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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터넷 그만

한달에 들어가는 공과금이 너무 많다.

공과금 벌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정작 내가 먹고 입는 데는 배추 꼬다리만큼이면 다 되는데, 그놈의 공과금이 다 잡아먹는다.

(근데 갑자기 공과금이란 무슨 단어일까, 란 생각이 듦. 공적으로 부과된 금액이란 소린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 불평하고 있는 돈들에게는 공과금이란 이름이 어울리진 않는데. 사과금인데...  생각해보니, 내가 불평하고 있는 돈들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 이것들도 어차피 내가 먹고 입고 사는 데 필요해서 소비되는 돈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쓰면서 내 생활 어디가 보수되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인가. 그냥 물 새듯 새고 있는 돈이다. 이런 돈이 너무 많다. 이런 돈들을 위해 허걱허걱 일을 해야하는 처지가 불쌍하다. 도시의 생활에 왈칵 혐오감을 느낀 것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살고 있다는 명제가 바로 내 꼬락서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신문을 끊었다. 돈의 액수로 보자면 순위가 낮은 편인데, 가장 먼저 체크당했다.

신문 볼 시간도 없고.. 가 이유다. 

전화를 걸었다. 신문 끊기위해 배달원이랑 실갱이를 벌이는 짓 따위는 없이 우리회사는 깔끔하고 쿨하다는 듯이 전화상담원은 상냥하고 친절하기도 하였지만, 실제로 신문은 계속 왔다.

아침마다 집 앞에 놓여있는 신문 잡아드는 재미를 마지막으로 느껴보지, 뭐. 알아서 끊어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는데, 알아서 끊어주는 게 아니라 알아서 계속 보내고 있다.

 

뭘 끊나, 그러면.

건강보험료가 눈엣가시인데, 이거 어떻게 처치하는 방법 없을까.(이것은 진정 '공과금' 아닌가.)

그러나 그 다음 순위는 인터넷이란 걸 나는 내심 알고 있었다.

 

인터넷을 끊을 수는 없었다.

아, 내 친구 인더넷.

1996년부터 우린 찰떡사이였지. 집에서도 널 만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몰라.

밤새 넌 날 냉철한 시사의 세계, 몽롱한 예술의 세계, 그리고 축축한 지하의 세계까지 멋진 여행을 시켜주었었지.

니가 없이 난 어떻게 살겠니. 벌써부터 열손가락이 근지러워지는걸.

 

그러나

인터넷을 끊기로 했다.

일전에도 인터넷 가격이 문제되었을때, 더 싼 것으로 바꿀 방법을 찾았었지, 아예 없애버리는 것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어째 아주 명료하게 곧장 해지로 결정했다.

결정하고 나니, 그 후는 아주 고요한 바다였다.

 

해일이 몰려오고 폭풍이 범람하고 하늘과 바다가 엉켜 울부짖을 줄 알았는데, 고요한 바다였다.

인터넷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이다.

인터넷으로 신문 보면 되지, 뭐, 하고 생각했었는데, 신문을 끊으려 했다니, 갑자기 신문에게 미안해졌다.

그러나 아마도 난 인터넷이 있는 곳에 가게 되면 언제나 그 앞에 달려가 앉아서 어느새 입은 헤 벌리고 있겠지. 하여간에 지금의 정답은 인터넷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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