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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딸들의 연말결산

 

20살, 딸들의 연말결산


맹꽁이들은 잠깐 속았어

당했지만 생긴대로 살자

그러나 이젠 변별력이 있지

우리는 북극성을 향해간다.

두 말할 것 없이 패스!!!(2005.11.25라슈)


올해 한국나이로 20살인 둘째 아이 라슈가 뜻밖의 친구들을 데려왔다.

고등학교를 미련없이 자퇴한 라슈지만 그래도 그때 친구들은 남아 가끔씩 만나 회포를 푼다. 3년전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일때, 학교에 출석하는 날이 반, 여행한다며 결석하는 날이 반 이상일 정도로 불성실한 학교생활을 할 때, 학급 아이들과 담임교사는 늘 반갑게 맞아주었다고 했다. “이번 여행은 어땠어?” 

 

그때 그 아이들은 가끔 강남역에서 스티커사진 찍고, 신림동으로 순대를 먹으러 다닌다. 근래 만난 아이들과는 강남역 하우스 맥주집을 가는데 비해 그애들과는 순대와 떡볶이를 먹으러 몰려다닌다. 여중, 여고생시절의 취향은 그들을 그렇게 하나로 묶는 모양이다.  라슈는 여간해서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들어오지 않는데 그날은  우정의 표시로 스티커사진이 들어간 열쇠고리를 나누어 갖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번엔 아톰모양이 달랑달랑 달린 핸드폰 줄을 똑같이 나누어 갖더니....이번엔 딸아이가 먼저 사 신은 묘령의 털부츠를 같이 사신기로 했단다.

도합 5명


그런데 그 아이들이 밤새 나눈 대화가 예사롭지 않다.

대학을 들어가 첫 번째 만나고 헤어진 이성교제에 관한 건이다. 그애들은 짧게는 십여일부터 수개월에 걸친 교제 과정을  당황스럽게 겪은 모양이다. 알고 보니 일명 '선수'인 남자애가 먼저 사귀자고 해서 담담하게 사귀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정들면 헤어지기어렵다며 이별을 통보했다는것이다. 그리고 남자애는 사랑에 상처받았다며 불쌍한 모습으로 헤맨다는 스토리이다. 여자애들은 그 모든 과정이 어리둥절하지만  이별도 담담히 받아들였지만 예전처럼 친구사이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것고 쉽지않고  도리어 자신들은 여운이 남아 영 찜찜하다는 것이다.

 

20살 여자애들의 결론은 ‘자신들의 첫 이성교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울부산을 막론하고 연상의 복학생 이나 일명 선수들에게서 순진하고 어리숙한 여자애(맹꽁이)들이 겪는 통과의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젠 '맹꽁이'들도 변별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애들이 천박하든 말든 자신들은 순수하고 밝은 마음씨 그대로, 생긴대로 살겠다며 그리고 아직 미망에서 못벗어난 친구에게는 자신만의 북극성(인생의 목표 혹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향해 PASS!   하라고 조언과 격려까지 했다.


20살 여자애들이 겪어야하는 통과의례, 부모로서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나는 용기를 내어 내가 20살일때 겪었던 사례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가장 당황스러운 일은 몇 번 만나더니 느닷없이 장래를 약속하지고 덤비는 애들, 상대가 먼저 사귀자고 말걸고 상대가 먼저 헤어지자고 할 때의 참혹함,  그리고 여운...


지난 여름, 딸애가 공부를 위해 잠시 내 곁을 떠날 때 나는 미국 작가가 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선물했었다. 나는 떠나는 딸애에게 누누이 말했다. ‘만약 새롭게 사귀게 된 남자친구가 갑자기 네속을 썩인다면, 전화도 뜸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약속을 미룬다면  이 책 제목을 명심해라,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혹시 누가 사귀자고 접근하면 “됐거든,... 친구로 지내자” 내숭은 기본이고,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있지 말아라.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다.'

 그밖에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이 많았지만 다 하지 못했다.

잔소리로 들릴까봐...


얼마전 친구를 만났더니 친구는 “아이쿠, 말도 마라, 내 사무직 직원 아들애가 특목고등학생인데 공부도 잘하고 효자라 고생하는 부모의 자랑거리였는데 갑자기 여자친구가 생긴 후 그 여자애랑 주고 받는 이메일에 여보, 당신 호칭은 예사라 부모자식간에 심각하게 풍파를 겪었다더라.” 고 전해주었다.

하긴 딸아이가 전해주는 요즘 세태도 만만치 않다. 사랑에 목숨거는 애들, 서로 책임지는 사랑은 분명 아닌데 외로울까봐 헤어지지 못하는 애들, 어리지만 의처증 증세로 여자친구를 괴롭히는 애들....폭력적인 애들....은연중에 조건따지는 애들...애들 이성교제는 어른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아니 어쩌면 아직 미성숙해서 자제와 통제가 더욱 힘든 사각지대에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놓여있었다. 그럴 때 아이 주변에 성숙한 인간의 모델을 접할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다. 판검사는 아니더라도  애들이 도달하고자하는  인생의 북극성이 있다면 그들이 인생의 바다에서 잠시 길을 잃되 표류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면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다.


딸들은 밤새 열띤 토론을 마치고 새벽녘, 빈방 빈침대 다 놔두고 다섯명이 한방에서 얼키설키 모여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20살 여자애들은 다음번에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그들이 가야할 곳-부산, 천안, 시카고행 교통편에 몸을 실었다.(2005.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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