, 점수변동이 없는 야구가 지겨워진 이모는 나를 꼬셔 정동 지역 최고 유명했던 미리내 분식점에 함께 가서 즉석떡볶기를 사오자고 했다. 나는 이모와 손잡고 그 길을 걸어가, 떡볶기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며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끓여먹을 찰나, 막판에 한국팀 점수가 났다. 한대화가 막판 만루홈런으로 역전을 시킨 것이었다. 이모는 고 사이에 떡볶기 사오기를 잘하지 않았느냐며, 막판 만루홈런을 알고 그 사이의 시간을 잘 사용했다는 식으로 의기양양하게 뻐겼고, 나는 야구는 구회말 투아웃부터라는 의미를 가슴에 새겼다.

그 이후 프로야구가 생겨서 원년에 오비베어즈 어쩌구하며 다녔던 것도 좀 기억난다.

 

가끔 운동선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여자애들을 보면, 그게 멋져보여 나도 흉내내려 했던 적이 있었다. 진정으로 나의 총애를 받았던 선수도 몇 있다. 최천식, 전희철...

 

하지만 나는 스포츠 경기 앞에서 항상 딴 생각이 빠진다.

야구는 투수가 폼을 잡고 공을 던지기까지 그 사이에만 잠깐 딴 생각한다는 것이 정신 차리고 보면 벌써 공치고 타자 뛰고 있고, 농구는 반칙 나온 사이에만 잠깐 딴 생각한다는 것이 정신 차리고 보면 점수를 따라잡기 어렵고, 축구는 워낙 경기장이 넓어 시종일관 계속 딴생각이다. 고스트 바둑왕을 보며 잠깐 '승부욕'이란 것을 나도 가져봐야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그러다가 남편이 그러고 있는 날 한심하게 쳐다봐서 당장 관뒀다.), 사실 나의 적성과도 맞지 않는다.

 

얼마전에 있었던 한국 프로야구팀 대 일본 프로야구 팀 경기중계에서는 이승엽에 대한 딴생각에 빠졌다. 이승엽은 일본 프로야구팀 소속이었다. 이승엽은 얼마전에 결혼해서 새 신부와 일본에 갔다. 일본으로 가는 공항에서 이승엽과 새 신부는 나란히 사진포즈를 취했는데, 그녀는 짧은 청미니스커트에 곰사냥나가는 털부츠를 신고 있었다. 한 눈에 대단한 신세대 미녀였다. 이승엽처럼 잘 나가는 프로야구선수는 그런 미녀를 차지할 만하지. 이승엽이 경기하고 들어오면 그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나긋나긋 풀어줄 그녀가 곁에 있으니 총각 때와는 달리 이젠 안정이 되겠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싶었나보다. 그녀는 곁에서 이승엽의 피곤과 스트레스를 나긋나긋 풀어준다. 저런 미녀라면 이승엽은 눈녹듯 피곤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이승엽이 한국에 돌아오면 그녀도 함께 돌아오고, 다른 곳으로 가면 또 거기도 가고. 이승엽의 피곤을 풀어주기 위해 함께 항상 갈 것이다. 365일 고용된 개인용 창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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