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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김연수가 <여행할 권리>란 책을 냈다고 했다.

친구 하나는 세살 아이를 데리고 라오스를 간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또 친구 하나는 곧 여행을 간다고 했다.

그리고 또 친구 하나는 여행기 책을 출판한다고 한다.

나한텐 오즈의 마법사의 에머랄드시 쯤 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었다.

여행을 가려면 먼저 미친듯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날 마녀 위로 떨어뜨려주어야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은 어찌 된게 손목이 저리고 다리가 아퍼,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건 사양이다.

 

 

샘많고 질투많은 내가 무지 부러워 배아퍼마지 않았던 것이 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어느날 갑자기, 여기는 보스턴입니다,란 글을 써오는 작자들이었다.

어느날 김연수도 영국의 이층버스 운운하는 글을 써왔고, 황석영은 빠리가 어쩌구(북한에도 다녀온 황석영씨야....)하고, 그리고 공선옥은 무슨 낭송회라고 어디라고 했더라... 심지어(?) 김영하는......

나는 배 아퍼죽는 것이다.

남미문학포럼에 참가 차 아르헨티나에서 반년 쯤 살아야만 되지는 않을까,란 생각이, 남편이 처음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머리 한 쪽에서 삐죽하고 나왔었다고 한다면 나도 섹스 앤 더 시티를 욕할 것도 아니다(옛날에 블로그에서 욕한 적 있었음)(비디오 씨리즈 줄창 빌려보다가).

 

 

그런데 가만.

친구의 곧 여행계획이란 문자를 보며, 회오리바람이 불어야하는데, 불을까도 사실 무서워..를 웅얼거리고 있다가... 그런데 가만..

내가 지금 막 여행에 돌아온 차 아니었던가.

 

앉아있는 식탁 의자 5시 방향, 2미터 떨어진 곳에 방수 잠바와 싸파리 모자가 펼쳐져 널부러져있고, 그 옆 등산배낭이 각각의 지퍼가 3분의2 쯤 벌여진 채 있다. 안의 물건은 이미 냄새를 풍기려하고 있지만 정작 꺼내어지려면 그 상태로 최소 이틀은 더 기다려야하는 이 장면은, 바로 두어시간 전에 동서울 터미널 착 고속버스에서 물먹은 솜 같은 두뇌를 깨워 일으켰던 내가 만든 것이다. 나는 부여에서 막 돌아온 것이었다. 그것이 여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내가 그토록 배아퍼마지않았던, 내 돈으로 간 여행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떠났던...으흐.

 

 

우리반 아이들 하고 6학년 아이들하고 6월 첫 주, 공주와 부여에 다녀왔다.

한국사를 공부하며 백제 유적지를 가본 것이다.

솔직히 나는 공주와 부여에 처음이었다. 엄마 아빠 둘다가 공주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예산 출신이면서.

 

 

 

이번 여행에서는 역사 유적지를 여행한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그게 무엇인지를 느꼈다는 것.

예전엔 일부러 상상을 했었어야했던 것이,  첫날 공주박물관에 들어가 무령왕릉 속 유물을 둘러보다가, 무령왕의 왕비가 평소 몸에 지니고 다녔었다는 엄지 손톱만한 동자상을 보는데,  비단 치맛자락 속 어딘가에서 저 동자상을 만지작거렸을 왕비의 손가락이 문득 떠오르며 애잔한 느낌이 스쳐가 이상하였다. 혹 내가 전생에 저 왕비?

 

박물관에서 그러하였던 것이, 실제로 무령왕릉을 가보니 더 하였다.  입구조차 막혀있고 그저 둥그런 봉분의 외형을 볼 뿐인데 마음이 쓸쓸하였다. 나이를 먹은 걸까.

 

부여에서 그 애잔하고 쓸쓸한 느낌은 더 했다. 백마강과 낙화암. 말로만 들었던 삼천궁녀가 꽃처럼 떨어졌던 낙화암. 그 위에 서니, 그 여자들의 진분홍 치마자락과 눈물과 가늘게 떨리는 눈썹과 손끝이 바람 속에 울리는 듯 하다. 애잔하고 애잔하도다. 내가 시인이라면 그여인들을 위하여 시를 한 편 올리겠건만.

 

아무래도 패망한 나라의 애절한 기운이 서려있는가보다. 그러나 그 기운이 쓸쓸할지언정 아름다웠다.

백제는 실로 눈 높은 예술수준을 갖고 있어서 그런가. 모든 쓸쓸한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나도 인생의 가을색이어서 그런가.

 

 

정림사라는 절터에 남아있는 백제의 석탑이 하나 있는데,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라고 한다. 정림사라는 절은 죄다 깡그리 타버려서 남아있는 것 하나 없는데 이것만 돌로 만들어져 남아있다. 사진으로 보면 익숙한 석탑이다. 뭐라 더 표현할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는 그저 익숙한, 석탑.

그걸 가까이서 보니, 돌을 고르고 평평하게 깎는 것으로도 모자라 끝자락을 처마끝처럼 살짝 구부려 올린 백제 예술인들이 까탈스럽다.

그런데 한 바퀴 돌아보고, 이 쪽에 서서 보고, 저 쪽에 서서 보는데, 건축물에 있어 당연한 명제겠지만, 너무나 균형적이다. 층마다 각각 정확한 비례로 줄어들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그 시절에 돌로 저토록 정확한 비율을 구사하며 깎아 얹었다니.

 

정림사지 박물관에 들어가 본 오층석탑의 설명의 그림에는, 

..쓰려고 하니까 너무 어렵다.

찍어온 걸 올려야겠다.

나는 가서 사진 하나도 안 찍고, 이거 한 장 찍었다.

 

 

 

그 탑이 실제로 얼마나 아름다운 기하학적 균형을 갖추고 있는가. 이걸 돌로 만들었다니, 그리스 신전이 따로 없다. 건축물도 감동을 준다고 하는 걸 알겠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무르익은 5학년이 되면, 5학년이라는 특성; 동심과 동심을 벗어남의 조화에 맞는 과목으로 그리스를 배운다. 그리스에서는 신과 인간, 예술과 이성이 (5학년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그리스 기하학을 함께 배우는데. 그리스도 그리스지만, 백제의 기하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나는 민족주의자도 아닌데, 났다.

 

암튼....

백제여행기를 이리하여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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