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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5

확실히 몸을 움직이고 부딪혀야 자극도 많아지고 느끼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다. 자꾸 무언가를 써뱉어내고 싶은 상태. 그렇게 게워내야 다시 또 수업준비를 기꺼이 할 마음이 든다.
 
6학년 반 교생을 할 때 만난 아이 중에 시영이라는 친구가 있다. 담임선생님은 그 아이를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막 하는 아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막상 만나보니 게임을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딱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전반기에 그 반에서 함께 생활할 때 남자 아이들이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캐치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운동장에 나가 아이들 주변에 모습을 보이면 항상 시영이가 나를 반겨주곤 했다. 일기장과 내게 준 편지에 "교생 선생님이 와서 야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런데 내가 아웃될 때만 보시고 내가 안타를 쳤을 땐 다른 데를 보고 계셔서 아쉬웠다"고 쓴 아이였다. 그런데 난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에 게다가 정장을 입은 채로 함께 땀 흘릴 여건이 안 되기에 같이 못 놀아서 아쉽단 말만 했었다. 
 
교생들이 반을 옮기면서 서로 못 보게 되었는데 시영이가 교생들이 있는 준비실에 찾아와서 야구를 함께 하자고 찾아왔다. 같은 반에 있던 때에도 내 몫이라며 집에서 글러브를 두 개씩 챙겨오던 아이였다. 심지어 자기는 헌 글러브를 쓰고 나에게는 지난 주에 막 샀다는 새 글러브를 끼라고 주었다. 내가 함께 놀고 싶은데 교생 선생님들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같이 놀 시간이 잘 안 나서 아쉽다고 말하면 시영이는 “그럼 다음 주 화요일엔 꼭 해요, 알겠죠? 꼭 기억해야 되요 알겠죠?”라고 말을 했었다. 오늘이 바로 그 화요일, 난 사실 깜박하고 있었다. 아이들 하교지도를 하고 교생 준비실로 돌아오는데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영이 모습을 보니 오늘 함께 놀기로 한 약속이 그제서야 퍼뜩 떠올랐다. 
 
정말 함께 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당장 수업 준비에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난 지난번처럼 똑같이 “시영아 선생님도 야구 시영이랑 정말 같이 하고 싶은데 오늘도 또 교생 선생님들 일정 때문에 어려울 것 같으네. 아쉬워서 어떡하지?”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시영이는 나보고 그래도 같이 하자고 조르는 것이 아니라 “아 그래요? 선생님 그럼 우린 언제 같이 한번 놀죠?”라고 답을 해서 더욱더 미안해졌다. 게다가 오늘은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시영이는 날씨를 알고서도 같이 야구를 하자고 말한 약속을 지키려고 내 글러브까지 두 개를 챙겨서 온 것이었다. 시영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다음에 혹 시간이 나더라도 길게 하지는 못 할거라고 해도 "괜찮아요. 저는 조금만이라도 선생님하고 캐치볼 하면 돼요" 말하는 아이. 이런 아이에게 난 대체 뭘 해주고 있는건가 싶었다.
 
지난 스승의 날에 다른 아이들은 교생들에게 편지만 주었는데, 시영이는 자기가 아끼는 샤프 하나씩을 교생에게 주었다. 난 샤프를 쓰지 않기에 시영이 샤프도 편지 무더기 어느 틈에 함께 묻혀 있지만, 시영이한테 샤프 정말 고맙게 잘 쓰고 있다고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시영이 왈 “선생님 저 그 때 교생 선생님들 샤프 사고 편지지랑 봉투까지 산다고 2주치 용돈을 다 썼어요”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날 위해 2주치 용돈을 다 바쳐서 선물을 한 아이에게 난 그만한 보답을 해주었을까 생각하니 순간 울컥했다. 내겐 돈 만원쯤이야 하루 술값 밥값으로 너무나 쉽게 쓰게되는 돈인데, 그 아이에겐 2주치 용돈을 다 바쳐서 뭔가를 주려고 했다는 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당장 하루하루 수업 준비에 피곤해하고 있었는데 오늘 시영이와의 대화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최소한 이 아이들이 내게 하는 것만큼 내 존재를 바쳐서 만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잠 몇 시간 못 자는 거 당장 다음 주면 실컷 잘 수 있을텐데, 좀 더 온전하게 아이들과 만나려고 노력해야지 하는 생각. 다음에 시영이를 만나면 헤어지기 전에 한번 꼬옥 안아줘야겠다.
 
 
 
난 매일 생각한다
-윤귀봉
 
오늘은 무엇을 할까
창우를 때릴까
초이와 소희가 청소를 
잘 하니까 칭찬할까
만약 내 머리가 대머리면 
모자를 쓸까 말까
내 생각은 
끝도 없다. 
 
 
-우리 반 뒤에 걸린 동시.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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