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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대중?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가 참세상에 보내 글 을 보다 보니 재미있는 구절이 하나 있다: 경제적 군사적 제국의 지도자들은 삶을 파괴하는 제국에 반대하는 것보다, 교황의 죽음과 마이클 잭슨의 아동성추행 재판, 월마트에서 쇼핑하고 깃발 흔들기에 관심있는 ‘대중’에게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교황의 죽음은 전세계 대중매체를 도배하다시피 하며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국은 덜하지만 미국의 대중매체들은 마이클 잭슨의 재판을 거의 매일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의제설정은 철저히 대중의 손에서 벗어나 있다. 식량이 남으면 공급초과로 세계 곡물가격이 떨어지고 다국적 식량회사의 이윤이 하락되기에 초과생산된 식량을 바다에 버리는 야만적 행위는 대중매체에 잘 나오지 않는다. 일년에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다는 피맺힌 이야기도 잘 나오지 않는다. 1970년대 <자본주의 미국의 학교 교육: Schooling in Capitalist America> 이라는 책에서 주장된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주의 사회 학교는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 순응형 인간을 양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는. 북녘에서 김일성 김정일 체제 순응형 인간을 만들어 내듯. 자본주의나 스탈린주의(공산주의나 사회주의로 알려진) 체제하에서 주도권을 쥔 계급은 항상 수적으로 소수다. 수적으로 대다수인 사람들을 통제하긴 위한 방법은 수천년에 걸쳐 축적된 통치방법이 그대로 쓰인다. 세련되지 못한 방법은 공갈,협박,법을 이용한 탄압,암살,폭행 등이 있고 세련된 방법은 교육과 대중매체를 통한 통치계급의 이데올로기 확산,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불안 조성 및 노예적 노동 유도 (여기서 일하면 그나마 입에 풀칠 하지만 직장 없으면 굶어죽는다는 논리) 등이 있겠다. 이렇게 세련되거나 세련되지 못한 여러 방법을 통해 대중은 만만해진다. 만만해지길 거부하는 사람은 큰 결심을 강요받는다.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고, 부당해고된 뒤 재판을 걸면 재판이 이리저리 늦춰져 몇 년 걸릴 동안 글자그대로 쪽박 찰 수도 있고, 찍혀서 직장도 못 얻을 수 있고, 강의석의 종교자유 투쟁 돕다가 목사직, 교사직 반납할 수 밖에 없었던 유상태 전 목사처럼 어느날 갑자기 거리에서 리아카 행상을 해야만 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계급투쟁은 고사하고 이렇게 자유주의 투쟁에도 생존권을 걸어야 한다). 오늘도 대중들은 누구나 다 만만해질 것 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만만해 지는 것이 오늘 하루 살기엔 사실 편한 길이라는 걸 대중은 안다. 내일은 모른다. 오늘 하루 편하기 위해 그냥 만만해 지기로 한다. 만만하길 거부하면 오늘 하루 살기가 힘들다. 통치자들은 이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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