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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애'

*다른 선생님들한텐 고분고분한데 나에게는 싹수가 별로 없어보이는 학생 때문에 오늘 오후 내내 그 학생과의 관계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나의 평가가 덧씌워지면서 그 학생이 자꾸 얄미워지고 일말의 적개심 혹은 증오의 감정들이 감지되길래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보려 노력했다. 근데 바쁘고 다른 일에 치여 퇴근할 때 쯤엔 진이 다 빠져버려서 다시 곱씹어볼 기운도 없더라. 그래도 까먹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메모를.

 

"오늘 에세이 시험은 안 보면 안 되요?"

"왜요?"

"아 에세이는 봐도 별 의미도 없잖아요(!)"

"아 근데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저는 권한이 없고 xx 선생님하고 얘기해보세요"

 

언제부턴가 내 안에 있는 '착한 선생 컴플렉스'에 대해 자각을 했다. 그리고 학생과의 관계에서 내가 학생에게 강요하거나 혹은 반대로 무조건 받아주거나의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한 대화방식에 대해 고민을 계속 하는 중이다. 변화하려는 과도기에 있어서인지 종종 대화가 이도 저도 아니면서 내 말투에 은근슬쩍 가시들이 묻어날 때가 있다. 나중에 후회할 거 알면서도 일단은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마치 탁구칠 때 2,3구 뒤를 생각하며 스윙을 하듯 말할 때에도 대화전개양상을 미리 상상하며 말을 꺼내보려 하지만 조금만 긴장줄을 놓쳤다 싶으면 이내 나를 자극하는 말들에 대해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다.

 

위 학생과의 관계를 복기하면서 처음에 내가 찾은 내 욕구는 자율성, (권한?)이었다. 근데 그건 그 학생보다는 내 보스와 더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욕구인 것 같았다. 자칫 잘못하면 마치 종로에서 (보스한테) 뺨맞고 한강가서 (그 학생에게) 화풀이하는 상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학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 진짜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힘겹게 찾아낸 욕구는 '존중'이었다. 근데 막상 내 욕구를 그 학생에게 얘기를 한다고 상상해보니 왠지 그 학생은 바로 "저는 선생님 존중 안 한적 없는데요" 뭐 이런 식의 반응을 할 것 같았다. 마치 상대에게 자기 느낌을 말할 때 '난 무시당한 기분이야'라고 생각을 말하면 바로 상대가 그 말에 반발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 욕구를 더 찾아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학생을 공감해보려고 해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 병행을? 비폭력대화 연습 모임에 나가면 이 사례로 좀 도움을 받아볼텐데, 아쉽다. 도움/지원, 명료함이 필요한 것 같다.

 

외고 국제반 3학년. 1년에 최소 오천이 든다는 미국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처음 학교 갔을 때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이 애들은 영악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자꾸 생각이 난다. 진정한 소통, 진정한 관계 이런 걸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 안에 자꾸 젤 먼저 찾아오는 '싸가지 없는 놈'라는 이미지는 없애고 관계를 맺고 싶은데.

 

덧.

저녁에도 그 학생이 내 바로 앞에서 다른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나가길래 내가 인사를 먼저 했건만 본척 만척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 때 난 속으로 '오오 자 날맹 릴랙스 릴랙스'를 연발했더랬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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