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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미니스트가 자식 키우기

 

훼미니스트로 테레비 연속극 보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좋아라 보던 <열아홉순정>도 윤정이가 결혼하면서 몹시 구리다.

이제 쫌 있으면 량국화도 결혼할거다. 결혼하면 분명 보란듯이 아주 훌륭한 결혼생활을 할거다. 그걸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결혼하여 잘 살려면 역시, 단무지(단순 무식--매우 무식!!)거나, 부모 가족 없는 완전 쌩고아여야한다는 점 재확인.

 

 

규민이 어린이집에서 만난 남자아이들은 그나마 내가 친해볼 수 있는 남자아이들인데, 걔네들 상대하기가 어쩔 때는 매우 곤란하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난폭하거나,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해를 끼치는 그 행동들, 그것들 말인데, 그게 정말 원래 남자아이라서 그런 것인가.... 그런 분위기인가본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그렇게 태연하게 받아주지는 않을 것이니. (어른들을 보면서 느끼는 혼란임. 아이를 잡아서 버릇을 고쳐놔야한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른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원래 남자아이란 그래,하고 그들을 마주하자니, 참으로 남자란 .............. ...............................복잡한 심경이다.

 

이래가지고 우리 규민이 어찌 결혼을 시키겠느냐, 솔직히 벌써부터 그 걱정이 든다.

 

농담이 아니라, 우리 규민이 백설공주니 신데렐라니 인어공주니 하는 것들의 영향으로 결혼에 일찌기 관심을 갖고 (결혼식에 입는 공주드레스에도 홀딱 반했다) "나는 누구와 결혼할래"라는 발언을 심심치 않게 한다.

규민이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이미 비슷한 관심을 드러내면서, 싸우고 치고 박기에만 머리를 쓰던 남자아이들이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여럿 결혼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걸 지켜보는 주변 어른들이 허허 웃으며 농담처럼 혼담을 건네는데.....

문제는 나의 심정...

 

초등학교에 올해 입학한 아들을 둔 엄마가 나에게 "우리 아들 어떄? 멋지지않아? 이다음에 사돈 맺는거야."라고 예의 농을 걸어왔다.

그 아들은 작년까지 내가 거의 매일 보았던 규민이 어린이집 졸업생이다. 작년엔 장난끼가 가득한 두 눈이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 분기마다 한번씩 밖에 보지 못하는 관계가 되었는데, 그때마다의 변화가 실로 놀라웠다.  그 남폭함과 상대무시하기란.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 앞에서 나는, 그러니까 굴욕감을 느꼈었었다.  

그런 감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생각해야하는 걸까.

그 아이를 다음 분기에서나 만날 나는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하는지 모르고 덮어두었으니......

 

그 아이 엄마가 나에게 그 농을 걸 때(엄마는 참으로 서글서글하고 상냥하고 좋은 여자다), 이 자리에서나 고백할 수 있겠지만, 난 순간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나중에 규민이가 어느 놈팽이를 데리고와서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 든다.

내 눈에 놈팽이 아닌 놈은 있기나 할까만은.

이런 엄마의 심정을 규민은 얼마나 성가시면서 부담스러우면서 슬프면서 답답해할까.

그때가서 모녀전쟁을 치루지않으려면, 음-----------, 하고 난 결심한다. 규민이 스스로 놈팽이를 가려낼 수 있는 눈을 길러야돼. 그러나 대목에서도 나의 이십대를 떠올리면 힘이 쭉 빠진다..아이고....

 

아무래도 나는 아들을 키워봐야 할런가. 그래야 그들을 그들자체로 바라보고 진정으로 이해하고...사랑할 수 있으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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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언 일 년

이 학교에 온지 어떻게 따지면 일년 넘고, 어떻게 따지면 일년 못되고.. 종합하여, 일년.

 

나는 혹시 이곳이 내 평생 직장이 아닌가,라는 불안한 예감도 갖기 시작.

 

이곳은, 그러니까, 내가 지금껏 전전하던 여러 곳들이 결국 안겨주었던 낭패감을 막아내는 막강한 방패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다. 인류사적으로는 상투적인 발견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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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육만칠천사백원 어치

현상, 인화하였다.

 

그 사진들 속엔, 장장 작년 이 맘때의 것들도 들어있었다.

일년치 것들을 모았으니 그만한 돈이 나올만도 하다.

산더미처럼 사진들은 쌓여있고, 그것들을 헤집어 보는 것은 참으로 보람차고 즐거웠다.

 

작년의 규민과 올해의 규민에겐 한끗차이라고 할 수 없는, 보는 이로 하여금 하늘과 땅 만큼의 정서적 차이를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여기서 자료 화면이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집 스캐너는 꽁꽁 싸여 뒷베란다라는 곳에 있다. 몇개월 동안 정말 필요한가 고심하고, 그 후 몇개월 동안 돈을 맞추고, 돈을 맞추기 위해 다른 몇몇 가지들을 포기하거나 희생하면서 구입한 복합기는 한동안 반짝하였다가 잭에 이상이 생긴 이후 완전 무용지물이 되어 저 꼴이 되었다. 그래서 최첨단의 현대 테크놀로지는 싫다. 최첨단의 현대테크놀로지는 대개 다기능 다버튼인데, 그 중 얍쌍한 선 하나에만 이상이 생겨도, 오세아니아주의 키위새가 토탈 몇마리의 지렁이를 먹었는지 리얼타임으로 알려줄 것 같던 것들이 당장 올스톱되는 것이다. 플레이, 스톱, 리와인드, 훼스트호워드, 포즈, 이 다섯 단추가 전부인 기계가 훨씬 좋다. 그런 것들은 땅바닥에 몇 번 패대기쳐져도 그냥 어찌어찌 굴러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에후엠투를 고집하는 것이다.

얼마동안 얄따란 디지탈카메라에 눈을 돌리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오직 이 에후엠투가 나와 함께 오래오래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니콘에서도 이제 에후엠투는 더이상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얘가 늙어죽으면 세상의 한 시대가 정말 최후를 맞는 것 같아 슬플 것이다.

 

이번에 현상, 인화한 사진들 중에는 규민이 찍은 내 사진이 몇 장있다.

이 사진들이 걸작이다.

엄마가 자기를 찍고 난 후, 자기 자리에 나를 앉히고, 내가 들었던 카메라를 자기가 들고 그냥 그대로 셔터를 누른 것인데, 근데 그것들이 걸작인 것이다.

남편은 그 중의 하나를 보고, "어, 이거 영화 포스터 같아."하였다.

역시 사진을 찍을 때는 마음을 비워야한다.

사진이든 뭐든 마음을 비워야한다.

지금 규민은 아빠와 '너 가져'놀이를 하고 있는 중.

보라색 리본 끈 하나를 두고, 서로서로에게 '너 가져'라고 하는, 규민이 만든 놀이인데, 그때마다 새로운 이유를 대어야한다. 예를 들면,

"우리집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이런 거 보면 다 물어뜯거든, 그러니까 너 가져."

이렇게..

규민이 벼라별 이유를 다 만들어내며, 능구렁이처럼...

우리 딸내미, 정말 많이 컸다.

 

다음에 도서관에 갈 때, 규민이 찍은 내 사진, 몇 장 스캔해서 올리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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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민 어록2

암사동 선사시대 유적지에 간 모녀. "규민아, 이게 옛날 집이야. 옛날에 사람들이 이런 집을 짓고 살았대." 자상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모래장난. 이거는 엄마 밥, 내 밥...

이 유적지 공원 한 쪽에, 그런데 왠일인지 타조가 있었다.

(타조는 공룡보다 더 오랜 전부터 지구에서 살았던 동물이라던데 그래서 거기 있었던 걸까,란 생각이 지금 문득.) 우리는 타조를 향해 달렸다. "와, 타조다~."

모래장난을 하다말고 달리기 시작한 규민의 손이 꽉 쥐어져있었고, 속엔 한 줌의 모래가 움켜져있었다. (달리면서)"규민아, 그 모래 그냥 버려. 그거 타조한테 던지면 타조가 막 화 낼걸."

규민(역시 달리면서) - "그럼 타조가 나 쪼(아)?"

어디서 잘못 들은 걸까. '쪼다'의 동사변화를 어근 '쪼'만으로 끝내고 있다.

달리면서 연거푸, "타조가 쪼?"

오, 그 입술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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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민 어록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며칠 전만해도 보름달까지는 한참 모자란 달이더니, 절기는 참 믿음직하지. 보름이 되니 딱 보름달이 되더라. 엉덩이가 무거운 엄마아빠 때문에 옥상까지도 안 가고, 집에서 창문 열고 달님, 불렀다.

 

"달님, 하고 손 모으고 속으로 소원을 말하는거야. 속으로 말하는 거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얘기하지 않아도 돼."

"엄마 아빠도 소원 빌께."

(소원 빔)

규민 - "나 소원 뭔지 말 안 할거야."

(잠깐 있다가)

규민 - "나 소원 아빠한테 귓속말 해줄까?"

(남편 귀에 속닥속닥)

규민 - "엄마한테도 귓속말 해줄까?" 내 귀에 대고 "인어공주"

"인어공주 인형 갖고 싶다고?"

규민 -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니, 인어공주 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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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야 케이블 시청기

규민을 재우고 마루로 기어나온 남편과 나, 맥주 한 캔 까서 나눔.

이 때부터 남편에게는 시댁만 오면 한 번 해주고 넘어가야하는 일이 있다.

리모콘 잡고 채널 돌리기.

어떤 프로를 진득하게 보는 일 없이, 전체 채널을 다 넘어가주어야한다.

아까 언뜻 지나간 얼굴이 누구였지, 나는 그 사람이 나왔던 채널로 다시 돌아가서 궁금증을 풀고 싶지만, 남편의 올 추석 케이블 처녀비행을 망칠 수는 없다. 

이제 한 바퀴 다 돌고 다시 돌아가는 중이려니,하고 조금 더 기다리지만 채널은 끝도 없다. 새로운 채널, 새로운 채널, 채널, 채널, 채널....

 

 

지금으로부터 이십년 전에(헉, 그게 벌써 이십년 전!) 순진한 십대를 꼬득여 미국으로 언어연수랍시고 잠깐 놀다오는 사업에 순진한 십대였던 나도 속아넘어가, 미국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그 돈을 모았다면 지금 뭘 해도 했을것인디), 거기서 날 먹여주고 재워주었던 집에서 내가 첫 날 기절했던 것이 바로 수십개의 채널이었다. 그 집 자식이 리모콘을 잡고 돌려대는데, 내가 촌닭 표정을 하고 있었나보다. 나보고 한국에는 채널이 몇 개 있냐고 물었다.(내가 이걸 어떻게 알아들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11번, 9번, 7번, 2번을 떠올리고 네 개라고 말했었고, 그 집 엄마가 여기는 몇십몇개라고 답을 하는데, 너희 나라는 그렇지만, 여긴 미국이라 없는게 없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도 몇 십 개의 방송이 생기는 날이 올까, 그렇다면 정말 볼 것도 많고, 얼마나 좋을까, 너무 재미있을텐데,라는 환상을 가슴에 품었다. 몇 십 개의 채널... 아, 그것은 바로 행복의 대명사.

 

 

남편은 채널을 한 바퀴 쭉 돌리는 과업을 끝마치더니, 그 과업의 동반자였던 리모콘을 나에게 건네주고, 방으로 자러갔다.

이제부턴 리모콘이 나를 동반해준다.  어깨가 뻐근해졌다.

 

나도 별 수 있나, 돌려대야지.

 

어언 한 바퀴 지나가고,

또 돌려대고,

(눈이 아프다. 멀미기분도 나는 것 같다.) 나도 방으로 들어갈까,하는 순간, 커트니 콕스와 그 누구지... 브레드 피트의 옛날 연인 발견. <후렌즈>인가 보다.

브레드 피트의 옛날 연인은 웃통을 벗고 침대에 들어가 가슴까지 이불 덮고 있다.

뒤에 어떤 남자가 역시 웃통을 벗고 함께 누워있다.

그 집의 거실에서는 커트니 콕스와 어떤 남자가 식탁에 앉아있는데, 남자가 여자더러 왜 나랑 자지 않느냐,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온통 섹스 투성이인 이 드라마는 곧 끝나고 바로 이어서 (만만치않은)<섹스 앤 더 시티>가 이어질 것이란 자막이 떴다.

<섹스 앤 더 시티>라면 내가 비디오를 한 바가지 빌려다 본 적이 있는 그 프로다.

그나마의 보람을 느끼며 <섹스 앤 더 시티>를 보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섹스 앤 더 시티>를 보고 얼마나 세월이 흘렀던가.

주인공들의 처지가 많이 변해있다.

주인공의 주인공, 쎄라 뭐뭐 파커는 입 주위의 주름이 꽤 늘었다. (나이 든 여배우가 여전히 나오다니, 잠깐 감격)

 

쎄라 뭐뭐 파커는 오십대의 예술가(옛날에 <백야>에 나왔던 백인배우)랑 사귀고 있었는데, 이 남자가 함께 빠리로 가서 살자고 제안. 그 제안 때문에 친구들과 갈등('네 직업과 인생은 뉴욕에 있다..')을 갖는다는 내용인데, 중간에 마흔 먹은 뉴욕 파티 킬러 여자 하나가 이제 파티에서도 담배도 못 피우고 약도 못 하는 세상이라며 창문 열고 담배를 피우다 그대로 창문 밖으로 미끄러져 추락사하는 사건과 함께 나이 먹은 싱글의 삶은 뉴욕에서도 비참하다는, 뜻밖의 신파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주인공과 사만다를 빼고 나머지 두 여주인공 또한 기혼자가 되어있다.

 

쎄라..파커는 남자친구의 함께 살자는 제안에, 드라마의 신파 기운을 타고 있었고, 오직 사만다만이 앞뒤 생각 안하며, 여전히 여럿 남자 밝히며 꿋꿋이 살고있다.

 

하지만, 비혼이든, 기혼이든, 여기 주인공들은 죄다 흐드러진 부르조아다.(이 단어는 너무 의도적이군. 그래도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교육 잘 받고, 뽄때나는 직업을 갖고, 재산도 넉넉한 사람들을 가리켜 뭐라고 해야하지?)

사만다는 자신의 '하녀'가 자기의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는 것 같다고 한다.

바이브레이터를 써야하는 싱글이지만, '하녀'는 있는 것이다.

 

그녀의 바이브레이터에 공감하고 웃으면, 그녀의 '하녀'를 둔 생활과 레벨이 달라도 그녀와 '동급'인 양 착각하게 되기 마련인데, 당연한 것이, 이 프로가 무슨 대입입시준비 프로도 아니고, '하녀'를 두며 살 수 있는 레벨에 집중한 프로가 아니라, 섹스를 알고 하고 그래서 바이브레이터가 뭔지 알아먹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프로이니까.

 

그래서 티뷔와 주식이 20세기 가장 거대한 사기라고 했었나. 노동자도 자본가로 착각하며 살 수 있는 장치이니.

역겨울 것 없는 섹스가 난무하는 드라마들은 섹스가 칫솔처럼 생활의 필수품인 듯 광고를 하고,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가지려 미국아이들의 첫 섹스를 경험하는 나이는 점점 어려지는 것인가 보다.

구십년대 중반, 내가 쫌 친하게 지냈었던 어느 캘리포니아 출신의 미국인(캘리포니아 출신들은,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으면 미국도 아니고 재수없게, "캘리포니아"라고 대답한다.)은 첫 섹스를 언제했냐는 나의 물음에, 진실게임도 아니면서 나를 아주 화들짝  놀래킨 답을 주었었다. 열세살(그러면 우리 나이로 열네살 쯤 되겠지.)이라는 거다. 너만 그렇게 빨리 한거냐, 다 그러냐, 했더니, 역시 진실게임도 아니었던 만큼, 거기는 다 그렇다고 했다.

 

하고 싶다면 하는 게 미국식 자유라면, 섹스를 이른 나이에 한다고 뭐라 하자는 건 보수니, 노파심이니, 란 소리듣기 딱이지만, 그들이 죄다 완벽한 피임을 하고 섹스를 할까. 피임에 대해 줄줄이 논문을 쓸 수 있는 노땅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피임인데. 그것은 어차피 9*.*%의 확률에서 출발하는 것인거늘.

 

얼마전 한겨레 신문 간지에 있던 조효제 교수의 글이 생각난다.

9.11.이후 부시정권이 만든 법, 'no Child left behind Act'라는, 역시 번듯한 교육받고 눈돌아가는 연봉을 받아가며 일하는 자들답게 미끈한 제목을 달고있는 이 법 조항은, 어떤 애들도 뒤쳐지지 않도록 군(軍)에서 접근가능한 개인정보를 제공하게하는 근거가 되는 법인데, 모병제이면서 전쟁으로 먹고사는 미국이 총알받이 군인을 어떻게 계속 공급할 것이냐 아이디어를 모색하다가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대학도 가지 못하고, 마땅한 직업도 구할 수 없는 젊은 청춘에게 원하면 대학등록금과 확실한 연봉 등을 광고하는 군대는 당연 유혹적이겠지.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빈익빈 부익부 시스템을 공고하게 쌓을 수 있었던 데에는 몇수십개의 케이블 채널 또한 있구나,라며 혼자 허벅지를 쳤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일하러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얼마나 많은 할렘가의 어린 아가들이 케이블을 끼고 살까. 하녀를 거느린 뉴욕 부르조아의 바이브레이터 이야기에 히히덕거리며 하녀를 거느리는 직업(을 위한 교육) 대신 바이브레이터나 혹은 건전지도 필요없는, 저절로 섰다가 정말로 싸기도 하는 바이브레이터를 선택하겠지.

 

 

몇수십개의 케이블과 그 천박하고 천박한 프로그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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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놀이

규민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기(고개를 옆으로 90도 비틀어 짧은 자기 머리가 어깨에 살짝살짝 닿는 것을 곁눈질하며 도취됨), 뾰족구두 신기, 결혼식 등에 최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규민은 요즘 백조왕자, 인어공주, 신데렐라, 백설공주, 선녀와 나뭇꾼, 미키미니마우스가 짬뽕된 공주놀이를 하고 있다. ("엄마, 우리 백설공주하고 인어공주하고 섞으자. 막내인어공주가 밖에 나가서 몰르고 사과를 먹었는데 죽었다고 그르자.")

 

 

공주는 자주 엎어지고 흐느끼고 죽고 그때마다 왕자가 와서 구해주어 결혼한다.

 

 

 

일일연속극 <열아홉순정> 맹렬시청. 혹 못 보게 되는 날엔 인터넷으로 꼭꼭 봐주고 있음.

실장님과 국화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거의 입 찢어짐. 윤정이와 우경의 장면에서도 요즘 입 찢어지고 있음. (윤정이는 극중에서 규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뻔한 사랑놀음들, 애나 어른이나 빠지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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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티에이 반대 집회에 반대하는 착한 택시기사 아저씨

아저씨는 요즘 매주 토요일이면 에프티에이 때문에 맨날 시위가 열린다고, 그래서 시내는 막히니 돌아가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돌아가는 거라면 열번 돌아가도 괜찮지,라고 생각, 아저씨에게 부담갖지 마시라고, "에프티에이 반대 집회는 열어야죠, 괜찮아요."

그러나 나의 이 말은 아저씨를 발끈하게 했다.

"무슨 집회야, 집회. 그런 걸 왜 해."

나에게 호통.

길이 막히는 것 때문에 화가 나는가. 그럴 수도 있겠다. 이게 밥줄인데, 먹고 살 길 막히면 화가 나겠지.

그런데, 에프티에이하면 먹고 살 길 막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끊길텐데...

아저씨는 나에게 계속 따진다.

대충 종합해보니, 각자 부지런히 열심히 살고 그래서 집회가 필요없고 조용한 세상, 이것이 그가 옳다고 바라는 세상이다. 에프티에이도 할 것이니 정부가 하려는 것이고, 사람들은 열심히 살면 된다.

 

 

아저씨는 내가 내리겠다는 큰 길에서 차를 세웠다.

가방 두 개, 우산까지 두 개를 꾸역꾸역 목에 걸고 팔에 끼고 자고 있는 아이를 끙끙 안아보려 애쓰는 나를 보던 아저씨는, 그러고 어떻게 가,하며 집이 어느 쪽이냐 물었다.

이제부터 골목인데, 괜찮아요 아저씨,해놓고, 저쪽이에요...

아저씨는 차를 돌렸다. 마주 오는 자동차를 피해 볓 번이나 구석으로 차를 돌렸다가 다시 원위치해서 운전해야하는 번거로움. 그것도 이미 미터기 세운 뒤에.

 

빌라 바로 앞에서 내렸다.

아저씨는 이제 애까지 안아 올려주겠단다.

아이고, 괜찮아요, 아저씨, 너무 감사합니다. 

천 원 한 장 더 꺼내 내미니, 아저씨는 무슨 소리냐고 했다.

 

그렇게 착한 택시 기사 아저씨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내가 택시를 별로 안 타봐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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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지성의 광물적인 벽

 루돌프 슈타이너는 1903년 여름, 나를 위해 몇 시간이나 정성들여 색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촛불과 커다란 흰 종이를 손에 들고, 빛과 어둠 속에서 황(黃)과 청(靑)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 그의 눈길은 마치 그가 말하는 색채의 본질과 하나과 된 듯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나에게 1만 마르크가 있다면, 그리고 필요한 도구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색채에 대한 괴테의 사상이 진리라는 것을 이 세상에 증명할 수 있으련만."

 

 괴테의 색채론, 괴태의 자연관을 영적 세계관의 기초 형성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으려 했던 그의 생각은 18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는 1883년부터 1897년까지 15년 동안 작업한 퀴르슈너판 괴테 자연과학논집의 몇몇 서론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자연과학의 도그마와 동맥경화에 빠진 근대철학의 관점 때문에 그의 외침은 주목받지 못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경직된 현대적 사고를 타파하고 틀에 박힌 형식에서 인간의 사고를 해방시키려 애썼다.

 

 예술가는 인간을 창조적 언어에서 격리시키는 단단한 지성의 광물적인 벽을 깨뜨려야 한다.

 

1929년 마리 슈타이너(루돌프 슈타이너의 아내)

 

- 색채의 본질(루돌프 슈타이너)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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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성

<잘려진 머리>는 일종의 개안(開眼)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남자 주인공 마틴 리치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타인의 타인성을 받아들이기에 이르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것을 사랑하게 되는가 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이 타인성에 대한 사랑이라는 문제는, 아이리스 머독의 중심사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랑은 개개인을 개개인으로서 인지하는 것, 즉  그것은 자신 이외의 다른 존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꺠닫는 지극히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이다. ........

 

중앙문화사 판 <잘려진 머리>해설 中

 

 

 

어제 갑자기, 타인성이란 단어를 생각하다가 이 소설의 해설이 떠올랐다.

그랬던가....마틴 리치가...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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