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사람의 일생을 적은 글을 위인전이라고 하지....
그 위인전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참 많은 자극을 받았었다.
이런 인격을 가져야겠다...이런 철학을 배워야겠다.... 이런 감수성을 닮아야겠다....
무슨무슨 평전들이 아직도 귀하게 읽히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데 꼭 글로 읽지 않아도 햇살처럼 계시처럼 다가오는 일상의 위인전이 있다.
내게는 2002년의 한 여배우의 모습이 그랬다.
지금은 아르코 예술극장으로 개명한 그 시절의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정극 '수릉'을 공연하고 있을 때였다.
정극에 라이브 반주가 어찌나 생뚱맞았는지 모르지만...음악감독님께서 열의 충만하셨기에
어쩔 수 없이 한달내내 대학로로 출퇴근을 했다.
대극장 공연이었고 배우도 많았고 스텝도 많아서 매일 먹는 일이 큰일이었는데
지금도 도무지 생각 안나는 이름의 그 극단은 한달동안 매일 식사로 컵라면을 제공했다.
생각난다. 연습실 한 구석에 늘 쌓여있던 라면 박스들...
어느날 부터인가 아무런 간도 없이 뚱뚱하게 김에 말린 밥과 갓 담근 김치가 컵라면과 함께
제공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게 왠 목메이는 시츄에이션인가 싶다가 죽도록 컵라면이 질리기 시작할 무렵부턴 없어선 안될 주요식량이 되었다.
그건 별로 비중이 많지도 않은 한 중견 여배우가 개인적으로 싸들고 오는 음식이었는데
그 많은 밥과 김치를 매일 싸들고 오신 그 여배우가 바로 박재동화백의 부인 되시는 김선화씨였다.
참으로 대학로의 삶이 비참하다고 느끼던 바로 그 순간에 맛보았던 뚱뚱한 김밥의 기억은
나에게는 어떤 계시같은 것이었다.
김선화선생님을 보면서...그 엄청난 양의 밥과 김치를 보면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보람없고 힘겨운 사람들에게 밥과 김치같은 사람이 되고싶다고...생각했다.
요즘 나는 겨우 열명도 안되는 식구들의 밥을, 김치를 챙기면서 이름도 잘 모르는 스텝들의 식사까지 아낌없이 걱정하셨던 그 여배우를 생각한다. 나를 절대 기억 못하시겠지만....나는 그분의 밥을 기억한다.
밥을 나누는 기쁨을 가르쳐주신 그분의 마음을 기억한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기억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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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놀았다니 부럽네연... 맨날 불안한 마음으로 노는데 언제쯤 지대 놀 수 있을라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