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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했던, 엿들은 대화

어제 아침 지하철 안. 바로 옆자리에 아무리 많이 봐줘야 열여덟, 열아홉살인 소녀 셋이서 한껏 멋을 내고 앉아 타블로이드판 공짜 지하철신문들을 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엿들어 미안하지만, 그들 대화에서 빠지지않는 핸드폰에 관한 것, 훼션에 관한 것으로 미루어 간단히 짐작하건대, 그들은 최신식세대였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영락없는 구세대다. (그들에 안 비해도 구세댄가.)

그들이 마침 넘긴 신문 새 면엔 <너는 내 운명>영화 광고 전면 포스터가 있었다. 그들은 앞다투어 전도연과 황정민에 대해 뭐라뭐라 품평회를 했다. 전도연 너무 이쁘지 않냐, 너무 어려보이지 않냐(여자가 어려보인다는 것은 왜 이렇게도 절대가치적인 걸까). 그러더니 황정민더러 너무 아저씨 같다, 사십대는 돼보인다, 아니다, 늙어보이는 스타일이라 그렇지 실제로는 삼십대후반으로 보인다(뭐냐, 황정민이 나랑 동갑인가 아니면 한 살 어린가 하는데)...

그래서 그들은 너무 어려보이는 여자와 너무 늙어보이는 남자의 커플이라는 것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되었다. 그 순간, 뱉어내는 그들의 말, "그래서 더 멋있잖아."

 

그럴 수 있다, 중후한 나이의 남자와 앳된 여자의 커플은 멋있어보일 수 있다. 중후한 나이의 여자와 앳된 남자의 커플은 도발적일 수 있다,라는 개념을 제공하듯이. 그런데 내가 그 순간, 어리둥했던 건, 그들의 자연스럽고도 거침없이 순식간에 후다닥 결론을 내리는 태도였다. 마치 착하게 사니까 복받은 거야,란 말을 중얼거리는 노인네들마냥.

 

그들 대화에 속해있지도 않았고, 속할 수도 없었던 나만 혼자 계속, 그런가?를 갸우뚱했다.

그래? 그래서 더 멋있나?

황정민과 전도연 캐스팅에 그런 계산도 있었나?

실제로 황정민과 전도연은 나이 차이가 별반 안나거나, 혹은 어쩌면 확실히는 모르지만 전도연이 연상일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그거야 배우 사생활이고, 배우 이미지로서는 전도연이 연상으로 보일 수는 없는거니까.

 

그들의 나이, 많아야 스물. 바로 그 절대가치 절정을 앞으로도 몇년은 구사할 느긋한 나이라서, 그들에겐 또래의 십대후반, 이십대후반의 남자들부터 삼십대 혹은 사십대까지의 남자들이 전부 시장에 나와있으니, 어린 여자와 늙은 남자의 커플이 멋있어보이건, 실제로 멋있건 안 멋있건, 만약 아니라면 왜 그런 이미지가 나오게되었건 쥐뿔, 콧방귀 뀔 관심조차 쥐어짜도 없을테니, 껌이 입에 들어가면 씹고 단물 빠지면 뱉듯 들어가고 나온 말일 것이다.

 

그 뒷끝을 붙잡고 이리쿵저리쿵 뒤집고 앉아있는 나는, 절대가치 절정을 이미 주욱 타고 내려와 거의 펑퍼짐해질라고하는 둔덕께의 나이. 남녀커플의 나이상관관계에 상대적으로 예민해져있다고 지적해도 할 말이 없지.

 

그러나, 착하게 살면 복받아? 착하게 사는 게 뭐야? 그게 착한 거야?라고 노인네들 결론에 항상 꼬투리를 잡고 싶듯...

아, 또, 인간성 혹은 사회성 기질상 '착함'에 상대적으로 예민하다고 지적해도 또한 할 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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