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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내가 카슨 맥컬러스를 처음 본 건 롱아일랜드의 어느 호숫가에서였다.

이마 위에 가지런히 내린 앞머리, 어깨에 닿을 듯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검은 색 단정한  단화, 흰 발목 양말, 이런 것들이 그녀를 여전 소녀처럼 보이게 했으나 그녀의 나이는 막 서른 살을 넘긴 뒤였다.

부리부리하게 큰 눈과 약간 메부리코 식의 큰 코는 그녀가 꿈꾸는 장황하고도 기괴한 세계를 향해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고집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에디터, 조지 데이비스하고 호숫가로 산책을 나온 틈이었다. 비스듬히 누운 두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는데, 조지 데이비스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그는 그녀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이 소녀 같은 여자가 토해낼 점액질의 무엇에서 어떤 질병이라도 옮아올까. 점액질의 존재감,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그녀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 끼어있는지, 펜이었는지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앙리 꺄르띠에 브레송 사진이었다. 호숫가에 비스듬히 누운 남녀-사진사를 응시하고 있는 남자, 그 남자를 올려다보고있는 여자. 붙어있는 딱지엔 <작가 카슨 맥컬러스와 에디터 조지 데이비스, 카슨 맥컬러스는 기형인, 꼽추, 거인이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그린 작가로,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대표적 미국 남부 작가로 꼽히...> 처음엔 남자가 작가고 여자가 에디터인 줄 알았다. 선입견대로. 그런데 가만, 조지가 남자이름 아닌가.

 

    <슬픈 카페의 노래>는 그렇게해서 읽게된 소설이었다. 재미있을 거라고 만판 기대를 걸며 보았고, 소설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덩치 좋은 남자보다 더 큰 거구의 사시 여인 아밀리아와 그녀가 사랑하는 1미터 14센티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열두살인지 마흔살인지 조차도 알 수없는) 꼽추, 그리고 이 꼽추가 한 눈에 사랑에 빠진, 한때 아밀리아를 사랑했으나 그녀에게서 버림받고 악마의 화신이 되어 지금은 아밀리아를 저주하는 화려한 체구와 외모의 마빈, 이 세 사람의 사랑. 아, 사랑, 그 고독함.

 

카슨 맥컬러스는 사랑이 두 사람의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랑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49p) 사랑은 혼자의 것이다. 사랑은 원초적으로 고독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녀가 말하는, 이러한 존재론적 고독을 공감하고 깊이 사유할 여유는 별로 없었다. 워낙 빠르게 전개되고 (또 짧기 때문에) 순식간에 읽어치워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였다,라는 느낌. (그래서 소설을 길게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가봐.)

 

내가 가장 깊게 음미한 부분은,

 

... 백지 위에 레몬 즙으로 메시지를 쓰면 글씨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종이를 잠시 동안 불에 대고 있으면 글씨가 갈색으로 변해 그 내용을 분명히 알아 볼 수가 있다. 위스키가 바로 그 불이고, 메시지는 한 인간의 영혼 속에 씌어진 글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아밀리아가 만든) 술의 진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무심히 흘려 버렸던 일들, 마음속 깊이 은밀한 구석에 숨겨져있던 생각들이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직조기와 저녁 도시락, 잠자리, 그리고 다시 직조기, 이런 것들만 생각하던 방적공이 어느 일요일에 그 술을 조금 마시고는 늪에 핀 백합 한 송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손바닥에 그 꽃을 올려놓고 황금빛의 정교한 꽃받침을 살펴볼 때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고통처럼 날카로운 향수가 일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눈을 들어 1월 한밤중의 하늘에서 차갑고도 신비로운 광휘를 보고는 문득 자신의 왜소함에 대한 지독한 공포로 심장이 멈추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미스 아밀리아의) 술을 마시면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고통을 느낄 수도, 기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결국 이 경험들이 보여 주는 것은 진실이다. (그) 술을 마시면 영혼이 따뜻해지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22p)

 

오, 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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