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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26
    추석 중 생각(3)
    이유

추석 중 생각

마지막 밥 숟갈을 입에 넣기도 전에 규민, "놀아, 놀아".

저 소리에 내 간이 뻘겋게 부푸는 것 같다.

나도 밥 숟갈 내려놓고서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싶단 말이다.

일단 몸을 길게 늘어놓는 것.

그리고 옆구리에 재미있는 것을 끼고.

이 상태 유지하기를 약 5분 넘기지 못하는 신세 어언 육년 째이다보니, 옆구리에 국어사전을 끼고 있어도 그것은 아주 훌륭한 '재미있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맞다. 공부하기 싫다는 애들 데려다 애 키우라고 시켜야한다. 한 달은 커녕 하루만 온종일 해도 아마 공부하겠다고 도망갈 것이다.

사실 나는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 사전 보기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원래 사전은 나에게 재미있는 것이다. 갑자기 얘기가 사전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원래 하려던 얘기가 긴데, 다시 규민이로 넘어가야한다.

 

규민이가 놀아, 놀아,하는데 엄마가 즉각 적극 오케이를 보이지 않으면 다시 없는 떼를 보여준다.

역시 엄마가 가장 만만한 존재인 것이다. 내가 그토록 엄마를 당하게 하더니, 딸한테 당한다.

나는 좀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의사를 분명하게, 단호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랬더니 엊그제부터 규민이가 하는 말이 있다.

"그럼 엄마, 나랑 안 살겠다는 거야? 나랑 살지마."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분명히 이번 부부싸움으로 인한 것이다.

그 스트레스, 불안감, 정신적 고통이 아이 마음에 또아리를 틀고있는 것이다.

나는 강하게, 내 의사, 분명단호..다 잊고 아이를 덥석 안는다.

규민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 했구나, 우리 규민이한테.

 

애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면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라 본능으로 아는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엄마아빠 싸움을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

아, 나도, 나도...

 

그런데 나는 아이 앞에서 멀쩡한(혹은 멀쩡을 가장한) 얼굴을 하고 기다렸다가 애가 없을 때, 애가 자고 난 후에 남편이랑 부부싸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해보려고 시도,노력했으나, 어차피 다 찌그러진 얼굴하고 말은 거칠고 그동안 아이에게 괜한 짜증을 부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훌찌럭거리고 이거나 저거나 싶다. 그냥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또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대화'를 나눠야지,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그러고보니 싸우고 있는 중이 되는 것이다. 사실은 정말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화인데, 단지 격한 대화인 것인데, 그치만 아이에겐, 그걸 받아들일 만한 감정의 폭이 안된 아이에겐 엄마아빠가 또 싸우는 것이다.

 

아이에게 무척이나 미안하지만, 덮어두고 묻어두고 사는 것 보다 괴로운 것 괴롭다 말하고 아닌 거 아니다 말하고 사는 게 낫지않겠나, 바로 그것을 아이도 자라면 이해하지 않겠나,하는 마음이, 사실 나에게 있다. 내가 우리 엄마아빠 싸움에 그토록 괴로워했지만, 결국 그 부부의 싸움의 의미를 이해했듯이.

규민이 언젠가 엄마와 여자의 연대감을 갖게되면, 그때 정말 솔직하게 규민과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사실 나에게 있다.

 

그런데 엊그제 규민의 그 말 앞에서 완전 두 무릎 다 꿇고 미안하고 잘못했구나,를 되뇌이면서, 내가 엄마아빠의 싸움을 부부싸움으로 이해하게된 시점 그 이전을 다시 떠올려보는데.....이런 게 떠올랐다.

나, 엄마아빠 싸움 보면서 이런 생각했었었다.

엄마가 좀 참지. 앗, 엄마, 거기서 그런 말 하지 말고 그냥 알았다고 하고 참지. 앗, 엄마, 그냥 말하지 말라니까.....

엄마 아빠 중에 누가 옳다,라는 생각을 갖기 이전에 나는 그냥 싸움이 싫었고, 그 싫은 싸움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빨리 종료하기 위해, 마음 속으로 엄마가 조용히 참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우리 아빠는 가끔 엄마를 때렸다. 물론 무엇보다 엄마가 맞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아빠 성질 돋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일단 무조건 엄마가 그냥 다 넘어가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던 것이다.

꽤 나이먹도록 자랐을 때까지(기억으론 중학생때까지) 이런 생각을 하였었는데, 가령, 엄마가 외출하여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저녁밥먹는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아빠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엄마친구들집으로 전화를 돌렸고,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나가 기다렸다. 빨리 안오고 뭐해,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되짚으며, 여자가 사람으로 자라는 것은, 남자로 자라는 것이란 생각을 했었었다.

(사람=남자인 것을... 당연하지,라고 써놓고보니, 슬프다.)

그리고 진짜 여자가 되는 것은 고통과 관련있는 일이었다.

(월경이니, 섹스니, 출산으로 읽는 사람은 바보)

이후로도 여자로 사는 것은 참 어렵다.

(그래서 훼미니즘은 가장 성찰적이다,라고 내가 하는 얘기가 아님)

 

내 딸 역시 그런 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생각은 다시,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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