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정혜를 보았다.

개봉한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비됴가게에 벌써 나와버린 영화...여자, 정혜.

극장에 걸린것이 엊그젠데...쯪쯪...하면서도 나는 내심 이 영화가 이렇게나 빨리 비됴로 나온것에 환호했다. 김지수의 연기도 보고싶었고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뮤직비됴에 나왔던 '그 몇 장면'의 실체가 궁금하기도 했던것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극도로 절제된 화면을 보여준다.

작은 우체국에서 일하는 그여자 정혜는 알람이 울기전에 먼저 일어나 출근을 하고 일하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장을 보고 혼자만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화단을 가꾸고 베란다를 청소하고 혼자 잠이 든다.

끝없이 반복될것만 같은 사소한 일상들이 펼쳐지고 카메라는 정혜를 무심하게 따라다닌다.

저러다 말건가? 싶은 생각에 좀 지루해지려는 찰나, 정혜의 이상한 행동들이 눈에 띈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햄버거를 함께 먹으며 '니가 나한테 도대체 왜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남자는 도대체 왜 그런말을 했으며, 정혜는 왜 '그냥 아팠다'고 말했으며, 구두가게에선 왜 그렇게 민감한 행동을 했는지...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편집을 따라가다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장면의 대사들이 툭툭 다시 떠오르고 마음을 울린다. (사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대사가 몇개 없다.-_- )

정혜는 남의 상처를 어루만질줄 아는 여자다.

길잃은 고양이를 데려오고 술에 취해 친구들과 싸움을 벌이다 혼자 버려진 청년의 얘기를 들어주며 흐느끼는 그의 머리를 안아준다.

그러나 정작 정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길은 없다.

복수에도 성공하지 못한다.(궁금하지?)

상처때문에 혼자만의 사소한 일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게한다.

컷아웃으로 끝나버리는 엔딩때문에 잠시 당혹스럽다가도 응...그럼 어떻게 끝낼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게 되는것이다.

영화의 헤드카피가 바로 '사랑, 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는 것을 나는 영화가 끝나고 비됴테입을 꺼내보고서야 알았다.

이 불쌍한 여자의 인생에서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구나 이 섬세한 감독은...

그리고 또 아마도 사실은 정혜가 누구보다 강한 여자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암튼 그런생각이 든 것이었다.

이윤기감독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섬세하다.

각본을 직접 썼는데, 대사도 몇마디 안되는 이런 영화는 그야말로 장면과 상황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없고서야 연출이 불가능 하니까...

그여자 정혜의 감정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아주 특별한 '남자감독'인것이다.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연기도 훌륭하다.

김지수도...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만났다.

 

 

아...한가지 덧붙여서....

나는 진실로 그것에 대해 화가나는데...

영화를 못보신 분들을 위해서 차마 말할 순 없지만...

정말이지...너무나 화가난다.

우연히도 영화를 보기전에 티비에서 관련기사를 보고 '울나라 법정은 참으로 가관이구만'

어쩌구 하면서 흥분을 했던터라 더...

박찬욱감독이 인터뷰에서 그랬다지.

왜 복수에 집착하느냐고 묻자,  '사회적으로 개인의 복수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금지된 것에 매력을 느끼는것이라고..

개인적으로 복수하는걸 못하게 하려면 법과 제도가 대신 해주든가..ㅡ_ㅡ...맘에 안들어 정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4/13 02:25 2005/04/13 02:25
http://blog.jinbo.net/fiona/trackback/19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