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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스타기 싫어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

아침 9시대에 버스를 타고다니는 날이 많아지면서 내가 익숙하게 된 것은 <지금은 여성시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쓰고보니 이름이 웃기군).

명망있다고 표현할만한 여자엔터테이너와 그에 약간 못 미치는 명망의 남자엔터테이너를 디제이로 해놓고(전 환경부장관 손숙과 김승현 식의 커플. 다른 프로와는 달리 여자엔터테이너를 더 명망있는 사람으로 해놓은 건 이제보니 제목과도 연결이 되어있나보군) 사람들이 보내는 사연들을 읽어주는 프로인데, 처음에 등장했었을 당시(벌써 십몇년 전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아침 9시대에 버스를 타고다니는 날이 많았었던 나의 이십대초반이었다.) 인기집중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여간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총체적 기념의 의도는 없으니 대충 짧게 해두자.

원래부터 이런 프로그램에는 별 관심도 없다. 버스 운전기사가 틀어놨으니 그냥 듣는 것이다. 그러다 웃기면 따라웃기도 하지만(그렇게 듣다가 따라 웃는 프로로는, 강석 김영혜의 싱글벙글쑈가 제일이지).  

 

이 프로그램은 그러니까, 사회자가 원하는 대로 내 감흥을 따라가 줄 수 있기도 하지만, 저런 소리는 좀 그만 듣고 싶은데, 하는 것이 30분마다 등장하여 결국 내 손으로 라디오 채널을 맞추어 들을 리는 없는 프로인 것이다. 예를 들면 허리케인 카트리나 얘기를 하면서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들은 보호소에 있는데 한국사람들은 보호소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왜, 다른 지역의 한국 이민자들이 자기 집으로 불러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있으니까, 자기 집을 거의 내준 사람도 있다더라.라는 소리를 한다던가...

 

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한건데, 얘기가 주절주절 길어졌음.

오늘 아침 들은 사연 하나.

어느 부부의 남편인 자가 보낸 사연인데, 자기가 청소하다가 뼈골이 빠진다는 얘기.

마누라가 청소의 ㅊ자도 모르고, 쓰레기 봉투도 자기가 직접 묶고, '심지어는' 분리수거까지 하고 있다고. ('심지어는'의 단어는 그 남자가 직접 쓴 표현임)  게다가 여자가 둘째낳고부터 팔이 아프다며 걸레질까지 자기가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자기부부는 원래 맞벌이여서 부엌쪽은 아내 담당, 청소는 남편 담당이라고 결혼때 결정했단다(참으로 용기있고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지금 이 남자가 웃으라고 이 글을 써보낸건가,  헛갈렸다.

 

원래 청소담당이라면서 청소하는 일이 힘들다는 투정은 국민학생도 아니고 뭐 하는 소리인가. 둘째낳고부터 여자가 걸레질을 못한다고 했다면 그 전까지 걸레질은 마누라가 했다는 소리인데. 진공청소기 한 번 돌리고 청소 끝 하셨나. 분리수거하는 것도, 쓰레기 봉투 묶는 것도 참으로 큰 일 하신다는 그 자세는 무언가. 그러고 계속 나오는 이야기에 여자가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소리가 없는 걸로 보아(이 남자, 여자가 전업주부인데도 자기가 청소하면 집에 폭탄이라도 떨어뜨릴 양반이다), 여전 맞벌이인가본데, 어떡하면 청소에서 도망갈까,하는 궁리 태세였다.

 

나는 프로그램 피디나 디제이가 <지금은 여성시대>인데, 이러시면 안된다는 훈계를 하려나보다, 중년대상의 프로그램이라지만 이런 식의 농담은 좀 시시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엇. 남자사회자는 그렇다치고, 옆에서 듣고 있는 양희은을 보라.  남자의 하소연에 동조하는 추임새를 넣고 자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이것이 액면 그대로 통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말 아연실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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