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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15
    인간의 매력(2)
    이유

인간의 매력

두어달 전, 학교에서는 새 선생을 공채하였다.

지원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나의  과 후배였다.

이력서에 써있는 사항을 보지 않았다면, 내가 졸업한 연도에 입학한 그녀를 나는 몰랐을 것이다.

그 여자는 마지막 심층 면접 순서까지 남았는데 결국 떨어졌다.

아이들에 대해 심드렁했던 그녀 자신도 채용을  별로 원하지 않았었다.

 

학교에서 며칠 지내신 소감이 어때요,하고 물으면 대부분은 입을 벌려 웃는다.

아이들이 참 이뻐요,란 소리가 보통 나온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랬다.

 

저는 사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두려워하는 편이에요.

아이란 존재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대해야할지도 모르겠어요.

안경을 추스리며,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꺼내며 그녀는 말했다.

 

몇년 전, 내가 그 면접을 받았을 때, 나는 그랬다.

아이들 뒷통수가 예뻤어요.

 

나는 사실 아이들이 달려와 나한테 이것저것 묻거나 같이 놀자고 할까봐 겁났었다.

아이들은 낯선 어른한테도 서슴지않고 매달리거나 깔깔 웃으며 말을 걸었었는데,  거기서 난색하는 게 얼굴에 비치면 채용에 불리할 것 같았고, 혹은 잘못 걸려 정말 같이 놀아줘야한다면 귀찮아서 어떡하냐는 걱정이었다. 아이들이 다른 데 애들 같지 않고(?) 순진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나는 쌀을 살 수 있으면서 동시에 퇴근이 이르고 방학이 있어 소설을 쓸 수 있는 그 직업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던 중이었다.(는 생각은 정말 한참 뭘 몰랐던 생각이었지. 왠 이른 퇴근)

 

저 여자가 저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걸 보니 일단 돈 버는 일로 발등에 불이 붙진 않았나보다.라는 생각 가장 먼저.

 

며칠 전 고금과도 얘기하고, 그리고 남편과는 주기적으로 하는 얘기인데,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그렇게 버는 걸까.

세상에 돈이 어떤 식으로 돌길래, 그렇게 소비를 해대며 살 수 있는 걸까.

나로서는 불가사의하다.

십여년전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을까.

그러나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 나를 상상할 수 없다.

이래저래 나에게는 불가사의하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

 

그녀의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아이를 이뻐한다는 타평자평의 선생이 된 것을 새삼 생각했다.

 

그것은, 생각해보니, 이런 것이었다.

아이는, 아이가 아니라, 그냥 한 인간인 것이다. 따라서 매력있는 사람은 당연 좋은.

그런데 말이다, 아이란 보통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의 순수한 의지를 발현하며 살고 있는데, (여기서 '순수한'이란 말에 현혹되지 마시오. 순수라는 것은 그야말로 다른 것이 섞이지 않았음의 말.) 인간으로서 인간의 순수한 의지를 목격하는 것은 곧 내 자신에 대한 발견이요, 인간에 대한 해석이요, 인류에 대한 이해인 것이다.

실제로 나는 학교에 있기 시작하면서, 이곳에서 본 것을 가지고 소설을 쓰기에 좋겠다,란 기대를 품기도 했었다.

그래서 아이(인간)의 순수한 의지를 방해하는 말초적인 모방거리, 곧 테레비전과 컴퓨터, 핸드폰 같은 것들을 더더욱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매일 먹고 자라는 일반학교 아이들은 물음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고로 나는 진실되게 아이란 존재를 이뻐하는 선생은 아닌것같다.)

 

 

우리반엔 장애아동이 하나 있다.

나이가 한 살 더 많기도 한 그 남자아이는 덩치도 더 크다.

나는 장애아통합교육을 절대 지지한다고 표명하고 사인하고 학부모들앞에서도 우려 보다 믿으라고 큰소리 꽝꽝 치고 다니는데, 실은 그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아이는  작년에 우리학교에 편입을 했었는데, 들어오자마자부터 난 어쩔 줄 모르며 그 아이와 자주 싸웠다. 선생이 혼낸 것도 아니고 싸웠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랑 걔는 끙끙 밀고 당기며 힘싸움을 했다. 매번 선생이 이겼다. 아이는 아이인 것이고, 선생은 선생인 것이다.

나는 걔를 이쁘게 보고싶다고 기도도 하였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이쁘게 보고싶다고 기도했던 마음도 실은 그래야 일이 잘 풀리기 때문이지 그걸 정말 진심으로 바랬던 것 같지도 않다.

우리반 다른 아이들도 걔랑 많이 싸웠다.

선생한테 혼날 까봐 선생이 없을 때 때렸다.(때렸다지만 한대 툭이 전부다. 똥침을 한 번 주거나)

그러면 애는 울고 나는 달려가고 그래서 어찌된 일인지 묻지만, 실은 다 알고 있다, 처음부터.

애들도 걔가 난감하고 싫다는 것을.

나는, 울고 있는 그 아이를 보면서, 다른 아이들과 같은 내 마음도 좀 해소되는 심정마저 느꼈었다.

(너무 심한 고백인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지금, 그러니까 이 년을 함께 지낸 이 아이들이 서로 엄청 잘 지내고 있다.

그 장애아동이 잘 못하는 것을 알아서 비껴가고 피해가고, 다 잘 못하지만 그중 그 아이가 잘하는 것은 잘 했네,하고 말해주기 까지 한다. 마치 어린 아가에게 엄마가 그러듯.  세상에.. 난 그 소리를 듣고 놀랐다.

"파랑이, 농부 잘 그렸네."

"넌 자동차를 좋아하니까 그럼 농부가 타고가는 경운기도 그릴래?"

아이들이 인형극을 준비하면서, 나뭇가지에 붙일 색종이 인형을 그렸을 때의 일이었다.

 

인간의 순수한 의지, 그것은 슈타이너가 그랬다는데, 정녕 지혜와 사랑을 지향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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