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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의 후기

바라던 조직 개편 회의. 

그러나 끝나고 난 뒤 이 쓸쓸한 기분은 뭘까.

 

버스 옆 좌석에 앉은 신참동료가 나에게 오늘 회의의 성과를 꼭꼭 씹어서 넘겨주는데, 그래, 그래, 낙관적이야, 낙관적.

근데도 이 쓸쓸한 기분은 뭘까.

 

그 동료에게 술이나 먹고 갈래요?하고 넘어오는 말을 꿀꺽 삼키고 아픈 딸래미가 있는 집으로 마음을 재촉하며 돌아왔다.

 

회의 중에 나는 갑자기 학교를 때려치우고 싶었다.

당장 그만두겠어요.

도저히 당신, 누구누구 때문에 교사회에 있지 못하겠어요.

이런 식으로 그만두면 안된다는 지적에, 나는, 내가 둘째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 사람들의 말들과 행동들에 대하여 낱낱이 홈페이지에 올린다. 일신 상의 이유로, 따위의 사유 말고, 이 사람 이 사람의 이런 이런 말들과 행동들 때문에 그만둡니다.라고 사직서에 밝히며 그만두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규민이를 생각했다.

규민이가 정말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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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배가 고팠어.

학교 근처에서 순대국밥(마이 훼이보릿)을 먹으려다 딸래미가 눈에 밟혀(난 여전히 그녀가 눈에 밟힌다. 좀 유난하네,라고 어린이집 엄마들이 질타하거나, 방중 열흘 부산 연수에서  하루 비는 날 꼭 서울 올라오는 걸 못났다고 학교 동료는 말하는데, 나는 잘못된 것인지 잘 모르고 있음) 집으로 왔더니 먹을 게 없다. 눈에 밟혔던 아이는 마루에서 아빠와 서로 끌어안고 곤히 낮잠을 주무시고 계시다.

 

속이 울렁거리면서 멀미하는 것 같다.

빈 속인데 토할 것 같다.

 

규민이 젖 먹이며 생긴 증상인데, 배 고프면 멀미, 현기증이 난다.

빨리 뭘 먹어야한다.

 

냉동실에서 냉동찬밥 한 덩이를 물에 넣고 끓였다.

각종 김치 찌그래기들을 모아 컴퓨터 앞에 펼쳐놓고 죽밥 한 숟갈 김치 한 숟갈...... 어째 먹어도 멀미가 그치지 않는다.

아이를 끌어안고 나도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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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왔다

소설을 물텅 읽은 것이 얼마만.

어쩌자고 나는 우리 조상의 과학살이니, 행복한 수학교실이니, 물방울이 구름이 되어요니, 미나리아재비과 식물도감이니 하는 책들만 보고 살았던가 말이다.

 

폐 속에 무언가 달라진 공기를 가지고 일어나 책을 빌리고 목도리를 친친 감고 나오며 이 느낌을 블로그에 적어야해,하고 컴퓨터실에 앉았는데, 무슨 느낌인가, 그것은.

 

아편을 진탕 물어댄 느낌.

그 속에 남편은 살고있구나, 문득 진하게 질투가 느껴짐.

그 남자는 내가 자기를 질투하는 것을 알고있다.

아마 그 말초적 충족감으로 그는 글이 안 써진다한들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나 같은 천박한 인간이나 하는 생각인가..

 

세상에는 두 가지의 인간이 있다.

소설가와 소설가가 아닌 자들.

아, 세상의 소설가들은 얼마나 잘났을까.

세상의 소설가가 아닌 자들의 질투를 받으며, 손끝을 아릿아릿하게 하는 말초적 충족감에 오늘도 어디서 나른한 척 담배를 물고 있겠지.

자기의 옆얼굴을 의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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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저녁, 규민의 손을 잡고 시장에서 골목으로 꺽어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절박한 목소리.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정말 위로받을 데가 없기 때문이야.

알았지?

그러니까 그냥 도장찍고 살라고 하고, 너는 그거 꼭 챙겨 니꺼로 해."

 

누구야?

찾아보니 가로등도 비껴있는 충충한 곳에 뚱뚱한 중년여자가 서있다.

비도 안 오는데 앞머리는 비 맞은 것처럼 축축 늘어져 얼굴의 중간까지 가리고 있다.

부시시한 파마머리에 부시시한 살결이 우중충한 조명에서도 까끌까끌하다.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넣고, 대충 봐도 키도 크고 뚱뚱한 거구의 아줌마.

술도 한 잔 걸친 것 같고.

아닌가, 그냥 목소리가 걸걸한 양반인지도.

 

나도 규민이에게 저렇게 호소해야하는 날이 올까.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말이야, 정말 위로 받을 데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날 이해해주련?

 

엄마는 위로 받을 데가 없어 담배로 위로를 삼는데도 자식에게 민망하구나.

 

요즘은 도통 영화를 보지 않아 무슨 영화가 어떻게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영화는 보지 않지만, 김혜리의 영화를 멈추다, 란 한겨레 신문의 한 섹션을 좋아했는데, 그것도 이제 연재를 마친단다.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 순간은 없었는데 김혜리의 연재는 아쉬웠다.

 

지나 데이비스가 야구선수로 나오는 영화 생각이 났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에스케이가 승리했다며 헹가레에 난리를 치고 있을 때.

좀, 도식적이지만, 나는 담배 핀 것으로 자식의 아량을 구하는 거구의 여자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자들끼리만,의 풍경은 나로하여금 꼭 못된 생각을 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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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를 그렸어.

어제, 금요일 날씨가 참 좋았지.

햇볕이 반짝반짝 공중에서 빛을 내며 떠돌고, 나뭇잎들이 산들바람에 박수를 치 듯 몸을 흔들며 그 빛을 흉내내는데, 그 위로 하늘은 정말 높아져있더라.

나는 아이들이랑 물감과 종이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왔어.

자,  오늘은 가을을 그리는 거야.

 

나는 옅은 파랑으로, 8절로 자른 머메이드지 전체를 칠했어.

저 하늘이랑 닮았나, 위를 올려보면 눈이 부셔, 노랑빛이 더 많은 것 같아.

다시 노랑을 붓에 묻히고 군데 군데 노랑을 입혔지.

고흐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뭇잎이 반짝이는 건 어떻게 그려야할까.

장승이 받는 저 햇볕을 따뜻하게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식당지붕을 덮은 저 퍼런 비닐을 후줄근하지만 친근하게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뒤로 먼산이 가을하늘을 보고 벙긋벙긋 웃고있는 것 같은 것을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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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중 생각

마지막 밥 숟갈을 입에 넣기도 전에 규민, "놀아, 놀아".

저 소리에 내 간이 뻘겋게 부푸는 것 같다.

나도 밥 숟갈 내려놓고서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싶단 말이다.

일단 몸을 길게 늘어놓는 것.

그리고 옆구리에 재미있는 것을 끼고.

이 상태 유지하기를 약 5분 넘기지 못하는 신세 어언 육년 째이다보니, 옆구리에 국어사전을 끼고 있어도 그것은 아주 훌륭한 '재미있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맞다. 공부하기 싫다는 애들 데려다 애 키우라고 시켜야한다. 한 달은 커녕 하루만 온종일 해도 아마 공부하겠다고 도망갈 것이다.

사실 나는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 사전 보기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원래 사전은 나에게 재미있는 것이다. 갑자기 얘기가 사전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원래 하려던 얘기가 긴데, 다시 규민이로 넘어가야한다.

 

규민이가 놀아, 놀아,하는데 엄마가 즉각 적극 오케이를 보이지 않으면 다시 없는 떼를 보여준다.

역시 엄마가 가장 만만한 존재인 것이다. 내가 그토록 엄마를 당하게 하더니, 딸한테 당한다.

나는 좀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의사를 분명하게, 단호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랬더니 엊그제부터 규민이가 하는 말이 있다.

"그럼 엄마, 나랑 안 살겠다는 거야? 나랑 살지마."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분명히 이번 부부싸움으로 인한 것이다.

그 스트레스, 불안감, 정신적 고통이 아이 마음에 또아리를 틀고있는 것이다.

나는 강하게, 내 의사, 분명단호..다 잊고 아이를 덥석 안는다.

규민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 했구나, 우리 규민이한테.

 

애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면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라 본능으로 아는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엄마아빠 싸움을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

아, 나도, 나도...

 

그런데 나는 아이 앞에서 멀쩡한(혹은 멀쩡을 가장한) 얼굴을 하고 기다렸다가 애가 없을 때, 애가 자고 난 후에 남편이랑 부부싸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해보려고 시도,노력했으나, 어차피 다 찌그러진 얼굴하고 말은 거칠고 그동안 아이에게 괜한 짜증을 부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훌찌럭거리고 이거나 저거나 싶다. 그냥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또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대화'를 나눠야지,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그러고보니 싸우고 있는 중이 되는 것이다. 사실은 정말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화인데, 단지 격한 대화인 것인데, 그치만 아이에겐, 그걸 받아들일 만한 감정의 폭이 안된 아이에겐 엄마아빠가 또 싸우는 것이다.

 

아이에게 무척이나 미안하지만, 덮어두고 묻어두고 사는 것 보다 괴로운 것 괴롭다 말하고 아닌 거 아니다 말하고 사는 게 낫지않겠나, 바로 그것을 아이도 자라면 이해하지 않겠나,하는 마음이, 사실 나에게 있다. 내가 우리 엄마아빠 싸움에 그토록 괴로워했지만, 결국 그 부부의 싸움의 의미를 이해했듯이.

규민이 언젠가 엄마와 여자의 연대감을 갖게되면, 그때 정말 솔직하게 규민과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사실 나에게 있다.

 

그런데 엊그제 규민의 그 말 앞에서 완전 두 무릎 다 꿇고 미안하고 잘못했구나,를 되뇌이면서, 내가 엄마아빠의 싸움을 부부싸움으로 이해하게된 시점 그 이전을 다시 떠올려보는데.....이런 게 떠올랐다.

나, 엄마아빠 싸움 보면서 이런 생각했었었다.

엄마가 좀 참지. 앗, 엄마, 거기서 그런 말 하지 말고 그냥 알았다고 하고 참지. 앗, 엄마, 그냥 말하지 말라니까.....

엄마 아빠 중에 누가 옳다,라는 생각을 갖기 이전에 나는 그냥 싸움이 싫었고, 그 싫은 싸움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빨리 종료하기 위해, 마음 속으로 엄마가 조용히 참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우리 아빠는 가끔 엄마를 때렸다. 물론 무엇보다 엄마가 맞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아빠 성질 돋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일단 무조건 엄마가 그냥 다 넘어가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던 것이다.

꽤 나이먹도록 자랐을 때까지(기억으론 중학생때까지) 이런 생각을 하였었는데, 가령, 엄마가 외출하여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저녁밥먹는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아빠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엄마친구들집으로 전화를 돌렸고,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나가 기다렸다. 빨리 안오고 뭐해,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되짚으며, 여자가 사람으로 자라는 것은, 남자로 자라는 것이란 생각을 했었었다.

(사람=남자인 것을... 당연하지,라고 써놓고보니, 슬프다.)

그리고 진짜 여자가 되는 것은 고통과 관련있는 일이었다.

(월경이니, 섹스니, 출산으로 읽는 사람은 바보)

이후로도 여자로 사는 것은 참 어렵다.

(그래서 훼미니즘은 가장 성찰적이다,라고 내가 하는 얘기가 아님)

 

내 딸 역시 그런 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생각은 다시,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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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했어, 규민그림

 

 

 

 

반했어, 반했어. 규민그림.

 

저 벌들 좀 봐. 저 소녀의 행복한 미소를 봐.

 

지금의 나도 못 그릴 그림이야.

 

그런데, 문득, 나도 여섯살 무렵엔 말이지, 내가 그린 그림에 도취되었던 시절이 있었단 기억.

(물론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과 자기가 그린 그림에 도취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도 매일 그림을 그려대며 내가 그린 그림에 빠져있었는데 말이지.

언제부터 난 그림을 못 그린단 생각으로 빠져버린걸까.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보낸 사람들은 1~2%만 빼고 죄다 성인미술치료코스를 필수 이수해야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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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인어공주

인어공주는 다리를 얻기 위해 마녀를 찾아간다. 마녀는 그녀의 목소리를 대신 받고 다리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사흘 안에 왕자와 사랑에 빠져 키스를 하지 않으면 마녀의 하녀가 되어야한다는 계약서를 써야한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만나 사랑을 시작한다. 한적한 보트놀이에서 키스할 뻔도 했지만 보트가 뒤집히는 바람에(마녀 신하들의 계략으로) 실패했다. 사흘째 되는 날 왕자는 어찌된 일인지 느닷없이 등장한 바넷사란 여자랑 결혼을 발표한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바넷사는 마녀가 변신한 것이었다. 인어공주를 후원하는 동물친구들의 도움으로 바넷사는 봉변을 당하고 인어공주는 그 와중에 목소리를 되찾는다. 그리고 왕자랑 키스를 했지만 막 해가 진 뒤였다. 결국 계약에 의해 인어공주는 마녀의 하녀가 되지만, 인어공주의 아버지(용왕님?)가 그것은 차마 가슴이 아파 자신이 대신 마녀의 하인이 된다. 마녀는 용왕의 강력한 마법 덕분으로 거대한 힘을 얻지만 왕자가 사랑의 힘으로 용기를 내어 배를 몰아서 마녀의 심장을 뚫는다. 용왕님은 기뻐하며 딸에게 다리를 주고 둘의 결혼을 허락한다.

 

규민이가 반짝이와 분홍치마와 뾰족구두 세계에 입문한 후, 거기에는 온갖 그 이쁜것들과 함께 왕자와 가슴 떨리는 로맨스까지 누리고 있는 공주라는 존재가 있었다.

공주는 규민이의 꿈이다.

이 다음에 크면 나도 공주가 될 수 있을까....

 

신데렐라, 백설공주,오로라공주(나는 처음으로 이 이름을 알았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이름이라는데 이거 진짜일까, 아니면 디즈니에서 만들었나.왕자이름은 필립이란다. 디즈니에서 지어낸 게 분명해.), 엘리..뭐더라 인어공주이름도 있는데(이것도 디즈니에서 만든 것 같음. 왕자이름은 에릭이라함.) 자스민 공주(알라딘과 요술램프에 나오는 공주, 이것도 디즈니에서 만든 거 같아.) 미녀와 야수의 벨 공주. 이 여섯 공주는 우리집에서 맨날 같이 산다.

 

처음에 규민이가 공주에 흥분하기 시작했을 때는, '공주'라는 것이 싫었다.

실제로 규민이는 공주놀이에서 왕자님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외로 꼬며, 나쁜 놈 앞에서는 그대로 쓰러지거나 도망치면서 왕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연기를 했다. 왕자한테 도와달라고 외칠 때도 큰소리로 외치지도 않는다. 왕...자...님...하면서 쓰러진다.

 

나는 푸르미공주라는 이야기를 지었다. 푸르미공주는 머리카락도 아주 길고, 아름답고 보석도 많고 아름다운 분홍드레스가 치렁치렁하고 뾰족유리구두를 가졌는데 요정들과 함께 칼싸움 놀이를 좋아하여서 맨날 칼싸움놀이를 하다가 왕자가 나쁜 놈의 공격을 당하자 나쁜놈을 혼내준다고....(여전히 한계가 많다.-.-;;;)

규민이는 푸르미공주를 좋아했지만, 푸르미는 오래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푸르미는 자기가 힘겹게 상상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디즈니는 요정의 마법지팡이처럼 공주들을 눈 앞에 내놓았으니.

 

 

인어공주 디즈니 만화영화를 극장에서 봤다,사실, 나는,데이트하면서.

알라딘과 자스민공주도 그랬다,사실.

그러고보니 미녀와 야수도 봤다,왠일이니.

 

인어공주 볼 때, 원작을 바꾸어서 저렇게 만든 것을 만화적 위트라고 생각했었다.

보트에서 키스하려고 했다가 뒤집혀서 못 하는 것 등. 그리고 대대적인 해피엔딩.

원작과 어떻게 다른 것이 어떠한지에 대한 생각 전혀 없었음. 원래 원작이 위대하면 자질구레한 아류가 등장하기 마련.. 한번 웃고넘어가는 이런것도 있지...뭐 대충 이런 생각.

 

그런데 여섯살 아이가 인어공주의 원작을 잘 알기도 전에 디즈니판 인어공주를 본다는 것은(만화도 아니고 책으로) ...

 

내가 어렸을 때 인어공주를 책으로 보았을때, 그 때 마녀는 이렇게 무조건 무찌르고 타도해야하는 나쁜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녀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은 인어공주가 '금기시 된 것을 탐하기' 때문이었다. 금기된 것을 탐할 때의 그 위험, 그럼에도 결국 저지르고 말게되는 강한 유혹. 마녀는 그것의 은밀한 중계자다. 음침한 종말을 암시하는. 무서워도 거부할 수 없는..... 그래서 자라면서 공주 캐릭터 보다 마녀 캐릭터에 더 호감을 갖게 되나봐. 그런 사람들이 디즈니의 마녀캐릭터를 만드는 것인가보다. 디즈니의 마녀 캐릭터도 공주만큼 호감은 준다. 매력의 근간은 다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아서 그렇지.

아무튼지간에 무엇보다 인어공주의 백미는 마지막 비극. 왕자의 가슴을 언니들의 머리카락을 팔아 얻은 칼로 찌르느냐, 마느냐. 내가 죽는냐, 널 죽이느냐. 거기에서 왕자의 가슴을 찔렀다고 해도 좋았을 것 같다. 왕자의 피는 그의 침대에 낭자하고 인어공주는 그 피가, 이제는 저주할 다리를 물들이는 것을 바라본다고 해도 나는 인어공주를 이해할 것이다. 그직전에 가슴은 이미 터질만큼 뛰었다. 죽이든 죽든 어떤 결말에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었다.

 

 

이런 것들을 죄다 번떡이는 이미지로만 도배한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천박하고 천박하다.

 

어렸을 적에 만화 시작하기 전에 뜨는 디즈니 로고만 봐도 꿈과 희망이 부푸는 줄 알았건만, 아, 정말 싫어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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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여행기를 읽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여행인데, 그 하고 싶은 것을 나는 못 하고 있고, 그 하고 싶은 것을 다른 누군가가 하여서 남긴 글을 어떻게 질투가 나서 읽어,라고 생각했었다.(우리 남편이 보면, 넌 그래서 안돼,라고 하기 딱 좋을 소리다.)

 

 

친구가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빌려준 것은 벌써 2년 전이다.

그녀가 라디오 방송국 작가로 있을 때, 그 방송프로에 홍은택을 초대해서 그남이 쓴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단단하게 쌔카만 남자였다고 한다. 이 책은 홍은택씨가 작가님에게 직접 주었던 책이었을까. 그렇다면 싸인이 없는데? 암튼 내 친구는 나에게 재미있었다며 홍은택씨에게도 호감이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이 책을 빌려주었었다.

그녀는 지금 테레비방송국을 위해서 일한다. 라디오방송이 그녀에게 더 어울릴 것 같다고 느끼는데, 그녀는 한사코 테레비쪽이 더 좋다고 한다. 그게 더 자기가 만든 방송이란 느낌이 든다나 뭐라나. 그여자는 가끔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무언가가 자기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거야 보통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내친구 그녀가 라디오방송국에 앉아있는 것이 테레비방송국에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마 나의 방송국에 대한 선입견과 무지 때문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간단한걸.)

 

2년의 기간 동안 내 친구가 책을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집 책꽂이에 이 책은 고대로 꽂혀있었으나,  나는 이 책을 오랫동안 잊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나는 여행기를 읽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홍은택씨가 이 글을 한겨레에 연재하였을 때 보았었었다. 그것도 매주 빼놓지 않고. 그때 이 글이 연재되었던 지면이 18도라는 섹션이었는데, 아마 이 글이 그 섹션 중 가장 휙휙 빨리 읽혔기 때문인지도..

 

이런 경우도 있었긴 하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 일인가.

올모가 빠리에 가서 한달을 있으면서 그녀의 블로그에 온라인 여행기를 남겼다. 나는, 이 시간 즈음이면 올라오더라,며 실시간으로 접속하여 읽어대었다.(그녀는 현재 태국에 가있다. 또 한 달 있다 온다. 이번엔 노트북접속이 어려워 피씨방에서 여행기를 올리고 있는데, 암튼 다시 재미있게 보고있다.)

 

여행기는 사실은 재미있는 것인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여행인데, 그 하고 싶은 것을 나는 못 하고 있고, 그 하고 싶은 것을 다른 누군가가 하여서 남긴 글이라도 읽으며 대리만족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여행기 읽는 일은 결국 쓸쓸하고 우울해....

 

내가 읽고 있었던 책이 있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21>을 몇년째 읽고있다. 한 챕터 읽고 몇달간 두었다가 또 한 챕터 읽고.. 이번 방학에 다 읽을라고 했는데.. 그리고, 슈타이너 박사가 쓰신 <일반인간학>을 읽고있고,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띄엄띄엄 읽고 있다. 그리고 또 김형경의 <천개의 공감>을 아직도 읽고 있다.

그런데 이 책들을 다 보기 싫었다.

 

그러다가 눈에 띈 것이 바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빼어들었더니, 겉표지엔 울창한 나무가 줄줄이 서있는 길을 홍은택씨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그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온통 노랗고 초록이고 연두이다.

 

여행기 읽기는 쓸쓸하고 우울한 것인가?

학교에 묶여있고, 돈에 묶여있고, 울 딸래미에게 심정적으로 묶여있고 싶은 나에게 여행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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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팍 이팍

지난 금요일,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 개학을 하였다.

이 불볕더위에 방학연장하면 안되나. 안된다. 방학에도 학비를 내시는 부모님들을 생각하라.

학교에서는 2학기 편입식이 있었다.

여섯명의 아이들이 새로 들어왔다.

머리에 화관을 씌워주는 것이 우리학교 입학,편입식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렸다.

화관을 쓴 아이들은 정말 특별히 이쁘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규민과 뒹굴이를 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오늘 편입식 한 얘기를 했다.

남편:입학생은 없었어?

나 : 입학은 년초에만 있지. 3월에만.

규민 : 입학이 뭐야?

남편 : 여덟살이 되어서 학교에 처음 들어가는 걸 입학이라고해.

규민 : 알 수 없는 중얼거림.

           잘 들어보니, 일팍, 이팍, 삼팍, 사팍, 오팍...이걸 십일팍 십이팍까지 하고 있음

 

일팍, 이팍, 삼팍, 사팍, 오팍, 육팍, 칠팍, 팔팍, 구팍, 십팍, 십일팍, 십이팍.....

 

왜 그걸 하고 있나, 생각해보니, '입학'을 소리나는 대로 '이팍'이라고 받아들인 것임.

 

아, 아이들의 이 무한한 그냥 받아들임!

사실 이때가 애들 외국어교육의 적기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소리나는 대로 그냥 받아들인다.

소리나는 대로 그냥 그대로 입으로 중얼중얼 하는 거다.

그래서 외국어 시나 노래를 외우기에 딱 좋다.

이것은 단지 외국어 학습에만 좋은 것이 아니다.

분명하지 않고 모호한 상태를 받아들이는 (참는) 연습이 되는 것이다.

분명한 상태가 될 때까지 마음이 불안하다. 이것은 현대인의 불행, 정신적 미성숙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미성숙의 극치임)

사실 분명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말이다.

얇고 뾰족한 직선 하나를 얻기 위해 부드러운 곡선과 뿌옇게 그 공간을 채운 달무리의 빛깔을 버리는 것.

 

문제는 또한, 외국어 학습이라고 하면 온통 비디오나 테이프, 그리고 들어보면, 아침에 일어나 굳모닝, 수준의 것이라는 방법의 문제.

그 옛날 무식하게(?) 공자왈 맹자왈 외우고 또 외우며 한자 공부를 하였던 시절. 통째로 외웠던 문장들이 죄다 고전이었다. I am a dog, I bark.하는 문장을 통째로 외우는 저속함. 거기에 어찌 언어의 생명과 숨쉼이 살아있겠나. 

 

규민이는 집에 있는 자기 책을 다 읽고(우리부부는 어째 규민이 책을 잘 안 사게 된다. 규민이에게 무슨 책이 좋을지,를 생각하는 것 자체를 별로 하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나는.(남편은?)그래서 규민이 책이 스무권 될까? 책이 더 필요한건지 어떤건지 판단이 어렵다. 어린이집에서 읽고있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끔 가기도 하니...), 규민의 사촌오빠에게 물려받은 초등학생 저학년 동화책을 결국 넘보게 되었는데, 물론 글자를 못 읽으니 읽어달라고 해야하는 형편이다. 그렇게해서 며칠전 규민이가 읽게 된 책이 <집 없는 아이>였다.

그림도 많고 글씨도 크지만 무려 108페이지짜리이다. 이걸 어떻게 다 읽나, 읽다 지루해지겠지, 그럼 말겠지, 싶어 읽기 시작했다.

난 어렸을 때 이책이 너무 슬퍼 끝까지 읽지 못했었다. 

그리하여 읽다보니, 모녀가  <집 없는 아이>를 처음 읽는 호기심으로 점점 부풀어 올라, 나도 입에 침이 짝짝 마르면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될까?로 책을 놓지 못 하고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헥헥, 아이고 입 아파.

 

나는 너무 건조하게 읽나......누구는 책 읽어줄 때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던데, 우리 규민이는 여전 또랑또랑한 눈. 그런데 나는 감정을 넣어 책 읽는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책은, 원래 혼자 읽는 것이 목적인 책은 내용이 나에게 들어올 때는 건조하다.

규민이는 요즘 <집 없는 아이>를 데리고 갔던 할아버지가 부리던 원숭이, 조리클 재미에 빠져있다.

조리클이 길거리 연극을 하면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잘난체를 하였습니다.'라는 문장을 몇 번 반복하여 읽어달라고 하더니 집에 있는 인형 하나를 조리클이라고 하고 담배를 뻑뻑 피우며 잘난체하는 짓을 하는 놀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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