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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영화, <라빠르망>과 <나의 그리스식 웨딩>


 

옛날 옛적 이 영화를 보았는데,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실 그런 영화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뭔가 기억해야만 할 것이 있는데 까먹고 있다는 느낌에 끌려서 다시 봄.

<라빠르망>은 처음부터 <미나 타넨바움>하고 헛갈렸었는데, 시기가 비슷하고 프랑스영화고 여자 둘의 이야기고, 그냥 그래서 그랬나 보다. (로만느 보랭제가 나왔고. 보는 영화마다 이 여자가 나왔던 시절이 있었는데.)

 

서로 엇갈리는 사랑. 그 상대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 되고, 셋이 되고, 상대가 또 다른 상대를 만들어 넷이 되고 다섯이 되고.

억지설정이 계속 나오긴 해도 엇갈리는 사랑이 안타까움.

이쁜 여자 둘이 나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기도 하고.

모니카 벨루치는 처음에 보자마자 확 당기는 미모이지만, 로만느 보랭제가 보면 볼수록 신비하게 끌리는 쪽이다. 감독도 그런지, 영화의 주인공은 모니카 벨루치에게 빠져있지만, 나중엔 너무 어이없을만치 심심하게 그녀를 포기하고 로만느 보랭제에게 달려간다. 그랬다가 제일 심심하게 생긴 현재 약혼녀에게 묵묵하게 걸어가는 건 뭐냐. 뭐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다만.

그런데, 뱅쌍 카셀이 모니카 벨루치 남편이라지. 그렇다면 결국 이 남자는 모니카 벨루치 쪽이군. 이 영화를 보고 처음 꺠달은 것, 벵쌍 카셀이 섹시하다는 것. 이 사실이 바로, 기억해야만 할 것인데 까먹고 있어 날 영화로 이끌었던 그것!인가보다.

 

멍청해보이는데, 그게 섹시해보이기도 하고...

 

또 하나의 섹시한 남자를 찾았음.

존 코베트,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남자주인공.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은 존 코베트가 식당으로 걸어들어오는 순간부터 첫 눈에 반하는데, 나 같아도 저런 남자가 들어오면 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첫눈에 반한 그 남자와 여자가 일사천리로 데이트-사랑-결혼-행복하게 된다.

존 코베트 같은 남자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여자를 바라보며, 키스하고, 프로포즈하는데, 나도 설렁설렁 그냥 다 넘어가겠음. 저런 남자가 여자 등짝 후리는 사기치는 건 식은 죽 먹기겠음.

 


(어때?)  (마치 새 남자친구를 보이듯 어때라니.) (이 사진은 너무 평범해 보이는 것 같은데.)

 

 


(이건 종민이 같나?)

 

그 영화를 보고있자니, 결혼하면서 상대에게 나의 '가족'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이는지 알겠다. 그래도 결국 거기에 동화된다는 것은, 그냥 익숙해지는 것인가, 아니면 인해전술에는 넘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인가.

 

그리스여자들이 그렇게 화끈하고 사람이 좋다던데(그리스인 친구를 둔 유영의 말에 의하면. 그 친구 엄마가 그리스에서 가끔 오는데, 그렇게 화끈시원하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니 정말 그렇다.

한국여자들이랑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한국여자들한테는 없는 게 있다.

결혼식을 앞둔 딸에게 엄마가 첫날밤에 대한 코멘트를 한다.

한국엄마들이 "남편이 하는 대로 따라야"한다는 코멘트를 했다는 소문에 비하면, 그리스엄마는 "그리스 여자는 부엌에선 양이지만, 밤에는 호랑이"라는 코멘트를 하였으니...

 

나도 그리스인을 만난 적이 있다. 여자는 아니고 남자.

런던에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가던 버스에서 였다.

버스의 승객은 나와 그, 둘뿐이었는데, 나도 어리둥하고 있는 판국에 날보고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가려면 어디에서 내려야하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버스기사에게 물었고, 우리는 같이 내려 걸었다. 그 남자는, 하루키 소설에 나왔던 그 그리스 섬 출신이었다. 키가 나보다 약간 작았지만, 잘 생겼었다!

남자는 그리스에서 미술을 가르친다는데, 방학이 되면 자기가 공부했던 런던으로 와서 미술관에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여성단체에서 일을 했는데 그만두고 여행중이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왜 여성주의자가 되었냐고 묻더니, 내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길 하면 말끝마다 빙그레 웃었다. (이 영화를 봤더니 그 남자가 왜 웃었는지 알것도 같다)

미술관에 도착해서, 이제 안녕, 했더니 우리 같이 점심 먹을까?한다.

음....난 (사먹을 돈도 없고) 샌드위치 싸왔는데, 했더니, 자기도 샌드위치를 싸왔다고 하여 그럼 같이 먹지, 뭐.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나에겐 미술관 사랑의 첫정 같은 곳이다.

미술을 내가 뭘 아나, 관광삼아 가서 처음엔 어슬렁어슬렁 천천히 되는대로 걷고 구경하다가 점점점 쓰여진 설명들을 코 쳐박고 읽어가며 그림들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바라보다가 다음 그림으로 일초라도 빨리 가려고 허둥허둥 꽁무니를 빼고 걷고 뛰기 시작했던 첫 미술관이었다. 지금도 미술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나는 샌드위치 먹는 시간도 아까워졌다. 그냥 이렇게 하염없이 돌아다니며 그림들을 보고 싶어졌지만, 그래도 잘생긴 그리스 남자를 또 언제 보겠는가, 약속장소로 갔더니, 그 남자도 그림을 보던 흥분으로 달궈진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둘은 잔디밭에 앉았다. 샌드위치는 금방 다 먹었다. 그 다음 일정이 서로 달랐다. 그래, 그럼 이만 안녕, 하자, 순식간에 "Bye my beautiful Korean feminist friend"하더니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헉. 난 얼마나 놀랐나 몰라.

근데, 뭐, 영화를 보니, 그리스사람들 저렇게 뽀뽀하는 건 일상이겠다.

나만 괜히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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