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선언하는 거지. 공식적으로 뭐 그런 얘기가 아니라, 내 내면에다가. 나는 이제부터 투잡이라고. 학교 일도 하고, 소설도 쓰고."
"어젯저녁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 (그 순간에 대한 묘사 잠깐 ...............) 내가 그 때 뒤돌아 있었잖아, 책꽂이 쪽 보면서. 그 때 내가 책들 보고 있었어. 필사할 책을 고르느라고. 그리고 당신에게 이 심정을 말해주고 싶었는데, 규민이가 있어서 말 못했지. 규민이가 또 우리끼리만 얘기한다고 할까봐. 그래서 참고 참다가 지금 얘기하는거야."
내면 선언에 이어 남편에게 선언했다.
이어 남편의 대답.
"어... 어젯밤 꿈에 말이야, 당신이 옆으로 앉아가지고는 다리를 꼬고 앉아가지고는 내 쪽으로 보지는 않고 뭔가를 손으로 하고 있었던가, 아무튼 나한테 눈길도 안 주고 하던 일에만 눈을 주면서 그냥 지나가는 말투로 말이야, 됐어. 그러더라구. 그래서 내가, 어디? 하면서 생각해봤는데, 신춘문예도 다 지났고, 작가의 상도 지났고, 다 지났는데, 어디 됐다는 걸까, 하면서 중앙일보? 중앙일보 문예상이 지금 때거든. 그거 상금도 많아. 그래서 내가 중앙일보?하고 물었더니, 당신이 여전히 내 쪽은 보지도 않고, 심드렁하게, 엉, 그러대. 그래서 내가 상금도 꽤 받았겠네?했더니, 여전히 심드렁하게 그럴걸,그러대. 그런 꿈을 꿨어, 어제."
10년 한솥밥을 먹었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걸까.
난 글 쓰겠다,의 ㄱ 도 말 한 적 없었다.
(물론 글 써서 좋겠다, 나도 하고 싶은데, 뭐 이런 타령 나부랭이는 늘상 했지만.)
"아, 오늘 아침 되기 전에 간밤에 내 영혼이 당신에게 말해주었나!"
아무튼 이로써, 나는 주변인에게 또 선언합니다. 빈말이 되지 않도록.
소설가가 되겠다는 얘기는, 쪽팔려서 아니고요-이 나이에 무슨... 이란 생각이 자꾸 들어요. 남편은 그게 무슨 나이랑 상관있냐고 할 수 있다고 자기는 나이 생각에서 완전 벗어났다고 용기를 주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냥 무작정 쓰고 싶어요. 그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하고 싶은 것입니다.
김연수가 <여행할 권리>란 책을 냈다고 했다.
친구 하나는 세살 아이를 데리고 라오스를 간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또 친구 하나는 곧 여행을 간다고 했다.
그리고 또 친구 하나는 여행기 책을 출판한다고 한다.
나한텐 오즈의 마법사의 에머랄드시 쯤 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었다.
여행을 가려면 먼저 미친듯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날 마녀 위로 떨어뜨려주어야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은 어찌 된게 손목이 저리고 다리가 아퍼,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건 사양이다.
샘많고 질투많은 내가 무지 부러워 배아퍼마지 않았던 것이 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어느날 갑자기, 여기는 보스턴입니다,란 글을 써오는 작자들이었다.
어느날 김연수도 영국의 이층버스 운운하는 글을 써왔고, 황석영은 빠리가 어쩌구(북한에도 다녀온 황석영씨야....)하고, 그리고 공선옥은 무슨 낭송회라고 어디라고 했더라... 심지어(?) 김영하는......
나는 배 아퍼죽는 것이다.
남미문학포럼에 참가 차 아르헨티나에서 반년 쯤 살아야만 되지는 않을까,란 생각이, 남편이 처음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머리 한 쪽에서 삐죽하고 나왔었다고 한다면 나도 섹스 앤 더 시티를 욕할 것도 아니다(옛날에 블로그에서 욕한 적 있었음)(비디오 씨리즈 줄창 빌려보다가).
그런데 가만.
친구의 곧 여행계획이란 문자를 보며, 회오리바람이 불어야하는데, 불을까도 사실 무서워..를 웅얼거리고 있다가... 그런데 가만..
내가 지금 막 여행에 돌아온 차 아니었던가.
앉아있는 식탁 의자 5시 방향, 2미터 떨어진 곳에 방수 잠바와 싸파리 모자가 펼쳐져 널부러져있고, 그 옆 등산배낭이 각각의 지퍼가 3분의2 쯤 벌여진 채 있다. 안의 물건은 이미 냄새를 풍기려하고 있지만 정작 꺼내어지려면 그 상태로 최소 이틀은 더 기다려야하는 이 장면은, 바로 두어시간 전에 동서울 터미널 착 고속버스에서 물먹은 솜 같은 두뇌를 깨워 일으켰던 내가 만든 것이다. 나는 부여에서 막 돌아온 것이었다. 그것이 여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내가 그토록 배아퍼마지않았던, 내 돈으로 간 여행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떠났던...으흐.
우리반 아이들 하고 6학년 아이들하고 6월 첫 주, 공주와 부여에 다녀왔다.
한국사를 공부하며 백제 유적지를 가본 것이다.
솔직히 나는 공주와 부여에 처음이었다. 엄마 아빠 둘다가 공주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예산 출신이면서.
이번 여행에서는 역사 유적지를 여행한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그게 무엇인지를 느꼈다는 것.
예전엔 일부러 상상을 했었어야했던 것이, 첫날 공주박물관에 들어가 무령왕릉 속 유물을 둘러보다가, 무령왕의 왕비가 평소 몸에 지니고 다녔었다는 엄지 손톱만한 동자상을 보는데, 비단 치맛자락 속 어딘가에서 저 동자상을 만지작거렸을 왕비의 손가락이 문득 떠오르며 애잔한 느낌이 스쳐가 이상하였다. 혹 내가 전생에 저 왕비?
박물관에서 그러하였던 것이, 실제로 무령왕릉을 가보니 더 하였다. 입구조차 막혀있고 그저 둥그런 봉분의 외형을 볼 뿐인데 마음이 쓸쓸하였다. 나이를 먹은 걸까.
부여에서 그 애잔하고 쓸쓸한 느낌은 더 했다. 백마강과 낙화암. 말로만 들었던 삼천궁녀가 꽃처럼 떨어졌던 낙화암. 그 위에 서니, 그 여자들의 진분홍 치마자락과 눈물과 가늘게 떨리는 눈썹과 손끝이 바람 속에 울리는 듯 하다. 애잔하고 애잔하도다. 내가 시인이라면 그여인들을 위하여 시를 한 편 올리겠건만.
아무래도 패망한 나라의 애절한 기운이 서려있는가보다. 그러나 그 기운이 쓸쓸할지언정 아름다웠다.
백제는 실로 눈 높은 예술수준을 갖고 있어서 그런가. 모든 쓸쓸한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나도 인생의 가을색이어서 그런가.
정림사라는 절터에 남아있는 백제의 석탑이 하나 있는데,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라고 한다. 정림사라는 절은 죄다 깡그리 타버려서 남아있는 것 하나 없는데 이것만 돌로 만들어져 남아있다. 사진으로 보면 익숙한 석탑이다. 뭐라 더 표현할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는 그저 익숙한, 석탑.
그걸 가까이서 보니, 돌을 고르고 평평하게 깎는 것으로도 모자라 끝자락을 처마끝처럼 살짝 구부려 올린 백제 예술인들이 까탈스럽다.
그런데 한 바퀴 돌아보고, 이 쪽에 서서 보고, 저 쪽에 서서 보는데, 건축물에 있어 당연한 명제겠지만, 너무나 균형적이다. 층마다 각각 정확한 비례로 줄어들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그 시절에 돌로 저토록 정확한 비율을 구사하며 깎아 얹었다니.
정림사지 박물관에 들어가 본 오층석탑의 설명의 그림에는,
..쓰려고 하니까 너무 어렵다.
찍어온 걸 올려야겠다.
나는 가서 사진 하나도 안 찍고, 이거 한 장 찍었다.

그 탑이 실제로 얼마나 아름다운 기하학적 균형을 갖추고 있는가. 이걸 돌로 만들었다니, 그리스 신전이 따로 없다. 건축물도 감동을 준다고 하는 걸 알겠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무르익은 5학년이 되면, 5학년이라는 특성; 동심과 동심을 벗어남의 조화에 맞는 과목으로 그리스를 배운다. 그리스에서는 신과 인간, 예술과 이성이 (5학년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그리스 기하학을 함께 배우는데. 그리스도 그리스지만, 백제의 기하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나는 민족주의자도 아닌데, 났다.
암튼....
백제여행기를 이리하여 쓴다.
나는 내가 보고 싶던 평화를 다 보았네.
사슴 한 마리, 목초지와 시냇물,
눈을 감으면,
사슴은 내 팔 안에 잠들고,
사냥꾼은 저 먼 곳,
자기 아이들 곁에 잠드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네> 부분
나는 푸른 하늘을 만든 모든 하늘빛 입자들을 사랑한다. 그 하늘빛 속에서 말(馬)들은 유영하고. 나는 우리 어머니의 작은 것들, 가령 어머니가 닭장에 가려고 아침 첫 현관문을 열 때 그분 옷에서 풍기던 커피의 향기를 사랑한다. 나는 가을과 겨울 사이의 들판을 사랑하고, 우리 감옥 간수의 아이들을 사랑하며, 저 멀리 가판에 진열된 잡지도 사랑한다. 나는 우리에겐 없는 그 장소에 대해 스무편의 풍자적인 시를 썼다. 나의 자유란 저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작은 감옥을 더 늘려 내 노래를 실어 나르는 것이다. 문은 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안에서는 걸어 나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불행하기도 그곳은 낙원이었다>
바닷가에 한 소녀가 있고,
그 소녀에겐 가족이 있고,
그 가족에겐 집이 있고,
그 집엔 창문 두개와 현관문 하나.
바다에는 게임을 시작한 군함이 있고,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들에게 조준하여,
넷, 다섯, 일곱, 모래 위에 투하하네.
소녀는 연기의 가호로 살아남네,
어떤 천상의 가호가 소려는 구하러 온 듯이.
소녀는 비명을 질렀네, 아빠, 아빠, 집으로 가요, 바다엔 안돼요.
그러나 아버지는 대답이 없네.
그는 거기 부재의 고통 속에 누눠있네,
부재의 고통 속 그림자에 휩싸인 채.
소녀의 손바닥엔 피가, 하늘의 구름에도 피가,
소녀의 비명은 저 멀리, 저 높이 바닷가로 날아가네.
소녀는 막막한 밤에도 비명을 지르네.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고,
폭격기가 돌아와 두개의 창문과 현관문 하나짜리 집을 부수어
소녀는 쓸모없어진 이 흉보를 전해줄 영원한 비명이 되었네.
-<소녀/비명>
또다른 날은 올 것이다, 여성적인 날이,
메타포는 투명하고 존재는 꽉 찬.
다이아몬드와 눈부시게 흐르는 성가 행렬,
가벼운 그림자와 더불어.
아무도 느끼지 못하리라, 자살이나 작별의 욕망을.
.............
또다른 날은 올 것이다, 여성적인 날이,
율동 속에 노래하듯, 인사와 악보 속에 푸르게 빛나듯.
과거 밖에서는 모든 게 여성적이 되리니.
바위의 가슴에서 물이 플러내리리.
먼지도, 가뭄도, 패배도 없이.
-<또다른 날은 올 것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이어줄 공동체의 끈은 바로 이런 시적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디아스포라의 삶을 종결짓고 대지에 뿔리내리기 위해서는 군사력 증강보다 가족과 친구, 나무와 바람, 가축과 논밭은 같은 민중들의 일상의 평화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기억하려는 시적 저항이 우선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만약 견고한 서구 제국주의가 무너진다면 결국 이런 일상의 작은 평화에 대한 염원으로 무너지게 될 것이다.
...............
다르위시는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자유와 독립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서로 묶어줄 공통의 끈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떨어져나가면 누구나 쉽게 뿌리뽑히기 때문이다. 한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광풍 앞에서 서로를 단단히 묶어줄 끈은 바로 자기가 태어난 땅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지키려는 저항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을 향수라 부르든, 애국심이라 부르든, 혹은 민족주의라 부르든 추상적인 명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인류가 처음부터 한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 나아가 집요하게 나누고, 가두고, 분열시키려는 힘에 온 몸을 다 바쳐 저항하는 것,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아름다움을 끝끝내 놓지 않으려는 것, 그것이 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
=================
그렇군요. 시란 그렇군요.
처음으로 깨달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